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익명의 예술가, 뱅크시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따라붙는 말입니다. 작품 하나가 수억 원에 거래되고, 벽에 남긴 그림 하나가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이 되지만, 정작 그의 얼굴과 정체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영국 브리스톨의 거리에서 시작된 그의 작품은 30년 가까이 사회와 정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고, 지금도 세계 곳곳의 벽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여의도 더현대 서울 6층 ALT.1에서 열리고 있는 〈BANKSY : Still Here〉는 그런 뱅크시의 생각과 작업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전시입니다. Intro부터 Outro까지 여섯 개의 공간으로 이어지며, 가면 뒤에 숨은 정체성으로 문을 열어 거리의 벽과 유머, 아이콘이 되어버린 역설, 그리고 평화를 향한 메시지를 차례로 마주하게 됩니다. 전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이 작품들은 처음부터 전시장 벽에 걸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이어지던 거리와 벽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오늘은 전시에서 만난 대표 작품들과 함께, 그 벽들이 품고 있던 이야기와 뱅크시가 끝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함께 따라가 보려 합니다.
# 전시 기본 정보
📌 뱅크시 : Still Here
• 장소: 더현대 서울 ALT.1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6층)
• 기간: 2026년 7월 22일(수) ~ 11월 3일(화)
• 시간: 월 ~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 금 ~ 일요일 및 공휴일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 30분 (입장 마감은 폐관 1시간 전)
• 요금: 성인 23,000원, 청소년·어린이 18,000원 (단체, 경로 우대, 장애인 할인 별도)
• 예매: 인터파크, NOL티켓 등 주요 예매처 및 현장 매표소에서 가능
• 문의: 070-8656-3215
• 주차: 관람 후 주차 등록 시 2시간 무료, 초과 시 10분당 2,000원
[출처: 〈BANKSY : Still Here〉 공식 전시 리플릿]
# 1. Intro : Mask
[정체보다 강한 상징]
전시장 입구, 낡은 신문지를 통째로 발라놓은 듯한 벽이 가장 먼저 걸음을 붙듭니다. 굵은 글씨로 새긴 ‘BANKSY STILL HERE’ 아래로, 실제 해외 신문에 실렸던 뱅크시 관련 기사들이 콜라주처럼 겹쳐 있었는데요. “Unmasked at last(마침내 가면이 벗겨지다)”라는 헤드라인과, 영국 웨스턴슈퍼메어에서 열렸던 뱅크시의 대표 프로젝트 중 하나인, 디스토피아 테마파크 ‘디즈멀랜드’ 기사 조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체를 밝히려는 온갖 추측이 실제 신문 헤드라인이 되어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걸 보니, 이 작가를 둘러싼 궁금증이 얼마나 오래 이어져 왔는지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 몇몇 언론이 유력한 후보를 지목하며 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낸 적도 여러 번이었다는데, 그때마다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고 뱅크시 본인도 인정하거나 부인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작품의 진위는 그가 직접 세운 ‘페스트 컨트롤’이라는 인증 기관을 통해서만 확인된다고 하는데요, 해충 방제라는 이름부터가 자신을 둘러싼 소문을 스스로 방역하겠다는 농담처럼 들립니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는 건 그의 얼굴이 아니라, 얼굴 없이도 이렇게 오래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구를 지나면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이 사진을 찍는 자리를 만나게 됩니다. 후드를 눌러쓴 인물의 커다란 그림자가 벽 전체에 드리워져 있고, 그 앞에는 감독 의자 하나가 조명을 받으며 놓여 있었습니다. 마치 인터뷰를 기다리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람처럼요.
의자를 둘러싼 팻말들도 하나씩 눈여겨볼 만합니다. “LAST SEEN: EVERYWHERE(마지막 목격 장소: 어디에나)”, “IDENTITY: UNKNOWN(신원 불명)”, “MOST WANTED, MOST CELEBRATED(가장 수배받는 동시에 가장 환영받는 사람)”, “STATUS: ACTIVE(현재 상태: 활동 중)”. 짧은 문구 몇 개가 뱅크시라는 존재의 모순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공공 기물 훼손 혐의로 언제든 수배될 수 있는 인물인 동시에, 작품 한 점이 수십억 원에 팔리는 경매장의 스타이기도 한데요. 최근에도 런던 워털루 플레이스에 세워진 그의 새 조각상을 두고 시의회가 철거가 아닌 보호 조치가 논의될 만큼, 뱅크시의 작업은 여전히 거리와 제도 사이에서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텅 빈 의자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니, 우리는 결국 없는 사람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 2. Wall
[벽은 거대한 무기다]
두 번째 방에서 처음 마주한 작품은 ‘러브 랫’이었습니다. 붓을 쥔 쥐 한 마리의 손끝에서 붉은 하트가 흘러내리는 장면이 담겨 있는데요.

