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만의 폭염 · 폭설', '천 년 만의 대홍수'처럼 계절마다 새로운 극한 기후가 이어지고 있어요. 사람들도 기후재난을 일상 속 나의 문제로 가깝게 인식하기 시작했는데요. 눈에 보이지 않던 기후위기가 당장 해결해야 할 '실체적 위험'이 된 거예요. 일상이 송두리째 변하는 상황 속에 온실가스를 감축하여 기후변화를 '완화'시키는 것은 물론,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이상기후에도 '적응'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 기후재난 극복 위한 '기후감수성'이 절실한 시대
지난 2023년 7월, 유엔은 "이제 지구온난화 시대는 끝났다. 지구는 끓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라며 지구온난화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바 있어요. '끓는 지구'의 서막을 알린 것이죠. 50억여 년 전 지구가 탄생한 이래로 기후는 늘 변했지만 최근 우리가 마주하는 기후변화는 그 주기가 급속도로 짧아졌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지난 100년 만에 지구 평균기온은 0.6°C 상승했어요. 약 1만 년 전 농경이 시작된 후 지구 온도가 이렇게 오른 적은 없었는데요. 유례없는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세계 기후변화 진단서'로 불리는 IPCC의 6차 보고서에서는 종말을 막을 '골든타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고, 2025년을 정점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못하면 인류는 기회를 영영 놓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어요.
이것은 단순히 더워진다는 온도 변화만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기후변화는 지금껏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생활의 모습을 바꾸고, 나아가 경제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해요. 당장 커피와 설탕, 카카오 등 많은 작물의 수확량이 큰 폭으로 줄어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기후플레이션(기후+인플레이션)'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답니다.
흔히 주위의 변화를 섬세하게 알아채고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두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라고 말하는데요. '감수성'은 '인간이 외부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며, 자극의 변화를 수용하는 능력'을 가리켜요. 기후위기 시대가 도래하며 기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태도와 능력, 즉 '기후감수성(Climate Sensitivity)' 역시 중요해졌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기후재난을 마주하는 요즘 사람들의 기후적응기를 살펴봅시다.
# 급격한 기후변화가 가져온 달라진 일상 풍경
급격한 기후변화는 옷을 입고 음식을 먹으며 여가시간을 보내는 일상의 여러 모습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거리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양산을 들고,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던 아열대기후 과일이 전국 각지에서 재배돼 식탁에 오르고 있어요. 여름 휴가철에 찾는 여행지가 달라지고, 비행기 기내 풍경도 바뀌고 있어요.
해가 갈수록 날씨 변덕이 심해지면서 패션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장마철 전후에도 집중호우가 이어지면서 '레이니룩(rainy look)'이 여름철 일상복으로 자리매김했어요.
그동안 '레이니룩'이라고 하면 비를 막는 기능성 우비나 장화를 가리켰지만,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착용하기 좋도록 다양한 스타일링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가 올 때는 장화로 신다가 오지 않을 때는 일반 부츠처럼 코디하는 식이죠. 가방과 바람막이가 하나로 합쳐진 아이템도 수요가 늘고 있어요.
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다가 금방 해가 나오는 '도깨비 장마' 때문에 우산과 양산을 겸해서 사용할 수 있는 '양우산'도 인기랍니다. 이제 길거리에서는 양산을 쓰는 남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양우산의 종류와 디자인이 다채로워지면서,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양우산의 통념이 깨지고 있는 거예요.
일상에서 극한 날씨를 겪으면서 기후 위기에 생존하기 위한 아이템도 늘고 있어요. 최근 유튜브에서는 '삶의 질 상승템'이라며 계절에 따라 갖춰야 할 제품을 소개하는 영상이 인기랍니다.
봄에는 동양하루살이와 러브버그가 들끓어 가정용 포충기와 벌레퇴치제가 각광을 받고, 여름에는 집중호우에 대비해 긴급히 차량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비상탈출 망치를 구비해야 한답니다. 한편 반려동물이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전용 신발도 필수템이 됐어요. 모두 극한기후에 대처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생존 아이템입니다.
급격하게 기온이 오른 기후는 한반도의 과일지도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어요. 패션프루트, 파파야, 체리 등 그동안 동남아 과일로 인식되던 과일이 국내에서도 재배되며 한국산 과일로 출하되고 있습니다.
위도가 높고 날씨가 추워 열대식물 재배를 생각도 못했던 강원도 양구 지역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멜론을 생산하고 있고, 반면 우리나라 대표과일인 사과는 재배지가 점점 북쪽으로 올라오며 '금사과'가 되기 시작했어요.
한편 몇 년 사이 동해안 수온이 오르면서 해파리떼가 크게 늘었고, 어획량이 급격하게 줄어든 오징어는 이제 '금징어'를 넘어 '없징어'로 불린답니다.
