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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만지고, 느껴봐! 이게 바로 느낌 살린 ‘물성매력’

▲ 인사이드 아웃 2 팝업스토어

우정사업본부는 자녀가 부모님께 매달 드리는 용돈을 봉투에 담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어요. 그냥 계좌이체를 하면 간편한데, 굳이 집배원이 직접 찾아가 전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장에 송금액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집배원으로부터 용돈봉투를 받을 때,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자녀의 미안한 마음도 더 잘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물성의 힘이 가상보다 더 세니까요.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요. 각 업종에서 소비자가 직접 느낄 수 있는 물성의 매력을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제공할 수 있느냐가 최근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어요.

 

# 쓸모를 느끼는 물리적 경험의 힘, 물성매력

손에 잡히는(tangible) 요소를 물성(materiality)이라고 합니다. 사전에서 물성은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뜻하며, 손에 잡히는 '물질'들만 가질 수 있는 속성을 가리켜요. 특정 대상에 경험 가능한 물질의 속성을 부여해 매력도를 높일 때, 이런 물성의 힘을 '물성매력'이라고 불러요.

 

영화 같은 콘텐츠를 비롯해 브랜드, 기술, 조직문화처럼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것'에서 물성을 느끼기는 쉽지 않죠. 이러한 추상적인 것에도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 활용할 수 있는 감각 요소를 총동원해 체감하도록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소비자가 인지적, 정서적, 행동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 '물성매력'입니다. 다시 말해 물성을 통해 소비자가 인지적으로 알고, 정서적으로 좋아하고, 행동적으로 구매하도록 만들어주는 일련의 노력을 의미해요.

 

아이들은 더럽든 위험하든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만지고 입에 넣으려고 하죠. 물성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기본 본능인데요.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장기적인 격리와 언택트 경제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실제로 감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었어요. 여기에 가상 경제의 성장에 따른 반작용으로 오히려 물성에 대한 갈망과 체험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졌어요.

 

빠르게 발달하는 디지털, 가상, 언택트 경제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직접 그 쓸모를 느낄 수 있는 물리적 경험을 제공해야 해요. 추상적인 설명보다는 물성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물성매력은 디지털과 AI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서 '물리적 실체'를 갈망하는 본질로의 회귀를 의미해요.

 

그렇다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물성매력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물성화의 여러 모습을 살펴 볼게요.

 

# 화면을 찢고 나온 콘텐츠, '콘텐츠의 물성화'

▲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최근 K-팝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버추얼 아이돌'이에요. 버추얼 아이돌은 그림이나 애니메이션, 그래픽 등으로 표현된 캐릭터로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을 일컫는데요. 요즘 Z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엄청나답니다. 그 돌풍의 중심에 '플레이브'가 있어요.

 

플레이브는 4세대 남자 아이돌 그룹 트렌드 지수 1위를 차지한 바 있고, 2024년 2월에 발표한 미니 2집 초동 판매량 57만 장 기록, 2024년 3월 가요순위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 1위, 전체 발매곡 기준 10억 스트리밍 달성으로 역대 최단기간 멜론 '빌리언스 클럽' 입성 등 수많은 신기록을 세운, 단연 돋보이는 아이돌 그룹입니다.

 

하지만 플레이브에게도 한계는 있는데요. 버추얼 아이돌은 말 그대로 가상으로 존재해 물리적 실체가 없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하면 화면 뒤에 있는 이들의 매력을 팬들이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부터 물성매력의 마법이 시작됩니다.

 

2024년 3월, 플레이브 미니 2집 'ASTERUM(아스테룸): 134-1' 발매 기념 팝업스토어가 열렸어요. 버추얼 아이돌의 팝업스토어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프로토 홀로그램' 부스였어요. 실시간 양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홀로그램 플랫폼을 적용한 부스에서 팬들은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플레이브 멤버 1명과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수 있었어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답니다.

 

화면에서만 존재하던 나의 최애와 함께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에서 인기가 높았어요. 버추얼 캐릭터들이 화면을 찢고 나와 오프라인 공간으로 실재감을 확장한 셈이죠. 행사 기간 동안 오직 플레이브를 보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찾은 인원은 2만 명이 훌쩍 넘었어요.

 

▲ 에버랜드의 공포 체험존 '블러드시티'

테마파크는 힘든 일은 잊고 즐거운 경험을 기억으로 남기려고 찾아가는 곳이죠. 업계는 몰입감 넘치는 체험을 선사하기 위해 고민 중입니다. 에버랜드는 조경과 놀이기구를 넘어, 콘텐츠를 물성화해 관람객에게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고민의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에버랜드의 공포 체험존 '블러드시티'는 해마다 가을이면 새로운 스토리를 감각적으로 풀어내 할로윈 공포 체험 성지로 떠올랐어요. 2024년 가을에는 블러드시티의 테마로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선택했죠. <지금 우리 학교는>이나 <기묘한 이야기> 등의 인기 드라마를 현실 세계에 구현했어요.

