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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 : 롱 플레잉 스토리]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최신 앨범을 손꼽아 기다린 적이 있나요? 아티스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꾹꾹 눌러 담는 것은 아마도 앨범 커버가 아닐까 싶은데요. 앨범 커버 디자인의 시초는 음반시장에 LP음반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속화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1960년대 후반, 대중음악의 황금기이자 유스컬쳐가 꽃 피던 런던, LP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가 그들만의 문법으로 풀어낸 앨범 디자인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있습니다. <힙노시스 : 롱 플레잉 스토리> 를 서촌 그라운드 시소에서 만나보세요.

 

# 12인치 정사각형에 담아낸 레전더리 아티스트들의 이야기. 그라운드 시소 서촌 [힙노시스 : 롱 플레잉 스토리]

• 위치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6길 18-8, 그라운드시소 서촌

• 운영 : 10:00- 19:00 (매주 첫째 주 월요일 휴관)

• 문의 : 070-4473-9746

 

앨범 커버는 아티스트가 우리에게 새로운 음악과 그에 대한 정체성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방식이자, 사운드를 시각적 언어로 전달하는 완벽한 수단인데요. 음반을 구매하지 않고도 휴대폰으로 쉽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요즘, 음반 커버는 작은 썸네일이 되어 버렸지만, LP 판으로 음악을 듣던 그 시절, 음반의 커버는 사람들에게 이 음반의 구매를 선택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 … 레전더리 아티스트들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특별한 뮤즈였던 힙노시스는 LP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해 12인치 작은 정사각형 캔버스 속에 그들만의 문법으로 앨범 커버를 디자인 하며 긴 시간을 지켜왔지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 긴 시간을 지킨 한 스튜디오의 여정을 한자리에 담았습니다.

 

젊은 두 디자이너가 함께 시작한 ‘힙노시스’스튜디오는 기존의 문법을 무시하고 추상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로 앨범 커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뮤지션의 사진과는 상관없는 독창적인 디자인들은 LP 시장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 내었는데요. 포토샵도 없던 그 시절, 그들이 만들어낸 창조적인 작업물들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떠올리며 상상을 펼쳐 보세요.

 

영국의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는 1968년 오브리파월과 스톰 소거슨에 의해 1944년 설립되었습니다. 힙노시스는 ‘멋’을 나타내는 ‘Hip’과 ‘지식’을 뜻하는 ‘Gnosis’가 결합된 단어로 오브리와 스톰은 스스로 힙하고 지적인 존재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초창기 이 스튜디오는 런던의 수많은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이 드나드는 살롱과도 같았다고 하는데요. 친구인 ‘핑크 플로이드’밴드가 두 번째 앨범의 커버 디자인을 요청하면서 힙노시스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디자이너 ‘피터 크리스토퍼슨’이 합류하며 이 트리오는 인류의 우상과도 같던 뮤지션들의 커버 제작을 섭렵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겐 포토샵이 없었다. 모든 것을 필름으로 촬영하고 손으로 직접 작업해야 했다.

아트워크 작업은 평균 3~6주 걸렸는데, 요즘으로 치면 그중 몇 개는 한나절이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연히 찾은 이미지’들을 이용해 포토몽타주 작품들을 만드는 작업들이 주가 되었는데요. 힙노시스는 적절한 촬영지를 찾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화한 사진을 오리고 붙이고 색칠하며 뮤지션의 이야기와 사운드를 디자인으로 표현해냈습니다.

 

힙노시스 여정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각 뮤지션들과 그들의 앨범 커버 아트워크. 그 이면에 담긴 각각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금세 전시의 절반이 지나갑니다.

 

Led Zepplin : Presence, 1976

힙노시스의 디자인 역량이 정점에 이르렀던 어느 날의 작업물 중 하나는 바로 ‘검은 물체’였습니다. 당시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던 레드 제플린의 새로운 음반, 그리고 이 음반의 커버 작업에 ‘검은 물체’를 상징적으로 구현해 더했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에 힘을 실어 주는 레드 제플린의 헤어날 수 없는 중독적인 음악, 그리고 이 마력을 상징할 수 있는 어느 검은 물체 : (“직종이나 계층을 불문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갈 힘이 필요하다.”

 

사람을 위한 배터리라고 할까, 손을 가져다 대면 다시금 그 사람에게 힘을 채워 주는 그런 물체. 집이든 휴양지든 어디서든 소지하고 비치할 수 있는 그런 물건) 그리고 이 ‘검은 물체’를 일상의 어느 모습 속에 가져다 놓은 앨범 커버는 영국과 미국 양측에서 차트 1위를 달렸고, 그래미 어워즈 ‘최고의 앨범 커버’ 부문 후보로 오릅니다.

 

10cc : Deceptive Bends, 1977

‘긍정적인 이미지, 가능하다면 로맨틱하게’라는 단 하나의 지시문과 함께 시작한 작업. 감압병, 혹은 ‘bends’는 잠수부가 너무 빨리 수면으로 올라올 때 겪는 일련의 증상들을 말합니다. 이 앨범의 제목이 이 현상의 은유라고 생각한 힙노시스는 잠수부와 여자를 포인트로 촬영하여 뒤로 보이는 배경으로 템스 강의 어느 부두와 튀니지에서 찍은 하늘 사진을 콜라주로 합쳐 앨범 사진을 만들어 냈습니다.

