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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역사가 숨쉬는 유관순 열사의 도시, 천안 여행

많은 사람들이 천안이라고 하면 호두과자와 병천순대거리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상징, 유관순 열사의 고향이라는 점입니다.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오래 누려왔지만, 동시에 그 자유가 얼마나 큰 희생 위에 놓여 있는지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침 요즘은 바깥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천안에서 역사의 울림과 오늘의 일상을 함께 느껴보는 천안여행은 어떨까요?

 

# 불꽃 같은 삶을 기억하다 [유관순 열사 사적지]

📌 유관순 열사 사적지

• 위치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38

• 관람시간 : 3~10월: 09:00 ~ 18:00 / 11~2월 : 09:00 ~ 17:00

• 운영일 : 365일 개방

• 입장료 : 무료

• 해설 운영시간 10:00 ~ 17:00

• 해설 예약전화 041)522-6785

 

천안 여행의 첫 행선지는 유관순 열사 사적지 안에 있는, 기념관이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정면 벽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열일곱의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 그리고 그 선택을 기꺼이 감당했던 한 소녀의 신념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1902년 충남 천안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열일곱의 나이에 민족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친 그는 서둘러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다시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 만세운동은 일본군에게 잔혹하게 진압당했고, 유관순 열사는 주동자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이감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끔찍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끝내 1920년 9월 28일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유관순의 횃불’이라는 제목의 실감 영상이었습니다. 열사의 유년 시절부터 독립 만세운동까지의 과정을 짧지만 인상 깊게 담아낸 영상이었는데, 화면 속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 시절로 걸어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천안 매봉산 자락 지령리 마을에서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사이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유년 시절을 보낼 무렵, 마을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미국 케이블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유관순에게 교회는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라 놀이와 배움의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접한 기독교 문화와 교육은 훗날 그녀의 신념과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합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직해’ 등 종교에 영향을 받은 물건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기념관 내부는 열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따라 걷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시는 유년기 → 이화학당 시절 → 아우내 만세운동 → 옥중 투쟁 → 순국과 추모의 동선을 갖추고 있었고,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며 그 궤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끝까지 일제에 맞서 싸웠습니다. 고문과 수감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끝내 순국할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흔히 유관순 열사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정작 그녀의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념관의 전시물들은 바로 그 빈틈을 채워주었습니다. 성경책, 일기장은 평범한 소녀의 일상을 보여주었고, 태극기와 선언문은 열사가 거리에서 외쳤던 독립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입었던 수인복과 차갑게 재현된 감방 모형 앞에서는 숨이 막히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기념관에서 전시를 관람한 뒤 저는 추모각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는 유관순 열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매년 9월 28일 순국일에는 추모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유관순 사적지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순국자 추모각이 나옵니다. 이곳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호서지방에서 일어난 최대의 항일운동,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59분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공간입니다. 1919년 4월 1일, 천안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약 3,000여 명의 군중이 유관순 열사와 함께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총칼 앞에 운동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날만 해도 유관순 열사의 부모를 포함한 19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이들이 옥고를 치르거나 평생 지울 수 없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추모각 안에는 열사와 동지들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단순한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이름이 벽면을 채우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묵직한 울림이었습니다.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함께 자유를 외쳤다는 사실이 이 공간에서 또렷하게 전해졌습니다. 그 앞에 서니 유관순 열사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의 외침이 이 나라를 지탱해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 작은 불씨, 희망을 키우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

📌 유관순 열사 생가

• 위치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생가길 18-1

기념관과 사적지를 둘러본 뒤 찾은 곳은 유관순 열사의 생가였습니다. 충남 천안 병천면 매봉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초가집은 열사가 실제로 살아가던 시절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생가 앞을 가득 메운 수많은 태극기였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일제히 펄럭이는 태극기들은 마치 이 작은 집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보였습니다. 단순히 장식이 아니라, 이곳이 독립운동의 고향이자 자유의 상징임을 일깨워 주는 풍경이었습니다. 태극기 하나하나가 열사의 짧은 삶과, 그와 뜻을 함께했던 이들의 외침을 이어주는 듯했습니다.

 

집 안은 방 두 칸과 부엌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조였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가족들이 함께 신앙을 지키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을 모습을 떠올리니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생가 내부에는 태극기 목판을 이용해 태극기를 직접 제작하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 그리고 아우내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마을 어른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어, 단순한 복원이 아닌 역사 교육의 장으로도 의미를 더했습니다.

생가에 직접 들어서 보니, 책이나 기록으로만 알던 유관순 열사의 삶이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신앙을 배우고, 독립의 꿈을 키워갔다는 사실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한 소녀가 살던 작은 집이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억의 장소’가 된 것이지요. 소박한 초가와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 사이에서, 짧지만 치열했던 삶이 여전히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가 옆에는 유관순 열사가 유년 시절부터 다녔던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시골 교회였지만, 그곳이 한 소녀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준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전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교회 주변에는 열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벽화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니 마치 누군가의 희생과 용기를 함께 되새기는 의식에 참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건, 기념관과 생가, 그리고 이 교회가 열사를 단지 ‘영웅’으로만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의 딸이자 친구였고, 교회에서 뛰놀던 평범한 소녀였던 시간을 함께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삶이 오늘날까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 천안 병천순대거리

📌 박순자아우내순대 본점

• 위치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순대길 47

• 가격 : 순대국밥 10,000원 등

 

천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박순자순대와 천안옛날호두과자였습니다.

 

병천순대거리의 대표 맛집, 박순자 아우내순대. 병천순대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보니 기대를 안고 방문했습니다. 평소에는 웨이팅이 아주 길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다행히 제가 찾은 날은 평일 오후 3시쯤이라 기다림 없이 바로 맛볼 수 있었습니다. 뚝배기 가득 담겨 나온 순댓국은 국물이 깊고 진했지만 누린내가 나지 않았습니다. 푸짐하게 담긴 순대와 고기는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쫄깃하면서도 고소했고, 새우젓과 다대기를 풀어 넣으니 국물이 더욱 진해졌습니다. 속이 따뜻하게 풀리며, 이곳이 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지 알 수 있는 맛입니다.

 

📌 천안옛날호두과자 아우내점

• 위치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순대길 46

• 가격 : 옛날 호두과자 32개입 12,000원 / 옛날앙버터 호두과자 20개입 11,000원 등

 

그리고 천안을 대표하는 호두과자. 제가 찾은 곳은 천안 옛날호두과자 였는데, 조금 색다르게 앙버터 호두과자를 맛보았습니다. 달콤한 팥앙금과 고소한 호두 속에 버터가 더해져, 한입 베어 물자 차갑게 식힌 버터의 풍미가 입안에 부드럽게 녹아내렸습니다. 따끈한 호두과자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고,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조화가 의외로 훌륭했습니다. 냉장 보관된 앙버터 호두과자는 여행의 마지막을 달콤하게 장식해 주었습니다.

 

짧은 하루였지만 천안에서의 여정은 역사와 현재가 동시에 흐르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다시금 자유의 무게를 생각했고, 병천순대와 호두과자로 이어진 소박한 일상 속에서 삶의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천안은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도시였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지금, 이곳을 찾는다는 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돌아보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천안에는 유관순 열사 사적지 외에도 김시민 장군 길, 조병옥 길 등을 포함한 총 22.4km, 8코스로 이루어진 천안 역사문화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또 다른 역사와 풍경을 함께 경험해보는 것도 천안을 깊이 느끼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