도시가 가장 하찮게 여기는 존재에게 붓을 쥐여 주고 사랑을 그리게 만든 이 그림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태어난 목소리에 가깝습니다. 2004년 리버풀의 한 벽면에 처음 그려졌다는 이 작품은 프랑스 스텐실 아트의 선구자, ‘블레크 르 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80년대 파리의 거리에 쥐를 그리며 도시에서 가장 자유로운 동물이라고 표현했고, 뱅크시 역시 자신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
뱅크시의 여러 작품에서 쥐가 반복해 등장할 만큼, 쥐는 그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정작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바람피운 배우자에게 어울리는 선물”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핏빛으로 흘러내리는 하트는 사랑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이면에 자리한 상처와 배신, 고통까지 함께 담아낸 상징으로 읽힙니다.
근처 벽에는 그래피티를 향한 뱅크시의 생각을 담은 문구도 큼직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조용히 말하되, 큰 페인트 통을 들고 다녀라. 그래피티는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남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구 중 하나다.” 이 문장을 읽고 나면, 러브 랫이 왜 굳이 붓을 들고 있는지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가진 것 없는 존재가 손에 쥘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붓 한 자루였다는 뜻처럼 느껴졌어요.


이 구간에서 특히 발길이 오래 머물렀던 건 뱅크시의 실제 거리 작업을 기록한 사진들이었습니다. 골동품 액자 속에는 런던의 실제 골목 벽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래피티가 시간이 지나며 지워지고 덧칠되는 과정과 그 담벼락을 무심히 지나는 사람들의 일상까지 함께 찍혀 있었습니다.
그중 한 프레임이 유독 마음에 남았습니다. 벽에는 하트 모양으로 “I ♥ LONDON”이라 쓰여 있고 그 아래 “ROBBO”라는 이름, 평화의 손짓을 하는 쥐 스텐실이 함께 남아 있었는데, 같은 프레임 반대편에는 그 골목을 무심히 지나가는 행인의 다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저 ‘ROBBO’는 실존했던 런던의 그래피티 전설, 킹 로보(King Robbo)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악연은 2009년, 뱅크시가 로보의 대표 그래피티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같은 벽에서 서로의 작품을 지우고 덧칠하는 이른바 ‘그래피티 전쟁’이 몇 년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1년 로보가 사고로 의식을 잃었고, 2014년 세상을 떠나면서 이 전쟁도 끝을 맺게 됩니다. 뱅크시는 그의 소식을 들은 뒤 기존 작품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벽을 다시 그려 넣으며 애도를 표했다고 전해집니다.
사진 속 벽에 남은 하트와 평화의 손짓은, 오랜 대립 끝에 거리 위에 남는 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존중이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매끈한 액자 속 작품만 보고 있었다면 미처 알지 못했을 이야기였습니다.

