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키나와의 상징인 선명한 붉은 기와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용 조각상, 독특한 목조 구조가 어우러진 슈리성은 오키나와 류큐왕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명소입니다. 500년 전의 독특한 붉은 기와 건축미, 중국과 일본이 융합된 이국적인 분위기,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가치가 매력적이에요. 특히 화재 이후 복원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어 더욱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답니다. 성곽을 따라 산책하며 류큐왕국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오키나와 여행의 필수 코스로 안내합니다.
# ‘심청’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슈리성

“정전(政殿)은 그야말로 바다의 왕국답게 용궁처럼 보였다. 일층은 정면 좌우로 길게 벌린 것 같았는데 정중앙에 두 겹의 지붕이 높직하게 올려 다 보였다. 맨 꼭대기의 용마루에는 황금의 용 머리가 푸른색 뿔을 세우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에는 흰 회칠과 붉은 전돌로 나무 잎사귀를 새겨 넣었고, 이층 지붕의 활처럼 둥그런 가리개에는 황금색과 푸른 비늘에 뿔을 쳐들고 이빨을 드러낸 용두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소설가 황석영은 서양이 동양을 침탈하는 폭력의 역사를 심청이란 여인의 몸에 빗대 이야기 한 소설 『심청, 연꽃의 길』에서 류큐왕국의 슈리성을 이렇게 묘사했어요.

'류큐’는 일본 열도의 최남단에 자리한 오키나와의 본래 이름입니다. 1429년 섬의 중심지인 나하의 동부 슈리를 도읍으로 통일 류큐왕국이 세워졌어요. 1879년 일본의 침략으로 450년의 역사를 끝맺고 오키나와현으로 병합됐어요.
슈리성은 류큐왕국의 정치, 외교, 문화의 중심지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와 활발하게 교역하며 번영을 자랑했지만, 이때부터 근·현대사의 격랑에 휩쓸렸어요.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군은 슈리성 지하에 깊이 30m의 참호를 파고 미군과의 결전에 대비했죠. 가지 모양으로 뻗어 나간 갱도의 전체 길이는 1㎞가 넘는답니다.
1945년 3월 말부터 단 3개월 동안 오키나와 전투에서 10만 명이 넘는 주민이 희생됐어요. ‘철의 폭풍’으로 불리는 공중폭격, 함포사격, 지상 전투의 총·포탄에 수많은 주민들이 쓰러졌고 슈리성도 파괴됐습니다. 전후 성터는 류큐대학 캠퍼스로 사용되다가 1992년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20주년을 기념해 국영공원으로 복원됐습니다.
오키나와는 아시아를 불태운 2차 대전의 한복판에 있던 섬, 지금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점령지의 섬이라는 인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일본 국보

슈리성은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나하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곡선을 그리듯 성벽에 둘러싸였고 그 안에 여러 시설이 세워져 있습니다.

슈리성은 1933년 일본 국보로 지정됐고, 특히 제주의 현무암과 같은 느낌의 오키나와 석회암으로 쌓은 슈리성 성벽은 높은 가치가 인정되어 2000년 12월, 일본에서 11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어요.

2019년 10월 31일 새벽, 안타깝게도 슈리성에 큰불이 나 정전을 포함한 주요 건물 7채가 전소되고 말았어요. 현지 주민들은 “신과 같은 존재가 타버렸다"라고 탄식했습니다.
2026년을 목표로 복원에 들어간 슈리성은 임시 휴장 상태였지만, 2020년 6월 12일부터 일부 모습을 공개하기 시작했어요.
# 독특한 목조·석조 구조가 어우러진 슈리성의 건축미


14세기 축성된 슈리성은 중국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줘요. 왕의 거처인 정전(正殿)은 옻나무로 붉은 칠이 돼 있고 기와 형태에도 중국의 영향이 배어 있어요. 용의 장식이 많이 쓰인 것도 일본 건축물과 다른 점이죠.
반면 일본에서 온 사절의 접대를 위해 지은 남전(南殿)에는 일본풍 장식이 도입됐어요. 1492년 건국 이래 중국,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꾀해야 했던 류큐왕국의 처지를 엿볼 수 있답니다.
독특한 목조 구조와 전통 성벽이 눈에 띄는 슈리성 건축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며 성을 탐방해 볼게요.

