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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쾌한 우주 실험실, 톰 삭스가 만든 무한한 우주를 만나다.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9

DDP에서 우주를 만날 수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가 주최한 뉴욕 출신 아티스트 톰 삭스(Tom Sachs)의 대표 시리즈, ‘스페이스 프로그램(SPACE PROGRAM)’이 서울에 상륙했습니다. 직접 만든 장비와 장난기 섞인 디테일, 그리고 그 안에 숨은 철학들까지 그야말로 ‘우주를 조립’한 전시였습니다. 로켓 연료나 티타늄이 아닌, 골판지와 덕트 테이프로 만들어진 우주.

 

톰 삭스 팀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마치 우주 실험실을 통째로 옮겨온 듯한 공간을 구현해냈습니다.

 

그 안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단순히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이 아니라, 일종의 임무를 부여받은 탐사 요원이 된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SF영화에서나 보던 낯선 구조물과 장비들, 익숙하지 않은 지시문과 동선들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작품’이라는 단어보다 ‘현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이 공간 안에서, 한번도 실제로 본적이 없던 우주의 모습을 직접 마주하게 되죠.

 

# 톰 삭스, 그는 누구인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현대 조형 예술가]

[출처: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9 홈페이지]

들어가기 전, 톰 삭스가 누구인지 살펴볼까요? 톰 삭스(Tom Sachs)는 196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현재도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현대 조형 예술가입니다. 그는 조각과 회화를 비롯해 도자기, 산업 디자인, 영화 제작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브리콜라주(bricolage)'라는 독창적인 제작 방식이 있습니다.

 

브리콜라주는 말 그대로 손에 닿는 재료들—골판지, 박스, 테이프, 나무 조각 같은 일상의 흔한 소재들을 활용해 작품을 완성하는 기법인데요. 톰 삭스는 이를 통해 NASA의 우주 장비나 명품 브랜드 로고처럼 상징성 강한 대상을 정교하게 재현하면서, 기술과 소비문화에 대한 유머러스한 비틀기를 시도합니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골판지 우주선'으로 대변될 만큼, 전통적 예술 매체를 넘어 공간 전체를 연극적으로 연출하며 관람객의 몰입을 이끌어냅니다. 나이키와의 협업으로 출시한 '마스 야드(Mars Yard)' 스니커즈를 통해 예술과 패션, 실험정신을 연결하는 대중적 접점 또한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바 있습니다. 이번 서울 전시는 그의 대표 작업 세계가 집약된 '스페이스 프로그램'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뉴욕, 샌프란시스코, 런던, 홍콩을 거쳐 마침내 한국에 상륙한 글로벌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9 톰 삭스 전

"끝까지 도달하는 자만이 불멸의 전당에 오르게 될 것이다." – 톰 삭스

📌 전시회 정보

• 관람 기간 : 2025년 4월 25일 ~ 2025년 7월 25일

• 관람 시간 : 월 ~ 일 10:00 - 20:00 (매표 및 입장 관람 종료 1시간 전 마감)

• 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뮤지엄

• 전화번호 : 02-3668-2300

• 티켓 요금 (*현대카드 결제 시 20% 할인)

- 일반 : 20,000원

- 청소년 : 15,000원

- 어린이 : 13,000원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건 SF 영화나 NASA 다큐멘터리에서나 봤을 법한 풍경이었습니다. 형광등 불빛이 낯설게 퍼지는 무균실, 이름도 낯선 '로버트 어윈 스크림 클린 에어룸'.

 

마치 우주로 떠나기 전, 모든 감각을 정화하는 통과의례처럼 느껴졌죠. 이 빛의 터널을 지나면, 현실과 단절된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곳이 전시의 시작이라는 게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주의 문 안으로 함께 들어가볼까요?

 

# 특수 효과 : 점화, 발사

[톰 삭스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다]

"우리는 로켓 연료와 티타늄으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을, 골판지와 덕트 테이프로 만들어 다른 세계의 여정을 이야기합니다."

