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의 벚꽃처럼 짧은 순간 화려하게 피었다 사라지는 단풍의 계절, 가을, 단풍의 가장 눈부신 모습을 선명하게 붙들고 있던 가을 단풍 명소에 다녀왔습니다. 노란 개나리가 떠오르는 샛노란 색의 단풍부터 해 질녘 붉은 노을을 닮아 있는 적색 단풍, 그리고 단풍만큼이나 가을의 색감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는 억새와 갈대까지. 짧은 시간, 가을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자연이 연출해 놓은 아름다운 풍경이 수 놓여져 있는 가을 단풍 명소, 소백산, 고운골 갈대숲, 제천 의림지로 초대합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가을은 이곳의 풍경과 함께, 마음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추억거리를 남기는 짧지만, 긴 여행이 되시길, 회색 빛 도심지에서 쌓였던 탁한 색깔을 벗어 던지고, 알록달록 풍성한 색깔들로 마음을 물들이게 되는 예쁜 여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권태를 달랠 수 있도록.
# 능선 길을 따라 걷는 가을의 한 줄기 소백산
📌 소백산 국립공원
• 위치 : 경북 영주시 봉현면 소백로 1794
• 입장료 : 무료
• 입산 가능 시간 : 동절기 (11월 ~ 3월) 05시 ~ 13시
하절기 (4월 ~ 10월) 04시 ~ 14시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에 걸쳐 있는 백두대간의 한 줄기, 소백산은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네 번째로 넓은 산악형 국립공원입니다. 코스는 초암사 코스, 삼가동 코스, 희방사 코스, 죽령 코스, 여의곡 코스, 천동계곡 코스, 도솔봉 코스까지 총 7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번 글에선 희방사 코스 (희방탐방지원센터 – 희방사주차장 – 희방폭포 – 희방사 – 깔딱고개 – 연화봉 – 제1연화봉 – 비로봉) 를 통해 경험하게 된 소백산의 아름다운 장면을 소개 시켜드리고,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반겨준 건,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바닥에 수북이 쌓인 낙엽의 향기였습니다. 시작부터 기분 좋은 느낌을 마주하게 된 덕분에 소백산 등산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 산책처럼 느껴지게 됐습니다. 그렇게 입구를 지나 천천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됐는데요.

빛이 스치면 나뭇잎이 반짝이고, 바람이 불면 그 빛이 흩날리는 덕에 숲 속은 마치 붉은 빛과 노란빛이 뒤섞인 살아 있는 그림처럼 느껴졌고,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낙엽의 바스락거림이 발걸음에 리듬감을 실어주었습니다. 중간중간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만들어내는 빛의 터널은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그래서 온몸으로 음미하게 됐던 특별한 광경이었습니다.

황홀한 풍경에 연신 감탄하며 숲을 거닐던 중, 숲 길 끝 쯔음에서부터 청량한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물소리의 출처를 찾고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다 마침내 희방폭포에 다다른 순간, 또 한번 발걸음이 멈출 수 밖에 없었는데요.

빛줄기와 함께 바위 사위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반짝거림이 시선을 빼앗았고, 미세한 물안개와 시원한 공기가 얼굴에 오른 열감을 식혀주었기 때문이었죠. 웅잠함 속에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던 희방폭포,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등산의 마지막 구간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드넓은 하늘 아래 자리한 연화봉 표지석을 마주하게 됩니다. 연화봉은 산의 생김새가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연화봉을 직접 마주했을 땐, 나무가 드물어 시야가 탁 트이고, 발아래 펼쳐진 산맥 덕에 아름다운 꽃의 느낌보다는, 웅장한 느낌이 가장 먼저 와닿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매섭게 불어오는 칼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려오기 시작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쭉 뻗어져 있는 능선길과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맑은 하늘 덕분에 얼마 안 가, 그 아픔으로부터 무뎌지게 되었습니다.


연화봉 표지석에서 옆으로 눈길을 돌리면, 인간 해시계가 되어보는 재미있는 체험까지 해볼 수 있도록 나무 데크가 마련되어 있는데, 사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방문한 달이 표시된 돌 위치에 올라서면 그림자가 시침이 되어 시간을 표시해 줍니다. 과연 시간이 맞을까 반신반의하며 스마트폰 시간과 비교해 보았는데 약간의 오차가 있었지만 얼추 맞아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연화봉 정상에 머물렀던 순간은 산의 조망을 감상하는 순간과 더불어 옛 선조들의 과학적 지식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연화봉을 뒤로하고 소백산의 최고봉, 비로봉으로 향하는 길, 빛의 이동에 따라 능선 길엔 황금빛이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능선길 좌우로 펼쳐진 억새 초원은 바람의 지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죠.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기분은, 마치 뮤지컬 클라이맥스 구간에서 길을 터준 조연들의 대열 사이로 당차게 등장하는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해가 서쪽 능선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헉헉거리는 숨과 함께 비로봉에 도착하였습니다. 비로봉까지 오는 길, 이곳저곳에 한 눈이 팔려 오래도록 넋 놓고 있던 탓에, 해가 저물어 비로봉에서 바라보는 산맥들의 절경이 아쉬울까 걱정이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였습니다. 조급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비로봉은 늘어져 있는 노을을 품은 채 여유로운 모습으로 맞아주었습니다. 해가 점점 짧아져 오래도록 즐길 순 없었지만, 오히려 그 광경이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듯 하였습니다.