# 슈레이몬(守礼門, 守禮門)
슈리성은 돌담과 성문이 많은 성인데요. 그중에서도 붉은 슈레이몬은 디자인상 균형이 잡혀 있고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대표적인 문이에요. ‘슈레이(守礼)’란 ‘예절을 지킨다’라는 뜻으로, 문에 걸려 있는 편액에는 ‘수례지방(守礼之邦)’이라고 적혀 있어요. ‘류큐는 예절을 중시하는 나라이다’라는 의미랍니다.
1527~1555년 중국풍의 패루 형식으로 건립된 슈레이몬은 1933년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오키나와 전투로 파괴되었어요. 현재의 문은 1958년에 복원된 것으로, 그 후 지금까지 오키나와의 상징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2000년의 기념 지폐인 2,000엔 지폐의 도안으로도 사용됐어요.
슈리성의 많은 성문과 건축물에는 공식 명칭 이외에 ‘별명’이 붙어 있어요. 그 별명에서 옛 류큐인의 시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데요. 슈레이몬은 예전에는 ‘슈리몬’이라고도 불렸어요. 서민들은 애칭으로 ‘이이노아야조’라고 불렀죠. ‘위쪽에 있는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입니다.

# 소노햔우타키 석문(園比屋武御嶽石門)
1519년 류큐 석회암으로 세워진 소노향우타키 석문은 국왕이 성 밖으로 외출할 때 무사 평안을 기원하던 예배당입니다. 형태는 문이지만 사람이 지나는 문이 아니라 신을 향한 ‘예배의 문’인 셈이에요.
대표적인 류큐 석조 건축물로, 1933년 국보로 지정되었는데요. 오키나와 전투로 일부가 파괴되었다가 1957년에 복원됐어요.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간카이몬(歓会門, 歓會門)
슈리성은 외곽과 내곽 이중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간카이몬은 외곽의 첫째 문으로 슈리성 성곽 안으로 들어가는 정문이에요. ‘간카이(歓会)’란 ‘환영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슈리성에는 중국 황제의 사신 ‘책봉사’가 초대되었는데요. 이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뜻에서 이 이름을 붙였어요. 별명은 ‘아마에우조’. 류큐 고어로 ‘아마에’는 ‘기쁜 일’을 가리켜요.
1477∼1500년경 창건된 간카이몬은 류큐 화강암으로 쌓은 아치형 성문 위에 목조 망루가 올려져 있어요. 아치문은 유연한 부채꼴 모양으로 바로 아래에서 보는 돌의 수를 적게 하고 돌을 가지런히 맞추어 쌓아 올린 아름다운 성문이랍니다.
문 양쪽에는 ‘시사’라는 한 쌍의 돌사자상이 지키고 있어 액막이 역할을 해요. 오키나와 전투로 소실되었다가 1974년에 복원됐어요.

# 즈이센몬(瑞泉門)
즈이센몬은 슈리성의 제2의 문이에요. ‘즈이센(瑞泉)’은 ‘훌륭하고 성스러운 샘’이라는 의미로 문 앞 오른쪽에는 있는 용수 류히(龍樋)에서 이름이 유래했답니다.
별명은 ‘히카와우조’. ‘히(樋)’는 강이나 샘에서 물을 끌어오는 긴 관이나 도랑 혹은 지붕의 빗물을 받아서 지상으로 흘려보내는 장치 등을 가리켜요. 오키나와에서는 우물이나 샘을 모두 강으로 표현하는데요. ‘히카와’란 이런 표현과 맞춘 말로 ‘휘자가’로도 발음해요.
즈이센몬은 아치 모양의 석문인 간카이몬과 달리 쌍벽의 문 위에 직접 망루가 올려져 있어요. 이 형식의 누문, 야구라몬은 일본 본토의 성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망루 중앙의 ‘서천(瑞泉)’이라고 쓴 편액이 류큐 특유의 독특한 멋을 보여줘요. 문 양쪽에는 한 쌍의 돌사자상이 액막이 역할을 해요.
1470년경에 창건된 즈이센몬은 오키나와 전투로 소실되었다가 1992년에 복원됐어요.