 

특수효과: 점화, 발사라는 작품은 톰 삭스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특수 효과를 이용해 우주선의 엔진 점화, 발사 그리고 여정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우주선의 엔진은 토치에서 나오는 불꽃으로 표현하고, 우주선 발사는 작은 우주선 모형이 이륙함과 동시에 스머크가 분출되어 실제로 우주선이 발사되는 것 같은 효과를 연출한다고 하는데요, 보는 순간 관람객의 상상력이 폭발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비디오를 먼저 봤는데, 순간 "이게 진짜인가?" 싶을 만큼 몰입감이 컸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모든 우주 장비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로켓 연료도, 티타늄 합금도 사용되지 않았고, 대부분은 나무, 철제 프레임, 골판지, 덕트 테이프 같은 일상 재료로 만들어졌어요.

 

그는 연극적이거나 과학적인 재현보다, 오히려 예술가의 시선으로 "우주라는 아이콘"을 해체하고 재조립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우주는 실체를 믿게 만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입니다. 전시장의 장치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이미지에 현혹되고,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진짜’라는 환상을 믿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 구조 RESCUE

[우주인을 태운 캡슐 귀환 과정]

이 작품은 우주인을 태운 캡슐의 귀환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설치물입니다. 이 설치물은 마치 하나의 단편 영화 세트를 옮겨온 듯한 구조로, 낙하산이 펼쳐지며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장면부터 시작해, 바다 위에 무사히 안착한 캡슐, 그리고 이를 구조하기 위해 접근하는 헬리콥터까지의 흐름이 순차적으로 연출되도록 설계되어 있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실제 물리적 장치와 수작업 특수효과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리얼한 연출입니다. 정교하게 조율된 움직임과 효과음, 그리고 마치 장난감 같은 소재로 구현된 장면들은, 진짜보다 더 '영화 같은 우주'라는 톰 삭스만의 유머와 상상력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어요. 이처럼 관람객은 단순히 설치물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진행되는 세트를 체험하는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흥미롭게 넘나드는 이 전시 특유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공간이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달 탐사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휠체어를 개조해 만든 카메라 리그였습니다. 일반적인 영상 장비가 아닌 휠체어라는 일상적이고도 의외의 오브제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가능한 도구로 상상 가능한 모든 것을 실현한다'는 톰 삭스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났죠. 휠체어에 고정된 카메라는 달 표면을 모사한 세트를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며, 실제 탐사 로버의 시점을 연출해 줍니다. 누군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장면을,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구현한 이 장치는 그 자체로 예술적 상상력과 실용성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이렇듯 톰 삭스의 전시는 기술보다 창의성, 완벽함보다 진정성을 향한 집착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고, 관람객 스스로도 그 장면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자주 느끼게 만듭니다.

 

# 샘플 채취 도구

[우주비행사들이 다른 세계에서 샘플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

이외에도 흥미로웠던 점은, 사다리나 목발 같은 의외의 오브제를 활용해 우주 장면을 연출했다는 점입니다. 정교한 기술이나 고가의 장비 대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물건들을 창의적으로 변형해 우주의 서사를 구현한 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단순한 소품을 넘어서 이야기의 일부로 변모시키는 작가의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결국 전시는 고도의 테크놀로지 없이도 얼마나 강렬한 시각적 상상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증명하며, '우주를 만든다'는 거창한 목표조차 '지금 있는 것들'로 충분히 실현 가능한 상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관객은 그 모든 창조의 과정에 스며들며, 어느새 예술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죠.

 

새우 모형으로 외계 생명체를 해부하는 듯한 장비를 만들어낸 장면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발하고도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정교하게 꾸며진 조명과 장비 배치, 그리고 실험실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세팅 덕분에 금방이라도 외계 생명체의 조직을 분석하는 임무가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 작품은 '해부'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과학과 탐사, 발견이라는 주제를 익숙한 오브제로 우회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고도로 발달된 장비 대신 새우 모형을 외계 생명체로 치환한 설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이 진짜처럼 보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고, 톰 삭스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잘 녹아 있는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 MUSEUM OF THE MOON

[임무에서 획득한 유물과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들]

과거 임무에서 수집해온 지질학 및 우주생물학 샘플을 전시한 공간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달에서 채취한 샘플'은 철근 콘크리트 조각이었고, '화성'의 샘플은 납 덩어리, '유로파'에서는 화석화된 물고기, '베스타'에서는 분해된 휴대폰 부품이 전시되어 있었죠.

