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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고 사진전 ‘MILES TO GO’ :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시선

요시고라는 사진작가를 아시나요? 스페인 출신의 호세 하비에르 세라노는 요시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평범한 풍경과 일상의 장소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사진작가입니다. 그의 예명 YOSIGO는 아버지가 건네준 시 속 구절 “YO SIGO(나는 계속 나아간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는 의미를 넘어, 창작을 실천하는 과정 자체의 가치를 담고 있지요. 이 이름 속에는 아버지의 응원과 그에 보답하려는 아들의 신념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2021년부터 최근까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담아낸 신작 300여 점이 공개됩니다. 바다와 해변, 도시와 건물,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풍경들이 요시고의 감각을 통해 전혀 다른 시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 YOSIGO 사진전 2, MILES TO GO

[끝나지 않은 여행]

📌 요시고 사진전

• 위치 : 그라운드시소 센트럴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4 그랜드센트럴 3층)

• 관람시간 : 2025년 6월 6일(금) ~ 2025년 12월 7일 (일)

*월 별 상세 휴관일은 온라인 예매 페이지 혹은 공식 인스타그램 참고 필요

• 운영일 : 10am ~ 7pm (입장 마감 6pm)

• 입장료 : 일반 20,000원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시야를 가득 메운 건 파도 너머 해변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습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해안 마을 출신인 요시고는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를 들고 살던 곳 근처인, 라 콘차 해변을 자주 찍었다고 합니다. 같은 장소를 몇십 년째 찍고 있지만, 그에게 이 해변은 늘 새로운 곳인데요. 해변 자체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장면들, 순간의 표정과 움직임에 더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예명 ‘YO SIGO(나는 계속 나아간다)’답게,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그의 감성이 전시장 초입부터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작품들은 요시고 특유의 색감을 뚜렷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원색의 선명함과 자연의 부드러움이 이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사람들의 행동’이라는 주제를 독창적으로 풀어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전시관마다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흐른다는 것이었는데, 첫 번째 파트인 ‘HOLIDAY MEMORY’에서는 휴양지를 즐기는 사람들이 음악의 리듬과 함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습니다.

요시고는 사진을 단순히 이미지로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전시장 안의 빛, 배경음악, 공간의 구성까지 활용하며 사진을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시켰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연출은 사진이 마치 물처럼 투명하게 비치도록 배치된 장면이었습니다. ‘물’과 ‘해변’의 자유로움을 빛의 반사와 투명한 사진의 반사로 표현해낸 설치는, 빛을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다뤄보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남은 한 작품이 있었습니다. 같은 장소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백만 번 촬영되는 시대에, 요시고는 자신만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찾습니다. 우리가 흔히 해외여행에서 마주하는 풍경조차, 그의 렌즈를 거치면 전혀 다른 색감과 정서로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제가 보는 풍경과 그가 담아낸 이미지 사이의 차이를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CLOSE TO THE WATER

[해변 위로, 바닷 속으로 눈 부신 빛이 쏟아지는 순간]

두 번째 테마인 CLOSE TO THE WATER는 초입부터 강렬했습니다. 커다란 스크린에 펼쳐진 해변의 영상과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빛 액자는 관람객이 마치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듯한 몰입감을 주었습니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요시고에게 물은 특별한 구분이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영장이든, 자연 그대로의 바다든 상관없이 물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대상이자 매력적인 소재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초입부 연출은 이러한 그의 생각을 그대로 담아낸 듯했습니다.

 

물은 빛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고, 반사된 모습은 늘 예측 불가능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물을 촬영할 때는 결과물을 완벽히 예상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시고는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오히려 사진이 가진 순수한 즐거움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물의 유동성과 변화를 받아들이며, 계획되지 않은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물 위에서 뛰노는 인물이 흔들려 버리기도 하고, 반짝임이 낯선 형상으로 변형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사진 한 장이 단순히 장면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물이라는 매개가 가진 자유와 예측 불가능함을 함께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물을 단순히 배경이나 환경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다뤘다는 것입니다. 요시고의 사진 속에서 물은 풍경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빛과 움직임을 반사하고 왜곡하며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가 담아낸 물의 표정은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역동적이었으며, 보는 사람에게 묘한 편안함과 동시에 긴장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조리개를 최대한 열어 촬영한 작품들은 물이 가진 예측 불가능함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초점이 선명히 맞지 않은 듯 흐릿하게 번지는 순간들이 오히려 물의 유동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암실 속에 설치된 빛 액자는 물에서 느껴지는 반짝거림과 유영하는 듯한 질감을 더욱 생생하게 재현해, 관람객이 직접 물결 속에 잠긴 듯한 기분을 주었습니다.

