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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맛따라 ⑪ 돼지국밥 이야기

돼지국밥 이야기
국밥의 계절이다. 뜨뜻한 국물로 허기를 채우면 시름과 추위를 잊게 되는 그 국밥 말이다. 투박하면서도 개운하다. 담백하면서도 입에 척 붙는다. 경상도와 부산에서는 돼지국밥을 내놓는다. 부산에는 돼지국밥 골목까지 있을 정도다.


돼지국밥의 시작은 부산이다?


식객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온 재미있는 ‘논쟁(?)’이 있다. 바로 돼지국밥의 출발이 어딘가, 하는 것이다. 부산이 돼지국밥의 출발지라는 ‘설’이 우세하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 피난민이 부산으로 왔고 가난한 이들이 비교적 편하게 먹었던 음식이 돼지국밥이다. 전쟁 당시의 음식이 부산에 남았다”는 주장이다. 다수설이다. 돼지국밥 노포의 역사도 대부분 50-60년을 넘긴다. 대략 한국전쟁 이후다. 그 정도로 오래된 집들이 있으니 당연히 ‘부산=돼지국밥’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역 사람들은 ‘돼지고기가 물과 섞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1980년대까지도 서울사람들에게는 ‘돼지고기=수육[熟肉]’이었다. 곧이어 삼겹살이 유행하면서 ‘돼지고기=삼겹살’이 되었다. 지금도 서울의 돼지고기 소비는 구이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일부 수육을 지지하지만 여전히 ‘구이용 돼지고기’가 최고다.


▲ 1930년대 부산역(좌측), 열차편으로 입대하는 학도병들의 모습(우측).

돼지국밥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전래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진주와 밀양 등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新光社「日本地理風俗大系 第17巻」より。2010 국방화보 Rep. of Korea, Defense Photo Magazine)



돼지고기는 불에 구워 먹는 것이라고 믿는 서울 사람들에게 ‘국밥으로 먹는 돼지고기’는 생경스러웠다. 반대로, 부산 출신들은 늘 돼지국밥을 그리워한다. 구수한 돼지국밥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는 부산 출향인들을 쉽게 본다. 초량에도, 해운대에도, 범일동에도, 유명 돼지국밥집이 있다. 많은 부산 출신들이 돼지국밥을 이야기하니 전국적으로 ‘돼지국밥은 부산’이라고 믿었다. 부산 피난시절,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이 돼지국밥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한다.


▲ 1980년대까지도 서울사람들에게는 ‘돼지고기=수육[熟肉]’이었다. 곧이어 삼겹살이 유행하면서 ‘돼지고기=삼겹살’이 되었다.


그렇지는 않다. 부산은 일제강점기에 성장한 도시다. 작은 항구 도시 ‘부산포’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부산이 되었다. 1930년대 부산에 돼지국밥 집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돼지국밥 부산 기원설’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음식, 음식점은 어느 날 정확한 날짜를 정한 다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전통이 있는 곳에서 한 집, 두 집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언제인지 모르게 슬금슬금 유행으로 번지다가 어느 순간 그 음식을 메뉴로 한 식당이 생기는 식이다.

1930년대, 한반도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생긴다. 서울의 노포들 중 상당수는 1930년대 생긴 것들이다. 영업허가도 허술하던 시절이다. 허가를 내지 않았던 집들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1930년대 부산에 돼지국밥 집이 있었다고 해서 ‘돼지국밥 부산 기원설’을 인정할 수는 없다. 전국적으로 허가 없이 영업을 시작한 집들도 많고 예전에 열었으나 지금은 문을 닫은 노포들도 많다.


돼지에 대한 오해와 이해


‘돼지국밥 부산 기원설’에는 여전히 남는 의문점이 있다. 대구에도 돼지국밥 골목이 있다. 여전히 유명한 노포들도 있고 업력들도 깊다. 부산의 돼지국밥 집 못지않다. 간단하다. 이들이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출신이라면 부산 돼지국밥 기원설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는 않다. 이들 중에는 간판에 부산이 아니라 ‘밀양’ 이름을 내건 경우도 있다. ‘부산 돼지국밥 기원설’은 근거가 부족하고 정확하지 않다. ‘돼지국밥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고기’를 먼저 사용한 지역이 어느 곳이었는지 보는 것이 정확하다.



조선 시대 기록에 돼지는 ‘정갈한 동물’로 등장한다. 제사에도 사용했다. 물론 귀한 식재료였다. ‘보사제(報祀祭)’는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다.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기우제 후, 비가 오면 3일 안에 하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바로 보사제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8년(1418년) 8월1일(음력)의 기록에는 “(보사제를 지내는데) 돼지[豚]가 살찌지 않으니, 거의 하늘을 섬기는 뜻이 없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보사제(報祀祭)는 주요한 제사인데 그 제사에 돼지를 사용했고, 한편으로는 돼지가 살찌지 않았으니 섬기는 뜻이 없다고 말했음을 알 수 있다.


인조 15년(1637년) 8월28일(음력) <승정원일기>의 기록에는 “중국 사신 접대에 왜 돼지고기 대신 쇠고기를 사용했는가?”라는 국왕 인조의 질문에 신하들이 “돼지고기 준비량이 적고 중국 사신들이 쇠고기를 좋아해서 그렇게 했다”고 답하는 대목도 있다.

