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천만 년 전, 흘러내리던 뜨거운 용암이 굳어 만들어낸 거대한 예술작품. 오늘날 우리가 걷는 주왕산은 그 시간의 흔적 위에 솟아 있어요. 설악산, 월출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한민국 3대 암산’의 하나지만, 주왕산의 매력은 위압적인 날카로움보다는 장엄하면서도 부드러운 품에 있답니다. 시간이 빚어낸 지질학적 경이, 왕의 전설이 흐르는 신비로운 바위들, 그리고 누구나 편안히 걸을 수 있는 부드러운 숲길까지. 주왕산 국립공원은 방문객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살아있는 자연의 박물관이에요
# 암봉이 빚어내는 절경, 대한민국 3대 암산 주왕산

전체 면적의 80%가 산림 지대인 경북 청송군은 한때 오지라고 불릴 만큼 외부와 단절된 곳이었어요. 지금은 고속도로를 타고 쉽게 닿을 수 있지만, 여전히 공장 하나 없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청정 지역이죠. 그중 가장 깊숙한 곳에 주왕산국립공원이 있어요.
해발 720.6m의 주왕산은 한반도 산맥의 중심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이 동남부로 뻗어 나온 지맥에 자리해요. 북서부에 태행산(933.1m), 대둔산(905m)이 솟아 있고 중앙부에 주봉 격인 가메봉(882.8m) 등 평정봉이 주축을 이룹니다.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3대 암산답게 커다란 바위들이 아름다운 비경을 선사해요. 절벽과 바위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늘어섰다고 해서 예부터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고려 말 이곳을 찾아 온 나옹선사는 ‘훗날 복되려면 주왕산으로 불러야 한다’라고 해서 주왕산(周王山)으로 이름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당나라 때 주왕이라고 칭했던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뒤 이곳으로 숨어들었다는 전설도 생겨났어요.

주왕산은 세 군데 폭포 외에 청학과 백학이 다정히 살았다는 학소대,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 오른 급수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벌인 기암,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하였다는 망월대, 주왕의 딸 연화 공주의 사연이 깃든 연화굴, 멀리 동해가 보이는 험준한 왕거암, 주왕의 무기를 보관한 곳이라는 무장굴 그리고 주왕이 숨어살다 숨졌다는 주왕암, 만개한 연꽃 모양과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연화봉 등 전설 어린 절경들이 즐비해요.


한편 왕거암에서 별바위에 이르는 13㎞의 구간에 형성된 울창한 숲은 태고의 원시림을 방불케 한답니다.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주변 경관을 빛내요.
주왕산국립공원은 세계적 희귀 수목인 망개나무를 비롯하여 둥근잎꿩의비름, 솔나리, 노랑무늬붓꽃 등이 식물자원 888종과 함께 계곡 바위틈에 자생하고, 수달, 너구리 등 동물자원 902종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예요. 내주왕계곡에서는 산티나무를 비롯한 복장나무와 자작나무의 군락도 유명하죠.
수달래, 천년이기, 송이, 회양목은 주왕산의 4대 명물로 꼽히고, 둥근잎꿩의비름과 함께 깃대종이라고 할 수 있는 솔부엉이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 우리나라 최고의 지질공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

주왕산은 독특해요. 멀리서 보이는 봉우리 형상부터 독특하죠. 마치 손가락이 땅을 뚫고 올라온 듯 바위가 솟았습니다. 바위 색깔도 보통 보는 화강암과 달리 잿빛이에요. 이런 봉우리와 절벽이 곳곳에 솟아 있어요.
계곡의 풍광 역시 남다릅니다. 깎아지른 듯 양쪽 절벽 사이로 계곡 물이 흘러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협곡입니다. 물길을 따라 바위가 깊이 파이고 폭포가 많은 것도 특징이에요. 주왕산 곳곳에는 동굴도 많은데요. 굴의 형상 역시 여느 산의 동굴과 다르답니다.


이런 경관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단서는 주왕산의 대표 경관 가운데 하나인 '급수대' 절벽에서 찾을 수 있어요. 암벽 면이 마치 칼로 깎아 다듬은 듯 반듯하게 각진 모양이에요. 돌기둥이 당장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 수직으로 붙어있죠. 바로 '주상절리'입니다. 주상절리는 암벽뿐만 아니라 동굴과 계곡 주변 바위에서도 보여요.
6천 4백만 년 전, 이곳에서 대규모로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쏟아져 나왔어요. 보통 화산재가 하늘로 솟구치는데, 지난 2010년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주왕산 화산 폭발은 달랐어요. 위가 아니라 옆으로 화산재가 폭풍처럼 흘러내렸어요. 로마 폼페이를 덮친 화산재와 같습니다.
하늘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경우와 달리 옆으로 흘러내린 화산재는 무척 뜨겁습니다. 온도가 800도에 이르기도 해요. 잦은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반복적으로 쌓이면 엄청난 압력과 고온 때문에 서로 엉겨 붙어요. 그렇게 형성된 암석을 용결응회암이라고 불러요.


