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에게도 수원은 늘 익숙하지만 조금은 단조로운 도시였습니다. 어릴 적 기억 속 남문과 행궁동 일대는 그저 복잡한 옛 동네의 모습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 마주한 수원의 변화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딘가 복잡스러운 시골 동네 같은 느낌이었죠. 시간이 흘러, 수원이 핫해졌다는 주변 말들과 사진들을 접한 후엔 깜짝 놀랐습니다. 수원 남문 주변의 행궁동은 그냥 시골 거리나 골목이 아니라 행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이태원 경리단길을 연상시키는 데이트 코스가 되었고, 화성 성곽은 사람들이 쨍쨍한 낮과 해지는 노을 무렵에 경치를 구경하며 피크닉을 즐기고, 밤에는 산책과 런닝을 하는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 일대는 조선 정조 시절,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살았을 적 느꼈을 답답함을 덜어주기 위해 사도세자의 능을 옮기기 위해 지은 성이자, 거중기를 처음 발명하여 최초로 지었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된 성인 화성, 그리고 정조가 아버지의 능을 참배하러 가기 위해 임시로 머무는 거처, 화성행궁 등 수원의 역사가 살아있는 곳 정도로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정반대로 트렌디한 가게들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으로 바뀌어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느껴졌습니다. 영화 <극한직업>의 흥행으로 '수원 왕갈비 통닭'이 큰 인기를 끌면서, 7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통닭거리 또한 줄을 서서 즐기는 핫플레이스로 거듭났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도시, 수원. 이번 글에서는 수원 토박이였던 저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꿔놓은 화성 성곽과 행리단길, 그리고 활기 넘치는 통닭거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왕이 머물다 가는 임시거처 화성행궁
📌 화성행궁
• 위치 :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 운영시간 : 매일 09:00 ~ 18:00
• 입장료
* 입장권(어른) : 2,000원 / 통합권(어른) : 4,000원
* 입장권(군인/청소년) : 1,500원 / 통합권(군인/청소년) : 2,500원
* 입장권(초등학생) : 1,000원 / 통합권(초등학생) : 1,000원

해가 뉘엿뉘엿 저 갈 무렵, 차를 주차하고 수원 화성 일대를 두 눈과 두 발로 가장 먼저 만나러 갈 수 있었던 화성행궁에 도착하였습니다. 화성행궁은 본래, 정조가 사도세자를 참배하러 가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행궁이었다고 하는데요. 조선 시대에는 왕이 머물다 가는 곳이었던 이곳이 현재는 가족들과 연인들, 친구들이 머무는 곳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화성행궁 정문에 보이는 먼 발치서부터 광장 같은 곳에 연을 날리는 아이부터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이곳은 단순히 역사적 명소가 아닌 가족 데이트 코스 명소로 느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엔 수많은 연인들과 친구들 무리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노을 빛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은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던지, 마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영화의 한 컷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입구에 다가서자, 화성행궁은 본래 왕을 위한 행궁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듯한 고품스러우면서도 위엄을 풍기는 외관이 수문장처럼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가득 차올랐지만, 행궁 안에까지 들어가 구경하려했던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안타깝게 때를 놓치는 바람에 안에까지 들어가 볼 순 없어서 무척이나 아쉬움이 컸습니다. 이곳을 다시 와야만 하는 기분 좋은 핑계거리로 간직하고 다음에는 꼭 다시 직접 들어갈 것을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화성행궁은 화성 성곽길과 통닭거리 사이에 위치해 있어, 이 근방에서 이동을 하게 된다면 거치게 되는 장소가 그런지 화성행궁은 수원 화성의 허브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출발해 지금쯤 화성행궁을 지나는진 모르지만, 이 길 저 길에서 사람들이 교차해가는 모습과 곳곳에 설치된 표지판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수원과 수원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화성행궁, 비록 많은 걸 담을순 없었지만 이곳이 주는 고즈넉함과 이 고즈넉함을 고요하게만 채우고 있지 않는 주변 사람들의 풍경 등 좋은 분위기만큼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행궁이라고 하는데요. 입구 주변에서부터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라 하면 어디일까요? 바로 해발 1330m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고개, 만항재입니다. 이곳은 겨울이 되면 차도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새하얀 겨울왕국이 마법처럼 펼쳐지는 곳인데요. 날씨가 풀려 눈이 조금 녹았지만, 만년설처럼 여전히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의 성곽 길 화성 성곽길
📌 화성 창룡문
• 위치 :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152
• 운영시간 : 매일
• 입장료 : 무료


수원 화성 성곽에는 서울 한양도성처럼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4개의 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쪽에는 창룡문, 서쪽에는 화서문, 남쪽에는 팔달문, 북쪽에는 장안문이 각각 위치해있으며, 성곽을 따라 균형있게 감싸고 있죠. 제가 이번에 화성 성곽의 출발점으로 삼은 곳이 바로 창룡문이었습니다.

