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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속 조선으로의 시간 여행, 창덕궁과 서순라길을 걷다.

서울 한복판, 빌딩 숲과 분주한 도로 사이에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공간이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를 품은 궁궐, 바로 창덕궁입니다. 창덕궁은 조선 임금들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물며 사랑한 궁궐로, ‘동궐’이라 불릴 만큼 경복궁과 나란히 국가의 중심 역할을 해왔습니다. 궁궐 내부는 물론 그 주변의 풍경까지 유려하게 설계된 이곳은, 도심 한복판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마주할 수 있는 드문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창덕궁의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이어지는 또 하나의 풍경, 서촌. 왕실과 가까운 입지 덕분에 조선 시대 문인과 중인들이 머물던 역사적 동네로, 지금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두 공간에서, 서울 속에 숨어 있는 가장 오래된 시간을 따라 걸으며 잠시 한국이라는 나라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여정을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 창덕궁, 조선의 사계절이 머무는 궁궐

[자연에 기대어 지은, 가장 조선다운 궁궐]

📌 창덕궁 정보

• 관람시간 : 월별 상이 (홈페이지 확인)

• 장소 :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 전화번호 : 02-3668-2300

• 티켓 요금

- 대인 (만25세 ~ 만64세) : 3,000원

- 만 24세 이하 청소년 : 무료

- 만 65세 이상 어르신 : 무료

- 장애인, 유공자 : 무료

- 한복을 착용한 자 : 무료

- 외국인 (만19세~64세) : 3,000원

 

[ 출처-궁능유적본부, 창덕궁 희정당]

서울에서 유일하게 자연 지형에 기대어 지어진 궁궐, 창덕궁. 창덕궁은1405년, 태종의 명으로 창건된 이 궁궐은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한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던 탓에 왕들이 실제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궁궐이라고 합니다.

 

조선 500년의 역사 중 대부분의 임금이 이곳에서 일상을 보냈고, 덕분에 창덕궁은 왕실의 삶과 기록이 가장 많이 스며든 장소로 남게 되었어요. 창덕궁은 북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데요, 유교적 건축 철학을 기반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삼아 지어진 궁궐입니다. 창덕궁을 거닐다 보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점이 있습니다.

여느 궁궐과는 달리, 지형이 오르내리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인데요. 정문에서부터 시작해 전각과 정원, 숲길까지 걷다 보면, 그 흐름이 마치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자연과 함께 숨 쉬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창덕궁은 북악산 자락의 경사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은 궁궐입니다. 이는 유교적 건축 철학, 즉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상을 반영한 결과라고 해요. 조선 왕실의 정치와 일상이 담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권위적인 느낌보다는 유연하고 사적인 분위기가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특징은 경복궁과도 뚜렷이 대비됩니다. 경복궁이 대칭과 위엄, 권위의 상징이었다면, 창덕궁은 비대칭의 미와 흐름을 통해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죠. 건물들은 정해진 축이 아닌, 지형의 흐름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 어디서든 시야가 트이고 동선에 여유가 느껴집니다.

 

직접 걸어보면, 궁궐이라기보다는 ‘왕이 머물던 정원’ 같다는 인상이 듭니다. 특히 전각 뒤로 펼쳐지는 숲과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걷는 길은, 마치 조선시대의 어느 날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줍니다.

안내판도 잘 정비되어 있어,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특히 외국인 관람객이 많았는데, 다양한 언어로 제공되는 안내책자와 그림 중심의 표지판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 돈화문, 조선 왕의 일상이 시작되던 곳

창덕궁을 찾았다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건 바로 돈화문입니다. 태종 12년, 1412년에 건립된 이 문은 조선 시대 궁궐 정문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지금도 당시의 위엄과 품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기와의 곡선과 단청의 색감, 그 아래로 펼쳐진 돌계단은 궁궐의 격식을 상징합니다.

 

[출처-궁능유적본부, 창덕궁 돈화문]
[출처-궁능유적본부, 창덕궁 돈화문]

흥미로운 점은, 돈화문 2층에는 예전엔 종과 북이 매달려 있어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는 점인데요. 궁궐의 하루가 이 문을 통해 시작되고 끝났다는 상징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 가치가 높아 돈화문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출처-궁능유적본부, 창덕궁 돈화문]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하고 웅장한 외관 덕분에 돈화문을 통과하는 순간 마치 과거의 시간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는 왕의 공식 행차나 외국 사신의 출입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요. 그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니, 돈화문이 풍기는 고요하고 위엄 있는 분위기가 더 깊이 있게 다가왔습니다.

