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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소비 트렌드는!? 똑똑한 소비자, 체리슈머!

최근 한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실속 소비 경향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전례 없이 높은 인플레이션과 자산 가치의 폭락으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소비자들은 비용 대비 효용이 뛰어난 상품만 골라 매우 합리적으로 구매하려고 하죠. 한정된 자원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가장 적은 비용으로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어내는 ‘체리슈머’가 등장하며, 알뜰 소비의 패러다임과 방법론이 한층 진화하고 있어요.

 

# 불황대처 소비자로의 진화, ‘체리슈머’

구매는 잘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따먹는 소비자를 '체리피커(cherry picker)'라고 불러요. 케이크 위의 달콤한 체리만 쏙쏙 빼먹듯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챙긴다는 의미지요. 반면 '체리슈머(cherry-sumer)'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 알뜰하게 소비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가리켜요. 체리피커에는 부정적인 얌체 느낌이 있다면, 체리슈머는 불황에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 절약을 실천하는 합리적 소비자라는 의미가 뒤따릅니다.

 

극한의 ‘짠테크’를 추구하는 체리슈머의 모습은 여기저기서 관찰됩니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같은 OTT 서비스 이용자의 구독 형태가 크게 변하는걸 볼 수 있습니다.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때는 구독을 중지하고, 이용하고 싶을 때 재개하는 징검다리식 구독 행태를 보이는 것이죠.

 

체리슈머는 긴 계약 기간이 부담스러워 초단기 계약을 선호하며, 하루 전에 갑작스럽게 예약을 취소해도 위약금이 없는 유연한 계약을 원해요. 이들은 정해진 소비 방식을 그대로 쫓기보다는 거리낌 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며 효용을 극대화하는 지출을 선택합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한 ‘무지출 챌린지’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지출’이 아닌 '챌린지’라는 것이죠. 요즘 소비자들은 SNS를 통해 지출 내역을 인증하거나 하루에 한 푼도 쓰지 않는 자신만의 절약 노하우를 자랑하듯 공유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 명품 언박싱 대신 '가계부 언박싱' 영상을 찾아보고, 습관 형성 앱을 사용해 '함께 가계부 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정가보다 5~10% 할인하는 지역화폐를 사기 위해 수강 신청하듯 '광클' 전쟁을 벌이기도 한답니다. 매일 앱에 접속해 포인트를 받거나, 하루 1만 보를 걸어 140원을 모으는 이른바 ‘디지털 폐지 줍기' 등에 열중한답니다.

 

2023년 체리슈머의 등장은 '불황대처’ 소비자로의 진화라고 할 수 있어요. 실질구매력이 감소했다고 소비를 무조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차선을 찾아 함께 절약하며 극복하는 것이죠. 더불어 체리슈머의 소비 행태를 돕는 다양한 앱과 플랫폼이 등장하며 알뜰소비 서비스 환경도 만들어지고 있답니다.

 

# 체리슈머의 세 가지 소비 전략

체리슈머의 알뜰살뜰 소비 전략은 크게 조각, 반반, 말랑 전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소소익선을 추구하는 ‘조각 전략’

체리슈머의 첫 번째 전략은 '조각내기'입니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필요한 만큼 만 쪼개 소비하고 실속을 챙기죠. 체리슈머는 대용량 제품의 단가가 더 싼 것을 알면서도 소포장을 좋아합니다. 당장 지출되는 비용이 적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다다익선의 반대인 소소익선을 추구하는 셈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상황은 '대형마트 농산물 무포장 낱개 판매' 정책인데, 채소나 과일 같은 신선식품을 따로 포장하지 않고 진열대에 쌓아 둔 채 낱개로 판매하는 가리킵니다. 소비자는 원하는 양에 딱 맞게 살 수 있고 생산자는 포장 부담이 줄어 모두에게서 환영받고 있답니다.

 

체리슈머의 소포장 사랑은 ‘편의점 장보기'로 이어집니다. 간편식만 팔던 편의점에서 이제 4분의 1통 양배추, 깻잎 두 묶음 등 소포장 신선 제품도 내놓고 있어서 편의점에서 하루 이틀 치 장을 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어요.

 

맥주나 와인 등 주류도 소용량 판매가 인기랍니다. 500ml짜리 술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들은 혼자 가볍게 마시기 좋은 250ml나 355ml짜리를 선호하죠. 오프라인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엿보이는데, 롯데쇼핑이 운영하는 '보틀벙커'는 테마별로 다양한 와인을 한 잔씩 계산해 시음할 수 있는 와인 테이스팅 탭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답니다. 80여 종의 와인을 50ml 단위로 구매할 수 있고, 가격도 1,000~8,000원대로 부담도 적답니다.

