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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 생산지, 직접 보고 왔습니다! 부안 곰소염전(feat. 슬지 제빵소)

산과 수려한 바다가 어우러진 전라북도 부안 일대는 1988년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유일하게 육지와 바다가 동시에 국가 공원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특히 부안에서 고창까지 이어지는 서해 연안 갯벌은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는 세계 유산이기도 해요. 천연 미네랄과 영양분이 풍부하여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마그네슘이 적고 맛이 쓰지 않은 최상급 소금으로 평가받는답니다. 이번 여행은 천일염 생산지 곰소염전의 모습과 이곳 소금으로 찐빵과 커피를 만드는 슬지 제빵 소를 다녀왔습니다.

 

# 국내 최고 품질의 천일염 생산지, 곰소염전의 소금꽃

부안에는 줄로만 곰소 바다가 있어요. 격포에서 모항을 지나 곰소로 가는 길은 주리 포만을 어귀부터 타고 들어가는 아름다운 해안 길이 이어집니다.

 

곰소염전이 있는 부안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바닷물을 끓여 화염을 만들었던 곳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그 기록이 남아있답니다. 57만 8142㎡의 면적을 자랑하는 곰소염전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는데요. 방조제를 만들고 곰소만 일대가 간척 사업으로 지형이 바뀌자 줄포항을 대신할 곰소항을 조성하며 인근에 염전도 함께 만들어졌지요. 이 염전이 오늘날 국내 최고 품질의 천일염을 생산하는 곰소염전이 됩니다.

 

▲ 곰소염전의 소금꽃

한 톨의 소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장고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평평한 듯 보이지만 상층부부터 바닷물을 흘려내려 보낼 수 있도록 5㎝씩 점점 낮아지게 설계한 염전은 옛 선조의 지혜의 산물이죠.

 

먼바다로부터 들어온 밀물을 저수지에 가두고, 그 물을 증발지로 흘러 보내 며칠 동안에 염도를 올립니다. 다시 이 물을 결정지로 보내 햇볕과 바람이 적당히 들면 마침내 바닷물은 송골송골 새하얀 알갱이를 드러내죠. 마치 메밀꽃처럼 피어나는 소금꽃이라 합니다.

 

곰소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서해의 깨끗한 바닷물과 햇빛, 바람으로 만들어 낸 천일염으로 미네랄 성분과 영양소가 풍부해 예로부터 최상급 천일염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곰소 소금은 단맛이 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특히 5월에 청정 자연인 변산반도국립공원에서 곰소 쪽으로 날아오는 송홧가루가 염전에 내려앉아 만들어지는 송화소금은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죠.

 

홀로 대파를 밀던 염부에게 한편에 거두어놓은 누런 소금을 물어보니 송화소금이라고 일러주었어요. 임금에게 진상하던 귀한 소금이니 맛보라고 권했는데, 쓰지 않고 끝 맛은 고소했답니다.

 

▲ 곰소염전 소금창고

녹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로 지은 소금 창고에는 짜고 질긴 노동의 세월이 고스란히 쌓여있었습니다. 염부들은 염전 노동에 대해 '하늘과의 싸움'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소금 만드는 일이 일조량과 풍량, 습도에 좌우되기 때문이기 때문이죠.

 

염전 속 맑은 바닷물은 고즈넉한 산과 하늘 풍경을 거울처럼 선명하게 담고 있었답니다. 소금은 방황하던 바다가 고요를 찾고 인간의 굵은 땀을 만나 맺히는 숭고한 결정의 결과물인지 모릅니다.

 

담백한 결정을 맺지 못한 내 사유의 염전에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과 지나는 바람과 짜고 질진 노동의 세월이 필요한가 봅니다.

 

# 슬지 제빵소의 진빵과 곰소 소금커피

곰소염전이 내려다보이는 길가에 자리 잡은 슬지 제빵소는 2017년 8월 문을 열었어요. 겉모습만으로는 귀촌 한 청년이 새롭게 만든 시골의 멋진 카페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김승지 대표와 찐빵의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 대표의 아버지인 김갑철 씨가 부안 읍내에 다섯 평짜리 찐빵가게를 연 것은 2000년이었습니다. 공기업에서 일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회사를 퇴직한 김 씨는 퇴직금으로 대규모 양계장 사업을 했지만 이 역시 폐업하고 말지요.