또 인상 깊었던 작품은, 쥐들이 점령한 욕실이었습니다. 노란 벽을 타고 오르는 쥐 스텐실, 세면대를 타고 흘러내리는 휴지, 변기 뚜껑 위에 걸터앉은 쥐 한 마리. 벽 하나에 그려져 있던 러브 랫이 이제는 공간 전체를 점령한 듯한 몰입형 설치였습니다.
액자 속에 얌전히 있던 쥐가 현실로 걸어 나온 듯한 풍경을 보니, 앞서 읽었던 뱅크시의 문장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람도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도구. 이 작은 침입자들이 정돈된 공간을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은, 힘없는 존재일수록 오히려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는 뱅크시의 메시지를 공간 전체로 확장해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 3. Laugh Now
[유머는 시대를 견디는 방식]
세 번째 방에서는 전시의 온도가 한 번 바뀝니다. 앞의 방이 무겁게 눌러 왔다면 여기서는 웃음이 먼저 터집니다. 나란히 걸린 두 원숭이 그림이 시선을 끌었는데요. 쇼핑백을 목에 건 원숭이가 “Keep it real”이라 말하는 그림 옆으로, 같은 자세의 원숭이가 조금 다른 말을 내건 ‘지금은 웃어라’가 걸려 있었습니다.

2003년 처음 발표된 ‘지금은 웃어라’ 시리즈는 지금도 뱅크시의 대표작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목에 팻말을 건 원숭이가 “Laugh now, but one day we’ll be in charge(지금은 웃어도 좋지만, 언젠가 우리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 그림은 원래 진화와 위계질서를 향한 풍자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여기며 다른 존재를 웃음거리로 삼아온 오랜 태도를, 원숭이의 입을 빌려 되받아치는 셈입니다. 팻말 하나를 목에 건 원숭이의 무심한 표정 앞에서, 저 말을 그저 웃어넘기기만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위계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그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웠습니다.

바로 이어서 만난 것이 ‘원숭이 여왕’이었습니다. 영국 국기를 닮은 붉고 파란 원형 배경 위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원숭이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2002년,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50주년인 골든 주빌리를 기념해 공개됐습니다. 영국의 한 청소년 클럽 진열창에 전시됐지만 왕실과 국기를 모독했다는 항의가 이어졌고, 결국 주빌리 기간 동안 작품을 철거해 달라는 정부의 요청까지 이어지며 언론은 이 논란을 ‘뱅크시게이트’라고 불렀습니다.
뱅크시는 정면으로 비판하기보다 누구나 아는 상징을 살짝 비틀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즐깁니다. 하지만 그 ‘살짝’의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작은 진열창 하나가 국가적인 논쟁으로 번졌다는 사실은, 그의 유머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였음을 보여줍니다. 구호는 쉽게 잊혀도 웃음을 머금게 하는 이미지는 오래 기억된다는 사실을, 뱅크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방에서 가장 웃음이 터졌던 작품은 따로 있었습니다. 분홍빛 배경 위, 안락의자에 앉아 다정하게 뜨개질을 하는 두 할머니였습니다. 찻잔과 램프까지 놓인 아늑한 거실 풍경인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손끝에서 짜이고 있는 스웨터의 문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쪽에는 “PUNKS NOT DEAD”, 다른 한쪽에는 “THUG FOR LIFE”가 적혀 있었습니다.
200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은, 펑크와 힙합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문구를 가져와 재치 있게 엮어낸 작품입니다. 가장 온화해 보이는 두 할머니가 사실은 가장 반항적인 메시지를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는 설정이 절묘한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반드시 순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반항도 신념도, 때로는 이렇게 뜨개질처럼 조용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 4. Icon
[저항은 어떻게 유명한 브랜드가 되었는가]
네 번째 방은 이 전시에서 가장 논쟁적인 구간입니다. 낡은 플로럴 벽지를 배경 삼아 ‘쇼핑백을 든 그리스도’가 걸려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두 팔에는 못이 아니라 여러 개의 쇼핑백이 걸려 있었죠.