 

# OF THE SEAS

[크루즈에서 즐기는 여름 휴가]

OF THE SEAS는 크루즈 위에서 즐기는 여름휴가를 담고 있었습니다. 요시고는 이 시리즈를 위해 직접 지중해를 항해하는 크루즈에 탑승했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12km씩 배를 걸으며 갑판과 객실, 워터파크와 선베드 같은 공간을 세심하게 관찰했고, 그 과정에서 단순한 여행 사진을 넘어선 독특한 풍경을 포착했습니다.

 

수평선과 나란히 펼쳐진 갑판, 햇살 아래 줄지어 놓인 선베드, 수영장 주변에서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뜻 평범한 휴가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요시고의 시선은 그 장면 속에서 아이러니를 드러냅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배 안에서 사람들은 정작 바다와는 동떨어진 인공적인 즐길거리, 호텔 같은 편의 시설 속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 간극이 만들어내는 묘한 유머와 풍자가 사진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작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관람객은 어느새 직접 크루즈선에 탑승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사진 속 인물들은 대부분 얼굴이 드러나지 않거나 작게 표현되어, 특정 개인이 아닌 ‘휴양객’이라는 익명성을 강조합니다. 덕분에 보는 이는 스스로를 그 장면 속 인물에 대입하게 되고, 동시에 그 이면의 아이러니를 곱씹게 됩니다. 결국 OF THE SEAS는 단순한 크루즈 사진이 아니라, 바다 위에서조차 여전히 바다를 외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휴양과 소비, 풍경과 아이러니가 한 화면 속에서 교차하는 요시고의 독특한 시선이 잘 드러난 테마였습니다.

 

# INTO THE ALLEY

[요시고의 눈으로 본 서울]

요시고의 눈으로 본 서울은 어떨까요? 골목길로 들어서면 정겨운 풍경이 펼쳐지는 재래시장, 늘 오가던 도심의 건물, 지하철역의 흔한 풍경들. 우리에게는 일상이고 배경에 불과한 장면들이, 그의 카메라를 거치면 전혀 다른 색감과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늘 같은 길, 같은 승강장, 같은 풍경이라고만 생각했던 장면들이 요시고의 렌즈를 통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게 됩니다. 그가 포착한 서울은 우리가 아는 서울과 닮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낯설었습니다. 재래시장의 붉은색과 푸른색은 평범한 장터가 아니라 정겨움과 리듬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번 요시고 사진전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늘 제가 접하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요시고의 시선으로는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궁금증이었지요. 답은 분명했습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장면조차도 그의 렌즈는 섬세하게 포착했고, 그 속에서 일상의 낯선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끌어냈습니다. 접하던 음식들, 간판과 메뉴판마저도 새로운 색감과 구도로 재해석되었습니다. 단조로움 속에서 특별함을 길어 올리는 요시고의 시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요시고가 보여준 서울은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익숙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살아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같은 장소도, 같은 순간도, 그의 카메라를 거치면 다시 태어나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시의 제목 ‘MILES TO GO’처럼, 요시고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순간들을 사진 속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 풍경은 시간이 쌓이고 감정이 덧입혀져 만들어진 특별한 기억처럼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던 장면도 그의 시선 아래에서는 새로운 색을 얻고, 다시 한번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 제 마음에 남은 건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단순한 사진전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한 편의 필름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디로 이어지고, 또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계신가요? 이번 글에서는 전시 속 몇 가지 테마만 소개했지만, 실제 전시장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으시다면, 이번 요시고 사진전을 꼭 경험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아마도 여러분만의 질문이 마음속에 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