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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정원으로 가꾼 섬, 보령 죽도 상화원

충청남도 보령 대천해변과 무창포해변 사이에 작은 섬이 있어요. 대나무가 많아 ‘대섬’이라고도 불리는 죽도라고 합니다. 원래 해안에서 떨어진 섬이었는데 1990년대 후반 남포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됐습니다.

 

죽도의 자연미를 최대한 보존한다는 원칙 아래 섬 전체를 하나의 정원으로 꾸몄는데요. 바로 한국식 전통 정원 ‘상화원’이랍니다. '조화를 숭상한다'라는 이름 그대로 되도록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나무 한 그루, 돌 한 조각까지 소중히 여겼어요.

 

상화원에는 여름 성수기에 하루 1천여 명이 다녀가요. 대천과 무창포 해변으로 제법 알려진 보령이라 해도 먼 길을 달려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이곳 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시간의 가치가 쌓인 세계 최장 ‘지붕 회랑’

언뜻 단순해 보이는 경치를 가진 이곳을 많은 사람이 찾고 마음으로 진한 감정을 느끼며 거니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급조된 것만 성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내면의 성숙과 정직한 부지런함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상화원은 고된 시간과 예사롭지 않은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입니다. 게다가 급히 완성할 목적으로 효율성만 추구하지도 않았죠.

 

정원의 둘레를 휘감는 1km 넘는 지붕 회랑을 만든 수고로움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원래 살던 섬 주민들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난 오솔길을 따라 만든 회랑은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틀어지면 틀어지는 대로, 땅의 흐름과 박자를 맞추며 천천히 조급하지 않게 지으면서 3년 넘게 걸렸어요.

 

상화원의 회랑은 근본적으로 설계도에 따른 공사가 힘들었어요. 다양하고 미세하게 변화하는 현장 여건 때문이랍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 따라 적당한 경사와 적절한 폭의 계단이 필요했고, 도중에 만나는 나무는 베거나 옮기지 않고 돌아가거나 아예 회랑 바닥과 천정에 구멍을 내는 식으로 품었답니다. ‘상화원’ 이름에 걸맞은 회랑이죠.

 

섬을 둘러서 조성된 회랑은 편하게 한 바퀴 일주 할 수 있는 멋진 설계죠. 섬의 대표적인 풍광과 장소를 하나로 이어주는 대표적 요소로서 상화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지붕 회랑은 섬 둘레를 포괄하는 동시에 주요 시설인 한옥 지구와 방갈로 단지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역할을 해요.

 

회랑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해변연못과 개울을 만날 수 있고, 바닷가 쪽으로 이어지는 해변 테라스로 내려가면 암반과 파도를 마주할 수 있답니다. 회랑에 설치된 벤치와 앉음벽은 낙조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랍니다.

 

약간의 높낮이 변화가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가 지날 수는 없지만, 날씨가 궂은 날 하이힐을 신고도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어요.

 

상화원의 회랑은 기존 한국 정원의 점적 요소를 극복하고 현대 개방공간의 특징인 선형성을 적극 도입해요. 걷기라는 능동적이고 사색적인 휴식 행위를 통해 경관 경험을 극대화합니다.

 

상화원의 시설은 과하지 않고 약간 부족하게 비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필요한 것을 간소하게 갖추어 놓았어요.

 

조각정원, 해변연못, 해변독서실, 해송의 숲, 하늘정원을 조성해 물과 생명, 책과 예술, 하늘과 바다처럼 보다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섬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뚜렷이 담고 있답니다.

 

바다와 한옥이 어우러진 상화원은 비단 아름다운 풍광뿐만 아니라 시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고, 뜻과 의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이끼라도 끼면 더욱 멋지답니다.

 

# 생명력을 더한 33개 ‘해변연못’과 ‘해변독서실’

지붕 회랑을 따라 연못이 이어져요. 보통 바다를 낀 곳은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에 집중하는데, 상화원은 섬 둘레 해안가를 따라 해변연못을 조성했어요.

