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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 속 음식이야기⑧ 여름철 보양식에 대한 단상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화첩 속 음식이야기⑧

여름철 보양식

By동대리






“싱싱한 조기 지고 가면서 / 큰 놈을 손에 쥐고 너스레를 떤다 / 어린 계집종이 중문에서 달려 나오며 / 조기 장수를 부른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덕무와 같은 실학자 영재 유득공이 ‘생선장수 그림’을 보고 평한 내용이다.


▲ 저잣길, 신윤복. 생선을 파는 여인네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속화. 이러한 장면은 신윤복(申潤福, 1758-1817 이후)의 풍속화에서는 보기 드문 서민의 생활상이다. (본 저작물은 ‘국립중앙박물관’ 에서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저잣길’을 이용하였습니다)



1. 민어는 보양식이 아니다


조선시대 어떤 기록에도 ‘반가의 여름철 보양식 민어’는 없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아예 “민어는 너무 흔해서 별도로 설명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보양식이라는 말이 아예 없었다. 있지도 않은 보양식을 찾는 것은 교묘한 상술일 뿐이다. 음식전문가, 칼럼니스트라는 사람들까지 나서서 여름철 보양식으로 개고기, 민어, 도미 등을 손꼽는다. 


민어는 꾸들꾸들 말린 것을 탕으로 끓이면 맛이 아주 좋다. 생선 기름도 넉넉하다. 싱싱한 민어면 손질을 해서 그 살로 전을 붙여도 맛있다. 민어전은 아주 맛있는 음식이다. 그뿐이다. 갑자기 민어회가 비싸진 것은 우리가 음식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민어회가 맛있고 보양식이라고 하니 우르르 몰려가기 때문이다. 피 빼기도 제대로 되지 않은 민어를 가져다 ‘핑크빛 민어회’라고 호들갑을 떤다. 제철도 아닌 7월에 민어축제를 열고 가두리 양식장의 민어로 배를 채운다. 민어의 제철은 8월 중순 이후다.


▲ 조선시대 어떤 기록에도 ‘반가의 여름철 보양식 민어’는 없다.


조기도 마찬가지다. 조기는 예전에 는 널리 먹었던, 흔한 생선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조기 머리에 돌이 들어 있다고 석수어(石首魚)라고 불렀다. 기운을 북돋워준다고 ‘조기(助氣)’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기는 민어과의 생선이다. 민어와 조기는 사촌 쯤 된다. 


고려시대 이자겸의 유배시절 이야기를 들어, 굽히지 않는다고 ‘굴비(屈非)’라고 했다는 말은 어딘지 억지스럽다. 우선 굴비를 굽히지 않는다고 해석하려면 ‘屈非’가 아니라 ‘비굴(非屈)’이어야 한다. 


“난을 계획했던 이자겸이 법성포 부근(정주)으로 유배 가서 굴비가 맛있는 것을 알고 ‘정주굴비’라고 써서 바쳤다. 죄를 용서받기보다 굽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굴비를 보냈다”는 이야기는 그저 떠도는 것일 뿐, 도무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근거도 없다. 이자겸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다가 반역죄를 저지르고 실각했다. 그런데 굽히지 않는다? 뭐를 위해서 굽히지 않는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굴비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것 밖에 없다.



조기에 관한 이름도 지역에 따라 혼란스럽다. 보구치, 수조기, 참조기, 부세 등을 모두 ‘조기’ 종류로 인정한다. 부산 지역에서는 수조기를 부세라고 부른다. 서해안에서는 부세를 ‘백조구’ 즉 흰 조기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석수어와 황석수어(黃石首魚)를 따로 구분했다. 영어로도 조기는 yellow croaker라 부르고 백조기는 white croaker라고 부른다. 물론 백조기 배에 노란 물감을 들인다고 그게 참조기가 되지는 않는다.


◀ 조기는 민어과의 생선이다. 민어와 조기는 사촌 쯤 된다.




2. 민어, 조기, 황새기는 같은 종류의 물고기


조선시대의 기록 중 오주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나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조기에 관해 재미있는 기록이 나온다. 


“석수어(石首魚)를 ‘면(鮸)’이라고 하고 크고 작은 두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큰 것을 민어(民魚)라고 하는데, 면(鮸)과 민(民)은 음이 서로 비슷하다”고 했다. 민어는 중국에서의 원래 이름이 면어였다. ‘면(鮸)’과 ‘민(民)’의 중국식 발음이 비슷하여 면어가 민어가 되었다. ‘면’은 복잡한 글자다. 획이 쉬운 ‘민’으로 바꾼 것이다. 실제 조기는 민어과의 생선이다. 민어는 크고 조기는 작다. 큰 면어는 민어이고 작은 면어가 조기인 것이다. ‘백성 민民’자를 써서 민어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백성들이 널리 먹어서 민어라고 했다는 말도 엉터리다.


▲ 오늘날 ‘여름철 보양식’으로 민어가 손꼽히지만 민어의 제철은 8월 중순 이후부터다.



