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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복합문화공간! F1963 테라로사 카페

오랜 세월을 굳건히 버텨온 공장 건물의 벽돌 기둥과 목재·철강 트러스, 기름때에 얼룩진 바닥과 벗겨진 페인트 흔적이 남아있고, 이제는 멈췄지만 한때는 공장의 심장이었을 발전기가 예술 작품처럼 서 있는 곳. 폐공장을 개조해 카페, 서점, 전시·공연장, 도서관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F1963' 얘기에요. 기존의 공간이 창의적인 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한 부산의 새로운 명소, ‘F1963’을 다녀왔습니다.

 

 

▎옛 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부산 ‘F1963’

광안대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산 수영구 망미동엔 고려제강의 옛 수영공장이 있어요. 고려제강은 교량용 철제 케이블을 비롯해 다양한 와이어를 만드는 세계 굴지의 기업이죠. 여기에선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 동안 와이어로프를 생산했어요.

 

2008년 6월 생산시설을 양산으로 이전한 뒤 사실상 방치돼 있다가 공장 형태나 골조 등을 살려 재단장 후 2016년 9월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변신했고, 이후 2017년 카페, 서점, 전시·공연장, 도서관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어요. ‘F1963’에서 F는 공장을 뜻하는 영어 단어 Factory, 1963은 공장을 지은 해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F1963은 기존 건물의 형태와 골조를 유지한 채 공간의 사용 용도의 특성에 맞추어 리노베이션 된 재생 건축이에요. F1963의 건축을 맡은 조병수 건축가는 재생 건축에 대해 “옛 것을 활용하되 옛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과 시간, 공간 등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그들이 창의적으로 재해석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것이며, 재생한 것 자체로써의 아름다움을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어요.

 

F1963은 오랜 시간 동안 덧붙여지며 지어졌는데요. 넓은 평면의 중간 부분을 잘라내 중정을 만들고, 그 중정을 통해 환기, 채광이 되게 했어요. 또 전면 진입부의 벽체들을 제거하고 유리를 설치하면서, 파란색 익스팬디드 메탈을 덧붙여 확장적 공간으로써의 가능성과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답니다.

 

옛 공장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바닥은 그린과 어우러져 조경석과 디딤돌로 재탄생 했고, 공장 지붕을 받치던 나무 트러스는 방문객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벤치로 새롭게 태어났어요.

 

기존 건물의 형태를 최대한 살려 리노베이션한 ‘F1963’에서는 옛 공장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요. 중정과 대나무숲 정원에서 산책과 사색을, 전시 공연장에서는 아트부산페어,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어요. F1963 공간의 컨셉은 ‘네모 세 개’인데요. 이제 한 곳씩 둘러볼게요.

 

 

▎첫 번째 네모 : 중정 ‘F1963 스퀘어’

폐공장 건물의 한가운데에는 첫 번째 네모인 F1963의 중정(건물 가운데 뜰)이 있어요. ‘F1963 스퀘어’는 세미나, 파티, 음악회 등을 할 수 있는 모임의 공간이에요. 바닥은 흙으로 채워져 있고 천장이 뚫려 있어 땅과 하늘과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이죠.

 

중정 계단 아래에는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나온 콘크리트가 덕지덕지 붙은 돌 더미가 작품처럼 전시돼 있어요. 노동자들이 힘들여 공장을 지으면서 기초공사에 사용한 돌 더미랍니다.

 

 

▎두 번째 네모 : ‘테라로사’, ‘프라하993’, ‘복순도가’

두 번째 네모는 쉼의 공간이에요. 스페셜티 커피샵 ‘테라로사’, 체코 전통 비어펍 ‘프라하933’, 전통 막걸리를 테마로 한 파인 다이닝 한식점 ‘복순도가’로 구성되어 있어요.

 

테라로사로 들어서면 공장 기계 등으로 만든 설치 작품이 눈길을 끌어요. 카페 내부 바닥과 테이블, 조리대는 공장에서 나온 녹슨 철판과 콘크리트를 재활용했어요. 높고 웅장한 천장 아래 지붕 골조는 옛 모습 그대로인데 공장 건물의 원형을 보전하면서 공장 기물을 작품처럼 곳곳에 꾸며 놓았어요.

 

와이어 공장답게 천장을 가로지르는 무수히 많은 철제 빔이 있고, 그 빔들이 겹치고 얽혀 장관을 연출해요. 실제로 와이어 공장에 들어온 듯한 고색창연한 느낌이 든답니다.

 

카페 여기저기에는 와이어를 감아놓는 보빈이 흩어져 있는데, 지름이 1.5m가 넘는 것부터 자그마한 것까지 다양해요. 이 보빈을 테이블 또는 장식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겐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겠죠. 중간중간 벽체의 기둥도 철거하다 만 채로 살려뒀습니다.