 

화면 속에 머물던 이야기를 에버랜드의 인기 공간에서 보고 듣고 만져볼 수 있어, 넷플릭스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반 방문객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았고, 벌써부터 2025년 가을 선보일 블러드시티 테마에 대한 기대도 뜨거워요.

 

# 오감으로 전달하는 브랜드 가치, '브랜드의 물성화'

▲ 선양소주의 팝업스토어 '플롭 선양'

 

브랜드의 철학과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당연한 말이 됐어요. 소비자는 상품에 만족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답니다. 쉽게 와닿지 않는 브랜드 가치를 물성으로 구현해 소비자에게 오감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팝업스토어는 물론이고, 미디어아트, 복합문화공간, 굿즈 등 다양한 물성이 활용되고 있어요.

 

2023년 겨울, 서울 성수동의 한 팝업스토어에 MZ세대가 주목했어요. '선양소주에 빠진 고래를 만나는 여정'이라는 테마로 열린 선양소주의 팝업스토어 '플롭 선양'입니다. 약 3주 동안 누적 방문객 수 1만 7,800명을 기록했고, 선양소주 팝업스토어를 소개한 릴스는 2만이 넘는 '좋아요'를 받을 만큼 화제였어요

 

'플롭 선양'의 백미는 실제로 물에 띄운 병뚜껑 모양의 보트를 타고 건너가는 '인공바다' 존이었는데요. 보통 물과 관련해 연출할 때 작은 웅덩이를 만들거나 물을 담아두는 정도에 그치기 않고 넓은 공간에 물을 채우고 보트를 띄웠다는 점에서 방문객들을 놀라게 했어요. 관람을 모두 마치고 나면 간단한 게임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어묵 안주에 선양소주를 마실 수 있었어요.

 

▲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한 토스의 '더 머니북 스토어'

브랜드 물성화는 소비자가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제품이 없을 때 더욱 유용하답니다. 금융 업계는 그 특성상 소비자가 상품과 브랜드를 체감하기 어려운 업종인데요. 특히 오프라인 영업점마저 없는 모바일 금융 서비스 '토스'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2021년 <핀테크, 간편함을 넘어(FINTECH BEHIND THE SIMPLICITY)>를 시작으로 다양한 금융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어요. 토스가 정의하는 핀테크의 본질, 업무 방식, 조직문화 등을 담아 브랜드의 메시지를 콘텐츠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2024년 5월에는 『더 머니북(THE MONEY BOOK)』을 출간했어요. 『더 머니북』은 금융 생활에 필요한 콘텐츠를 담은 책으로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인기가 높았어요. 특히 소비자의 잘못된 인식을 수정하기 위해 신뢰도가 높은 '책'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책이라는 물성을 가진 교과서로 공부를 해와서인지 책에 담긴 정보는 어딘지 더 신뢰가 가죠.

 

토스는 『더 머니북』 출간을 계기로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참여했어요.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그중에서도 토스의 '더 머니북 스토어' 부스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할 만큼 화제를 모았습니다. 토스 부스를 방문한 이들은 이곳에서 나만의 머니북을 만들어보는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 토스의 철학을 간접 경험했어요.

 

# 물리적으로 경험하는 첨단 기술, '기술의 물성화'

▲ 뤁스퀘어 스테이의 '이로운 집'

이로운 집, 작은 집, 교감하는 집. 충북 진천군에 자리한 이 세 채의 집은 조금 특별해요. 미래 농촌의 집을 주제로 한 하우스비전 전시회를 위해 뤁스퀘어(root square)에 설치된 모듈러 주택인데요. 누구든지 예약해 머물 수 있어요. 특히 LG전자와 GS건설이 협업해 개발한 소형 모듈러 주택 ‘LG 스마트코티지' 이로운 집은 31.4m2 크기의 복층 원룸 구조로 LG전자의 스마트홈 솔루션이 적용됐어요.

 

LG 스마트코티지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에너지 관련 기술을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기술의 물성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예요. 지붕에는 PV패널이 부착돼 있고, 공기열원 히트펌프(AWHP, Air to Water Heat Pump) 에어 공조 시스템과 에너지 저장 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 그리고 전력변환장치(PCS, Power Conditioning System)를 적용했어요. 자체 생산한 에너지로 빌트인 가전을 작동시키고, 잉여전력은 한국전력공사에 판매하거나 전기자동차 충전에 활용할 수 있게 한 점도 흥미로워요.

 

자사의 에너지 관련 기술을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집'이라는 물성을 활용한 것으로 이곳에 머물면 AWHP, ESS, PCS 기술의 자세한 작동 원리는 몰라도 어떤 점이 실 생활에서 유용할지는 바로 느낄 수 있답니다.

 

▲ 삼성전자의 AI 집사로봇 '볼리'

 

최근 IT·전자 산업의 가장 큰 화두인 AI는 편익의 물성화를 위해 로봇을 선택했어요.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나란히 집사로봇과 비서로봇을 소개하면서 자사의 기술을 집대성한 로봇들의 각축전이 펼쳐지고 있어요.