붉은 잎, 노란 잎, 그리고 그 사이로 남은 초록의 잔빛들. 소백산에서 느꼈던 가을의 조화로운 모습은 화려함으로 시작해 완성에 가까운 평온함이었습니다. 구간 구간에 따라, 오전과 오후에 따라, 소백산은 전혀 다른 얼굴로 맞이해주었고 그 덕에 가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 바람에 일렁이는 금빛 물줄기 고운골 갈대숲
📌 고운골 갈대숲
• 위치 :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고운리
• 입장료 : 무료
• 주차료 : 무료

제천시 봉양읍 고운리, 이름처럼 ‘고운’ 마을에 자리한 고운골 갈대숲은 최근 SNS를 통해 천천히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 가을 명소입니다. 이 아름다운 명소를 천천히 거닐 수 있도록 갈대숲 사이사이로 통하는 길이 나있고, 갈대숲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는데요.

드넓게 펼쳐져 있는 갈대숲을 본 순간, 산책 같은 건 무시한 채 퐁당 뛰어들어 그 속에 파묻혀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뛰어 들어갔고, 그 속에 들어서니 제 키만한 갈대들이 질서정연하게 군집을 이루고 있었죠. 멀리서 봤을 땐 그저 아름답기만 할 뿐이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웅장함까지 느껴졌습니다.

갈대숲이란 자연에 둘러싸여 건물과 자동차가 시야에서 가려졌을 땐 보통의 일상과는 다른, 한껏 여유로운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주변에 갈대숲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이 한 템포씩 천천히 걷고 있는듯하였습니다.

갈대 숲속을 빠져나와 다시금 멀리서 바라본 갈대숲. 따스한 색감의 햇살 아래, 바람에 찰랑찰랑 흔들리고 있던 황금빛 갈대숲은 마치 반짝이는 윤슬을 품고 있는 호수를 연상케 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것과 멀리서 본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왔던 고운골 갈대숲, 이곳을 계기로 역시 아름다운 건 직접 경험해 봐야 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직접 경험해 봤을 때의 기분과 느낌은 인터넷으로는 감히 예상할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니 말이죠. 겉과 속이 다른 갈대숲의 풍경처럼.
# 가을마저 느긋하게 흘러가는 호수, 의림지
📌 의림지
• 위치 : 충북 제천시 모산동 241
• 24시간 운영
• 입장료 : 무료
• 주차료 : 무료

제천 중심부에 위치한 의림지는 신라 진흥왕 시절의 삼한시대 때부터 이어진 가장 오래된 저수지이자, 제천 10경 중 제1경에 속한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의림지는 여전히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의림지 특유의 고요하고 느긋한 풍경 덕분인 것이겠죠.

잔잔한 호수 위에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섬 같은 것이 그 특유의 고요함을 한껏 더해주는 듯하였습니다. 게다가 호수에 내리쬐는 햇살과 반짝이는 윤슬, 호수 위를 노닐고 있는 오리 배들까지.

의림지 입구에 다다르자, 수줍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환영하고 있던 제천시의 마스코트, 박달신선과 금봉선녀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이 둘의 설화를 알아보니, 귀여운 생김새와는 다르게 서로를 그리워하다 끝내 엇갈린 채 비극적으로 끝을 맺게 된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얽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천시는 이 설화의 끝을 제천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해피엔딩으로 재구성하여, 이 둘을 제천시의 마스코트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의림지에는 다양한 볼 것들이 더 남아 있었는데, 이날은 의림지에서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볼거리였던 수경분수와 용추폭포, 작은 동굴을 둘러봤습니다. 의림지 수변데크를 쭉 이어가면 솔밭공원, 비룡담길, 솔향기길까지 산책할 수 있다고 하니, 시간 여유가 되신다면 도심의 소음을 벗어난 정적을 배경음 삼아 느긋하게 둘러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의림지에서의 볼거리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용추폭포. 용추폭포를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설치된 유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그 느낌은, 거대하고 힘찬 폭포마저도 느긋하게, 여유롭게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폭포가 세차게 떨어지고 있는 동굴에 홀린 듯 들어가, 동굴 틈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를 감상하였습니다. 예전에 봤던 어느 어드벤처 장르 영화의 한 장면 (대략 폭포가 떨어지는 동굴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 장면)이 떠오르는 장면이었고, 마치 그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만약 실제였다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상상을 하게 되었고, 물방울이 바위 표면에 부딪혀 튕겨 나와 느꼈던 촉감이 영화 속 장면의 실재감을 한층 더 높여주었습니다.

날씨가 꽤 쌀쌀한데도 의림지를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가 온화하고 여유로워 보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되기 전 날인, 일요일 오후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가을마저 쉬어가고 있는 의림지의 모습을 닮은 사람들, 저 역시도 이곳에서 자유로운 게으름을 만끽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도심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던 풍경들, 도심이 아니기 때문에 느껴볼 수 있었던 특별한 가을의 순간들. 서로 닮진 않았지만, 가을을 마음속에 남기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던 이 세 곳에서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하나의 교훈처럼 다가왔습니다. 더 멀리 떠나볼수록, 더 길게 추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더 많이 찾아오게 된다는 교훈으로 말이죠. 그러니 가끔은 멀리 떠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이 아닌 마음에 오래 기록할 수 있도록, 계절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 계절의 중심에 서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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