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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트렌드리포트

멈출 수 없는 유혹,

중독

By동대리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는 강박적인 행동을 우리는 ‘중독’이라 부른다. 중독은 알코올, 카페인과 같은 ‘물질’에 빠져드는 물질 중독, 일과 SNS 같은 ‘행위’에 빠져드는 행위 중독으로 나뉜다. 이 중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 행위 중독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과도하게 업무에 열중한 나머지 일중독에 빠지기도 하고, SNS의 발달과 함께 관계에 중독되기도 한다. 외모를 가꾸는 것에 열중하며 운동 중독, 성형 중독에 빠져들기도 한다. 행위 중독의 문제점은 심각한 중독 상황에 빠지지 않으면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카지노로 차를 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해요.” 10여 년 전 주치의를 맡았던 도박 중독 환자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최근 진료실을 찾는 많은 중독 환자들이 ‘인터넷 불법도박’에 중독된 환자들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손쉽게 스포츠 토토, 사다리 게임과 같은 도박을 할 수 있다. 굳이 경마장, 카지노에 가지 않아도 내 손 안에서 도박장이 열리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초고속 인터넷 망에 연결되는 IT 강국의 어두운 단면이다.



일반적으로 중독은 술, 담배, 마약 등의 물질을 절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사용하여 자신의 사회활동, 대인관계, 직업기능에 지장을 주는 경우로 정의한다. 이러한 ‘물질’ 외에도 우리는 또 다른 것들에 중독될 수 있다.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하지만, 그것을 찾거나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결국 우리에게 괴로움을 안겨주고 그것을 멈출 수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들을 생각해보자. 도박, 인터넷게임, SNS, 폭식, 섹스, 쇼핑, 일중독 등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떤 특정한 행위에 중독되는 것을 ‘행위 중독’이라 부른다.



최근 행위 중독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도박, 인터넷 게임 중독자들이 도박이나 게임에 열중했을 때 보이는 뇌의 변화가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가 술이나 마약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뇌의 반응과 유사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술, 담배, 마약)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왔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보상회로 ‘쾌락중추’가 중독 행위(도박, 인터넷 게임, SNS 등)를 했을 때에도 과도하게 자극되어 도파민이 과잉 분비되는 것을 나타낸다. 중독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와 뇌를 변화시키듯, 중독을 일으키는 행위도 같은 방식으로 우리 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뇌 영상 연구에서 이들은 인지기능과 충동조절력이 감소했다. 이는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된 환자들의 뇌 변화와 일치하는 결과이다.


그럼 똑같은 행동을 해도 왜 누구는 중독에 더 잘 빠지는 반면 다른 누구는 그렇지 않을까? 의학적으로는 중독자로 진행하게 하는 요인을 많이 가진 경우를 취약성이 높다고 지칭한다. 취약성을 만드는 요인 중에는 유전적 특성, 개인적 기질, 스트레스, 중독 행위를 할 수 있는 환경 등이 있다. 개인적 특성에는 참을성이 낮고, 감정기복이 심한 경우 중독에 취약할 수 있다. 유전과 기질을 제외하면 중독에 대한 취약성은 우리가 어느 정도 조절하고 피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잘 다루고, 중독행위에 허용적이지 않은 사회제도와 분위기가 중요하다.



중소기업의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00 씨(43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한 곳에서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지속해왔다. 근무시간이 끝나도 남은 일이 많아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늦게 퇴근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집에 들어가서도 밀린 일들을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 많고, 가족들과 식사하거나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업무와 관련된 일들이 계속 떠올라 불안하여 편하게 쉬지 못하였다. 성실하고 꼼꼼하게 일을 한다고 주위에서 인정받았지만, 막상 자신은 성공을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서 마음이 편치 못했다. 3년 전부터는 소화불량, 두통, 요통에 시달리며 치료를 받고 있다. 급기야 3개월 전 부인은 김 씨가 결혼 이후 줄곧 가정에 소홀해왔다면서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김 씨는 만사가 귀찮고 사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울하고 멍한 기분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찾았다.



2016년 OECD 고용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2069시간으로 35개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민 행복지수는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일은 많이 하고 소득수준은 높아졌지만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일관된 진단기준은 없지만 여러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인구의 10% 내외가 일중독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일중독의 10가지 경고신호는 다음과 같다.


1. 서두르거나 항상 바쁘다

2. 조절이 필요하다

3. 완벽주의

4. 대인관계가 어렵다

5.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한다

6. 쉬거나 즐거움을 갖는 것이 어렵다

7. 일에 대한 계획이나 일 자체로 인해 다른 중요한 일들을 자주 잊게 된다

8. 잘 못참고 예민하다

9. 자기 스스로 부적절함을 느낀다

10.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일중독에 잘 빠져들 수 있는 성격적인 특성으로는 책임감, 높은 활력과 같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강박성, 자기애적 경향 등 부정적인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기질적 특성으로 성공/성취 지향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경우 일중독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일뿐 아니라 관계에도 빠져드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특히 SNS를 통해 손쉽게 인간관계를 만들고 이어가기 때문에 예전보다 자주 문제가 된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SNS에 빠져들지만, SNS 상에서 접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여 오히려 우울증상이 더 심각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19-32세 17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연구에서 SNS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 우울증 위험이 2.7배 높게 나왔다. 캐나다의 연구결과에서도 청소년의 SNS 사용시간이 많을수록 정신건강문제가 심각하였다. 관계를 갈구하여 사용하는 SNS는 바닷물과 같아서 마셔도 갈증해결이 되지 않고 계속 목이 마르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가장 많이 주는 행위 중독 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2만 4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2016년 미래창조과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아동(3-9세)의 17.9%, 청소년(10-19세)의 30.6%, 성인(20-59세)의 16.1%가 스마트폰중독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개발한 스마트폰 중독 척도로 자가 테스트를 해보자.



성인의 경우 24-28점이면 스마트폰 중독의 잠재적 위험군, 29점 이상은 고위험군에 해당된다. 청소년은 23-30점이 잠재적 위험군, 31점 이상이 고위험군이다. 잠재적 위험군은 조절력이 약화된 상태로 대인관계의 갈등이나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단계다. 스스로 절제를 위한 노력을 해보고 잘 개선되지 않으면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고위험군은 통제력을 상실하여 대인관계, 일상생활, 건강 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상태다. 전문가를 찾아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일중독 진단을 받고 일을 무작정 안한다거나,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해서 스마트폰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행위 중독 치료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업무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행위들을 도박처럼 차단하고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인, 조직, 사회적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신이 일중독에 취약한 성격인지 파악해야 한다. 여가활동을 통해서 일과 개인의 삶을 구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조직적 차원에서는 적극적 휴가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직원의 업무환경을 개선한다. 융통성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배려하거나 업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성과중심에서 벗어나 일과 휴식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캠페인이나, 휴일에는 가족 중심으로 시간을 보내도록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번 중독이 되면 치료가 어려운 만큼 최선의 치료는 역시 ‘예방’이다. 적절한 선을 지키고 절제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만, 스스로의 행동을 가끔 돌아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제가 불가능하다면 이미 중독의 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행위 중독은 소리 없이 찾아오지만 조용히 물러가지는 않는다. 병적인 상태가 되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독이 되면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치료는 자신이 중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