 

# 금천교, 궁궐로 들어서기 전 마음을 정화하는 다리

돈화문을 지나면, 작고 단아한 돌다리 하나가 발걸음을 맞이합니다. 이 다리가 바로 금천교(錦川橋)인데요. 궁궐을 출입하기 전 부정을 씻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공간으로, 조선시대 왕과 신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며 마음가짐을 다졌다고 합니다.

 

주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회나무 8그루가 양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높이 1,516미터에 이르는 이 나무들은 가슴 높이 줄기 둘레만 해도 90,178cm에 달하는데요. 오래된 나무들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모습이, 마치 시간의 흐름을 품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출처-궁능유적본부, 창덕궁 금천교]

금천교 아래로 흐르는 물은 ‘금천(錦川)’이라 불리며, 실재하는 개울입니다. ‘비단처럼 맑고 고운 물’이라는 뜻을 가진 이 물줄기는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를 흐르며, 궁궐 전체의 상징적 경계선을 이룹니다. 다리 중앙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돌거북(석거북)이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는 장수를 상징하면서도 궁궐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요. 실제로 마주한 금천교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고요한 존재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치기도 하는 장소지만, 다리의 의미를 알고 나니 바로 건너기보단 궁궐에 들어가기 전, 마음가짐을 한번 더 다지게 되는 곳이었습니다.

 

# 인정문과 인정전, 조선의 통치를 상징하던 공간

[출처-궁능유적본부, 인정전과 인정문]
[출처-궁능유적본부, 인정전과 인정문]

돈화문과 금천교를 지나 정면으로 이어지는 길 끝에 인정문(仁政門) 과 인정전(仁政殿) 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창덕궁의 공식적인 정전(正殿)으로,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고 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진행하던 공간입니다. 먼저 마주하게 되는 인정문은 정전 영역의 출입문으로, 왕 외에는 평소 일반 출입이 제한됐던 공간입니다. 문을 지나면 탁 트인 마당이 펼쳐지고, 그 끝에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이 위엄 있게 서 있습니다.

 

인정전은 1405년 창덕궁 창건 당시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 광해군 대에 복원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건되며 조선 후기까지 국가의 중대사를 치르던 핵심 공간으로 사용되었죠. 외관은 비교적 단정하지만, 붉은 단청과 푸른 지붕의 대비가 인상적이며, 왕권의 권위와 절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건축물입니다.

 

특히 바닥에 일렬로 놓인 품계석(品階石)이 눈에 띄었는데요, 그 위에 잠시 멈춰 서니, 이곳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엄격한 위계가 실질적으로 구현되던 장소였다는 사실이 실감났습니다. 품계석은 조선시대 문무백관의 지위를 나타내는 돌로, 양옆으로 각각 문관과 무관이 1품부터 9품까지 차례로 줄지어 서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관직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서야 했기 때문에, 관료 사회의 엄정한 서열과 질서가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셈이죠. 지금도 돌마다 ‘정1품’, ‘종2품’과 같은 표시가 선명히 새겨져 있어, 조선시대의 정치 구조와 신분 질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부를 둘러보면, 왕이 앉는 어좌 앞 바닥에 용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임금의 권위와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로, 조선 시대 궁중 의례의 엄숙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잠시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500년 전 조정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생생한 감각이 전해졌습니다. 다른 궁궐의 정전들과 비교했을 때 창덕궁 인정전은 화려함보다는 단정함과 실용성에 더 초점을 둔 듯한 느낌이었어요. 외국 사신을 맞이하거나 대전(大典)을 진행하던 자리를 상상하며 천천히 바라보니, 그 자체로 역사적 무게감이 전해졌습니다.

 

# 선정전, 조선 왕의 업무 공간

[출처-궁능유적본부, 선정전]
[출처-궁능유적본부, 선정전]

인정전을 지나 동쪽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조용한 분위기 속에 자리한 선정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곳은 왕이 평상시에 정무를 보거나 신하들과 차분하게 논의하던 편전(便殿)으로, 정전인 인정전과 달리 일상적인 국정 처리를 담당하던 공간입니다. 건물 외관은 다소 단출하고 검소한 느낌이 들지만, 오히려 그것이 조선의 유교적 가치와 절제된 궁궐 미감을 잘 보여주는 요소로 느껴졌습니다.