 

보령은 예로부터 벼루를 만드는 오석으로 유명한데요. 채석한 돌을 섬으로 옮긴 후 돌담을 쌓고 서로 이어진 33개의 연못을 구성했습니다.

 

섬이란 원래 물이 부족한 곳이기 마련인데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어 풍성하고 안락한 느낌입니다. 해변연못은 물이 부족한 섬에 생태적 풍부함을 더하는 설계 전략으로 볼 수 있어요.

 

죽도는 2만 평 남짓한 작은 섬이다 보니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많지 않아요. 산 중심에서 흘러온 계류가 차례차례 연못을 채우고 계단식으로 아래로 흘러가는 구조랍니다. 각 연못에 서로 다른 수생 생물의 고유한 특성을 담아내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해변연못 조성에는 상당한 노력이 들었는데요. 사람이 일일이 맞춰 쌓아가며 만들어서 시간이 많이 들었죠. 그래서인지 연못 돌담의 손맛이 참 좋아요.

 

바다를 향한 원경과 더불어 갖가지 작은 풀과 햇빛이 어우러지는 아기자기한 연못이 자칫 삭막해질 수 있는 해안가에 풍부한 생명력을 더합니다.

 

세월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이 해변연못과 회랑 근처에 각자 돌을 쌓는 것을 볼 수 있죠. 원래 만들었던 사람과의 교감일 것입니다. 아기자기한 돌탑에 사람들 마음이 어려 있어요.

 

▲ 해변독서실

바닷가 비탈 곳곳에 ‘해변독서실’이라는 이름으로 책상과 오두막을 설치한 것도 이채로워요. 단순히 바다를 바라보는 곳이 아니라서 좋아요. 독서실이라는 콘셉트가 친근감을 줍니다.

 

네 곳의 해변독서실은 상화원에서 해변을 가장 가까이 만나는 공간입니다. 파도와 바람 소리를 벗 삼아 조용히 책을 읽는 초가지붕 정자들이죠. 여기서 오래 머물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 바다를 품은 계단식 ‘한옥마을’

섬의 남쪽 사면에는 섬 주민 10여 가구가 거주하던 임야에 전국 각지에서 옮겨와 복원한 전통 한옥 8채가 있어요.

 

전북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 ‘홍씨 가옥’을 비롯해 충남 홍성군 행정리 ‘오흥천씨 가옥’, 충남 청양군 남양면 대봉리 ‘이대청씨 가옥’, 충남 보령시 주산면 야룡리 ‘상씨 가옥’ 등 일부 붕괴됐거나 폐가 직전까지 내몰렸지만 집주인이 사실상 보수·유지를 포기한 한옥들을 사들여 이건 후 복원했어요.

 

상화원은 한옥의 보존과 재사용에 관한 탁월한 선례를 제시해요. 한국미를 표방한 정원을 강조하면서도 한옥과 전통 정원의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부지 상황에 맞는 배치를 융통성 있게 전개해 실제 이용 측면에서도 실용성을 중시했어요. 유물로서의 한옥이 아니라 현대의 생활양식에 부합하는 한옥을 복원한 것이죠.

▲ 충남 청양군 남양면 대봉리 ‘이대청씨 가옥’ /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남내리 낙안읍성 동헌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고창읍성 관청 / 경기도 화성 관아의 정자 ‘의곡당’ (시계 방향)

훼손이 심한 한옥을 이건 해 복원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었어요. 한정된 한옥 부지는 차량이 접근하기조차 쉽지 않은 경사지였답니다. 오래된 원 재료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의미 있고 비싼 길을 택한 것은 상화원 한국 정원의 진정성을 더해줘요.

 

입구의 정자 ‘의곡당’을 포함해 상화원의 한옥은 총 9채. 2002년에서 2004년 사이에 전국의 쓰러져가는 한옥을 구입해 섬에 보관했어요. 하나하나 분리하고 번호를 매겨 보관하던 한옥 자재를 이용해 2009년에서 2012년 사이에 복원 작업을 했습니다.

