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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항해』 출간한 출근하는 시인, DB금융투자 총무팀 장순복 사원

많은 직장인이 '글쓰기'를 자기계발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로 인식한다. 글 잘 쓴다는 유명인의 '글쓰기 방법론' 책과 강의가 넘쳐나지만 글쓰기 비법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일상에 감사하는 시선, 나누며 살려는 태도, 하루 속에서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쓰는 습관이면 충분하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작가'로, ‘시인’으로 변신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이 원칙을 지켜왔다. 첫번째 시집 『항해』를 펴낸 DB금융투자 총무팀 장순복 사원의 글쓰기 여정도 마찬가지다.

 

# 아름답게 삶을 사랑하는 사람, 詩人

▲ 초등학교 때부터 써온 장순복 사원의 육필 시

“시를 쓰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져요. 시어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요. 헤르만 헤세는 『크눌프, 삶으로부터 세 이야기』에서 아름답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어요. 시만 잘 쓰는 글쟁이가 아니라 ‘시인’이 되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시집까지 낸 시인이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시인’은 누구일까.

 

DB금융투자 총무팀 장순복 사원의 마음에 시심詩心이 싹 튼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일기장에 푸시킨, 릴케, 헤세, 윤동주, 김소월의 시가 그림과 함께 삽입되어 있었다. 시가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읽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처음 시를 쓴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다. “국어 작문시간에 시를 한 편씩 적기로 했는데 제가 쓴 ‘몽당연필'이라는 시를 보고 선생님께서 칭찬해 주셨어요. 시에 관심이 높아졌죠. 이후로 시를 한 편씩 쓰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는 아예 노트를 장만해 자작 시집을 만들었고, 언젠가 정말 시집을 내겠다는 꿈도 품었다.

 

▲ 초등학교 때부터 써온 장순복 사원의 육필 시

장순복 사원의 시가 세상에 빛을 본 계기는 서른 무렵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찾아왔다. “벼룩시장 신문에 백일장 소식이 작게 나 있었는데 그것이 눈에 띈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2006년 한국여성문예원에서 주최한 제9회 서울시 여성백일장이었다. 호기심으로 응모한 백일장에서 그는 우수상을 수상했다. 여성문인 배출에 힘써온 고故 장금생 선생께서 남긴 축사가 지금껏 힘이 되고 있다.

 

그해 결혼한 장 사원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동안 시작詩作 활동을 맘껏 펼치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2016년 무렵에서야 본격적으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19년 용기내 응모한 제10회 국민일보 신춘문예에서 장려상에 입상하며 그는 마침내 등단 시인이 됐다.

 

# 가난한 문인을 돕는, 시집 『항해』 출간

▲ 장순복, 『항해 - 쉴만한물가작가회 시선집 21』, 드베(DBE), 2023

장순복 사원은 시를 쓰려고 따로 시간을 정하거나 매달리지 않는다. 사람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다가 시상詩想이 떠오르면 바로 적어 놓는다. 그렇게 쌓인 시들을 선별해 지난 9월 첫번째 시집 『항해』 (쉴만한물가작가회 시선집 21, 드베(DBE), 2023)를 출간했다.

 

▶ 예스24 시집 『항해』 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2560577)

 

“언젠가는 시집을 내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어요. 하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에 주저하고 있었는데 ‘쉴만한물가작가회’ 회장님께서 시집 발간을 독려하셨고, 시집 판매 수익금은 가난한 문인 작가들을 돕는데 사용하기로 해 출간을 결심했습니다.”

 

시집 제목이 된 ‘항해’는 그가 어려서부터 좋아한 단어였다. “10대 때 힘든 일이 있었는데, 한 영화에서 배가 좌초하는 상황에서도 견디고 버티는 모습을 보며 감동 받았어요. 그 때 은혜로운 ‘항해’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아 두었고 시집을 내면 ‘항해’라는 제목을 붙이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시집 발간에 맞춰 ‘항해’라는 시도 썼다. “인생은 항해라고 생각해요. 순풍도 불고 격랑도 일지만 묵묵히 나아가야 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급변하는 세상에서 자기의 모양새를 잃지 않고 아름답고 고유한 것을 지키는 것, 세상 흐름만 쫓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과 이상을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항해

- 장순복 -

 
긴 밤이 끝났어
악몽을 걷어차고
두 눈을 크게 떠봐
 
변한 건 없지만
새날이 펼쳐졌어
하루의 기회를 놓치지마
 
오늘을 항해해 봐
닻을 멀리 던져봐
맘껏 바람을 향유해봐
 
펼쳐진 바다를
소리치며 만끽해봐
-우와와와-

파랑波浪이 인다고

쉬이 주저앉지는 마
더 멀리 나아가는 동력일 뿐
 
항해를 계속해
매일 닻을 던지고
매일 바다를 향해 나아가
 
매일
오늘처럼
내일도 그렇게


 

# 평화로운 커피 맛집, 직원 휴게공간 ‘유레카’

▲ 시집 『항해』 펴낸 DB금융투자 총무팀 장순복 사원

장순복 사원은 DB금융투자 총무팀 소속으로 여의도 사옥 7층에 마련된 직원 휴게공간 ‘유레카’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3년째 아침 7시 30분이면 출근해 직원들이 먼저 유레카를 편안하게 이용하도록 환경을 정돈한다.