뜨거웠던 용결응회암은 서서히 식기 시작해요. 부피가 수축하면서 4~6각 형태로 갈라지는데요. 갈라진 틈은 위에서 아래까지 길게 이어집니다. 수직 방향의 틈이 많아서 침식 과정도 독특해요. 화강암처럼 완만하게 침식되지 않고, 틈을 따라 돌기둥이 떨어져 깎아내린 듯 침식되죠. 병풍처럼 늘어선 주왕산 절벽과 암석 단애는 이렇게 형성됐어요. 지금도 주왕산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낙석이 많답니다.
용결응회암 위를 흐르는 물줄기도 독특한 침식 지형을 만들어요. 암석 틈으로 스며든 물이 겨울에 얼면서 틈을 벌려놓습니다. 봄이면 녹았다가 겨울이면 다시 얼어요. 이 과정이 반복되면 틈이 점점 커지고 그 틈으로 암석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요. 오랜 세월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바위 사이 깊은 협곡과 폭포 그리고 동굴이 만들어졌어요. 주왕산 전역에 크고 작은 폭포가 많은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죠.
이렇게 주왕산 일대에서는 최고 335m까지 화산재가 쌓여 응회암이 만들어졌어요. 이만큼 두텁게 쌓인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답니다. 주왕산은 지난 2014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국가지질공원으로 등재됐어요. 2017년에는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 등 수억 년의 시간에 걸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주왕산의 지형이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지정된 지질명소는 총 24곳, 이중 주왕산국립공원에만 무려 9개의 지질명소가 포함돼 있어요.
# 주왕이 피신하다 죽은 주왕산, 대전사

차를 세우고 주왕산 들머리에 있는 대전사로 향하면 멀리서 보이던 기암단애가 한 눈에 들어와요. 마치 손오공을 막는 부처님 손바닥처럼 거대한 바위가 압도적이죠. 제10교구 은해사 말사인 대전사 보광전 앞에 서면 기암단애의 신비로운 모습을 제일 잘 감상할 수 있답니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중국 당나라 당시 반역을 꾀했던 주왕과 그의 아들 대전도군이 피신했을 때 창건한 사찰이라고도 해요.
조선 후기 청송군 출신의 학자 서원모는 주왕산과 관련된 기록을 모아 『주왕산지』라는 책을 펴냈어요. 『주왕산지』에는 주왕 설화, 유람 기록, 시, 주왕산 관련 지명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2009년에는 한글로 번역된 『주왕산지』(청송군)가 출간되어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어요.

『주왕산지』에는 주왕산이라는 명칭과 관련해서 중국 당나라 때 주도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주도는 스스로 ‘주왕’이라고 칭하며 진나라의 회복을 꿈꿨어요. 부하 백여 명을 거느리고 당나라의 도읍인 장안을 공격했다가 크게 패하고 말았죠.
주왕은 쫓기는 몸이 되어 요동을 지나 이리저리 떠돌다가 마지막으로 주왕산에 숨어 피신해요. 당나라 왕이 신라 왕에게 주왕을 잡아 달라고 부탁하자, 신라 왕은 마일성 장군의 다섯 형제에게 명령하여 주왕을 공격하게 했어요.
주왕은 주왕산의 한 굴에 숨어 지내다 마장군에게 발각되어 화살을 맞고 죽임을 당합니다. 이때 주왕이 죽으면서 흘린 피가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려 산기슭에 수달래라는 붉은 산철쭉이 피어났다고 해요.
대전사는 절터 크기로 보아 창건 당시 웅장했지만 고려 중기에 화재로 소실되어 조선시대에는 사격이 많이 작아졌어요. 부속 암자로는 주왕산 안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습니다.
지금은 작은 사찰이지만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군을 모아 훈련시켰던 곳으로도 유명해요. 처마 너머 보이는 거대한 암봉과 어우러진 사찰의 풍경은 가히 압권이랍니다. 풍수지리는 몰라도 명당 중에 명당이라는 생각이 단번에 들어요.
# 신선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 주왕계곡 용추협곡

산의 이름에 얽힌 ‘주왕’의 전설을 떠올리며 걷는 길은 한 편의 서사시가 돼요. 솟아오른 기암(旗岩)은 마치 깃발 같고, 떡을 쪄 먹었다는 시루봉(甑峯)은 정말 찜기를 닮았습니다.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며 주왕계곡을 따라 1시간 남짓 오르다 보면, 커다란 바위가 둘러싼 웅장한 협곡이 나타나요. 주왕산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용추협곡 구간입니다. 기암이 병풍처럼 펼쳐져 절경을 이루어 특색 있는 경관을 이뤄요.