10cc : Look Hear? (Are You Normal?), 1980

앨범 커버에 두 가지 제목을 함께 적는 일은 드문 일이지만, 10cc 멤버들이 끝까지 정하지 못해서 후보였던 Look Hear? 과 Are You Normal? 두 가지를 함께 적어냈다고 합니다. 힙노시스는 후자의 대답으로 파도가 맹렬한 하와이 해변에서 양 한 마리가 정신과 상담 의자에 몸을 누인 모습을 찍었죠.

핑크 플로이드 밴드의 결성부터 초기 싱글 발매와 1집 “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제작에 이르기까지, 시드 배럿은 혼자서 작사, 작곡, 보컬, 기타 연주를 도맡아 했던 리더였습니다. LSD 과다 복용과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문제로 핑크 플로이드에서 탈퇴하게 된 후 핑크 플로이드 밴드는 4인조 밴드의 포지션으로 세팅되었습니다.

 

Pink Floyd : Wish You Were Here , 1975

Wish You Were Here의 가사에는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겼다고 하죠. 힙노시스는 바람이 부는 것에서 연상된 빨간 천과 흰 천을 통해 세상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시드 배럿의 밴드 탈퇴를 상징하는 작업물을 찍어냈습니다.

 

Pink Floyd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그 단순함이 정말 놀랍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다는 거죠. 역대 가장 눈에 띄는 앨범 커버인 것 같아요.” 그간 열린 미팅에서 벌써 7개의 시안을 거절했던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과의 자리에서 힙노시스 멤버 스톰 소거슨은 조금씩 블쾌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피라미드 모양 시안을 보자마자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죠.

 

“완벽함을 향한 열망이 없었다면, 그런 종류의 자존심 싸움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갖게 된 작품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전시의 마지막 층, 4층에서는 그룹 제네시스의 멤버, ‘피터 가브리엘’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된 새 앨범 ‘The Lamb Lies Down an Brodway”에 담긴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몽환적인 시퀀스가 스토리라인 곳곳에 담긴 제네시스의 새 앨범에 맞춰 힙노시스는 연필로 대략적인 도안을 그려나갔고, 멤버들의 앞에서 설명을 마치자 지금 말한 그대로 진행해 달라는 답을 받아냅니다. 힙노시스가 제안한 시안에는 여러 단면으로 구성된 레이어링 작업과 세밀한 콜라주를 해야 하는 수작업 파트가 포함되어 있어 생각 이상의 난항과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완성해낼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작업물에 담긴 사진들과 과정의 모습들에 담긴 집념의 끝에 보이는 완성본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Scratch 파트에서는 앨범 커버에 스크래치를 내려는 듯한 표현 기법이 눈길을 끌죠. 손가락을 하얀색의 찢어진 종이와 이어 붙여 완성했습니다. 자동차 보닛 위에 맺힌 빗방울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앨범 커버 Car. 차량 위로 물을 뿌린 후에 흑백사진으로 촬영된 사진에 자동차의 보닛에 수작업으로 채색을 진행했는데요. 이후 리터치 과정에서 물방을 하나하나의 스포트라이트 부분을 나이프로 긁어내어 순수한 백색으로 만들어 포토리얼리즘 스타일의 커버를 만들어냅니다.

 

녹아내리는 멤버의 모습을 담아낸 이 앨범 커버는 ‘Melt’ 파트입니다. 사진을 찍고 인화되는 동안 연필로 문질러 가며 마치 흐르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내었죠. 직접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머릿속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과정들에서 힙노시스만의 열정과 도전적인 모습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힙노시스의 15년여의 활동 기간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게 모은 스페셜 존. 아티스트 순, 시간 순도 아닌 무작위. 그간 만든 작업이 너무 많은지라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 고르기 어려웠던 오브리 파월은 조금 더 마음이 이끌리는 작업물들을 골랐다고 회고합니다.

 

손수 기획하고 구현했던 일들. 이 앨범 이미지들을 볼 때마다 단 1초 만에 그는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간다고 하는데요. 그에게 이 작업물들은 평생의 여운을 남기는 나의 역사, 일종의 뿌듯함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입니다.

 

2층에서 4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대표적인 아티스트 별로 나눠진 각 앨범의 완성 전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다 보면 전시 관람 시간은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갑니다. 평소 다른 전시에서는 닫혀 있는 공간이지만, 4층에서 반 계단 위에 마련된 공간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미완성 작품들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모습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들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전시를 모두 관람 후에 마주하는 힙노시스의 다양한 앨범 커버들을 배경으로 남길 수 있으니 이 공간에서 둘둘 말려 있는 포스터를 펼쳐 들고 재미있는 인증 사진을 남겨 보세요.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내려가는 구석 한편에는 마치 힙노시스 스튜디오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상상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4층까지 올라오며 지나친 전시 공간들에도 숨어 있는 포토존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달 위에서 찍히는 듯한 신기한 스팟, 4층 야외 공간에 마련된 설치 작품도 놓치면 아쉬울 포토존이랍니다.

읽을거리들이 작품마다 친절하게 적혀 있어 오디오 가이드 없이도 전시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오랜만의 전시였는데요. 그라운드 시소 전시들은 VIBE 앱을 통해 무료로 해설을 들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니 도슨트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어폰을 챙겨 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관람하게 된 전시, ‘힙노시스 : 롱 플레잉 스토리’는 마음에 들었던 사진들이 담긴 굿즈들을 몇 개 구매하고 나서야 가벼운 발걸음으로 전시장을 나설 수 있었는데요. 서촌으로 나들이 갈 일이 있다면, 그라운드 시소 서촌에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전시 [힙노시스 : 롱 플레잉 스토리]에서 시간을 보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