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ome >

길따라 맛따라 ⑩ 비빔밥 양대 산맥

비빔밥 양대산맥
전주비빔밥은 현재 최고의 비빔밥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전주비빔밥 못지않게 유명세를 날리는 곳이 있다. 익산의 황등비빔밥이다. 전주, 군산 사이의 익산에는 토렴을 고집하는 음식점들이 많이 있다. 토렴이란 찬밥을 뜨거운 국물에 넣고,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면서 덥히는 과정을 말한다. 국물을 적신 밥, 나물, 내장은 이미 단맛이 배어 있다 .




전주비빔밥의 시작은?


미리 밝혀둔다. 전주비빔밥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유명해진, 그래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전주비빔밥 그리고 비빔밥의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더불어 전주 인근인 익산시 황등의 비빔밥, 황등비빔밥도 더불어 알아보자는 것이다.


전주와 익산은 차량으로 불과 30분 정도의 거리다. 가깝다. 음식에 관한 한,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전주는 요즘말로 핫하다. 해마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동성당 등은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관광지다. 덕진공원, 남부시장 청년몰, 막걸리 골목 등은 특히 젊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인기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하여 전주 인근의 대부분 음식들이 관광지 음식이 되었다는 불평도 나온다. 정작 전주 고유의 음식은 사라지고 서울 등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이 판을 친다는 이야기다. 서울에서 오는 젊은 관광객들을 위하여 달고 감칠맛이 도는 음식들을 내놓는다는 불평들이다.

                                                             ▲ 전주 한옥마을



▲ 전주 한국관



한때 전주비빔밥의 뿌리를 찾아보자는 노력들이 있었다. 비빔밥이 어느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예전에는 어떤 형태였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언제부터 전주비빔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별다른 연구결과 발표는 없었다. 언젠가 전주시가 비빔밥에 들어가는 ‘전주 10미(味)’를 발표했다. 기린봉의 열무나 인근 지역의 콩나물 등등 비빔밥 재료와 유명 생산지를 열거했다. “꼭 이 재료를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전주 인근에서 생산되는 ‘좋은 식재료’들을 열거했다.



<시의전서(是議全書)>의 골동반(骨董飯)과 비빔밥



비빔밥에 대한 최고의 코미디는 이른바 <시의전서>의 ‘부븸밥’이다. 내용은 이렇다. 18세기 말에 기술된 <시의전서>란 조리책자에 골동반, 부븸밥이 등장한다. 부븸밥=비빔밥을 만드는 방식도 상세히 소개된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 재여 볶아 넣고 간랍 부쳐 썰어 넣고 각색 나무새 볶아 넣고 좋은 다시마튀각 튀여 부숴 넣고 고춧가루 깨소금 기름 많이 넣고 비비어…”라는 내용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의전서 비빔밥 재현하기” 배틀도 나온 판이니 이젠 <시의전서>의 비빔밥이 무슨 대단한 음식이 된 듯하다. 그렇지는 않다.




18세기 말 기술 되었다고 하지만 <시의전서>가 발견된 것은 1910년 언저리다. 이 책이 기술된 것은 1900년 무렵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 말기에 기술된 책이다. 발견된 장소는 상주, 즉, 경북 북부다. <시의전서>는 20세기 무렵의 경북 북부 음식을 기술한 책일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이 비빔밥에 관한 한, 유용한 내용은 단 한 부분이다. ‘골동반(骨董飯)’이라고 쓰고 옆에 ‘부븸밥’이라는 한글 표기를 병행했다는 점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비빔밥의 한글 표기가 처음 실렸다는 점이다. 그걸 가지고 마치 비빔밥의 레시피를 처음 공개한 것 같이 요란을 떨고 있는 것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는 조선시대 백과사전쯤 된다. 이를 쓴 오주 이규경(1788-1856년)은 분명하게 “평양은 냉면, 감홍로와 채소비빔밥이 유명하다”고 썼다. 물론 전주의 비빔밥에 대해서는 아무런 코멘트가 없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채소비빔밥 이외에 새우 알을 넣은 비빔밥, 각종 회를 얹은 오늘날의 회덮밥 등도 기술했다.