기후변화는 여름 휴가철 선택하는 여행지 목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전 세계적인 폭염으로 전통적인 열대 해변 휴양지의 인기는 점차 식고, 반대로 서늘한 지역으로 떠나는 '쿨케이션(cool+vacation, 시원한 휴가)'이 대세로 떠올랐습니다.
대표적인 쿨케이션 여행지로는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이 꼽혀요. 이 지역은 그동안 춥고 흐린 날씨 때문에 관광지로서 인기가 덜했지만 최근에는 시원하고 경치 좋은 곳으로 다시 평가받으며 여행객이 몰리고 있어요. 비교적 가깝고 시원한 피서 여행지로는 일본 삿포로가 각광받고 있어요.
기후변화로 여행 중 기내에서도 새로운 풍경이 관찰돼요. 갑작스러운 급성 난기류가 잦아지면서 아수라장이 된 기내 영상이 소셜미디어로 확산되기도 했는데요. 항공 업계도 앞으로 난기류가 더욱 심해질 것을 예상해 하늘길 안전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어요. 대한항공은 안전을 위해 기내식 등 객실 서비스의 종료 시점을 앞당기고, 좌석 간격이 좁은 이코노미석에서는 뜨거운 컵라면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 기상이변에 '기후 비즈니스' 모색 중인 기업들
소비 환경이 변화하면 비즈니스도 변화해요. 기업은 기후변화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잦은 기상이변은 원자재 수급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소비자의 구매 행태도 크게 바꿔놓기 때문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은 기후감수성을 반영한 '기후 비즈니스'를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어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 차원의 노력을 넘어 기후위기로 일어나는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똑똑한 기후솔루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극한 기후에 대처하기 위해 자동차에는 기후솔루션이 적용되고 있어요. 볼보자동차는 차량에 갇혀 열사병이나 저체온증에 걸리는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는 '실내 레이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자동차 잠금 상태에서 차량 내부에서 움직임이 감지되면 공조장치가 자동으로 작동해 적절한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 기능입니다.
현대자동차는 여름철 치솟는 차량 실내 온도를 10도 이상 낮추는 '나노 쿨링 필름' 개발에 성공했어요. 게다가 기존 필름과 달리 투명도를 맘대로 조절할 수 있어 틴팅이 금지된 국가에서도 기후솔루션 역할을 제대로 할 것으로 기대돼요.
또한 삼성전기는 겨울철 눈이 쌓이거나 얼음이 어는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자동차용 카메라 모듈 양산에 들어갔어요. 이 모듈은 카메라 렌즈에 눈이나 성에가 끼면, 히터가 작동해 1분 이내에 녹도록 설계됐답니다. 이처럼 악화하는 기상 상황에도 안전하게 주행하도록 돕는 다양한 기후솔루션들이 속속 시장에 등장하고 있어요.
기후에 직접 영향받는 농식품 분야의 변화도 눈에 띄어요. 특히 '식품'과 '기술'을 합친 푸드테크를 활용하여 식량안보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돋보이는데요. 극한 기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슈퍼' 품종을 개발하거나 기존 식품과 유사한 맛과 영양을 구현한 대체식품을 개발하는 식입니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피해가 속출하면서 보험상품을 찾는 수요도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변화를 미리 대비하는 '날씨보장 보험상품'이 인기입니다.
미국의 핀테크 기업 센서블웨더는 여행 중에 일기예보와 달리 비가 오면 당일 여행비를 보험금으로 지급해 주는 '폭우보험'으로 유명해요. 여행 기간 중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 사이 2시간 이상 비가 지속되면 당일 여행비를 자동으로 보상해 주는데요. 별도 청구를 하지 않아도 선지급해 주어 가입자 만족도가 높아요. 이후에는 기온이 40도 이상 오르면 여행비의 100%를 보상하는 '폭염보험'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어요.
건축과 인테리어 업계의 기후솔루션도 눈에 띄어요. 최근 몇 년 사이 에너지 물가가 대폭 오르면서 냉난방비를 절감하는 일명 '고단열 창호'가 인기입니다.
금호석유화학의 휴그린은 창문을 열지 않고도 자동으로 환기시키는 AI 스마트 기능을 장착한 '자동환기창 프로(Pro)'를 출시해 주목받았어요.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환기하려고 창문을 열면 에너지가 낭비되는데요. 고성능 3중 필터 시스템으로 창문을 열지 않고도 환기가 되어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요.
최근 '패시브 하우스'도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패시브 하우스는 직접 외부 공기가 유입되는 것을 차단해 온기와 냉기를 오래 유지하는 에너지 절약형 혁신 주택을 가리켜요. 아파트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건축 사례가 늘어 기후위기 시대에 적합한 집으로 홍보되고 있습니다.
