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리포트

서울웨이브 아트센터,

환상의 에셔전

By동동이

코로나19 확산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이라 모임과 만남이 줄어들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좁은 실내 공간은 피하고 싱그런 봄바람을 맞을 수 있는 강변으로 나가보면 어떨까요? 게다가 붐비지 않는 전시장에서 미술작품까지 관람할 수 있다면 더 좋겠죠? 동동이는 잠원 한강공원 내 서울웨이브 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환상의 에셔전, EXIT : 에셔의 방>을 다녀왔어요. 신기한 에셔의 작품을 둘러보며 사색과 상상의 시간을 가졌는데요. 여러분께도 재미있는 관람 이야기 알려 드릴께요.

 

 

<출처 : 서울웨이브 아트센터>

• 장소 : 서울웨이브 아트센터

• 전시 기간 : 2020.01.10 ~ 2020.04.30

• 관람료 : 성인(만19-64세) 12,000원 / 청소년(만13-18세) 9,000원 / 어린이(만7-12세) 7,000원 / 특별요금(경로우대, 국가유공자, 장애인 본인 및 동반보호자 1인) 50% 할인

 

 

▎2020년 1월 개관한 ‘서울웨이브 아트센터’

<환상의 에셔전, EXIT : 에셔의 방>은 2020년 1월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서울웨이브 아트센터'의 첫 개관 전시회로 열리고 있어요. '서울웨이브 아트센터'는 선상 위의 차별화된 전시 공간에서 서울과 한강의 아름다움과 예술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기대되는 곳이에요. 1층 전시장은 100평, 2층과 3층 전시장은 300평 규모로 넓고 투명한 큰 창을 통해 한강 수면과 바로 만날 수 있어요.

센터 입구에는 코로나 감염예방을 위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안내문이 붙어있어요. 동동이도 마스크를 쓰고 비치된 손소독제로 깨끗이 손을 소독한 다음 센터에 들어갔답니다!

 

전시장 입구에는 대형 디지털 사이니지가 설치되어 있어서 에셔의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잠시 멈춰 서서 디지털로 표현한 에셔의 작품을 미리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제 에셔가 스케치한 것처럼 만든 전시장 입구를 통해 ‘에셔의 방’으로 들어가 볼까요?

 

 

▎종이 위의 마술사, M.C. 에셔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C. Esher)(1898~1972)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판화가이자 드로잉 화가, 그래픽 디자이너에요. 철저히 수학적으로 계산된 세밀한 선을 사용하여 그림 같지 않은 그림,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해낸 초현실주의 작가로 유명하죠.

 

반복과 순환, 변형, 무한한 공간, 이율배반, 3차원 환영의 파괴 등 인간의 시지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에셔의 작품은 '종이에서 펼치는 마술' 같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에셔는 1898년 네덜란드에서 토목 기사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어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에셔는 1919년에 하를럼(Haarlem) 건축 장식 학교에 입학해 건축을 잠시 배웠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담당 교수의 권유로 그래픽 아트에 전념하게 돼요.

 

1922년 학교를 떠나 그림 그리기와 목판 제작을 배우기 시작한 에셔의 초창기 작품은 대부분 풍경화였는데요. 그는 이탈리아의 자연 풍경을 실재 불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해서 그리곤 했답니다.

 

에셔의 독창적 예술세계가 잉태된 시기는 1922년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여행하면서부터였어요. 14세기의 이슬람 궁전인 알함브라 궁전에서 에셔는 무어인들이 만든 아라베스크의 평면 분할 양식, 기하학적인 패턴에서 일생에 영향을 미친 예술적 영감을 얻는답니다.

 

1936년 그는 다시 한번 알함브라 궁전에 여행을 다녀오면서 그 독특한 기하학적 문양을 그림에 도입하기 시작했고, 새와 사자 같은 동물들을 중첩된 문양으로 표현해냈어요. 이 무렵부터 에셔 만의 패턴 반복, 공간의 환영을 표현한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에셔는 수학적 변환을 이용하여 새, 물고기, 도마뱀, 개, 나비, 사람 등 동일한 모양으로 틈이나 포개짐 없이 평면이나 공간을 완전하게 덮는 창조적인 형태의 ‘테셀레이션(Teccellation)’과 환영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어요.

 

그리고 이미지를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바꾸는 방법과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림의 전경을 배경으로 또는 배경을 전경으로 지각하도록 했어요. 명도대비를 바꾸는 방법, ‘펜로즈 삼각형’이나 ‘뫼비우스의 띠’를 이용한 작품을 통해 인간의 시지각과 착각,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답니다. 에셔는 세밀한 선으로 이루어진 판화 448점과 2,000여 점의 스케치 작품을 남겼어요.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부터 영화 ‘인셉션’까지

에셔(M.C. Escher), <그리는 손(Drawing Hands)>

동동이가 읽었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단편집 <픽션들> (1944) 표지에는 종이에서 튀어나와 서로를 그리고 있는 두 개의 손 그림이 있어요. 바로 에셔의 석판화 <그리는 손>이에요. <픽션들>에 있는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인데요. 도서관을 가득 채운 책들에는 알파벳을 포함한 25가지 기호가 완전히 무작위로 조합돼 있어요. 어떤 내용의 책이 있으면 정확히 반대되는 내용의 책도 도서관 어딘가에 있는 철저한 상대성의 세계죠. 그중에 어느 것이 진리의 책일까요?

