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나요?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일본이 먼저 생각날 정도로, 일본의 애니 산업은 오래도록 ‘한 시대의 문화’로 자리 잡아왔어요. 그런데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왜 유독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이렇게까지 크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계속 공급됐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아니메쥬와 지브리展》에서 그 비밀을 파헤쳐보려고 해요.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열정을 따라가며 “아, 이렇게 지브리가 탄생했구나!”하는 순간들과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니메쥬와 지브리展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와 지브리의 탄생 비화]
📌 아니메쥬와 지브리전
• 위치 : 아이파크몰 용산점 6층 팝콘D스퀘어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23길 55 현대아이파크몰 리빙파크 6층
• 매표 : 현장 구매 및 온라인 예매
* 2월 한달간 50% 할인
- 성인 : 22,000원
- 청소년 : 20,000원
- 어린이 : 17,000원
• 전시 일정 : 2025.06.06 ~ 2026.02.22
• 관람 시간 : 10:30 ~ 20:00 (입장 마감 : 19:00)
• 주차 : 전시/공연 이용 시 무료주차 2시간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지브리의 대표작 ‘토토로’ 속 ‘고양이 버스’가 큼지막하게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현실과의 경계가 약간씩 흐려지면서 정말로 애니메이션 안으로 들어가는 전용 ‘고양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기분이었어요.


초입은 예상과는 다르게,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지브리 명장면’으로만 관객을 붙잡아두지 않았습니다. 대신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인 ‘아니메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출발점부터 차근히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이 흐름이 초반의 시선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지브리를 보러 왔다’가 아니라, ‘지브리가 만들어지던 시대를 통과해 보자’로요.
1970년대,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붐이 거칠게 불었다고 합니다. 그 계기 중 하나로 ‘우주전함 야마토’의 폭발적인 히트를 짚는데, 이 설명이 단순히 “유명해서”가 아니라 “왜 그 작품이 시대를 움직였는지”에 더 가까운 방향으로 이어지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작품을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고 따라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정보를 ‘모아 주는’ 창구가 필요해졌고, 그 역할을 잡지 ‘아니메쥬’가 맡게 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열풍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우주전함 야마토’의 히트와 ‘아니메쥬’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브리의 풍경도 과연 같았을까요?
물론 한 스튜디오의 탄생을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전시를 보고 나니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졌습니다. 그 시절의 애니메이션 붐은 ‘좋은 작품이 나왔다’에서 끝나지 않았고, 그 열기를 오래 살려서 더 멀리 보내줄 매체와 기록이 필요했어요. 작품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인터뷰와 특집, 지면의 편집으로 창작자와 팬을 연결하며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문화로 굳혀주었죠.


1984년경 아니메쥬 편집부 새벽 1시. 이 일러스트를 보는 순간, 전시를 보며 잠시 떠다니던 마음이 현실로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성기에는 60명 가까이 있었다는 편집부, 가장 바쁜 ‘입고 전날 밤’의 마감 풍경, 밤샘 작업으로 한 공간에 모여든 사람들의 그림 속에는 종이와 원고, 그리고 각자의 생각과 역할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전설로만 알고 있던 ‘아니메쥬’의 편집부도 결국은, 전설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과 현실 속에서 마감을 버티던 사람들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그 순간부터 지브리의 탄생 비화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천재들이 모여서’가 아니라, 이런 노동과 시스템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필연에 더 가깝다는 것을요.
전시에 따르면 아니메쥬에는 처음부터 거창하게 정리된 편집방침이 있었던 게 아니라, 부편집장 스즈키 토시오가 현장에서 “지금 이 순간 독자가 무엇을 궁금해할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납득할까”를 계속 고민하며 공유한 생각들이 쌓여 하나의 방향이 되었다고 합니다. 독자와 작품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현실적인 문장을 찾는 일. 그게 당시 편집의 핵심이었고, 그 집요함이 결국 애니메이션을 ‘콘텐츠’가 아니라 ‘문화’로 밀어 올리는 힘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우리들 손 안에!’
아니메쥬의 창간을 전후로 가정용 비디오 플레이어가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옛 애니메이션과 가전들이 벽면과 진열장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걸 하나씩 발견하다 보니, 가슴이 괜시레 몽글몽글해졌습니다. 어떤 작품을 “정확히 언제 봤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그 작품을 보던 나의 표정은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떠오르더라고요.
비디오 테이프를 뒤집어 끼우던 손가락 끝의 감각, 브라운관 TV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음 화를 기다리던 설렘, 화면이 켜지는 순간 자연스럽게 바뀌던 집 안의 기류 같은 것들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전시장에 있는데도 발끝이 잠깐씩 따뜻한 집 거실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애니메이션은 작품 그 자체로만 남아 있던 게 아니라, 그 시절의 ‘나’와 함께 자라던 문화였다는 뜻이겠죠.