 

샘플 키트로 여러 신제품을 소소하게 즐기는 소비자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뷰티 업계는 샘플 키트나 트라이얼 키트를 선보이며 이러한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답니다. 본 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하나의 제품 라인 전체를 일주일 동안 체험해볼 수 있어서 체리슈머의 관심을 끌고 있어요.

요즘 소비자들은 명품도 조각내어 향유합니다. 불황기에 증가하는 스몰 럭셔리를 다시 조각내 '타이니 럭셔리(tiny luxury)'라고 부른답니다. 최근 Z세대에서 유행하는 '빈티지 럭셔리 단추 액세서리'가 대표적으로, 명품 액세서리를 직접 구매하기보다 명품 의류의 빈티지 단추에 부자재를 달아 귀걸이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로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구매합니다. 그래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도 '샤넬 단추’나 '루이비통 단추' 등 명품 단추가 디자인과 색상에 따라 6~7개에 40~7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답니다.

 

비용과 효용을 나누는 ‘반반 전략’

체리슈머의 두 번째 전략은 함께 모여 소비하는 반반 전략입니다. 꼭 사고 싶지만 혼자서 비용을 내기에 부담스럽고 조각내기도 어려운 것을 구매하기 위해 체리슈머는 비용과 효용을 나눌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치솟은 배달비를 아끼기 위해 입주민이 함께 음식을 주문하는 ‘배달공구’가 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데요. 입주민 오픈채팅방에 "치킨 드실 분?”이라고 메시지를 올리면, 주문하고 싶은 2~3가구가 참여해 각자 원하는 메뉴를 시키고 배달비는 N분의 1로 나눠서 주문한 사람에게 입금하는 방식이랍니다.

 

이들은 비용을 나눌 때도 깔끔합니다. 카카오톡의 '1/N 정산하기' 기능을 활용해 자투리 금액까지 완벽하게 나눠 누구도 비용을 더 내거나 덜 내지 않고 공정하게 분할한답니다. 정확히 나누어지지 않아 1~2원이 남더라도 카카오페이에서 부담해 주니 금상첨화죠. 요즘 소비자들이 N 분의 1로 나눠서 결제하는 'N 띵'에 얼마나 진심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반반 전략을 적극 활용하는 체리슈머들은 SNS나 중고시장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이들은 '0.5개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SNS나 중고 거래 앱에서 대량 판매 상품을 소분하여 재판매하거나 소분된 상품을 구매해요. 소분 거래는 고물가 시대를 견디는 방편으로 활용되면서도 단순한 절약을 넘어서 재미와 성취감을 선사하는 놀이이기도 하답니다.

 

공동구매가 주목받으면서 관련 플랫폼 시장도 뜨겁게 반응하고 있어요. 당근마켓은 동네 이웃이 최대 4명까지 모여서 같이 사고 나누는 '같이 사요' 서비스를 선보였어요. 또 OTT 구독료나 택시비 등 특정 요금을 함께 낼 사람을 찾아주는 플랫폼도 인기랍니다. 이런 앱과 플랫폼은 함께 구매할 사람을 찾는 수고와 공평하게 정산하는 번거로움을 해결해 줘서 효용을 극대화해 준답니다.

 

지출을 유연하게, ‘말랑 전략’

체리슈머의 마지막 전략인 말랑 전략은 장기 계약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계약해 유연한 소비를 추구하는 전략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해지할 수 있는 유연성을 통해 소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며 '지출의 자유'를 만끽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요. 유연한 계약 조건은 장기 계약 보다 추가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체리슈머는 계약의 재량을 보장받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 구독 경제 분야에서 매월 결제 비용이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이 '구독료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가장 돋보입니다. 본전을 뽑을 수 없는 구독 서비스는 과감히 해지하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결제하여 사용하는 징검다리식 구독 전략을 구사합니다. 기존의 구독 서비스가 가성비나 새로운 경험 등의 혜택에 초점을 맞췄다면, 체리슈머에게는 '유연한 관리'라는 키워드가 덧붙는 것이죠.

 

매월 소믈리에가 엄선한 전통주를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 '술담화’에는 '쉬어가기' 옵션이 있는데요. 이번 달의 술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지난달에 받은 술이 남아 있으면 건너뛸 수 있어요. 매출에는 마이너스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해 좋은 반응을 끌어내며 구독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답니다.

 

최근 통합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 LG U+와 SKT 역시 구독 관리의 편의성에 주목하는 모습입니다. '선택제한, 요금 부담, 해지 불편'이 없음을 내세우며 소비자가 언제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원하는 서비스만 골라서 구독하고, 매월 다른 서비스로 바꿀 수 있다는 특장점을 가져요.

 

# 욜로 소비자들이 체리슈머가 된 이유

체리슈머의 등장은 최근 경제 악화에 따른 것이지만, 1인 가구가 늘어 작고 유연한 소비를 선호하게 된 구조적 변화이자 앞으로 계속될 추세적 변화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똑똑하고 창의적인 MZ세대의 성향이 체리슈머 트렌드를 가속화하고 있답니다.