 

“유레카의 색조가 주황색인데 주황은 평화를 상징하는 색이에요. 유레카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습니다. 각 부서나 임직원이 기부하는 양서들이 비치되어 있고 안마의자도 있어서 직원들이 안락한 휴식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커피값이 1천원인데 네스프레소, 스미스바니(Smith Barney)와 탐앤탐스 원두를 사용하는 커피머신이 있어 직원들이 애용하고 있어요.” 특히 출근 시간이나 점심 시간, 비 오거나 궂은 날에는 직원들의 발걸음이 몰리기도 한다. “유레카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준 회사에 고마운 마음입니다.”

 

유레카 한쪽 면에는 대형 화분에 희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임직원들이 가져다 놓은 나무들이다. “임직원분들의 식물 사랑을 많이 느껴요. 특히 S&T사업부장 강성욱 상무님이 한 번씩 오셔서 나무를 보며 미소 짓고 식물 관리에 대해 조언도 해 주십니다. 저도 식물에 관심이 많아 화훼를 조금씩 공부하면서 유레카 나무들을 가꾸고 있어요.”

 

# 직장인 ‘문학소녀’, ’문학소년’들에게

장순복 사원은 시 창작이나 글 쓰기에 관심 있는 직장인 ‘문학소녀’, ’문학소년’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유한다. “부끄러워 혼자 있는 게 좋아서 초등학교 때부터 책이라면 무조건 읽었어요. 몽고메리의 『빨간머리 앤』,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고, 십대 들어서는 레마르크,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헤세, 헤밍웨이, 조정래, 브론테 자매의 명작을 읽었습니다. 브론테 자매가 성밖 활동을 안 하고도 훌륭한 작품을 쓴 것처럼 책을 많이 읽으면 직장생활 속에서도 글을 잘 쓸 수 있을 거예요. 익숙해지는 것이 문학의 시작입니다.”

 

그는 지금도 책을 많이 읽는다. 열 여섯 살 딸과 같이 서점에 자주 가고 청소년 소설은 물론 서로 권하는 책을 함께 읽는다. “딸이 어렸을 때 하루에 50권씩 동화책을 읽어주곤 했어요. 최근에는 카뮈의 『이방인』도 같이 읽고 평론도 나눴습니다. 하루는 딸 방에 들어갔더니 아침마다 나태주의 시 달력을 한 장씩 읽고 있더군요.” 문학 덕분인지 딸은 사춘기 없이 십대를 지나고 있다. 오히려 딸이 자신을 보듬어 줄 때도 있다.

 

장순복 사원은 근래 단편소설도 쓰고 있다. 주제는 ‘따뜻한 사랑’이다. “요즘은 AI 작가도 생겨 인간의 창작 영역에 다가서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거예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고 따스함을 가진 사람의 역할이니까요.”

 

시를 좋아하는 그의 집에는 한 때 500여권의 시집이 있었다. 몇 년 전 시집 300권을 정리했는데, 오래되어 중고로도 팔 수 없어서 폐지가 되고 말았다. “누렇게 뜬 낡은 시집을 버리며 많이 아쉬웠는데, 그 마음을 담은 시가 『항해』에 수록된 ‘그대에게 나는’이라는 시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책이 혼수품이라고 읽은 적이 있는데, 그만큼 책이 소중하지만 세월에는 어쩔 수 없었어요.”

 

장순복 사원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직장인들이 읽을 만한 시집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와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을 꼽았다. 그러면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고전을 읽으라며 『한국의 명시』, 『세계의 명시』에서 여러 시인의 대표시를 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틈틈이 시집을 사지만 갈수록 시가 어렵게 느껴져요. 신선한 충격으로 지적 우월감을 잠시 누릴 수 있는 시는 오래 기억되지 못합니다. 시는 갈급한 사람의 마음에 안식을 주는 것이어야 해요.”

 

출근하는 시인 장순복 사원은 경쟁에 지쳐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우리 시대에 아무리 재무장하더라도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시인,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시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쓸 수 없어요. 시는 언어의 유희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백이어야 한다고 믿어요. 시는 다른 사람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요. 글의 배열이 좋은 글쟁이가 아니라 참 ‘시인’이 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있어요.”

 

장순복 사원을 보면 ‘시인’이 되는 곳으로 항해하는 순례자가 떠오른다. 그는 시집 『항해』에서 ‘하루’라는 시를 가장 아낀다고 했다. “삶을 돌아보는 순전한 마음과 주어진 하루에 대해 좀 더 의미 있게 임하게 하는 시”라고 소개했다. ‘하루’는 한 해를 달려온 우리에게 시인이 응원하며 건네는 당부이기도 하다.

 



하루

- 장순복 -

 
나 같은 소시민은
비슷한 하루를 채우고
성찰할 시간도 없이
꿈속으로 자맥질한다.
 
수식어도 없는 이름에
잊으려 한 것도
기억하려 한 것도 없이
면면히 이어온 나의 역사를
신의 나라에서 재생시킬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있으려나.
 
토마토처럼 붉은 얼굴로
오이지처럼 쭈글쭈글
파김치처럼 제 풀에 죽어
동치미처럼 투명해질까
 
그래도 당장은 천사처럼
우아한 날갯짓을 한다는 걸
안심해도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