“骨董飯。菜蔬骨董飯。以平壤爲珍品。如雜骨董飯、(중략) 黃州細蝦醢骨董飯、蝦卵骨董飯、蟹醬骨董飯、蒜骨董飯、生胡瓜骨董(중략) 炒黃豆骨董飯。(후략)”


- <오주연문장전산고> 인사편(人事篇), 복식류(服食類), 산주자미변증설(山廚滋味辨證說)


<시의전서>보다 훨씬 전 시대의 사람인 오주 이규경도 위의 내용처럼 여러 골동반으로 황주의 ‘작은 새우 젓갈 비빔밥’ 새우알비빔밥, 게장비빔밥, 마늘비빔밥, 생오이비빔밥, 볶은 콩 비빔밥 등을 열거하고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요리책이 아니라 백과사전이다. 19세기 중엽의 백과사전에 이런 비빔밥이 나타나는 것은 이 무렵에 이미 비빔밥이 널리 퍼졌다는 뜻이다.

<시의전서>는 골동반이란 이름 대신 ‘부븸밥’을 표기했다는 의미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한글로 표기하든 한자로 표기하든 19세기 중엽에 이미 생선회를 얹은 비빔밥과 더불어 게장비빔밥, 오늘날의 알밥과 비슷한 새우알비빔밥, 오이비빔밥 등이 나타났다. 뒤늦게 비빔밥 레시피를 공개한 것이 무엇 그리 대단한 일인가? 그걸로 무슨 배틀을 한다는 것은 청맹과니의 짓이다.



잘 만든 전주비빔밥을 틀에 가두지 마라



성호 이익(1681-1763년)은 그 훨씬 전에 “골동(骨董)은 내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다”고 했다. 골동반(骨董飯)이든 골동갱(骨董羹)이든 모두 ‘골동’으로 표기했다. 골동반은 오늘날의 비빔밥 같은 것이고 골동갱은 여러 가지 채소, 고기부산물, 생선 등을 넣고 끓인 국이다. 섞어서 만든 것은 모두 골동이요, 그중 밥을 같이 넣고 비빈 것이 바로 골동반,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오래 전부터 널리 먹었던 음식이다. 병영, 궁궐, 제삿밥 등을 기원으로 보는 것은 비빔밥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널리 퍼진 음식이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 섞어서 만든 음식을 ‘골동’이라 하고, 그 중 밥을 같이 넣고 비빈 것이 바로 골동반, 비빔밥이다.


전주비빔밥은 우리 시대 가장 화려한 비빔밥이 되었다. 서울 명동 등을 통하여 외국관광객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문제는 그 맛이나 내용물이 화려하면서 모두 비슷해졌다는 점이다. 비빔밥은 비싸고 진귀한 식재료로 만든 화려한 음식이 아니다.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고 제철에 나는 나물들을 이용하여 쉽게 만들고 편하게 대했던 음식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인근의 익산시 황등비빔밥이 오히려 비빔밥의 ‘열린 면’을 지니고 있다. 특별한 식재료를 구하지도 않고, 대단한 레시피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맛있다. 익산시 황등은 황등석(黃燈石)의 생산지로 예전에는 제법 큰 도시였다. 비빔밥 집이 서너 곳 있는데 그중 ‘시장비빔밥’을 권한다. 오후에 일찍 문을 닫으니 저녁 식사는 곤란하다. 토렴방식을 고집, 내장국물에 만 밥이 질척거린다. 먹기에 좋고 맛은 뛰어나다. 인근에 ‘진미식당’과 ‘한일식당’이 있다.



전주는 ‘한국관’ ‘성미당’ ‘가족회관’ 등이 비빔밥으로 유명하다. ‘중앙회관’의 비빔밥이 비교적 푸근한 맛을 보여준다. 직접 담근 장아찌 등이 투박하고 맛있다. 가격도 비교적 낮은 편이다.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직접 비벼달라고 하면 솥밥을 나물과 섞어서 쓱쓱 비벼준다. 비빔밥과 더불어 나오는 반찬들도 짭조름하고 맛있다.


본문에 소개된 관광지 & 맛집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