 

삼성전자의 AI 집사로봇 '볼리'는 실내에서 스스로 이동해 공간을 인식하고, 재택근무를 할 때 보조 스크린으로 업무를 도와주며, 운동을 할 때는 옆에서 카운트를 세주는 등 AI 어시스턴트로 역할을 확장했어요.

 

한편 LG전자의 '스마트홈 AI 에이전트 Q9'은 전면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사용자와의 소통을 강조했는데요. 소비자가 Al 집사의 기능적 효용과 동시에 감성적 편익까지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AI의 실재감을 확장한 사례로 꼽혀요.

 

골드만삭스는 2035년에는 소비자용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간 100만 대 이상 생산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어요. AI의 발전과 로봇 제작 원가의 하락으로 상용화가 진행되면, 디지털 공간에 머물렀던 AI 기술이 로봇이라는 실체적 형태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 물성으로 체감하는 기업의 철학, '조직문화의 물성화'

▲ 하이브 용산 사옥

조직에는 저마다 창업자의 철학과 특유의 문화가 있어요. 이는 대개 '사훈'이나 CEO 메시지의 형태로 강조되는데요. 만약 매일 출근해 시간을 보내는 일터가 조직문화를 잘 표현할 수 있다면, 구성원들이 조직의 철학과 문화를 내면화하는데 더 유용할 것입니다.

 

최근 기업들이 사옥을 지을 때, 기업의 철학을 반영하는 디자인과 실내 구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사옥 외에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굿즈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문화를 전달하려는 시도도 눈에 띕니다. 이는 앞서 브랜드 물성화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조직문화의 물성화는 고객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사옥에 조직문화를 효과적으로 반영해 내고 있다. 하이브는 2023년 연결·확장·관계라는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설계한 용산 사옥을 완공했어요. 크리에이티브와 영감이 중요한 업계의 특성을 고려해 마감재를 덧붙이는 방식을 지양하고, 가변적 데스크를 두는 등 오피스 인테리어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답니다. 자유로운 영감과 창의력을 극대화하려는 공간적 배려라고 할 수 있어요.

 

최근에는 JYP엔터테인먼트가 신사옥 건립을 위한 설계공모에서 유현준 건축사사무소의 계획안을 선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계획안의 콘셉트는 '밥상(BAPSANG)'인데요. 보통 엔터테인먼트 회사에는 아티스트와 사무직 근로자라는 서로 다른 특성의 구성원이 함께하기 마련인데, 밥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소통하듯 각 구성원들이 한 건물 내에서 융화되기를 바라는 취지가 담겨있어요.

 

▲ 현대건설의 작업복 MA-1 패딩 점퍼

한편 현대건설은 단체복에 달라진 조직문화를 담아냈어요. 코오롱 인더스트리의 워크웨어 브랜드 '볼디스트(Boldest)'와 협업해 임직원 전용 스페셜 에디션 'MA-1 패딩 점퍼'를 제작했는데요. 워크웨어(workwear)는 문자 그대로 '일할 때 입는 옷'을 의미하며, 주로 현장 노동자들이 착용하는 작업복에서 유래했지만 최근에는 힙한 패션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MA-1 패딩 점퍼는 기존 단체복과 달리 벨크로 패치로 CI, 팀 로고, 개인 장식 등을 탈부착할 수 있어요. 회사 로고 패치를 떼면 회사 밖에서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데요. 자신만의 취향대로 커스텀 하기를 선호하는 MZ세대의 성향을 반영한 시도입니다. 이 패딩 점퍼는 10일이라는 짧은 신청 기간에도 불구하고 6,000장 가까이 판매됐어요. 148개에 이르는 국내외 현장에서 단체 주문이 들어오고 개인 구매도 1,200장이나 이뤄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답니다.

 

이외에도 현대건설은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 '커버낫'과 손잡고 후드 집업을 제작하거나 아웃도어 브랜드 '헬리녹스', '날 진' 등과 힐스테이트 패턴을 적용한 캠핑 용품을 개발하는 등 굿즈 제작에도 적극적이랍니다. 다소 보수적인 건설사의 조직문화를 벗어나 젊은 사내문화를 지향하겠다는 바람을 옷과 굿즈라는 물성으로 드러낸 것이죠.

 

▲ 유현준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JYP엔터테인먼트 신사옥 조감도

세상은 빠르게 디지털화하지만, 오랫동안 익숙했던 아날로그에 대한 선호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몸으로 감각하고 싶은 본능과 디지털 가상세계의 효율성이 서로 보폭을 맞추지 못해 지체(lag)를 빚을수록, 물성매력은 그 존재감이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지금 소비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물 본연의 감각을 몸으로 느끼고 싶어 해요. 소비자의 느낌이 살아 춤추게 하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기대됩니다.

 

자료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