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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이야기, 양고기 맛집을 아십니까?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흔히 양고기 하면 누린내가 심한 고기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국내에 양고기 집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설마 양고기가 이렇게 유행(?)하게 될지는 몰랐다. 이번 <강추 맛집>에서 다룰 내용은 국내 육류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양고기’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6축(六畜)을 먹었다. 소, 말, 돼지, 양, 개, 닭이다. 육축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양이 있다. 우리는 양을 널리 먹지 않았다. 먹고 싶어도 못 먹었다. 한반도는 양을 키우기 힘든 땅이다. 기후의 문제가 아니라 풀의 문제가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양은 더운 중동지역이나 추운 몽골에서도 잘 자란다. 더위와 추위의 문제가 아니라 자라는 풀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짐작한다는 뜻이다.

대관령 목장에 양이 있지 않느냐고? 그건 관광용이다. 보라는 거지 먹으라는 게 아니다. 가죽, 털, 고기를 얻기 위해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목장’에는 평화로운 양떼가 있는 게 그림이 된다. 우리는 양 대신 염소를 먹었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양 대신 염소였다.


양고기 스테이크에 얽힌 추억


양고기 스테이크를 두 번째 만난 것은 2010년 1월13일 오후 1시였다. 어떻게 아느냐고? 간단하다. 양고기를 먹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의 태그를 보니 날짜뿐만 아니라 1시9분이라는 정확한 시간도 드러났다. 서울 남산에 있는 ‘일비노로쏘 IL VINORRSO’에서 지인들과 양고기를 먹었다. 페퍼민트 소스도 곁들였다.

▲석쇠에 구워 부드러운 맛이 일품인 일비노로소 양갈비 스테이크

이 식당에서 양고기를 먹은 것은 그 이전에 친분이 있는 대기업 임원과 한번 먹어봤기 때문이다. 정확치는 않지만, 2006년경이었다. 가끔 식사를 하면서 한담을 나누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불쑥 “양고기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이분은 호사가였다. 가끔 희한한 음식을 내세우며 먹어봤냐?, 먹어볼 것이냐고 묻곤 했다. 이런 걸로 상대방 기죽이는 사람이 있다. 그분도 마찬가지. 우물쭈물했다. “먹을 수는 있는데 비싼 값을 치르며 먹고 싶지는 않다”고 얼버무렸다. 이분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양고기를 스테이크로 먹어봤다. 그이는 “내가 중동에서 근무할 때 양고기를 많이 먹어봤는데 이집 양고기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라고 폄하했다. 밥값을 그이가 냈으니 나는 “그러냐?”고 가볍게 맞장구만 쳤다. 평소 지론이 “밥값 내는 이에게는 공손하게 대하고 열심히 맞장구치자”다. 그래야 다음에도 편하게 밥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우루무치의 양고기


얼마쯤의 반전은 식사 후 돌아오는 길에서 일어났다. 식사 후 남산 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갑자기 예전에 양고기를 먹어본 기억이 떠올랐다. 중국 우루무치Urumuqi. 2004년 8월31일 서울 출발, 우루무치와 인근의 투루판Turfan 등을 여행했다.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이날 국적기 항공편이 그해 우루무치 행 마지막 비행기였다. 돌아오는 비행 편이 없으니 빈 좌석이 많았다. 덕분에 좌석을 업그레이드, 비즈니스 석에 앉았다. 이런저런 음식 공부도 할 겸, 특히 투루판의 포도 등 과일을 보고 싶었다. 여행 후의 기억에는 엉뚱하게도 포도 대신 양고기 파스타와 시장의 양고기 만두 등만 남았다.

우루무치와 투루판은 실크로드의 도시들이다. 중동 지역 문명이 이 지역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왔다. 중동의 양고기도 아마 이 루트를 통하여 중국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시장 군데군데에서 양고기를 팔았고, 길거리 음식점의 주 메뉴도 ‘국수+양고기’였다. 약 일주일 간 평생 먹을 양고기를 다 먹은 것 같았다. 여행 중 며칠은 아침에 양고기 만두와 요구르트, 점심, 저녁에는 양고기 파스타를 먹었다. 몸에서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났다.

“나, 양고기와 양고기 파스타 먹어봤다”고 했더니 어디서 먹었냐고 물었다. 우루무치와 투루판이라고 대답했더니 그이의 안색이 달라졌다. “제대로 먹어 봤네”라는 표정이었다. ‘양고기 맛을 모르는 촌놈’이라는 표정에서 ‘흠, 그래도 음식 공부한다더니 양고기도 먹어 봤네’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양고기 직화구이 전문점 ‘양빠’.

