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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금융센터에 상표권이 있을까?

분주한 도심 풍경이 펼쳐집니다. 건물 옥상에 숨은 저격수, 배우 정우성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타깃을 훑어봅니다. 천천히 이동하는 카메라 동선 안에서 빼죽한 형태로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 하나. DB금융센터가 스쳐 지나갑니다. 영화 '감시자들' 속 한 장면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움직이는 배우를 따라가다보면 배경에 건물이 그대로 노출되는 일이 많습니다. 사각 사각 네모진 건물들 속에서 비스듬하게 중첩된 옆선으로 눈에 띄는 DB금융센터는 건물 명을 가려놓아도 형상으로 인지됩니다. DB 임직원이라면 그림자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러한 건물의 디자인 형태는 상표권으로 등록될까요?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면 상표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영화 '감시자들' 캡쳐>

먼저 유명한 건물이 등장하는 헐리웃 영화 두 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미션임파서블 3'입니다. 초고층 건물을 넘나드는 톰 크루즈의 모습과 함께 멋들어진 상해 야경의 아름다움을 보실 수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죠. 영화 속에서도 눈에 띄는 '동방명주'는 중국 상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물입니다. 커다란 구슬 세 개를 건물에 꿰어 놓은 듯한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 상해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두번째, 미국 맨해튼의 트럼프타워는 어떨까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마고 로비를 상대로 바람을 피우며 코카인을 흡입하다가 아내에게 들킨 장소가 바로 트럼프 타워 현관 앞이었습니다. 주인공이 부자들의 세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죠.

 

두 건물은 모두 독특한 형태를 나타내도록 상표권을 등록했지만, 영화에 등장한 것 만으로 상표권이 침해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 건물들은 각 도시를 나타내는 배경으로서 존재했을 뿐입니다.

<왼 : 동방명주 / 오 : 트럼프타워>

영화나 드라마 속 건물들은 지명과 비슷한 취급을 받습니다. 건물이 그 자체의 독특한 형태로 인해 랜드마크화 했다 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공공장소에 지어진 건물은 거리나 도시 풍경을 만드는 부속물 같은 요소로 존재합니다. 

 

영화가 아닌 다른 창작물은 어떨까요? 한 사진작가가 명확하게 상업적 의도를 가지고 건물 사진을 찍어서 판매, 수익을 창출했지만 상표권에 저촉되지 않은 유명한 판례가 있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박물관(Rock & Roll Hall of Fame & Museum)이 있는데요. 엘비스, 롤링스톤즈 등 유명 락스타의 이야기와 유품이 잠들어있는 곳으로 상표권이 등록된 건물입니다. 한 사진작가가 Rock & Roll Hall of Fame & Museum 의 사진을 찍어 포스터로 판매하다가 박물관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는데, 무혐의로 종결되었습니다. 이 건물과 유사한 형태의 건물을 짓는 것은 허용할 수 없지만, 공적인 공간에 지어진 건물의 사진을 찍어 포스터로 판매하는 행위는 상표권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입니다. 이쯤 되면 건물주는 조금 억울할 수 있겠습니다. 공들여 만든 사유재산, 창작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법적인 보호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드네요.

 

<로큰롤 명예의 전당 / 출처 : 홈페이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 역할로 등장한 건물은 대체로 긍정적 홍보효과를 누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유명한 건물의 외관을 본 따 비슷한 형상의 건물을 따라 짓거나, 널리 알려진 특정 기업 소유의 건물을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악당의 근거지로 묘사하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질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행위는 부정경쟁 또는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어 법적인 조치가 가능합니다. 타인의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에 무단 편승하거나, 타인의 명성에 손해를 입히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사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강남 신논현역 사거리에는 벌집모양이 눈에 확 들어오는 어반하이브 빌딩이 있습니다.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2009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죠. 2017년 이후 두 차례 상표 등록을 요청했었지만 거절되었습니다. 동그란 구멍이 촘촘히 뚫린 외관이 인상적이긴 하나, 상표로 등록하여 특정인에게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할 만큼 독창적이진 못하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아직은 건물의 형태를 통해 저작권을 인정하는 풍토가 정착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어반하이브 빌딩 / 출처 : 아르키움 건축사무소>

특정 기업이 떠오르는 독특한 빌딩들을 떠올려봅니다. 여의도 63스퀘어, 을지로입구 SKT 본사, 잠실 롯데월드타워, 테헤란로 DB금융센터 등의 건물은 눈에 띄는 형태로 각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죠.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건물 형상의 상표권 등록은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매체가 다양해진 만큼 상표권, 초상권, 저작권 분쟁은 점점 세분화되고 기준 또한 강화되고 있습니다. DB금융센터를 건물 형상 상표권 목록에서 찾을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은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