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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삼겹살 맛집 리스트, 그리고 돼지고기 이야기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 윤기 흐르는 야들야들한 수육 살코기….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맛과 영양이 풍부하면서 가격까지 저렴한 돼지고기는 서민들의 영양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돼지는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무렵부터 함께해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국내에 돼지고기 요리가 발달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돼지고기는 1970년대부터 흔해졌다. 그 이전인 일제강점기 혹은 조선시대에도 돼지는 귀했다. 음식 공부하는 이들, 조리 공부하는 이들이 자주 챙겨보는 자료가 장계향 할머니가 쓴 “음식디미방”이다. 1670년경 경북 영양에서 쓴 책이다. 음식 만드는 법을 상세히 설명한 보기 드문 책. 이 책에 개고기 관련 항목은 열 건을 넘긴다. 그런데 돼지고기는 달랑 두 종류다. 그것도 가제육[家猪肉], 야제육[野猪肉]이다. 앞은 집에서 기른 돼지를 말하고 뒤는 오늘날의 멧돼지를 말한다. 대단한 요리법이 아니라 그저 집돼지는 이렇게 손질하고, 멧돼지는 이렇게 손질한다는 정도다. 돼지고기를 흔하게 먹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돼지는 불행히도, 인간과 먹을 것을 두고 다툰다. 풀을 먹는 것도 아니고 꼬박꼬박 인간이 먹다 남은 잔반이나 곡물을 먹어야 한다. 돼지고기 1인분을 얻으려면 8인분의 곡식이 필요하다. 일도 하지 않고, 집도 지키지 않는 돼지를 기르기 위한 희생이 너무 크다. 잘 자라지도 않고, 곡식 낭비가 심하고, 한편으로 고기는 잘 상한다. 냉장,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이다. “한여름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고 했다. 1970년대까지도 돼지고기가 귀했던 이유다.


돼지 오줌보로 공을 차던 아이들

1960년대 후반이다. 하루에 버스가 네 번쯤 오는 시골. 마을 잔치가 열렸다.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이른 아침부터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렸다. 오후가 되면서 동네 꼬마들 입에도 굵은 소금 찍은, 돼지 수육 한두 점이 걸렸다. 아마, 어느 집안의 결혼식이었을 것이다.

꼬마들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돼지 오줌보. 오전 나절, 이미 돼지 오줌보에 물을 채웠다. 공으로 차기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동네는커녕 학교에도 ‘공’은 없었다. 축구경기를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물을 채운 돼지오줌보를 앞으로, 앞으로 내질렀다.

가난한 아프리카, 남미의 어린아이들이 실로 묶은 ‘공’을 찬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EPL이나 라 리가의 유명스타가 된 경우도 있다. 왜 돼지 오줌보로 축구를 했던 아이들은 축구스타가 되지 못했을까? 돼지를 잡는 일이 잦지 않았다, ‘돼지 오줌보’ 축구공은 많아야 1년에 열 번 정도다. 마을 잔치가 열 번이 있어야 열 개의 돼지 오줌보 축구공이 생긴다. 그렇게 자주 잔치가 있었던 마을은 흔치 않았다. 그나마 돼지 오줌보 축구공은 약하다. 하루 이틀 차다가 보면 찢어진다. 슬픈 일이다. 돼지 오줌보만 튼튼했더라도, 한반도에도 대단한 축구 선수들이 등장했을 텐데.


물에 익힌 돼지고기, 수육

수육은 ‘숙육熟肉’이다. 익힌 고기다. 어떻게 익힐까? 물을 사용한다. 뜨거운 물로 찌거나 삶는다. 돼지고기의 경우, 돼지수육이라고 부른다. 물로 익힌 고기다. ‘제육볶음’의 제육은 ‘저육豬肉’이다. 돼지고기 볶음이다. 예전 시골에서 잔치 때 먹었던 고기는 대부분이 수육, 제육볶음 혹은 돼지국밥이었다. 이제 수육은 사라질 것이다.

    

▲투박하게 썰어낸 ‘남북면옥’ 수육. 돼지고기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느껴진다.

“어떤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느냐?” “혹은 “돼지고기 맛집이 어디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렇게 대답한다. “가장 맛있는 밥은 어떤 것이냐?” “밥맛이 기막힌 맛집을 알려달라.” 대답은 뻔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좋은 품질의 쌀을, 갓 도정해서, 갓 지은 밥’이다. 그릇에 밥을 퍼고, 뜨거운 김이 막 빠져나갈 때의 밥이 가장 맛있다. 같은 쌀이라면 갓 지은 밥의 맛을 따라가는 맛은 없다. 돼지고기도 마찬가지. 나는 수육을 좋아한다. 볶옴밥과 맨밥 중 나는 맨밥을 좋아한다. 삼겹살 구이보다는 수육이 낫다. 어린 시절 잔치 때 먹었던, 갓 삶아낸 수육의 맛을 이기는 고기 맛은 없다. 막 삶아낸 돼지고기 수육에 왕소금을 뿌린 것. 이 맛을 이길 고기 맛은 없다.