종교적 희생의 상징을 소비의 상징으로 치환한 이 그림은, 오늘날 크리스마스가 신앙보다 쇼핑에 더 가까운 계절로 변질된 현실을 꼬집습니다. 2004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단 82점만 제작된 희귀판으로, ‘소비하는 예수’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쇼핑백 안으로 사탕 지팡이와 미키마우스 귀 장식이 삐져나와 있고, 그리스도의 몸과 쇼핑백 모두가 녹아내리듯 그려져 있는데요. 소비가 주는 만족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녹아 사라진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이 걸린 자리가 백화점 6층이라는 사실도 묘하게 겹쳐졌습니다. 소비를 비판하는 작품을 보러 가는 길에, 정작 쇼핑백을 든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야 했으니까요.

바로 옆에는 표범 한 마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줄무늬 대신 바퀴 달린 트롤리 형태의 바코드가 창살처럼 표범을 가두고 있었고, 표범은 그 창살을 구부리며 막 뛰쳐나오려는 순간에 멈춰 있었습니다.
‘바코드’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뱅크시의 고향인 브리스톨의 한 주택 벽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야생 동물이 동물원이나 밀매를 통해 상품처럼 거래되는 현실을 풍자한 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모든 것을 가격과 상품 가치로만 바라보는 소비사회를 비판한 작품으로 읽는 시각도 있습니다.
# 5. Peace
[결국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앞선 방들이 날을 세우고 비틀었다면, 여기서는 그 모든 냉소가 결국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붉은 벽 한가운데, 조명을 받으며 걸린 ‘풍선과 소녀’ 앞에서 가장 오래 서 있었습니다.

이 이미지는 2002년 런던 사우스뱅크의 워털루 브리지 아래에 처음 그려졌습니다. 당시 벽에는 “There is always hope(언제나 희망은 있다)”라는 문장이 함께 적혀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자체가 벽을 덧칠하면서 원본은 사라졌습니다. 소녀가 풍선을 놓치는 순간인지, 붙잡으려는 순간인지는 지금도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이 작품은 2018년에 세상을 놀라게 한, 뱅크시의 대표작인데요.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이 확정되는 순간, 액자 속에 숨겨져 있던 파쇄 장치가 작동해 그림 절반이 잘려나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시장을 조롱하려던 퍼포먼스였지만, 역설적으로 작품의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손을 뻗은 소녀와 손끝을 막 벗어난 붉은 하트 풍선. 단순한 실루엣만으로도 놓쳐버린 무언가를 향한 감정이 선명하게 전해졌습니다. 그림이 파쇄된 뒤 더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뱅크시가 정말 부수고 싶었던 것은 작품에 가격을 매기는 방식 자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꽃을 던지는 남자’로 불리는 이 작품은 200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분리장벽이 세워진 직후 베들레헴 인근에서 처음 그려졌습니다. 뱅크시는 이 장벽을 두고 사실상 팔레스타인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개방형 감옥으로 만든다고 비판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장벽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남겼습니다.
거대한 장벽 앞에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작아 보입니다. 그런데 뱅크시는 돌이나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던지는 순간을 그려 넣었습니다. 폭력의 동작에 폭력이 아닌 것을 쥐여 준 이 작은 치환 하나만으로도, 작품은 긴 설명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거대한 폭력의 언어 한가운데 아주 작은 반박을 새겨 넣는 방식. 그 단순한 이미지가 오히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작품은 무릎을 꿇은 아이가 간호사 인형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는 그림이었습니다. 아이의 발치, 쓰레기통 안에는 배트맨과 스파이더맨 인형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죠.
‘게임 체인저’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2020년 5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 뱅크시가 영국 사우샘프턴 종합병원에 익명으로 기증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흑백으로 그려진 화면에서 유일하게 색이 들어간 부분은 간호사 인형이 두른 붉은 십자가뿐인데요. 뱅크시는 작품과 함께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흑백뿐이라도 이 공간이 조금은 밝아지길 바랍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열 달간 병원 응급실 앞 로비에 걸려 환자와 의료진을 맞이하다가,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화 약 290억 원 상당에 낙찰되어 전액이 영국 국민보건서비스 관련 자선단체에 돌아갔다고 하네요.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이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다는 설정이 처음에는 유머러스하게 다가왔는데, 그 그림이 실제로 병원 로비에 걸려 있었고 그 앞을 지나쳤을 의료진의 얼굴을 상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오래 남았던 설치작도 있었습니다. 전시장 한편에는 무너진 콘크리트 벽 틈 너머로 노란빛 하늘과 도시의 실루엣이 이어지는 설치 공간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벽에는 ‘PEACE’라는 글자를 ‘PLEASE’로 고치고 있는 작은 소녀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고요.
폐허가 된 벽과 그 틈으로 쏟아지는 빛이 강한 대비를 이루며, 이 방의 분위기를 단번에 완성했습니다. ‘PEACE’를 ‘PLEASE’로 바꾸는 단 두 획이, 평화가 선언이 아니라 간절한 부탁이 되어버린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전쟁을 소재로 한 세 점의 판화도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폭탄을 인형처럼 끌어안은 소녀의 ‘폭탄 사랑’, 웃는 얼굴 가면을 쓴 저승사자가 “WRONG WAR(잘못된 전쟁)”라고 쓰인 지팡이를 짚고 선 그림, 헬리콥터 로터에 분홍 리본을 매단 ‘행복한 헬리콥터’까지 이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세 작품은 원래 낱장의 판화로 기획된 게 아니라, 2003년 2월 15일 런던에서 열린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당시 뱅크시가 판지에 스프레이로 직접 만든 피켓이었다고 합니다. 이날 시위는 전 세계 약 600개 도시에서 600만에서 1,000만 명이 동시에 참여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반전 시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6. Outro : After the Mask
[Message Remains]