 

체코 전통 비어펍 ‘프라하933’

‘프라하993’는 체코 최초로 맥주 양조가 이루어진 1000년 역사의 프라하 브레브노프 수도원의 비법을 이어온 브루어리에요. 이곳에서는 브제브노프 수도원 양조장의 기술자들과 체코 현지 셰프가 직접 만드는 맥주와 다양한 체코 요리를 만날 수 있어요. 이곳에서 다양한 맛의 수제 맥주를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마치 유럽의 고성에 온듯한 느낌이 든답니다.

 

전통 막걸리를 테마로 한 파인 다이닝 한식점 ‘복순도가’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우리나라 고유의 발효주에요. 지역에서 생산되는 국내산 쌀과 전통 누룩을 이용해 옛 항아리독에 전통 방식으로 발효시킨 막걸리를 복순도가가 술과 어울리는 한식 메뉴와 함께 선보이고 있죠. 부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정도로 술과 음식의 페어링이 출중한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두 번째 네모 : ‘테라로사’, ‘프라하993’, ‘복순도가’

세 번째 네모는 전시장, 도서관, 서점 등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에요.

 

‘국제갤러리 부산점’은 1982년 서울에서 개관한 이후, 국내외 대표 화랑으로 자리 잡은 국제갤러리의 두 번째 지점으로, 2018년 8월 24일 개관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시대 유명 미술작가들의 주요 작품과 그 흐름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어요.

 

회화와 조각, 사진과 영상 등 다채로운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현대미술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과 일상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공간이랍니다.

 

‘F1963 도서관’은 예술 전문 도서관으로 재생과 친환경을 통한 도심 속 쉼의 공간을 추구해요. 서가와 반지하로 된 중앙 홀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 홀에서는 회원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회 등이 진행됩니다.

 

건축, 미술, 사진, 디자인, 음악 관련 고급 서적을 비치해 놓았고 전문 서적, 잡지 등 구성이 탄탄하다는 평입니다. 복잡한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서가 구성이 워낙 훌륭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예요. 회원제로 운영되기는 하지만 비회원도 이용이 가능하답니다.

 

중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지식순환 공간 컨셉의 서점이 있어요. ‘예스24 F1963점’은 600평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 중고서점 매장인데 문학, 인문, 역사, 경제 등 24개의 분야별 중고도서 약 20만 권을 갖췄어요. 또 중고 절판 도서, 외국 빈티지북 등 희귀본은 물론 음반, DVD/Blu-ray, 도서 관련 굿즈 등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답니다.

 

F1963 공간 본연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미술관에 온 것처럼 책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 디자인이 특징이에요. 서점 가운데에는 원고지 형상의 디지털 작품이 있고, 벽면에는 1945년 이후 한국 출판 역사를 인쇄 기기와 활자, 베스트셀러 등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어요.

 

또 서점 내에 옛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실링인쇄기, 오프셋인쇄기 같은 옛날 인쇄기도 전시해 놓았어요. 서점을 둘러보는 동안 활자 인쇄 프로세스부터 최신 기술의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책과 출판에 관련된 정보를 과거부터 현재, 미래에 걸쳐 모두 살펴볼 수 있답니다.

 

‘예스24 F1963점’에는 어린이들의 독서를 위한 키즈존을 따로 구성했는데, 아이가 책을 읽고 고를 수 있도록 유아동 전집 상담 서비스를 함께 마련해 연령대에 맞는 전집을 추천받을 수 있어요. 서점 내부에는 카페 테라로사도 운영 중이랍니다.

 

‘예스24 F1963점’은 단순히 중고도서를 사고팔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과 연관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행사를 병행해 문화예술 영역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달빛가든’과 맹종죽숲 ‘소리길’

서점 후문으로 나오면 사색과 산책, 그린이 있는 친환경 공간이 펼쳐져요. 완성된 제품을 출고하던 옛 공장의 뒷마당을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정원으로 조성했는데요. 도심 속 힐링 공간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달빛가든’이에요.

 

F1963 정문 쪽에는 푸른 대나무 숲이 있어요. 와이어 제조설비가 있던 공장 부지에 가늘면서 유연하고 강인한 와이어의 속성을 닮은 대나무로 꾸민 맹족죽 숲길 ‘소리길’이에요.

 

공장 바닥의 콘크리트를 잘라 조성한 대숲길을 걸으며 댓잎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를 한참 동안 들었답니다. 와이어의 곧고 유연한 속성과 대나무의 이미지가 이질적이면서도 무척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F1963은 곳곳이 매력적이에요. 국내에서 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생활공간 가운데 본래의 흔적을 가장 적극적으로 살린 곳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그래서 어느새 부산의 명물이 되었답니다. 봄비가 많이 내렸지만 카페엔 남녀노소 사람들로 가득하고, 중고서점엔 기념품과 책을 사려는 청소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모두들 공장의 흔적에 매료된 것처럼 보였어요.

 

부산을 찾을 계획이 있다면, 한 권의 책과 같은 다채로운 공간 ‘F1963’에서 현대적인 문화 콘텐츠로 새로운 부산의 속살을 만나볼 것을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