 

대목부터 시작해 전문가들의 정성이 상당한데, 상당 부분 소실되고 허물어진 가옥이라서 매입 비용은 300만~1,000만 원 정도였지만, 이건 비용은 2~4억 원대에 달했다고 합니다.

 

한옥을 복원할 때 일화도 많은데요. ‘의곡당’은 고려 말기 건축물로 추정되는 경기도 화성 관아의 정자였어요. 발견 당시 화성 시내 재래시장에서 다방으로 사용되고 있었죠.

 

훼손이 너무 심했지만 기둥과 대들보가 남아 있어서 300만 원에 매입한 후 옮겨서 복원했어요. 손상된 부분의 복원에 쓸 자재를 찾기 위해 강원도 삼척부터 전국 각지를 조사하기도 했답니다.

 

한옥 배치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어요. 한 번은 거의 다 지은 한옥을, 옆 건물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허물고 위치를 옮겨 다시 짓기도 했어요.

 

상화원은 한옥과 바다라는 언뜻 생소한 결합을 통해 기존 한국 정원의 틀을 넘어서고 있어요. 섬의 원주민이 일구던 계단식 밭에 심어진 한옥들이라 흡사 지중해의 해안 마을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해요.

 

현대 주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워터프런트 조망과 고전 한옥이 합쳐진 느낌이 절묘해요. 먼 길을 이사 온 한옥들이지만, 여기 상화원에서 제대로 된 고향을 찾은 듯해요.

 

특히 상화원의 한옥은 행랑채가 두드러지는데요. 『한옥의 섬』이란 책에서는, 행랑은 여러 사람이 드나들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사랑채보다 훨씬 자유롭게 열린 공간이라고 소개해요. 상화원 자체가 하나의 푸근한 행랑채와 무척 잘 어울립니다.

 

그런 한옥에서는 그저 얼마 동안 앉아만 있어도 좋아요. 수백 년 세월의 때가 묻은 대청마루에서 옥빛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 잔의 감동은 결코 소박하지 않아요.

 

# 지면 훼손을 줄이고 옥상정원으로 연결한 ‘방갈로’

섬의 북쪽 지역에는 나무 사이로 방갈로를 앉히고, 건물 위를 이어 소나무 숲을 즐길 수 있는 옥상정원을 만들었어요. 현재 방갈로는 25인 이상의 단체에게만 예약을 받고 있지만, 하늘정원을 통해 상화원의 모든 관람객이 전망과 솔숲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옥상에 큰 면적의 데크를 설치하는 것은 습기 배출 등 여러 면에서 어려운 작업이고 건물에 무리를 줄 수 있어요. 하지만 방갈로 지역 역시 배타적 공간으로 두지 않고 개방하고 나눈다는 취지가 더 중요했답니다.

 

방갈로의 건축 스타일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에요. 모양이 비행선 같다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1990년대 당시 빌라 계획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솔숲에 있던 나무들을 해치지 않고 건물을 배치한다는 방침이었어요. 원래 숲이었던 지역에 나무를 베지 않고 숙박 시설을 만드는 것이 매우 힘들었어요.

 

1층 평면이 2층에 비해 작은 것도 최대한 지면의 훼손을 줄이겠다는 의도랍니다. 숙박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효율적인 평면이 나와야 해서 어려웠어요. 각각의 유닛은 실내 계단으로 이어진 복층 구조이고, 숲과 해변연못, 바다를 향한 전망을 위해 통창을 끼웠어요.

 

숙식 시설 외에 옥상으로 통하는 원형 계단이 특징이고, 낮에는 선탠을 즐기고 밤에는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유리방과 노천탕을 갖추고 있어요.

 

# 소설가 홍상화 작가가 가꾼 ‘상화원’

빼어난 장소는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착상과 꾸준한 실천이 시간에 녹아 들어 농축된 산물입니다. 서해의 비원 ‘상화원’을 가꾸어 온 설계자는 소설가 홍상화 작가입니다.