마지막 아웃트로는 가슴에 총상을 입은 듯 붉은 자국이 남은 동상 형태의 나무 패널이었습니다.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위에 세워진 패널 주변에는 작은 꽃들이 놓여 있었고, 맞은편 벽에는 새총으로 붉은 꽃을 날리는 소년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추모를 상징하는 동상과 생명을 상징하는 꽃이 한 공간에서 마주하고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답게, 뱅크시가 끝내 남기고 싶었던 것은 분노보다도 희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의 마지막은 자연스럽게 아트숍으로 이어집니다. 대표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시계와 반다나, 에코백 등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저항의 이미지가 상품이 되어 있는 풍경 앞에서, 앞서 지나온 작품들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상품화를 비판하던 이미지가 결국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되어버린 역설. 어쩌면 뱅크시는 그 모순마저 작품의 일부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시장을 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역설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리버풀의 뒷골목, 베들레헴의 갈라진 장벽, 뉴올리언스의 무너진 지붕, 팬데믹 시기의 병원 로비, 그리고 수백만 명이 함께 걸었던 런던의 거리. 그 모든 벽에서 태어난 그림들이 지금은 여의도의 정돈된 조명 아래 걸려 있습니다. 벽에서 액자로, 거리에서 백화점 6층으로 옮겨온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의미이자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저항도 사랑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 전시가 끝난 뒤에도 그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전시장을 다 걷고 나오니 여름의 볕이 유난히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가면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는 그의 메시지가 분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실내에서 천천히 삶과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를 찾고 계신다면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뱅크시 전시에 한 번 들러 보시길 바랍니다.
'DB Square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해식절벽이 품은 7천만 년의 시간, 변산반도 여행 (1) | 2026.07.22 |
|---|---|
| 한옥마을부터 전주의 맛까지, 전주 (0) | 2026.06.26 |
| 진지한 일상 속 유쾌한 농담을 건네는 예술가, 맥스 시덴토프 개인전 (0) | 2026.06.12 |
| 대한민국 속 작은 섬나라, 나미나라 공화국 남이섬 (0) | 2026.05.21 |
| 봄빛 동백이 피어난 대나무 섬, 충남 홍성 죽도(竹島)여행 (0) | 2026.05.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