부드러운 양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쯔란’ 맛의 양고기 꼬치


양고기 꼬치 전문점에 가면 소스로 ‘쯔란’을 내놓는다. 원래 ‘쯔란’은 중국어 ‘孜然, 자연’에서 온 말이다. 영어로는 커민Cumin이라 하고 우리말로는 마근(馬芹)이다. 이른바 ‘암내’가 나는 향신료다. 몇몇 나라 사람들에게서 나는 심한 암내는 상당수 쯔란 냄새다. ‘설마?’라고 하겠지만 우리도 쯔란을 일찍부터 사용했다. 홍만선(1643-1715년)의 “산림경제”에 “손쉽게 향신료를 만드는 방법은 마근(馬芹)·후추[胡椒]·회향(茴香)·건강(乾薑)·관계·천초 등을 따로따로 가루를 만들어 물에 반죽하여 환을 만든다. 쓸 때마다 부수어서 섞어 냄비에 넣는다. 여행할 때 더욱 편리하다”고 했다. 미리 소스를 환으로 만들어서 여행길에 편리하게 사용하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내용의 원전이 “거가필용居家必用”이라는 점이다. “거가필용”은 중국 원나라 때의 책으로 ‘몽골 식 가정백과’다. 양고기를 먹는 몽골 인들이 한반도에 이런 향신료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 향신료를 섞어 만든 ‘쯔란’과 쯔란을 얹어 구운 양꼬치

양고기 꼬치 집에서 내놓는 ‘쯔란’은 원형 커민은 아니다. 각종 향신료와 매운 고춧가루, 여러 종류의 감미료와 조미료 등을 섞는다. 사실은 양고기 맛이 아니라 쯔란 맛으로 먹는다는 표현이 오히려 맞다.

최근 양고기 꼬치가 널리 퍼진 것은 중국 여행 경험자가 늘어났고,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유학생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국내 유입되는 조선족들이 늘어나면서 양고기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 갔던 한국유학생들이 현지에서 양고기 파스타, 스테이크 등을 경험하고 돌아온 탓도 있을 것이다.


양고기 수육 맛을 아십니까?


음식공부를 하는 덕분에 이런저런 양고기 전문점을 많이 가본다.

마포 ‘먹자골목’에 양고기 전문점들이 우후죽순으로 많이 생길 때 ‘먹자골목’ 좌우측의 양고기 전문점을 헤아려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불면증에 시달릴 때 흔히 울타리를 넘는 양을 헤아려 보라고 한다. 양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이런 식으로. 양고기 전문점을 헤아리다가 문득 불면증 생각이 났다.

▲ ‘소미양’의 양고기 훠궈. 한국의 전골냄비와 비슷하다.

양고기의 대세는 스테이크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양고기를 수입한다. 중국의 유명 양고기 체인점인 ‘소미양(小尾羊)’도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인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훠궈[火鍋, 화과]와 양고기 스테이크 종류를 내놓는다. 훠궈는 냄비에 고기, 채소, 생선, 버섯 등을 넣고 익힌 후 건져 먹는 방식이다. 이때 중국인들은 양고기를 많이 사용한다. 물론 중국 고유의 방식은 아니다. 중국 역시 서역이나 북방 유목민족의 음식을 받아들인 것이다.

    

▲ 서울 장승배기에 위치한 운봉산장 양갈비 구이와 양갈비 수육

여전히 양고기를 즐기지는 않지만, 최고의 양고기는 양 갈비 수육이었다. “냄새가 심한 양고기를 수육으로?”라고 펄쩍 뛰었지만 지인에게 이끌려 가본 곳이다. 서울 장승배기에 있다. 양 갈비를 수육이나 구이로 내놓는다. 먹을 만하다. 맛있다. 이집에서 양 갈비와 더불어 와인을 먹는 이들도 봤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앞장서서 가기엔 늘 꺼림칙하다. 성경에는 ‘어린 양’이 자주 등장한다. 착하고 귀여운 이미지다. 그 귀엽고 착한 놈을 먹다니.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일비노로소 : 서울 용산구 두텁바위로60길 25 / 02-754-0011

     2.   양빠 :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51길 40 / 02-515-6909

     3.   소미양 :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241 / 02-538-8888

     4.   운봉산장 :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로 118-1 / 02-815-2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