 

피부로 와 닿는 경기 불황과 1코노미의 발전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와 '플렉스(과시)'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하루아침에 실속 소비에 몰두하는 것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불안이 실제적 위협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하는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 분석에 따르면, 15~29세 청년들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지수는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게 나타난답니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소비자물가가 급등하면서 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심화한 것이죠. 청년층이 이런 난관을 타개할 방법은 체리슈머로 거듭나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여 200% 활용하는 방법뿐이죠.

 

체리슈머 트렌드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3%로 사회 주류가 되면서 작고 유연한 소비를 선호하게 된 구조적 변화에도 기인합니다. 저비용, 고효율 소비는 대가족에서 실천하기 쉬워요.

 

예를 들어, 100만 원짜리 냉장고를 4인이 사용하면 1인당 지출은 25만 원이지만, 1인 가구는 같은 냉장고를 사더라도 그 비용을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하죠. 체리슈머는 철저히 1인 중심으로 재편된 살림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소비지출을 관리해야 해요. 작고 유연한 소비를 즐겨왔던 1코노미 소비자들이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온 경기 불황을 만나 체리슈머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 but 똑똑하고 창의적인 세대

체리슈머를 이끄는 MZ세대는 저성장 시대에 태어나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로 알려져 있어요. 이들은 "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고 하지만, 정작 성인이 되고 보니 내 집 한 칸 마련하기도 벅찬 상황이죠. 그러나 어릴 적부터 고급 경험을 많이 해온 터라 취향의 수준은 높답니다.

 

이처럼 욕망은 넘치지만, 자원은 한정된 삶을 사는 이들이 치밀한 재무 관리에 몰두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어요. 이 세대는 어떤 세대보다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즐깁니다.

 

무조건 싸게 구매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아는 MZ세대는 자신의 현재 경제 상황과 니즈 간의 밸런스를 찾아 나갑니다. 정형화된 시간, 공간, 단위에 굴복하지 않고 때로는 본인 스스로, 때로는 타인과 함께 창의적인 방식을 도출해 내며 자신의 욕망을 현명하게 관리하죠.

 

평소 먹고 싶었던 와인을 한 병이 아닌 한 잔만 사서 마셔보고, 구독하는 OTT의 계정을 타인과 공유하여 비용을 나누는 등의 소비 방식들은 모두 이러한 지혜의 일환이라 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에 능하고 영리한 소비에 도가 튼 MZ세대의 성장이 체리슈머의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답니다.

 

# 문간에 발 들여놓기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자들의 대처라는 시각에서 보면 체리슈머의 등장을 일시적인 변화로 바라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생겨난 현명한 소비 관리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경기가 좋아져도 계속 발전해 나갈 추세적 변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기업은 그동안 체리슈머를 불황 속에서 꼼수를 부리는 소수의 특이한 소비자로만 바라봤다면, 이제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답니다. 공짜만 바라는 블랙컨슈머로 오인하거나 싸게 사기에 급급한 체리피커 소비자라고 간과해서도 안 되는 것이죠. 작고 유연한 소비를 원하는 체리슈머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똑똑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회심리학에는 '문간에 발 들여 놓기 전략(foot-in-the-door technique)’이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어요.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프리드먼(Jonathan Freedman)과 스콧 프레이저(Scott Fraser)가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고안해 낸 것이에요. 어떤 큰 부탁을 하기 전에 문간에 발만 먼저 들여놓듯, 작은 부탁을 먼저 해서 허락을 받고 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큰 부탁을 했을 때 더 쉽게 허락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설득 기법이라고 합니다.

 

이를 체리슈머에게 적용하면 작은 샘플이나 아주 짧은 기간 특정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무언가를 한 번 경험한 체리슈머는 그 브랜드의 문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셈이니까요.

 

이는 브랜드의 친숙도 향상과 브랜드 내 다른 상품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될 수 있어요. 작은 경험이 일종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어 이후 더 큰 구매라는 성과로 돌아올 수 있죠. 기업마다 저가 라인이나 엔트리 라인을 구축함으로써 브랜드 친숙도를 높이고 제품 생태계를 탄탄히 만드는 전략이 필요해 보여요.

 

소비자는 이제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구매자이자 사용자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배분자이며, 최근에는 시장에 새로운 상품을 출현시키도록 돕는 창조자의 역할까지 맡고 있어요. 소비자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소비자가 소비의 주체성을 갖고 시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불황으로 소비자와 기업 모두 큰 어려움에 맞닥뜨리고 있는 가운데, 지금이야말로 소비자와 기업이 힘을 합쳐 국가 경제 전체가 새로운 변신의 계기를 모색하고 공생, 공영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자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