 

딸의 이름을 내건 ‘슬지네 안흥찐빵’은 그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어요. 자식의 이름을 걸고 정직하게 장사하겠다는 각오나 다름없었죠.

 

▲ '슬지네 안흥찐빵' 김갑철 대표

처음에는 보통 사용하는 수입 밀과 수입 팥을 썼어요. 국산 농산물은 수입품에 비해 재료비가 두세 배 비쌌기 때문이죠. 점차 우리 밀과 팥 등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찐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술 문제도 있었어요. 우리 밀은 수입 밀보다 글루텐이 부족해 모양을 만들거나 쫄깃한 식감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김 씨는 화학첨가물 대신 2007년 발효종과 발효액, 누룩을 사용하는 제조 방법을 개발했어요. 이듬해엔 또 다른 핵심 재료인 팥도 국산화했답니다. 팥 앙금을 만들 때 부안의 특산물인 뽕잎을 삶은 물을 사용해 잡내를 없앴어요.

2013년 무렵, 가게를 함께 꾸리던 어머니 임영자 씨가 갑상샘암에 걸려 큰 수술을 하고, 이를 신경 쓰던 아버지까지 피부 암으로 고생하게 되자, 김슬지 대표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 아예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그렇게 곰소에 눌러앉은 그는 끈질긴 노력과 개발을 통해 2015년 농업기술원의 농식품 가공 아이디어 경연 대회에서 ‘참뽕을 이용한 팥 가공 제품’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답니다. 이때 받은 상금 1억 원을 종잣돈으로 곰소염전 앞에 팥 가공을 위한 반자동화 기기 시설을 갖춘 슬지 제빵소 공사를 시작했답니다.

 

돈이 마련되면 공사를 진행하고, 또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2017년 마침내 지금의 슬지 제빵소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 슬지제빵소의 크림치즈 찐빵, 생크림 찐빵, 곰소 소금커피

김슬지 대표는 우선 20, 30대를 타깃으로 한 제품 개발에 집중했어요. 아버지가 만들던 전통 찐빵만으로는 젊은 세대의 입맛을 맞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새롭게 선보인 생크림 찐빵, 크림치즈 찐빵, 오색 찐빵이 SNS를 타고 입소문이 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답니다. 슬지 제빵 소의 명물인 ‘곰소 소금 커피’는 아이스 라테 커피에 흑당과 발효 소금 시럽을 섞어 ‘단짠단짠’한 맛이 일품입니다.

 

빵 가게에서는 곰소염전의 발효 소금을 팔고, 곰소염전 창고에서 쓰던 나무를 가져와 카페 카운터 인테리어를 하기도 했어요.

 

슬지 제빵소가 지켜온 가장 큰 원칙은 ‘모든 재료를 지역에서 공수한다’는 로컬 푸드 전략입니다. 한 해 슬지 제빵소에서 사용한 국산 팥은 20톤을 넘겨 해마다 늘고 있어요. 가격 변동이 심한 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인근 농민들로 팥 생산자 단체를 조직해 계약 재배를 하는 방안도 찾아냈죠.

 

슬지 제빵소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팥앙금은 전국의 호텔, 제과점을 비롯해 여름철 팥빙수를 파는 카페 등에 대량으로 납품됩니다. 2017년 오픈 당시 슬지 제빵소의 매출액은 3억 3000만 원. 지금은 훌쩍 성장해 2020년 이미 연 매출 15억 원을 넘어섰답니다.

 

▲ 슬지제빵소에서 보이는 곰소염전 전경

곰소염전은 사시사철 둘러볼 수 있어요. 특히 해 질 무렵 염전으로 떨어지는 낙조는 바다 낙조 못지않게 웅장하며 아름다워요. 줄포만에 있는 곰소항에는 우리나라 대표 천일염으로 담그는 젓갈시장이 성황입니다. 곰소 젓갈, 상서 된장, 계암 죽염 등 부안을 대표하는 특산물 역시 곰소 염전의 천일염을 주재료로 사용하죠.

 

청정 해역의 낯설고 아름다운 염전 모습을 살펴보며, 슬지 제빵소의 특별한 찐빵과 소금 커피까지 즐겨보길 바랍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곰소항에서 입맛 당기는 젓갈과 부안 특산물도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