 

어딘가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이 조합은, 우리가 상상하는 우주의 탐사와 발견이라는 테마를 지구적인 사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톰 삭스식 유머라고 느껴졌습니다. 마치 진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연구팀의 자료를 들여다보는 듯한 구성인데, 알고 보면 모두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들로 이뤄져 있어 재미를 안겨줍니다.

게다가 유로파에서 채취한 것으로 설정된 화석 샘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익숙한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저스', '크리스토퍼 놀란', '박찬욱' 세계적인 종교적 인물과 영화감독의 이름이 작은 알파벳으로 조각나듯 새겨져 있는데요, 이는 단순한 장난이나 유머를 넘어서, '우주 탐사'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 인간의 문화, 상상력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유쾌하게 환기시키는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전시 곳곳에는 익숙한 오브제에 낯선 상징을 더해, 관람객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지점에도 또 다른 질문과 상상의 문을 열어두고 있답니다.

 

그간 촬영된 비디오 속에서 우주인들이 착용했던 헬멧과 장갑, 우주복 등도 실제 전시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테이프, 글루건, 수첩, 벨크로 등 아주 일상적인 재료들로 러프하게 제작되어 있었습니다. 브리콜라주 기법을 보여주는 이 장비들은, 기능보다는 형태와 상징성을 우선한 예술적 해석으로 완성되었고요. 우주 탐사의 엄밀한 기술적 장비가 아닌, 예술가의 상상과 손의 감각이 담긴 도구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덕트 테이프로 감싸 만든 장갑은 실제 착용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벨크로와 패치가 덧대어진 우주복은 '인류의 탐험'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톰 삭스 특유의 시선이 돋보였어요. 정밀하게 떨어지는 기술보다 손으로 만든 사물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상상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시금 체감하게 되지 않나요?

 

달 탐사선은 톰 삭스의 대표적 제작 방식인 브리콜라주 기법을 활용해 만들어졌습니다. 합판의 거칠고 투박한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덕트 테이프, 철사, 볼트 등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오브제가 아닌, '손으로 만든 우주선'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외부 구조가 투박하고 실험적인 반면, 내부 조정석은 반대로 굉장히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작은 버튼 하나까지 손으로 정성스레 만든 흔적이 느껴지고, 디스플레이나 레버, 케이블 하나하나에도 치밀한 디테일이 살아 있어 외부와 내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강한 시각적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임무 수행 중 외계 행성의 샘플, 지형, 생명체는 물론 자신의 활동까지도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특수 촬영 장비를 활용합니다. 전시 속 한 작품에서는, 이러한 다큐멘터리적 기록 방식을 위트 있게 해석한 장면이 눈에 띄었는데요.

 

우주복을 입은 여성의 인화된 사진을 활용해, 마치 실제 우주비행사가 행성을 탐사하며 활동을 남긴 듯한 형식을 빌려 연출한 장면이었습니다. 과학적 기록처럼 보이지만, 인물의 표정과 포즈, 배경의 연출이 예술적으로 재구성되어 있어 사실성과 유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만의 미학이 느껴졌습니다.

 

실험적인 상상력과 유희적 상징이 만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관람객 스스로 우주 탐사의 일원이 된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마치 전시 공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이자 실험실처럼 느껴지는데요. 무대 장치처럼 연출된 장면과 브리콜라주로 완성된 오브제들 속에서, 우리는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우주의 모습을 실제로 만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기술, 우주마저도 누군가의 '상상'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요? 톰 삭스의 세계는 그 질문에 유쾌하고도 진지한 방식으로 답합니다. 상상과 현실 사이, 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한참 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여운을 남깁니다.

 

서울에서 만나는 작은 우주 실험실, 이번 주말엔 톰 삭스의 세계로 한 번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