홍만선의 <증보산림경제>에서는 <동의보감>을 인용하여 “조기의 머리에 있는 바둑돌만한 뼈를 갈아서 먹으면 임질이 낫는다”고 이야기한다. 머리의 돌까지 사용한 것을 보면 조기를 널리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허균의 <성소부부고> 중 ‘도문대작’에서는 조선시대에 조기가 얼마나 흔했는지 잘 보여준다. 허균은 여러 가지 생선을 설명한 다음, 해산물 편의 마지막에 조기를 언급한다. “물고기 중에서 흔한 것은 민어, 조기, 밴댕이, 낙지, 준치 등으로서 서해 곳곳에서 나는데 모두 맛이 좋아 다 기재하지 않았고…”라고 했다. 허균의 시대에는 서해 곳곳에서 조기가 흔하게 생산됐다. 조공물의 목록을 보면 남해에서도 조기는 대량으로 잡혔다. 많이 잡히니 당연히 떠돌이 장사치들도 들고, 지고 다니면서 팔았을 것이다. 생선장수의 그림 속에는 왠지 조기 냄새가 날 것 같다.


3. 퇴직자들에게 민어, 조기를 주다


조선시대에도 석수어와 황석수어는 구별했다. 당연히 황석수어가 진짜 조기다. 황석어, 황새기, 강달이, 깡다리 등으로 부르는 것은 바로 황석수어다. 황석수어가 황석어가 되고 황석어가 황새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론한다. 황새기 젓은 황석어젓 즉 참조기 젓이다. 요즘은 작은 조기를 황석어, 황새기라고 부른다. 


조선후기 국왕이 행정 ‘참고도서’로 사용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민어가 등장한다. “(전략) 봉조하(奉朝賀)에게는 다달이 돼지고기 10근, 닭 5마리를 지급함. 주급(周急)으로는 쌀 8석, 콩 3석, 팥 1석, 민어(民魚) 10마리, 조기 15묶음, 소금 2석, 땔나무 200근(斤), 숯 3석을 매년에 3차례에 지급하되, 춘, 추와 세시(歲時)로 함”이라고 밝혔다.


▲ 민어, 조기는 진귀한 생선이 아니라 지금의 고등어, 꽁치처럼 서민의 밥상을 채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만기요람>은 1808년(순조 8년) 비변사 당상관 심상규(沈象奎)와 호조판서 서영보(徐榮輔)가 엮은 책이다. ‘봉조하’는 종2품 이상의 관원들이 나이가 들어 퇴직하면 받는 벼슬 아닌 벼슬이다. 근무는 하지 않지만 국가의 행사가 있을 때는 참가한다. ‘주급’은 매주가 아니라 급할 때 변통으로 준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1년에 3번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후기 고위퇴직자들은 1년에 민어 30마리, 조기 45속(900마리)을 받았다. 민어, 조기는 진귀한 생선이 아니라 지금의 고등어, 꽁치처럼 서민의 밥상을 채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란횟집은 자타공인, 목포 최고, 전국 최고의 민어 전문점이다. 회는 이 집만의 비법이 담긴 막걸리 초장에 푹 찍어 먹어야 된다. 회도 좋지만 귀한 민어 전을 꼭 먹도록 한다. 여럿이서 민어회, 탕, 전 등을 동시에 주문하는 것이 요령이다.


▲ 여럿이서 민어회, 탕, 전 등을 동시에 주문하는 것이 ‘영란횟집’을 맛있게 이용하는 요령이다.


경기도 안산에 자리한 진도식당은 호남해물 전문점이다. 민어, 홍어 등 제철 생선들이 한상 푸짐하다. 호남 음식답게 밑반찬들이 아주 좋다. 간간한 맛의 김치나 각종 젓갈, 장류가 입맛을 돋운다. 재료도 좋지만 음식 솜씨가 압권이다. 허름한 분위기지만 음식은 고급스럽다.


▲ 진도식당(왼쪽)과 유선식당(오른쪽)은 호남해물 전문점이다. 특히 유선식당은 민어탕이 유명하다.


서울 서초구의 유선식당 역시 호남해물 전문점이다. 목포 출신의 주인 부부가 서초동에서 10년 넘게 남도식 생선 요리를 선보인다. 민어는 매일 아침 목포에서 직송으로 받는다. 민어탕이 유명해서 여름철에는 민어탕을 먹으러 오는 단골손님들이 많다. 민어의 맛을 제대로 살린 탕을 끓인다는 평가.



노들강은 서울 강남 일대의 미식가들이 민어로 복달임을 하는 곳이다. 물론 민어회도 내놓는다. 전라도 출신 주인의 솜씨가 뛰어나 단골이 꽤 많다. 낙지, 홍어, 조개류 등도 수준급이다. 각종 생선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 1 영란횟집: 전라남도 목포시 만호동 1-5 / 061-243-7311
    • 2 진도식당: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706-3 / 031-402-8262
    • 3 유선식당: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1531-9 / 02-525-6608
    • 4 노들강: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184-18 / 02-517-6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