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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정치 예능의 이모저모

트렌드리포트

예능으로 즐기고

시사로 결정하자

By동대리

2017년 3월 10일, 탄핵 선고와 함께 장미대선이 가시권에 다가오자 촛불 민심을 계승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출마 선언으로 대권 경쟁이 불타올랐다. 그 열기에 TV는 ‘정치 예능’으로 응답했고, 왕좌에 뜻을 둔 후보들은 TV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권위의 옷은 벗지만 경박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편안한 이미지를 심어주나 강단 없는 사람으로 비쳐선 안 된다. 때로는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불사해야 하고, 낯선 질문에 어색해하거나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정통 토론이나 뉴스 초대석과 달리 점잖지 않을 것이다. 시사로 포장되었으나 본질은 예능, 진부한 소신 표명보다 계산된 캐릭터 구축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 예능에 등장한 후보자들의 모습이었다.



탄핵정국에서 ‘정치 예능’의 깃발을 먼저 뽑은 것은 JTBC의 <썰전>이었다. 유시민 전(前) 장관과 자칭 보수의 거성 전원책 변호사, 거기에 개그맨 김구라의 진행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썰전>은 2월 2일 ‘2017 대한민국 차기 지도자는 누가 될 것인가? 유력 대선 주자들과 함께하는 독한 혀들의 전쟁’이란 코너를 시작했다. 바른정당 유승민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당 안철수, 더불어민주당 안희정, 정의당 심상정 순서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각 당의 경선 후보들이 초청되었다.


▲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정치 예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정치에 대한 철학과 국가 운영에 대한 생각을 썰전답게 묻고 답했다.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소신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후보들의 노력은 뜨거웠다. 부드러운 미소와 유머는 기본이었고 청춘 시절과 가정 이야기는 필수였다. 웃고 있지만 질문은 날카로웠고, 답변은 진지했다. 5년째 방송되고 있는 <썰전>의 저력이 돋보였다.


이어 <외부자들>(채널A), <강적들>(TV조선), <판도라>(MBN) 등 시사 예능 프로그램들은 서둘러 대선 후보를 초대하며 정치 예능으로 변신했다. JTBC의 토크버스킹 프로그램인 <말하는대로>도 대선 후보는 인기 게스트였다. 지상파는 오디션 프로그램 포맷을 차용한 <대선주자 국민면접>(SBS)을 통해 정치 예능에 한 발 걸쳤다.


▲ JTBC <썰전>은 정치와 대중의 거리를 좁힌 일등공신이다.


시사 예능 프로그램이 예능과 시사의 장점을 취하는 중립적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아예 예능으로 확실히 방점을 찍은 프로그램들도 있었다. 모바일 콘텐츠의 특성을 한껏 살린 <양세형의 숏터뷰>(SBS 모비딕)는 짧고 강렬했다. 5분에서 10분 남짓한 방송 시간, 속도감 있는 진행과 거침없는 질문이 눈길을 끌었다. 진행자 양세형은 친근한 모습으로 경계심을 허물었다가 당찬 질문을 던지며 후보들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예능 게임은 후보들의 혼을 쏙 빼놓았고, 엉뚱한 질문은 긴장한 후보들을 웃게 만들었다. 놓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던 정책에 대해서도 센스 있게 짚고 넘어갔다.


▲ 지난 4월 27일 성남시 분당구 야탑역 광장 유세현장에서 문재인 후보와 문 후보를 패러디한 배우 김민교가 만났다. 사진 출처: 문재인 후보 캠프


어른들의 오감 코미디 (tvN)는 지난 대선 때 유행했던 ‘여의도 텔레토비’의 맥을 이어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을 선보였다. 아이돌 연습생이 된 대선 후보들은 팀의 센터 자리 차지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실제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특징 강조’ 분장과 상황 패러디는 압권이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미운 우리 새끼>(SBS)와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101>(Mnet)을 정치라는 그릇 안에서 딱 맞게 섞어놓았다.



예능은 새로운 소재가 필요했고, 정치는 대중 설득의 통로가 필요했다. 상생(相生)이었다. 예능과 정치의 만남은 2012년 <힐링 캠프>(SBS) 신년 특집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 위원장이 출연했다. 그해 여름엔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정치에 대한 꿈을 품고 있던 안철수도 출연했다. 대중들은 높은 시청률로 화답했고, 제작진은 정치 예능이 ‘권위와 재미’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을 수 있음을 확신했다.



우리나라 선거 방송은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시 라디오를 통한 각 당 후보 정견발표로부터 시작되었다. 1971년엔 TV 정견발표, 1992년엔 TV 정치광고, 1995년엔 TV 토론이 순차적으로 허용되었다. 이번 제19대 대통령 선거엔 ‘전통적 형식의 토론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평소 시사적인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후보자의 출연이 가능하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발표가 있었다. 그 결과 <썰전>과 같은 정치 예능이 분주해진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미국 대선 시 트럼프 대통령이 미디어를 통해 얻은 홍보 효과가 20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퓨 리서치(Pew Research Center)는 정치 예능 성격의 심야 토크쇼를 통해 선거 관련 정보를 얻은 유권자 비율이 25%(중복응답)에 달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팔로어는 2,50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복잡하고 진지하지 않았다.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장시간 이어지는 토론보다 효과적이었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정치 예능은 정치의 본질을 연성화시키고 정책에 대한 진중한 논의 및 검증을 멀리하게 한다. 마치 연예인 인기투표하듯 이미지만으로 대통령을 선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무관심을 환기시켜준다.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선택하게 하는 자극점으로서의 역할은 분명히 갖고 있다.


MBC <무한도전> ‘국민의원’편을 보면 희화된 정치가 아니라 일상의 삶과 직결된 이야기들이 오갔다. 시종일관 웃음이 오갔지만 서로가 나눈 대화는 진지했다. 정치 풍자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캐리돌 뉴스>(SBS Plus)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 이슈 메이커들이 캐릭터 인형으로 등장한다. 인형들은 보기만 해도 누군지 알만큼 싱크로율이 높고 성대모사는 국가대표급이다. 백미는 ‘GH’와 ‘MB’가 전하는 ‘밤참뉴스’와 국정농단 사건의 주역들이 꾸미는 ‘4면 퀴즈’다. 풍자는 핵심을 정확히 찔렀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TV 토론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미국 대선을 참고한 스탠딩 토론, 시간 총량제 자유 토론, 후보 간 주도권 토론 등 새로운 형태의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가 연일 공중파를 통해 중계됐다. 기대했던 정책 토론보다 이념 공격과 거짓뉴스 발언이 주를 이루는 등 구태를 반복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후보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고, 유권자들이 대선에 관심을 갖고 투표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었다.


정치 예능은 대세다. 예능은 대중을 깨우고 시사는 대중을 생각하게 만든다. 미래를 위한 오늘의 선택이 후회스럽지 않도록 예능과 시사가 균형 있는 쌍두마차가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