# 로코쿠몬(漏刻門)
로코쿠몬은 슈리성의 제3의 문으로 별명은 ‘가고이세우조’. ‘로코쿠(漏刻)’는 중국어로 ‘물시계’라는 의미인데요. 실제 시각을 알리는 역할을 했어요.
문 위의 망루에 수조를 설치하고 물이 넘치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이곳에서 북을 치면 그것을 들은 아가리노아자나와 이리노아자나 망루, 우에키몬에서 동시에 큰 종을 쳐서 성 안팎에 시각을 알렸어요.
이 같은 ‘로코쿠’ 제도에 대해 1456년 조선의 기록에도 ‘(류큐의 그것은) 우리나라의 것과 똑같다’라고 적혀 있답니다.
당시 신분이 높은 관리는 가마를 타고 슈리성에 들어왔는데요. 고관이라도 국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곳에서는 가마에서 내렸다고 해요.

# 호신문(奉神門)
호신문에는 3개의 입구가 있는데요. 중앙의 문은 국왕이나 신분 높은 사람만 통과할 수 있었어요.
로코쿠문과 고후쿠문(廣福門)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고 호신문 너머는 유료 구역입니다. 매일 8:25~8:45에는 개문식이 열려요.
# 복원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보이는 부흥’ 프로젝트

# 세이덴(正殿, 정전)
세이덴은 독자적인 형식을 갖춘 류큐왕국 최대의 3층 목조 건축물로 슈리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이에요. 국왕이 제사를 지내거나 정무를 집행하던 곳입니다. 현재는 불에 타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복원 현장에 세이덴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1층 시챠구이는 주로 국왕이 정치나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 2층 우후구이는 왕비나 신분 높은 궁녀들이 사용한 장소, 3층은 환기를 목적으로 지어진 다락방이랍니다. 세이덴의 기단의 석축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어요.
‘우나(정원)’로 불리는 안뜰 광장은 '센(벽돌)'이라는 타일 모양의 기와가 바닥에 깔려있는데, 지면에 구분된 다른 색의 열은 의식이 진행될 때 관료들이 지위의 순서대로 정렬하기 위한 표시 역할을 했습니다. ‘우키미치(浮道)’라는 중앙의 넓은 길은 국왕이나 중국 황제의 사신 ‘책봉사’ 등 정해진 사람만이 지날 수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이덴에 걸려 있던 종이입니다. ‘반코쿠 신료의 종’이라 불리는 이 종은 현재 복제품이 걸려 있고 그 원자료는 오키나와현립 박물관·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어요.
종에는 “류큐왕국은 남쪽 바다의 아름다운 나라이며 조선, 중국, 일본 사이에 있고, 배를 이용하여 만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무역을 통해 번영한 나라이다”라는 명문과 류큐, 조선, 중국, 일본 사이의 우호관계와 교류를 나타내는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슈리성의 정전 세이덴은 창건부터 오키나와 전투까지 4번 소실되었는데요. 2019년 화재로 다시 전소됐어요. 2021년부터 복원 공사에 필요한 원척장, 가공장, 목재창고를 정비하고 2022년 가설지붕을 설치한 후 복원 작업에 들어갔답니다.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작업 중인데요. 타버린 세이덴의 부재와 재를 철거하고 유구를 보호하는 조치를 강구하는 등 류큐왕국 시대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 슈리성에 방문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보이는 부흥(見せる復興)’ 프로젝트 덕분이에요.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정전이 복원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 있는 특설 통로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완공된 후에는 절대 볼 수 없는 성 내부의 골조와 전통 기법을 직접 관찰할 수 있어요.

원척장은 목재를 가공할 때 실물 크기의 도면을 그리는 곳이에요. 전통 목조 건축은 복잡한 형태로 가공된 부재를 정확하게 조립해야 하는 만큼 원척도를 사용하면 더욱 정확하고 아름답게 가공할 수 있답니다.
가공장은 세이덴 복원에 사용하는 목재를 크고 작은 형태의 부품으로 가공하는 곳이에요. 원척도를 바탕으로 목수가 목재의 특징에 맞춰 먹으로 표시한 후 부재를 절단해요.
목재창고에서는 세이덴 복원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목재를 건조해요. 가공이 필요하면 1층 가공장으로 옮기고 가공이 완료되면 2층 목재창고로 다시 가져와 건조, 보관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작업을 마무리해요.