# 극한 기후가 앞당긴 '기후복지' 시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각종 사회적 · 정책적 제도들이 최근 기후 관점에서 재검토되고 있어요. 탄소 배출을 줄이는 환경정책을 우선 실시하고, 무더위쉼터, 횡단보도 그늘막, 정류장 온열의자처럼 시민들이 극한 날씨를 이겨내도록 돕는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나아가 기후위기 시대에도 개인과 기업이 각자의 삶을 영위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 '기후복지 시대로의 도약'을 앞당기고 있어요.
국제노동기구(ILO)가 전 세계 노동자 중 70%가 폭염에 노출될 것이라 경고한 가운데, 사회구성원을 극한 날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안된 각종 정책들이 눈에 띄어요.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고용노동부는 사업장의 폭염 기준을 대기온도에서 체감온도로 변경했습니다. 같은 온도라도 습도가 높으면 사람의 체감온도는 더욱 높아지는데요. 취약한 업종과 직종에서는 체감온도의 단계에 따라 휴식을 보장하고 옥외작업을 중단하는 등 적극적인 가이드를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뿐만 아니라 택배나 배달업에 종사하는 야외 노동자가 이상기후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면 급여의 일부분을 지급해 생계를 보장하는 '기후실업급여' 도입도 논의 대상이랍니다. 또한 집중호우로 근무 중 피해를 입는 경우가 크게 늘면서 관련 사회적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특히 취약계층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우선적인 관심과 대비가 필요해요. 2024년 환경재단이 발표한 '기후위기 취약계층 어린이 대상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소득층 아동의 74.3%가 기후위기로 주거환경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구체적으로 폭염과 한파를 경험했고, 이상기온으로 해충이 증가했으며, 폭우로 침수와 곰팡이 등 유해환경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상당수 아동에게 기후복지 관련 지원이 필요한 실정인 거예요.
같은 배경에서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전 도민을 대상으로 '기후보험' 가입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어요. 특히 취약계층에게는 세부 보장내용을 추가하도록 지원을 늘릴 예정입니다. 앞으로 기후복지를 구현하려는 각 지자체 노력의 귀추가 주목돼요.
교육 현장에서는 기후 교육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어요.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스웨덴이나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기후변화 수업을 필수 교과로 지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기후 관련 교육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랍니다.
환경재단 어린이환경센터는 지난 2024년 8월 31일 국내 최초로 '제1회 기후 수학능력시험'을 개최한 바 있어요. 전국 14~19세 청소년 81명이 참가해 현직 환경교사가 출제한 기후 관련 문제를 풀고, 고득점자에게는 기후수능 장학금도 수여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한편 서울 강서구에서는 재난 상황을 직접 체험하며 실전 대처 능력을 키우는 안전체험관을 개관했어요. 지진 체험과 태풍 체험은 물론, 집중호우로 침수된 상황에서 수압을 견디고 지하실 문을 열고 나가기처럼 극한 날씨로 인해 마주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의 대처법을 알려줘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답니다.
사회 전반에서는 지난 500년 동안 한반도에서 통용되던 '장마'라는 표현을 '우기'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근 수 년 사이 장마철에 예측이 어려운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마치 아열대성 우기를 닮아가고 있다는 문제 제기입니다.
2023년 한국기상학회 학술대회에서는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기상학적 견해의 장마 형태조차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기상청과 학계에서 용어 변경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답니다.
여기에 더해 4월 5일로 지정돼 있는 식목일도 날짜를 바꿔야 하는 대상으로 떠올랐어요. 기후변화로 여름이 앞당겨지면서 나무의 개화시기가 전반적으로 빨라졌기 때문이에요. 묘목을 심기 적합한 기온은 6.5도인데, 최근 식목일 평균기온은 11.9도까지 크게 올랐답니다. 기후변화 상황을 반영해 일각에서는 유엔이 지정한 3월 21일 '세계 산림의 날'에 식목일을 맞추는 것을 검토 중입니다.
오늘날의 기후위기는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80억 명의 조별과제'라고도 불립니다. 이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더이상 환경운동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인식 확산이 필요해요.
뜨거워진 지구에 맞서기 위해 소비자는 적극적인 기후행동을 실천하고, 기업은 지속 가능한 경영을 추구하며, 사회는 기후 복지 시대를 준비해야 해요.
우리는 실로 엄청난 도전에 직면했지만, 동시에 이미 많은 해결책을 알고 있기도 해요. 마지막 골든타임, 달라진 지구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서로의 기후감수성을 독려해야 할 때입니다.
자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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