고기는 귀했다. 돼지고기도 귀했다. 쇠고기 대신 사용하기도 했지만 돼지고기 역시 귀하긴 마찬가지였다. 돼지고기는, 제사에 사용하고 한편으로는 외국 사신의 접대에 사용했다. 안동 장 씨 할머니의 <음식디미방>에도 집에서 기른 가제육(家豬肉)과 산에서 잡은 멧돼지 야제육(野豬肉) 요리법이 남아 있다. 반가(班家)에서도 귀하게 사용했다는 뜻이다.



돼지국밥은 밀양에서 시작되었다


이래저래 귀한 돼지고기는 관청에서 많이 사용했다. 밀양은 큰 도시였으니 큰 관청이 있었다. 돼지국밥은 돼지도축이 흔했던 대도시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영남루는 밀양이 한때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보여준다. ‘돼지국밥 밀양 기원설’이 힘을 얻는 이유다.

실제 대구 등 경북 지역과 경남 일대의 크고 작은 도시에는 ‘밀양’ 이름을 단 돼지국밥 집들이 흔하다. 대구 서성로 돼지국밥 골목에도 ‘밀양’ 이름을 단 돼지국밥 집이 있고, 부산에도 군데군데 ‘밀양집’들이 있다. 밀양 돼지국밥이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퍼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돼지국밥은 “밀양에서 시작되어 부산을 비롯한 전국으로 퍼진 음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부산은 돼지국밥 시작이 아니라 널리 퍼뜨린 곳이다.


                     ▲ 밀양 ‘단골집’은 3대를 이어오는 돼지국밥 집이다.                                                  ▲ 밀양 단골집 돼지국밥과 수육. 방아 잎이 양념으로 나온다.    


밀양과 부산의 돼지국밥은 다르다. 원형과 상업화된 음식의 차이다. 원형 밀양 돼지국밥의 국물은 돼지 뼈를 중심으로 머리고기, 내장 등 각종 부산물을 더하여 만든다. 한때 부산 초량의 돼지국밥 노포들도 취했던 방식이다. 이제 부산의 돼지국밥들은 국물이 지나치게 맑다. 대구 신암동의 ‘성화식당’은 조미료, 감미료뿐만 아니라, 부추 겉절이도 넣지 않는다. “국물 맛을 해치기 때문”이다. 대구에 있는 음식점이지만 ‘밀양에서 시작한 원형 돼지국밥’을 만날 수 있다.


‘상업화된 돼지국밥’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냄새와 더불어 좋은 맛도 버렸다. 적당히 우려낸 국물에 각종 첨가물과 조미료를 얹는다. 설탕, 조미료 범벅의 부추 겉절이를 넣고 시판 간장으로 맛을 낸다. 지금의 부산 돼지국밥의 모습이다. 수육의 모습도 달라졌다. 원래는 돼지고기 수육을 어슷하게 썰었다. 모양, 크기도 다르고 두께도 달랐다. 어수선한 모습이지만 제대로 된 돼지고기 맛이 느껴진다. 이제는 웬만한 부산의 노포들도 수육을 깐총하게 썰어낸다. 보기는 좋지만 돼지고기 맛을 느끼기 힘들다. 돼지고기는 거칠게, 두텁게 썰어야 제 맛이 난다.


▲ 밀양 무안면 ‘동부식육식당’은 돼지고기와 쇠고기 뼈를 동시에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국물이 비교적 맑은 곰탕 느낌도 든다.


밀양 무안면에는 유명 돼지국밥 집이 3곳 있다. 역시 노포다. ‘동부식육식당’, ‘무안식육식당’, ‘제일식육식당’이다. 3곳은 집안 형제간들끼리 각각 나눠서 운영한다. 밀양에는 이외에도 ‘설봉돼지국밥(내이동)’, ‘예림돼지국밥(상남면)’등 유명 돼지국밥집들이 많다. 밀양 시내 시장 통에는 ‘단골집’이 있다. 연세 드신 할머니 두어 분이 운영한다. 3대를 이어오는 돼지국밥 집이다.

부산에서는 60년 전통의 ‘할매국밥’과 초량의 ‘대건명가돼지국밥’을 추천할 만하다. ‘할매국밥’은 부산의 돼지국밥집 중 노포(老鋪)다. 서민적인 분위기지만 음식은 깔끔하다. 수육도 수준급이다. 어슷하게 썬 정갈한 수육이다. 국물도 툽툽하고 좋다. 고기 양도 넉넉한 편이다. ‘대건명가돼지국밥’은 조미료와 첨가물이 절제되어 있다. 맑으면서도 뽀얀 색깔의 돼지국밥이다.




  • 관광 정보
  • 1 영남루
  • 2 표충사
  • 3 영화 <밀양> 촬영지
  • 4 밀양 전통시장

  • 맛집 정보
  • <밀양>
  • 1 단골집: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47 / 055-354-7980
  • 2 동부식육식당: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중앙길 5 / 055-352-0023
  • 3 무안식육식당: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사명로 506 / 055-352-0017
  • 4 제일식육식당: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동부1길 7-4 / 055-353-2252
  • 5 설봉돼지국밥(내이동): 경상남도 밀양시 노상하3길 4 / 055-356-9555
  • 6 예림돼지국밥(상남면):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예림리 916 / 055-354-8696
  • <부산>
  • 1 할매국밥: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533번길 4 / 051-646-6295
  • 2 대건명가돼지국밥: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231번길 5 / 051-44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