복원 현장에는 세이덴의 잔해들도 전시돼 있는데요. 세이덴 정면에는 오키나와 본섬의 세립사암으로 만들어진 ‘석고란(난간)’이 설치되어 있었고 지붕은 오키나와 특유의 붉은 기와로 덮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지붕에는 여러 도자기를 조합해서 만든 거대한 용머리 용마루 장식이 있었는데요. 용 장식에 사용되었던 철제 프레임의 일부분도 볼 수 있어요.


세이덴 복원 현장 옆으로는 류큐왕국의 왕도 슈리 거리 경관이 펼쳐집니다. 종횡으로 펼쳐지는 돌판 길에 처마를 맞대고 늘어서 있던 왕족과 무사의 저택은 오키나와 전투로 사라졌지만, 슈리 거리를 이어주는 골목길은 300년 전 자리 그대로입니다.



# 요호코리덴(世誇殿)
요호로코리덴은 평상시 왕녀의 거실로 사용되었고, 새로운 국왕 후임자를 정하기 위한 의식을 진행하던 곳이기도 해요. 지금은 전통 류큐 무용 공연을 볼 수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류큐왕국에서 가장 신성한 곳, 오우치바라

슈리성 동쪽은 신성한 구역 중 하나인데요. 국왕이 서거한 후에 안치되는 신뵤덴이 있었습니다. 또, 표고 140m 위치에 있는 전망대 아가리노아자나로부터는 멀리 구다카섬을 바라볼 수 있어요.
# 하쿠긴몬(白銀門)
하쿠긴몬의 창건 연도는 불분명해요. 동쪽의 아자나(망루) 아래쪽에 있는 내곽 석축에 붙여 지어진 문으로, 별명은 ‘시로가네우조’라고도 불립니다.
하쿠긴몬과 아가리노아자나 사이에 있는 신뵤덴에 참배하는 국왕이 통과하던 문이었다고 추측됩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옆문을 통했다고 전해져요.
이 문은 성내 다른 석문과 양식이 다른데요. 류큐 석회암으로 건물 지붕을 표현한 석조형식으로 만들었어요. 옛사진을 바탕으로 돌의 배치를 세심하게 복원 정비했습니다.

# 신뵤덴(寝廟殿)
신뵤덴은 국왕이 사망한 후 일시적으로 시신을 안치하는 곳입니다. 내곽의 동쪽 오우치바라의 가장 동쪽에 있고 오우치바라에서 가장 신성시 하던 곳이었어요.
주변에는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낮에도 어두운 곳이 있었다고 해요. 건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건물 윤곽만 평면적으로 나타내고 있어요.


# 아가리노아자나와 이리노아자나 망루
아가리노아자나는 성 동쪽에 건축된 망루, 이리노아자나는 성 서쪽에 지어진 망루입니다. 슈리성 일대와 성 아래까지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해요. 로코쿠몬과 함께 시간을 성내에 알리는 역할을 담당한 장소이기도 하죠.
아가리노아자나는 표고 약 140m에 있어 성밖 마을이나 성내 세이덴 뒤쪽, 오우치바라 일대를 전망할 수 있는 장소에요. 별명은 '다카아자나'라고 불러요.
동쪽 성벽 밖은 '이노모'라고 불리는 성지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동쪽으로 구다카섬, 서쪽으로 게라마 제도를 볼 수 있어요.


오키나와는 1월, 2월에도 평균 15~20°C 정도로 따뜻해서 겨울에 방문하기 좋은 여행지입니다. 슈리성은 일본 본토의 성들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데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문화가 섞인 류큐왕국만의 개성이 가득 담겨 있어요.
지금 슈리성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요. 류큐왕국의 상징이었던 붉은 성벽이 다시 세워지는 '부활의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거든요. 단순히 완성된 건물을 보는 것을 넘어,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기와를 올리고 기둥을 세우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가족 여행객이나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성 입구인 슈레이몬부터 정전인 세이덴까지 이어지는 길은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져 있어 가벼운 산책을 즐기기에 좋아요. 슈리성에서 성곽을 따라 산책하며 500년 전 류큐왕국의 숨결을 느껴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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