
같은 '감독'이라도 스포츠 종목에 따라 경기 개입 방식과 영향력이 달라진다. 그 중에서도 다른 스포츠에 비해 인원이 적은 농구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감독의 역량이 경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빠른 경기 흐름 속에 감독의 판단이 즉각 반영되고, 감독의 전술과 선수 운용에 따라 팀의 경기 양상이 뚜렷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2025-2026시즌 정규리그 3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원주 DB프로미 농구단은 새 사령탑으로 이규섭 감독을 선임하고 곧바로 팀 정비에 들어갔다. 다음 시즌 DB프로미가 어떤 변화된 모습으로 원주 팬들의 자부심을 지켜 나갈지 궁금해진다.
감독

빠른 판단으로 경기 흐름 이끄는 대응 능력
다른 스포츠 종목의 감독과 달리 농구에서 감독은 경기 중 개입 빈도가 매우 잦다. 자유롭게 선수를 교체하고 작전 타임을 요청해 경기 흐름을 끊거나 분위기를 전환한다. 특히 농구는 상대적으로 작은 경기장에서 득점이 빠르게 반복되며 짧은 시간 안에 점수 차이가 크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감독에게는 경기 상황을 즉각 판단해 전략을 수정하고 적용하는 대응 능력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또 농구에서는 맨투맨 수비와 지역방어를 상황에 따라 전환하거나, 속공과 세트 오펜스를 선택하는 등 경기 중에도 전술 변화가 유연하게 적용된다. 농구 감독은 다른 종목에 비해 선수 역할까지 유동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프로농구 감독들은 달라지는 농구 트렌드와 시대 분위기에 맞춰 다양하고 창의적인 리더십을 요구를 받는다.
선수출신

팬들 가슴에 ‘전설’로 남은 프로농구 감독들
1997년 출범한 KBL의 30년 세월은 열정 넘치던 초보 감독이 연륜이 더해진 성숙한 노장으로 거듭나기 충분한 시간. 다사다난했던 한국프로농구(KBL)의 역사에는 팬들 가슴 속에 잊지 못할 '전설'로 남은 감독들이 적지 않다. 프로농구 역사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감독은 역시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이다. 1998년 당시 35세 최연소로 대우 제우스(현 인천 전자랜드) 감독에 취임한 이래 현대모비스에서 현역 최고령 감독에 이르기까지 22년간 코트를 지켰다. 유 감독은 현대모비스에서만 6회의 챔프전 우승과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모비스 왕조'를 구축했다.
프로무대에 선수 출신 감독이 본격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 허재 감독은 2005년 전주 KCC 사령탑에 취임하며 선수 출신 감독 1호가 됐다. 2009년과 2011년 KCC를 우승으로 이끌며 '선수와 감독으로 프로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이후 유도훈, 문경은, 이상범, 김승기 등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 출신 감독들의 성공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2023년 원주 DB프로미의 사령탑이 된 김주성 감독도 선수 출신 계보를 잇는다. 원주 DB프로미에서 16시즌을 뛴 ‘원클럽맨’으로 선수 시절 질식 수비와 높이로 ‘원주 산성’을 구축했다. 3년 간 ‘농구 명가’ 재건에 나서 곧바로 2023-2024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낸 김 감독은 정식 감독 데뷔 시즌에 팀을 정규리그 1위에 올려놓은 KBL 역대 6번째 사령탑으로 이름을 남겼다.
명암

5개 팀 새 사령탑으로 시작한 시즌, 엇갈린 성적표
2025-2026시즌을 앞두고는 KBL이 격변의 시기를 겪었다. 10개 팀 가운데 절반인 5개 팀이 사령탑을 교체한 것. 5개 팀의 감독이 한꺼번에 바뀐 사례는 KBL 출범 후 단 3차례(2004년, 2022년)에 불과할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각 구단의 절박함이 컸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규시즌이 끝나고 5개 팀의 성적표는 명암이 엇갈렸다.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감독 가운데 경력직 사령탑은 총 3명. 이 중 안양 정관장 유도훈 감독과 부산 KCC 이상민 감독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며 1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지만, 수원 KT 문경은 감독은 7위로 시즌을 마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결과를 만들어낸 팀에게는 찬란한 '봄 농구'가, 그렇지 못한 팀에게는 어느 때보다 차디찬 '시련의 계절'을 맞았다.
지휘봉