돼지고기 맛, 수육의 맛을 따지는 사람들에게 주는 대답이 있다. “오전 11시40분쯤, 강원도 인제 ‘남북면옥’의 수육을 먹어보라.” 반듯하게, 네모나게 썬 것은 맛이 없다. 고기 맛은 써는 결에 따라 다르다. ‘보기 아름다운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거짓이다. 반듯하고 깡총하게 썰어낸 것은 보기엔 좋으나 맛은 별로다. 고기 결 따라, 뼈의 결을 따라 거칠고 어슷하게 썰어낸 수육이 맛있다. 깡총하게 써는 것은 많은 물량을 취급하는 대도시 식당의 방식이다. 편하기 때문이다. 듬성듬성, 어슷비슷하게 썰어야 제 맛이다.

▲항생제, 촉진제 등을 먹이지 않고 키운 무공해 ‘지리산 까막재’ 흑돼지 삼겹살

지리산 까막재에서 돼지 두 마리를 기른 적이 있었다. 자연 상태에서, 잔반만 먹고 자란 돼지고기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2012년 9월에 까만 새끼 돼지를 맡기고, 2013년 6월에 도축했다. 돼지는 자라지 않았다. 9개월 만에 60Kg이 채 되지 않았다. 고기는 쫄깃하고 지방의 밀도도 좋았다. 달고 감칠맛이 나지는 않았지만 고기 특유의 고소함은 아주 좋았다. 덜 자란 놈을 도축한 이유가 있다. 인근 농가의 항의가 심했다. 항생제도 사용하지 않으니 여름철 장마가 오면 전염병이 돌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축산 농가에서 항생제, 성장제 등을 사용하는 이유다.


맛있는 돼지고기, 돼지국밥

대구 경북대 정문 부근의 ‘성화식당’은 필자가 검증단으로 참여, ‘착한식당’으로 선정한 집이다. 선정 후 블로그 포스팅을 보니 상당수가 돼지고기 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돼지고기 국물에서는 돼지고기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싶은데, 여전히 서울사람들은 돼지국물에서 돼지 냄새가 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한다.

    

▲‘성화 식당’의 돼지국밥과 수육. 돼지 뼈로 장시간 우려내어 국물이 깊고 진하다.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더두툼생고기’는 4cm 이상의 삼겹살로 유명한 집이다. “돼지고기 두께가 어느 정도면 제일 맛있는지?”가 궁금했다. 안면이 있는 걸 핑계로 자주 찾아가서 3, 4, 5cm로 두께를 늘여봤다. 3cm 이상이면 먹을 만하다. 다만 그 정도의 두께면 고기를 잘 만지는 주인이 고기를 직접 잘라주는 편이 낫다. 돼지고기 맛은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굽는 방법, 숯불의 강도, 소금, 젓갈의 맛 등이 어우러져야 한다. 직화냐 철판에 굽느냐에 따라 또 다르다.

    

▲제주도민들이 즐겨찾는 ‘한길정’. 철판 장작구이로 구워낸 돼지고기의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제주도 ‘한길정’은 불 사용이 아주 재미있는 집이다. 큰 철판을 깔고 아래에 장작을 가득 넣는다. 가로, 세로 1미터 이상 되는 큰 불판 위에 고기를 굽는다. 대륙적인 스타일이다. 고기는 물론 맛있다. 참 보기 드물게 야성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소주 한 잔’은 삼겹살도 맛있지만, 냄비 밥이 압권이다.

전북 익산에는 아주 맹랑한 돼지고기 집이 하나 있다. 삼겹살을 위주로 운영하는 허름한 가게다. 익산에 갈 경우에는 지인에게 미리 “오늘 저녁 ‘소주한잔’에 예약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작은 가게이지만 늘 손님이 빼곡하다. 가게 이름은 ‘소주한잔’인데, 돼지고기를 판다. 그리고 주력 메뉴(?)는 냄비 밥이다. 소주 한잔에, 삼겹살 그리고 고슬고슬한 냄비 밥을 생김에 싸먹는 맛은 대단하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남북면옥 : 강원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178번길 24 / 033-461-2219

     2.   한길정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산간동로 8128-6 / 064-763-2816

     3.   성화식당 : 대구광역시 북구 경대로5길 10 / 053-941-3588

     4.   더두툼생고기 : 서울특별시 강동구 구천면로 664 / 02-429-3774/p>

     5.   소주한잔 :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1가 242-5 / 063-854-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