 

<그리는 손>에서 어느 손이 진짜이고 어느 손이 그리는 손인지 알 수 없듯 과연 누가 자기가 근거한 논리만이 진짜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철학적 소설가 보르헤스의 세계 자체에 에셔의 판화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에셔(M.C. Escher), <올라가기와 내려가기(Ascending and Descending)>

에셔의 <그리는 손>은 보르헤스의 다른 단편 <원형의 폐허들>도 연상시키는데요. <원형의 폐허들>에서 불의 사제는 정교한 꿈을 꾸어 제자를 창조해요. 마치 디지털 가상세계 속에 인공지능 캐릭터를 창조하듯이 말이죠. 사제는 사랑하는 제자가 스스로 진짜 인간이 아닌 환영임을 깨닫고 절망할까 봐 걱정해요. 하지만 막판에는 자기 자신도 누군가의 꿈에서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답니다.

 

이러한 에셔와 보르헤스로부터 동시에 영감을 받은 영화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 (2010)이에요. 영화에는 에셔의 대표작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1960)가 직접적으로 인용돼 있어요. 이 석판화에서 한 줄의 수도사들은 계단을 올라가고 다른 한 줄은 내려가요. 사실 그들은 일정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만 끝없이 원점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죠.

 

현실의 3차원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모습이에요. 3차원의 세계를 2차원 지면에 표현하면서 사물의 비례를 정교하게 비틀어 착시를 일으키는 에셔의 솜씨 덕분에 이 불가능한 세계가 얼핏 현실적으로 보인답니다.

 

 

▎에셔의 작품 속으로, 재현 공간과 VR 체험

전시장 중앙에는 직접 에셔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또 다른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어요. 위에서 언급한 에셔의 작품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를 재현해 놓았는데, 끊임없이 두 공간이 상호작용하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기존의 상식으로 생각해온 사고의 경계가 깨져나가는 것 같답니다.

가상현실 속에서 에셔의 작품을 볼 수 있는 ‘VR룸 체험존’도 있어요. 관람객 수에 따라 대기 시간이 다르지만 시간을 내서 꼭 체험해 보는 것을 추천해요. 에셔의 작품 ‘프린트 갤러리’의 가상현실 속으로 빠져들면서 체험이 시작되는데, 20세기 예술작품을 21세기 기술로 재해석했다는 것이 흥미로워요. 물리적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VR을 통해 무한 공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경험이 될 거예요.

‘VR룸 체험존’ 옆에는 선상에 자리 잡은 서울웨이브 아트센터의 공간적 특성을 살린 포토존이 있어요. 물결에 손이 닿을 듯이 한강 수면 가까이에서 강과 도시를 배경으로 멋진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답니다. 동동이가 관람한 날은 전시장이 한산해서 오랫동안 한강 풍경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한강의 물결 가까이, 카페 ‘커피웨이브’

전시를 보고 출구로 나오면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어요. 동동이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세 개의 세계’ 엽서를 한 장 구매했어요.

 

<환상의 에셔전, EXIT : 에셔의 방> 전시장은 작품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어서 관람객이 작품의 원리를 찾고, 작가의 세계를 탐구하며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어요. 에셔의 의도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새로운 발상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재미있는 전시회가 된 것 같아요.

 

전시장 바로 옆에는 가장 가까이에서 한강의 아름다운 물결을 만날 수 있는 카페 ‘커피웨이브’가 있어요. 해지는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한강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물든 석양을 볼 수 있어서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답니다. 음료 가격도 저렴하며 전시 티켓을 가져가면 할인도 받을 수 있어요. 동동이가 방문한 날은 2층 전시장을 임시 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카페 안에서 한강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 갈 수 있었어요.

 

서울웨이브 아트센터는 매립형 LED 조명을 설치해서 밤이 되면 또 다른 분위기의 야경을 연출해요. 오후 늦게 전시회를 관람하고 석양과 야경까지 즐기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환상의 에셔전, EXIT : 에셔의 방>은 미술에 수학과 과학을 접목한 에셔의 '기하학적 구조'와 '환영의 공간'을 전시 공간에서 재창조하여 예술가의 이성적인 논리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엿볼 수 있고, 지적인 충만감을 선사하는 체험전이에요. 치밀한 과학적 조작이라는 이성적 구조에 기초하여 초현실을 다루는 에셔의 예술 세계는 미술에 조예가 없거나 관심이 별로 없더라도 흥미롭고 가볍게 관람할 수 있답니다.

 

에셔의 작품은 20세기 이후 가장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평단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어요. 예술의 고전적인 범주를 뛰어넘은 것이 그 이유였어요. 하지만 예술가보다 수학자와 과학자에게 더 큰 관심을 받았던 에셔의 예술은 세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수많은 예술가, 건축가, 수학자, 음악가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고 있죠.

 

에셔는 '우리는 질서를 만들고 싶기 때문에 혼돈을 사랑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강바람 시원한 전시장에서 코로나19로 흐트러진 마음을 털어버리고, 에셔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고정관념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마음의 질서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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