용암과 물이 만들어 놓은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진 두 개의 암벽 사이로 난 틈새 길을 지나면, 마치 신선 세계에 발을 딛은 듯 넓은 협곡이 펼쳐집니다. 눈앞에서 마주한 대자연의 웅장함에 경외감이 들어요. 암벽 하나 지났을 뿐인데 공기마저 달라지는 것이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협곡’이라는 전설이 전해질만도 하답니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골을 타고 옥빛 계곡 물이 세차게 흘러요. 조선팔경 중 여섯 번째에 들었던 명성은 이 계곡에서 나온 듯싶어요.
주왕산을 흐르는 주왕계곡은 세 곳의 폭포가 유명해요. 용추(龍湫)폭포(제1폭포), 절구폭포(제2폭포), 용연(龍淵)폭포(제3폭포)가 가문 날씨에도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냅니다.
# 제1 용추폭포



주왕계곡 중심에 용이 승천한 폭포라는 뜻을 가진 용추폭포가 있어요. 용추폭포는 총 3단의 폭포로 이뤄져 있고, 각 폭포 아래에는 선녀탕과 구룡소라는 돌개구멍이 있습니다. 이는 응회암이 발달하는 수직 절리를 따라 억겁의 시간 동안 침식작용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자연 현상이에요.
# 제2 절구폭포




절구폭포는 주 탐방로에서 갈림길로 빠져 200m 정도 숲길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어요. 신비로운 절구폭포의 물소리로 방문객을 이끕니다.
주왕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인공적인 소음이 사라진 고요 속에서 더욱 빛나요. 우리가 남기는 것이 발자국 소리 뿐일 때, 자연은 가장 위대한 모습으로 화답해요.
계곡물에 손을 담그고 차가운 물안개가 뿜어져 나오는 폭포 앞에서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경험은 주왕산만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치유예요.
# 제3 용연폭포




용추협곡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주왕산 트레킹의 종점에 해당하는 용연폭포가 나타난다. 용연폭포 역시 3단의 폭포로 이뤄져 있고, 두 개의 물줄기가 떨어진다고 해서 쌍용추폭포라고도 불린다.

용연폭포는 주왕산 폭포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커요. 특이하게 폭포 옆 암벽에 3개의 굴이 파인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처음에는 맨 앞 동굴이 있던 자리에 폭포물이 떨어졌어요. 그 힘으로 하식동굴이 파였죠.
그러다 폭포 자리가 침식으로 깎이면서 상류 쪽으로 조금 후퇴했어요. 그곳에서 두 번째 하식동굴을 만들었고, 다시 세 번째 자리로 후퇴해 또 동굴을 만들었어요. 세월 따라 움직이는 폭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랍니다.
주왕산은 이처럼 화산재로 형성된 바위 지형의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지질학 교과서’예요.
# 청송 주왕산 여행 팁

주왕산은 기암괴봉과 폭포가 한데 어울러져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워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질 명소를 걸으며 3개의 폭포를 차례로 만나는 10.6km 주왕산 트레킹 코스는, 평탄한 탐방로와 무장애 구간 덕분에 유모차도 편히 오갈 수 있을 만큼 아이와 노약자까지 다양한 연령과 체력 조건의 방문객을 함께 수용하는 보기 드문 트레킹 경로입니다.
주왕계곡 코스는 크게 두 구간으로 나뉘는데요. 1구간은 상의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출발해 대전사와 주왕암, 시루봉을 거쳐, 용추폭포까지 편도 2.7km 구간이에요. 경사가 거의 없는 무장애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어 유모차와 휠체어 통행이 가능하고, 흙 길과 목재 데크 교량이 번갈아 이어져 걷는 데 부담이 적어요. 소요 시간은 편도 1시간 남짓.
2구간은 용추폭포에서 용연폭포까지 편도 2.6km이에요. 돌길과 경사 구간이 포함되어 있어 여기부터는 유모차와 휠체어 진입이 불가합니다.
주왕산의 다채로운 탐방 코스와 실시간 정보는 방문 전 국립공원공단 누리집에서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아요. https://bit.ly/4h38gMa
주왕산국립공원 < 국립공원탐방 < 국립공원공단
www.knps.or.kr
📌 주왕산국립공원
• 위치: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공원길 169-7
• 상의주차장 :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공원길 146
• 문의 : 054-870-5300

주왕산은 계곡마다 아름답고 장엄한 경관이 펼쳐져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해요. 다채로운 여행을 설계할 수 있답니다.
주왕산 3대 계곡 중의 하나인 절골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 아직도 원시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인근에 수백 년 됨직한 왕버들이 물속에 자라고 있는 주산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아요.
또한 월외계곡에는 하늘에서 물기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달기폭포가 있어요. 인근의 달기약수터는 위장병과 부인병에 좋다고 예로부터 알려져 왔으며 300m 간격으로 상탕·중탕·하탕의 약수탕이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답니다.
주왕산의 장엄한 풍경을 경험한 뒤에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송의 고즈넉한 마을을 거닐거나, 맑은 공기 속에서 자란 사과도 맛보는 것도 좋아요.

더운 여름을 지나 자연이 연주하는 순수한 교향곡을 듣고 싶다면 주왕산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조용히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속에서, 온전한 쉼과 재충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계곡을 따라 걸으며, 억겁의 시간이 만든 천혜의 비경을 한껏 만끽해 보세요. 등산이 힘든 당신에게 주왕산 폭포 트레킹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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