창룡문의 입구에서부터 창룡문을 보는데, 굉장히 웅장하게 느껴졌습니다. 밤이라 그런지 더 거대하게 느껴지기도 했죠. 그런 창룡문의 성곽 위로 고개를 빼들고 있는 열기구가 눈에 떠 올랐고, 그 열기구는 마치 보름달을 연상시켰습니다. 성곽 위에 떠 있는 밝은 열기구. 옛 것과 새 것이 연출한 이곳의 야경은 개인적으로 무척 오묘하고 신비한 느낌의 풍경이었습니다.

보름달의 달빛과 도시의 불빛들이 밝게 비춰주는 성곽 길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계속 산책하였습니다. 그때 그 밤, 그 공기를 온 몸으로 맞으며 천천히 걷던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도심의 야경과 성곽의 야경이 한 데 어울리고, 복잡함 속에서도 고요함의 중심을 지키게 만들어줬던 화성에서의 밤 산책. 언젠가 수원에 오신다면 맛있는 식사 후에 즐기는 산책 코스로 강력추천드립니다.
# 행리단길
[전통과 트렌디함이 공존하는, 백성과 더불어 살고자하는 왕의 골목]
📌 행궁동
• 문의 및 안내 : 화서문관광안내소
* 031-207-7985
• 위치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43 (장안동)


행궁동은 조선 제 22대 정조대왕이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백성과 더불어 살고자 건설한 수원 화성이 자리잡고 있는 수원의 역사와 문화유적이 곳곳에 살아 숨쉬는 마을입니다. 그래서인지 행궁동 골목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고 재미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230년 전 왕이 거닐던 거리를, 현대에 직접 걸어볼 수 있다니 정말 재미있지 않나요? 이곳을 걷다 보면 성곽과 마을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마치 한 마을처럼 함께 정을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제가 행궁동 골목을 거닐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쌓여온 듯한 온기였습니다.
사실 행리단길은 최근에 핫해진 거리로, 처음부터 이렇게 화려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화성 성곽 안에 자리 잡은 탓에, 이곳은 아주 오랫동안 '경관 보존지역'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건물을 높게 올릴 수도, 마음대로 고칠 수도 없었기에 주민들에게는 한때 삶의 불편함을 주는 규제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덕분에 70~80년대의 낮은 집들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고스란히 남을 수 있었고, 시간이 멈춰있던 이 조용한 동네에 젊은 예술가들과 청년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지금의 독특한 '행리단길'이라는 문화가 탄생했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개성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숍과 식당들 사이로 저마다의 분위기를 가진 카페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데요. 행궁동의 카페들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라기보다, 이 동네가 지닌 오래된 시간과 지금의 트렌디한 감각을 함께 보여주는 또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건물의 형태를 그대로 살린 빈티지한 외관,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벽과 창문, 그리고 그 안을 채운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어우러지면서 행리단길 특유의 분위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있었고, 그 모습은 행궁동의 역사와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 정지영 커피 로스터스 본점
• 위치 : 경기 수원시 팔달구 신풍로 42 정지영커피로스터즈 행궁본점
• 대표 메뉴
* 딸기케이크 : 12,000원
* 아메리카노 : 5,500원
* 플랫화이트 : 6,000원
* 코코넛 커피 : 7,000원


걷다 보니 이곳의 터줏대감 같은 카페, ‘정지영 커피 로스터스’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본점만의 깊은 맛을 느끼고 싶어 이곳을 찾았는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묵직하게 돌아가는 로스터기 소리가 저를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참고로 이곳은 장안문 뷰나 화홍문 뷰가 보이는 지점들도 따로 있어, 성곽의 우아한 곡선, 단청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커피를 즐기고 싶은 분들이라면 취향에 맞춰 방문해 보셔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제 눈을 사로잡은 건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할 틈 없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공간의 디테일들이었습니다. 매장 곳곳에는 세련되면서도 이 지역의 색깔이 듬뿍 담긴 제품과 굿즈들이 가득 놓여 있습니다.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지는 드립 머신과 드립백, 원두부터 시작해 수원특례시의 대표 캐릭터인 귀여운 ‘수원이’ 굿즈까지. 수원이 인형과 배지들을 구경하다 보니,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조차 여행의 일부처럼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낡은 타자기와 지구본, 그리고 ‘No Coffee No Work’라는 위트 있는 문구가 적힌 연필 같은 소품들은 이 공간이 가진 확고한 철학을 보여주는 듯해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저는 이곳의 시그니처인 코코넛커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다크)를 주문해 보았습니다. 코코넛커피는 왜 100만 잔 넘게 팔렸는지 한 입 마시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코코넛 밀크의 단맛 뒤로 진한 에스프레소가 툭 치고 올라오는 조화가 일품이었습니다. 함께 시킨 아메리카노 역시 볶은 원두 특유의 고소하고 묵직한 풍미가 잘 살아 있어, 커피를 진심으로 대하는 공간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행궁동 왕의 골목 여행
• 7일 전까지 사전 예약 필수, 운영시간 등 홈페이지 확인 필요
* https://www.swcf.or.kr/?p=406
• 코스
* 1코스 : 행궁동 사람길
* 2코스 : 순례길 한바퀴
* 3코스 : 사통팔달의 길
* 4코스 : K-드라마 길
* 특별코스 : 벚꽃길이 열렸습니다 (4.4. ~ 4.12. 한정 운영, 3.23 사전 예약 시작)