 

홍상화 작가가 죽도의 상화원 부지를 매입한 것은 1973년 무렵. 그 후 1974년 설립한 한국컴퓨터지주 사업에 매진하는 동안에는 섬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어요. 홍 작가는 198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소설가로 활동하는데, 이 무렵부터 섬이 탈바꿈하기 시작했죠.

 

1993년에서 1994년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 ‘거품시대’ 집필을 위해 섬에 머문 것이 죽도를 정원으로 가꾸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어요.

 

때마침 대천과 무창포를 잇는 남포방파제가 간척 사업의 일부로 1980년대에 공사가 시작되었어요. 다행히 죽도를 바다 쪽으로 보존한 채 진행되면서 방파제 후면 도로가 만들어졌죠. 원래는 뭍에서 4.5km 떨어져 있던 섬이 육지와 이어졌고, 죽도에 정원을 조성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답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중단됐어요. 한때 경제적 이유로 호텔과 대규모 콘도 건설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착공 직전 홍상화 작가는 마음을 바꾸었어요. “이곳은 후손에게 정원의 형태로, 자연 그대로 남겨주어야겠다”며 애초의 정원 계획으로 돌아가 현재 한국식 전통 정원인 ‘상화원’에 이를 수 있었답니다.

 

한동안 회사와 자회사, 주요 기업 고객의 연수 장소로만 활용되던 상화원을 대대적으로 개방한 것도 홍상화 작가의 뚜렷한 뜻이었죠. 우리만 즐기는 곳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오가며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부족한 예산도 모 기업인 한국컴퓨터지주가 지원합니다.

 

2016년 4월부터 일반에게 개방된 상화원은 지키는 사람이 없는데요. 방문객이 스스로 돌아보고 뒷정리도 알아서 해요

 

특별한 외부 전문가의 개입 없이 홍상화 작가가 거의 독자적으로 조성해 온 까닭에 상화원은 그의 강한 개성이 곳곳에 묻어 있어요. 홍 작가는 책 몇 권을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말해요. 바로 ‘상화원’이라는 소설이랍니다.

 

# 보령 죽도 ‘상화원’ 여행 팁

▲ 방문객 센터에서 제공하는 상화원 커피와 떡

상화원에는 카페나 식당이 없고 식사는 외부 음식점을 이용하도록 권하고 있어요. 다만 ‘해송의숲’에 있는 방문객 센터에서 방문객에게 간단한 커피와 떡을 제공해요. 솔숲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돼 있습니다.

 

상화원 출구쪽에 있는 뽕나무도 놓치지 마세요. 대나무 숲을 지나면 수령이 200년 된 뽕나무가 있어 다시 한번 걸음을 멈추게 해요.

 

<보령 죽도 상화원>

• 주소: 충남 보령시 남포면 남포방조제로 408-52

• 입장료: 일반 7,000원 (초등학생 포함)

• 관람요일: 금, 토, 일요일과 법정공휴일 [3월~11월]

  관람시간: 9시~6시 (오후5시까지 입장 / 반려동물 동반 불가)

• 문의: 041-933-4750

 

▲ 상화원 출구에 있는 수령 200년이 넘은 뽕나무

우리에게 정원이란 아주 특별한 공간이에요. 지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낙원이며, 순간 변하면서 새로움을 안겨주는 예술작품이고, 자리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작품입니다. 상화원은 여기에 한국의 전통미까지 아울러 더 깊은 의미를 더하고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죽도가 만약 현지인 소유였다면 간척지의 일부가 되어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소설가 홍상화 작가가 지키고 써 온 ‘상화원’이라는 작품은 한국 정원의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줘요. 그는 20여 년간 한국 정원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오면서 정원을 가꿨어요. 처음엔 그저 홀로 즐기기 위해 시작했지만, 어느덧 이곳은 누구나 찾아가 쉬며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었답니다.

 

고단하고 힘든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너나없이 간절히 꿈꾸는 '이상향'. 그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이는 상화원을 걷다 보면 몸도 마음도 새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