 

선정전은 조선 시대 왕이 일상적으로 정사를 돌보던 공간으로, 비교적 실용적인 용도로 쓰인 전각입니다. 외관은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곧장 눈에 들어오는 붉은 기둥과 왕이 앉았던 어좌가 인상적입니다. 어좌 뒤로는 은은한 자연광이 어좌를 비춰주고 있어 그 덕분에 어좌가 더 높고 신성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정전 바닥에는 궁궐 건물로는 이례적으로 온돌이 깔려 있다고 하는데요, 이는 왕이 이곳에서 긴 시간 머무르며 정사를 처리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비록 넓지는 않지만, 선정전은 조선 왕실의 일상이 스며든 공간으로서, 격식 속에서도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지 않나요? 문득 왕도 사람으로서 이 공간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 지 궁금해졌습니다.

 

# 후원, 왕의 사색이 머물던 비밀의 정원

[출처-궁능유적본부, 후원]
[출처-궁능유적본부, 후원]

‘비원(秘苑)’이라 불리는 창덕궁 후원은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창덕궁의 백미’라고 이야기하는 공간입니다. 조선 왕실의 전용 정원이었던 이곳은 오랫동안 왕과 왕실 가족만 출입할 수 있었던 비밀스러운 장소로, 사색을 즐기고 학문을 익히며 때로는 신하들과 시를 짓고 연회를 베풀던 공간으로 알려져 있죠. 왕의 사적인 순간들이 머무르던 정원이자, 조선 미학의 정수가 담긴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궁능유적본부, 후원]
[출처-궁능유적본부, 부용지]

연못과 정자, 숲과 돌계단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루며 배치된 후원은 단순한 조경 공간을 넘어, 조선의 철학과 건축 미학이 오롯이 담겨 있는 장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부용지와 부용정, 애련정, 존덕정, 불로문 등 각 공간은 그 이름만으로도 왕실의 가치관과 이상을 엿볼 수 있는 철학적 의미를 품고 있죠.

 

📌 후원 사전 예약 링크: https://ticket.uforus.co.kr/web/main?shopEncode=

 

창덕궁 후원(비원)은 일반적인 궁궐 내부 공간과 달리, 사전 예약 없이는 관람할 수 없는 특별 구역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의 전용 정원으로, 엄격히 출입이 제한되었던 곳이기 때문에 지금도 관람 인원을 제한하며 지정된 시간에 해설사와 함께 관람해야 합니다. 관람은 문화재청의 공식 통합예약 시스템에서 가능하며, 관람 희망일 6일 전 오전 10시부터 예약이 열립니다. 회차당 정원은 100명이며, 그중 50명은 인터넷 사전 예약, 나머지 50명은 당일 현장 선착순 발매로 배정됩니다.

 

# 서촌의 서순라길, 현대와 전통이 겹쳐지는 골목

창덕궁을 감상하고 나서 도보로 약 15분 정도 이동하면 서촌, 서순라길이 있는데요.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중인과 문인들이 모여 살던 유서 깊은 동네였다고 해요.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등 이름난 예술가들도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펼쳤죠. 과거에는 왕실과 가까운 입지 덕분에 궁궐 문화와 민간 일상이 맞닿는 경계로 기능했고, 지금은 골목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흔적과 함께,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공간들이 공존하는 동네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엔 서촌의 한옥을 개조한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카페와 맛집들이 늘어나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조용한 ‘힙 플레이스’로 입소문을 타고있는데요. 그 중 조용히 술 한 잔 즐기기에 좋은 ‘본디’, 편안한 분위기의 로스터리 카페 ‘커피베이’, 그리고 수준급의 멕시칸 푸드를 즐길 수 있는 ‘비틀비틀타코’는 MZ세대 사이에서 반응이 좋은 ‘힙 플레이스’ 라고 하니, 서순라길에 방문하게 되면 한 번 들러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외에도 어느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더라도, 골목 하나하나마다 시간이 스며든 듯한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크고 작은 갤러리, 오래된 공방, 감성이 묻어나는 독립서점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됩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천천히 산책하듯 돌아보기에도 좋은 곳이죠.

 

# 느린 시간 속에서 만나는 서울의 본모습

느린 시간 속에서 마주하는 서울의 본모습, 창덕궁과 서촌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서울의 깊이를 다시금 느끼게 해줍니다. 높은 빌딩이나 화려한 거리보다, 오래된 담장과 낙엽진 골목에서 더 오래 머무는 위로를 발견하게 되는 곳이죠. 서울은 늘 바쁘게 흘러가지만, 조선의 시간과 기억이 남아 있는 이 길 위에선 조금은 다른 시간으로 걷게 됩니다.

 

창덕궁과 서촌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와 삶의 결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도시의 빠른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이곳에서 당신만의 느린 여행을 경험해보는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