행리단길에는 마을해설사와 함께 행궁동 골목을 걸어보는, 특별한 코스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 코스 중에서도 4코스인 K 드라마 길은 드라마 촬영지를 따라 걷는 길입니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재 업고 튀어의 배경이 된 집부터 그 해 우리는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촬영지들이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고민하고 사랑하던 그 길을 직접 밟아보며 화면 너머로 보던 설렘을 발끝으로 고스란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마침 2026년 4월 4일부터 12일까지는 봄 한정 행궁동 왕의 골목여행 이벤트도 열린다고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왕의 골목에 숨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과거의 제약이 오늘의 아름다움이 된 이 특별한 동네에서, 시간이 선물한 풍경과 정서를 마음껏 누려보셨으면 합니다.
# 70년대부터 이어온 전통 통닭 거리 수원 통닭거리
📌 남문 통닭거리
• 위치 : 경기 수원시 팔달로1가 46-2

수원은 갈비의 고장이라는 말은 옛말이죠. 갈비만큼이나 수원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음식, 바로 통닭입니다. 이곳의 통닭들은 빵가루 튀김옷을 입혀 크리스피하게 튀기는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과는 다르게, 가마솥에 통으로 풍덩하고 튀기는 게 특징인데요. 어렸을 때는 튀김 옷이 있는 치킨을 좋아해서인지 통닭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조금씩 나이가 들수록 옛날식 통닭이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만큼이나 다른 분들 역시 그러한 듯 이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저는 수원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통닭거리가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 통닭거리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이 글의 서두에 써놨던 것처럼 영화 ‘극한직업’ 덕분이었는데요.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 덕분에 뜨게 된 수원 왕갈비 통닭 덕분이지요. 또한, 이 영화 개봉 이후로 통닭거리가 유명해져 7년 만에 거리 축제가 다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통닭 거리의 시장 상인들 그리고 저처럼 가까이에 맛있는 통닭이 있단 걸 뒤늦게 알게 된 수원 시민분들은 조금은 이 영화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수원 통닭거리에는 다양한 전통 있는 가게들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통닭 집, 진미통닭에 다녀왔습니다. 진미통닭은 이젠 꽤 규모가 커져서 그런지, 수원 내의 다른 동네에서도 종종 가맹점을 봤었고, 집 앞에 있는 곳은 자주 들려서 그렇게 생소하거나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이곳이 본점이고 드디어 와봤다는 생각에 뿌듯할 따름이었죠. 이 날은 운 좋게도 조금 서두른 덕분에 웨이팅 없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입구 문에 들어서자마자, 쭉 붙여진 블루리본 스티커들이 어서 오라며 환영해 주었고, 맛있는 맛까지 약속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벌써부터 군침이 고였습니다. 또한, 맛있게 풍겨오는 기름 냄새며 서빙 되고 있는 갓 튀긴 통닭까지 보니, 기대가 한껏 부풀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고민 없이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을 주문했습니다. 갓 튀겨져 입천장이 데일 만큼 뜨거운 통닭을 호호 불어 먹는 그 맛은 정말 각별하더군요. 얇은 물 반죽 덕분에 느끼함 없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왜 이런 옛날식 통닭을 찾으셨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제 입맛의 성장을 실감한 기분 좋은 한 끼였습니다.
올드를 넘어 클래식하고, 새로움을 넘어 트렌디했던 수원 여행. 오래된 것들을 새로고침하여 보다 더 새로운 것으로 느끼게 해준 수원의 모습들은 건물이나 거리의 외관뿐 아니라,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 구성원 그리고 우리들의 관점까지 새로고침 해준 것 같았습니다. 그저 오래되면 버리고 외면하는 게 당연한데, 어떻게 이 도시의 분위기를 옛 것을 활용해 다시 새롭게 만들 생각을 다 했을까요? 새로움이란 세상에 없던 무언가가 아니라, 익숙한 것과 익숙한 것의 낯선 조화라는 글을 떠올리며 이번 여행의 기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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