애니메이션 붐이 과열되던 시기, 아니메쥬 편집부 안에서는 “남들이 만든 작품을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우리 손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자”는 기운이 고조됐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회사도, 영화 회사도 아닌 출판사의 잡지 편집부가 영화 제작에 돌입한 건 그 자체로 대단히 특수한 사건이었고요. 영화 기획을 위해 원작이 필요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집필을 의뢰했고, 그 결과가 바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습니다. 지브리로 이어지는 첫걸음이 이때 시작된 셈입니다.

연재 초반에는 “활판 인쇄 만화는 펜으로 그려야 한다”라는 관행이 큰 난관이었다고 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연필로 그려도 되면 빨리 그릴 수 있지만…”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스즈키 토시오는 뜻밖에도 단호하게 답합니다. “연필로 그려도 됩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죠. 연필 원고는 기존 방식으로는 입고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스즈키는 대일본 인쇄와 테스트를 거듭하며 방법을 새로 만들어냅니다. 원고를 인화지에 한 번 인쇄해 입고 원고로 삼고, 말풍선과 스크린 톤도 그 인화지에 붙여 마감하는 방식이었어요. 이 한마디와 해결 방식이, 창작을 완성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처럼 남습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먼 미래, 생태가 무너진 세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예요. 인류는 독성의 숲 ‘부해(腐海)’를 피해 살아가고, 그곳을 지키는 듯한 거대 곤충 ‘오무’와도 늘 긴장 속에서 공존합니다.
주인공 나우시카는 바람계곡의 공주인데요. 단순히 “자연은 위험하다”라고 단정하지 않고, 부해가 왜 생겼는지, 오무는 왜 분노하는지, 이 세계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를 끝까지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핵심은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더 큰 파괴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길을 만들 것인가’로 흘러갑니다.
결국 이 작품은 지브리식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생태 위기와 인간의 폭력, 그리고 공존의 가능성을 꽤 현실적으로 묻는 이야기입니다. 보고 나면 “자연을 정복할 것인가”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아니메쥬와 지브리展》에서는 이 세계관을 ‘실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부해 복장을 입은 주인공 나우시카의 실물 크기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고, 옆에는 썩어가는 거신병의 조형물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화면 속 상징으로만 보던 존재들이 실제 크기로 눈앞에 서 있으니, 이 이야기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붕괴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더 직접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썩어가는 거신병 조형물은 퀄리티가 어마어마했어요. 표면의 질감과 균열, 형태가 만들어내는 압도감이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라,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던지는 ‘파괴의 후폭풍’이 체감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생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편한 쪽으로만 선택한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남을 수 있는지, 그걸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이 시기, 아니메쥬가 많이 팔린 이유 중 하나는 정식 판매품으로 착각할 정도로 충실한 부록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굿즈’라는 게 지금처럼 세련된 소장품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붙잡아두기 위한 작은 증거였던 때가 있었잖아요. 진열장에 놓인 오래된 인쇄물과 부록들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에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방식 자체가 더 아날로그였고, 그래서 더 애틋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메쥬 전시의 하이라이트 공간은 단연 포토존인데요. 단순히 기념사진을 찍는 게 아닌, 마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아니메쥬』 잡지 속으로 “들어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지 프레임 안에 몸을 맞춰 서는 순간, 내가 한 장의 지면이 되고, 그 시절 애니메이션 팬들이 품었던 설렘을 그대로 체험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전시를 ‘읽고’ 나온 관람객이 마지막에는 직접 ‘한 컷’으로 남기게 만드는, 추억을 기록할 수 있는 마무리였습니다. 이 추억도 언젠간, 다시 나를 찾아오는 따뜻한 장면이 되겠죠.
지브리를 좋아해왔던 마음은 원래도 분명했지만, 이번 전시는 그 좋아함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어떤 시대의, 어떤 사람들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게 되어 뜻깊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왜 일본에서 이렇게 발전했을까”라는 질문도, 결국은 한두 명의 천재가 아니라 매체와 산업, 팬덤과 현장이 함께 성장한 구조에서 답을 찾게 되더라고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남긴 메시지도 짧고 굵게 와닿았습니다. 두려움이 폭력을 만들고, 폭력이 더 큰 붕괴를 부른다는 것. 그래서 이 작품은 결국, 정복이 아니라 이해를 선택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어요. 전시에서 나우시카와 거신병을 실물 크기로 마주한 순간, 그 질문이 화면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처럼 느껴져 잠깐 숨이 멎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오래 좋아해온 사람으로서 이번 전시가 더 특별했던 건, 어렸을 적 추억과 공기가 끝까지 따라왔기 때문이에요.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흐릿하지만, TV 앞에 앉아 다음 장면을 기다리던 설렘과 집 거실의 따뜻한 느낌 같은 것들은 이상하게 선명하게 되살아났거든요. 이번 주말, 잊고 지냈던 내 마음의 한 시절을 조용히 다시 꺼내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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