원주 DB프로미, 이규섭 신임 감독 선임
정규리그 3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원주 DB프로미는 시즌이 끝나고 곧바로 이규섭 KCC 코치에게 새 지휘봉을 맡겼다. 고려대를 졸업한 이규섭 감독은 2000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해 신인상을 수상했고, 데뷔 첫 시즌인 2000-2001시즌과 2005-2006시즌 두 차례 서울 삼성 우승의 핵심 멤버로 기여했다. 2001년부터는 10년간 국가대표 슈터로 맹활약하며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퇴 이후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미국 NBA G리그팀 산타크루즈 워리어스에서 정규 코치를 역임한 뒤 국내로 복귀해 2014년부터 8년간 서울 삼성 코치, 감독대행, 그리고 해설위원과 2025-2026시즌 부산 KCC에서 수석코치로 활약했다. 이 감독은 “해설위원을 하면서 농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한다. 코트 밖에서 객관적인 눈으로 경기를 분석하고, 다양한 감독들의 인터뷰와 전술을 경청했던 경험이 스타플레이어들의 심리를 아우르고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설명이다.
출사포

‘뉴 DB’의 핵심 키워드는 ‘소통과 ‘믿음’
그리고 ‘젊은 피의 성장’
이규섭 감독이 구상하는 ‘뉴 DB’의 핵심 키워드는 ‘소통’과 ‘믿음’, 그리고 ‘젊은 피의 성장’. 이 감독은 “이선 알바노와 강상재라는 리그 최고의 중심축이 건재한 것은 큰 축복이다. 여기에 이유진, 김보배, 그리고 박인웅 등 젊은 포워드진이 반드시 한 단계 더 성장해야만 한다. 이 선수들에게 더 많은 출전 시간과 명확한 롤을 부여해 DB의 뎁스를 단단하게 다지겠다.”라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밝혔다.
그가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다. “선수가 감독을 믿고 코트에서 모든 걸 쏟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전술은 그 다음이다. 그 믿음은 준비에서 나온다.”라고 말한다. 이 감독은 미국 G리그에서 코치 연수를 할 때 들었던 말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다. “실수하지 말라. 그러면 선수들이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훈련지 하나도 철저히 준비하고, 선수 이름까지 적어놓는 미국 코치들의 방식을 보며 배웠다며, “선수들은 준비된 사람의 말을 따르게 돼 있다”고 강조한다.
시너지

이흥섭 단장-이규섭 감독,
KBL 최초의‘형제 단장-감독’체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규섭 신임 감독의 형이 DB프로미 이흥섭 단장이라는 점. 이 단장은 선수 출신으로 2000년 은퇴 후 풍부한 프런트 경험과 실적으로 지난해 단장까지 오른 입지적 인물이다. 1997년 KBL 출범 이후 친형제가 한 클럽의 사령탑과 프런트 수장으로 뭉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구계 안팎에서 소통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언뜻 보기에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DB 선택에는 변함이 없었다. DB프로미는 프런트에서 올린 30여명의 감독후보 롱 리스트를 두고 신임 사령탑 선임에 나섰다. 최종 3인은 위에서 지명하는 탑 다운 방식이 혼용됐다. 이규섭 신임 감독이 모든 면에서 적합했다. 내부적으로 형제 단장-감독 체제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했다. 오히려 형이 단장이기 때문에 동생이 사령탑에 오를 수 없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DB프로미는 미국, 일본 등 해외리그처럼 전문 단장 중심의 선진 구단 운영체계를 지향하며, 이를 통해 구단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한층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규섭 감독은 “DB에서 준 소중한 감독이라는 자리다. 선수로 코치로 우승을 해봤으니 감독으로서도 최종 목표는 우승”이라며 “원주 팬들의 뜨거운 농구 열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위기가 오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팀을 만들어 보겠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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