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Ⅰ김민경 푸드 칼럼니스트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코로나19라는 뜻밖의 재앙은 우리의 일상을 고꾸라뜨렸고, 봄이라는 찬란한 계절을 만끽하는 감상 따위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자연은 순리대로 흐르고 있다. 농부와 어부 같은 생산자들은 이때를 놓치면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기에 하루하루 가꾸로, 기르고, 거두어야 한다. 봄엔 수많은 생명이 움튼다. 강건한 기운을 품고 있어 몸에는 약이 되고 마음에는 기쁨을 주기에 충분하다. 산과 밭에 움트는 쌉싸래한 나물이며 싹들도 좋지만 바다를 누비는 힘찬 생명력으로부터 기운을 얻는 방법도 있다. 바로 멸치이다.

영양도 쓰임새도 다부진 멸치

멸치는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다 생선이다. 마른 멸치는 다양한 재료와 조화를 이루며 온갖 국물의 바탕 재료가 되며,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조리해 반찬으로 즐겨 먹는다. 종류마다 값 차이가 나지만 호주머니 가벼운 이도 멸치로 맛을 내는 요리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작은 몸뚱이에는 영양이 가득하다. 칼슘, 칼슘,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고, 타우린, 셀레늄, 비타민 D까지 함유하고 있다.

 

쓰임은 얼마나 또 다양한가. 최근에는 가다랑어 포를 대신할 훈연 멸치가 등장하여 화젯거리가 되었다. 주로 국물용으로 사용하는 큼직한 크기의 마른 멸치에 연기를 쐬어 특유의 향을 입히고 보존성을 좋게 한다. 이를 활용해 국물을 내면 멸치 특유의 구수하고도 깊은 맛에 달큼한 감칠맛과 시원함, 먹음직스러운 향이 더해진다. 일본 풍미가 필요한 우동, 전골, 샤브샤브, 덮밥, 찜 등도 가능하니 멸치 국물 하나로 요리의 폭이 몇 배는 넓어진다.

 

멸치젓은 또 얼마나 다채로운가. 건더기를 건져 다져 먹기도 하고, 맑은 액젓만 요리에 쓰기도 하며, 끓여서 진젓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조그마한 몸집이 소금과 만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만 가지 맛으로 변하고 또 변한다. 멸치젓은 삭은 정도에 따라 무침, 김치, 국물요리, 고기 쌈장, 양념장 등으로 두루 사용된다.

 

마른 멸치의 크기별 쓰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지만 최근에는 잔멸치를 활용해 맛밥을 지어먹는 게 유행이다. 싱싱한 잔멸치를 밥에 얹어 간을 하여 먹는 일본식 덮밥이 원조 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싱싱한 잔멸치를 구하기도 어렵고 물컹하고 우물우물한 맛이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기에 마른 잔멸을 더 애용한다.

 

3월이면 우리나라 남쪽 바다에는 멸치잡이가 한창에 이른다. 이는 5월까지 이어진다. 봄 멸치의 독특하고도 뛰어난 맛은 조선시대부터 손에 꼽힐 정도로 인정받았다. 갓 잡은 봄 멸치는 남자 어른 손가락만 한 굵기로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으며, 반짝반짝 윤기 나는 은빛 몸통에 둥글고 깨끗한 눈을 하고 있다. 멸치는 한자로 멸치(蔑致), 멸어(滅魚), 수어(水魚)라고도 불린다. 멸치와 멸어는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는 뜻의 이름이고 수어는 물에서 나는 물고기의 대명사라 붙은 이름이다.

 

살이 많고 다디단 봄 멸치는 회를 비롯해 다양하게 조리해 즐긴다. 신선한 멸치는 핑크빛이 도는 살집을 갖고 있으며 굉장히 부드럽고 은은하며 담백한 향이 난다. 비리거나 잡스러운 맛은 일절 찾아볼 수 없다. 대가리, 내장, 뼈를 제거하여 살만 바른 멸치를 한 움큼 집어 미역, 김치, 마늘, 고추 등과 함께 초장에 콕콕 찍어 먹는다. 깻잎이나 김에 한가득 올려 쌈으로 먹어도 맛있다. 통통하고 보들보들한 살집에서 얼마나 고소한 맛이 우러나는지 모른다.

 

미나리, 쑥갓, 돌나물 등의 향긋한 봄 채소, 고추장, 고춧가루, 식초 같은 양념 그리고 고추와 마늘, 움파 등을 잘게 썰어 넣고 칼칼하게 버무려 참기름 똑 떨어뜨려 무침 회로 먹기도 한다. 무침 회 한 숟가락을 뜨거운 밥에 올려 먹는 맛은 봄에만 만나는 행운 그 자체이다. 통째로 옷을 입혀 튀기기도 하며, 크기가 작은 멸치는 전을 부쳐 즐긴다. 얼큰하고 시원하게 매운탕으로 즐기기도 하며 생멸치에 소금을 뿌려 석쇠에 구워 꼭꼭 씹어 먹는 맛도 재밌다. 봄이 완연한 때부터 더위가 오기 전까지 기장, 통영, 남해 등에 가면 다양한 멸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봄 멸치, 가정에서 색다르게 맛보는 방법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올해의 봄처럼 발이 묶인 때에는 봄 멸치를 이대로 놓쳐야 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최근에는 봄 멸치의 살만 깔끔하게 발라 택배를 보내주는 곳이 꽤 생겼다. 뼈, 내장, 대가리만 없으면 조리하기는 수월하다. 골뱅이 무치듯 버무리고, 매운탕에 넣고, 버터나 오일에 허브와 함께 볶아도 맛있다.

 

마지막으로 비장의 가정식 ‘안초비(anchovy)’가 있다. 본래 안초비는 ‘멸치’라는 뜻이지만 어쩌다 보니 ‘서양식 멸치 절임’을 부르는 말로 통한다. 안초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싱싱하고 통통한 멸치 살이 필요하다. 멸치 살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간수 뺀 천일염에 절인다. 이때 내장을 발라 낸 살집 사이사이까지 골고루 소금을 넣고, 멸치를 소금으로 뒤덮는다는 생각으로 절여야 간이 골고루 배고 숙성이 잘 된다.

 

냉장실에 30일 이상 두면 소금이 모두 녹고 멸치의 수분이 빠져 쪼글쪼글 단단해진다. 숙성한 멸치는 막걸리, 소주, 식초 중에 한 가지로 주물러 헹군다. 육질의 탄력이 살아나고 잡냄새를 제거하는데 효과적이다. 이때 멸치 맛을 보면 짠맛이 세지만 쫄깃하게 전해지는 감칠맛이 굉장하다. 잘 씻은 멸치의 물기를 완전히 제거했다면 오일에 넣어 저장한다. 그전에 식초에 2시간 정도 담가 육질에 탄력과 맛을 더하기도 한다.

 

오일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해바라기, 포도씨, 카놀라 오일 같은 식물성 기름을 반 정도 섞으면 된다. 올리브 오일만 넣으면 냉장 보관 시 딱딱하게 굳기 때문이다. 오일 저장 시 로즈메리, 월계수 잎, 타임, 마른 고추, 마늘 등을 넣어 은은하게 향과 맛을 입혀도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일이 멸치를 완전히 덮어 공기가 통하지 못하게 해야 오래 두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10일 정도 냉장실에서 숙성하면 맛 좋은 안초비가 된다.

 

안초비는 레몬즙을 짜 넣고 통째로 빵이나 크래커에 올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 잘게 썰어 다진 양파와 함께 파스타 소스를 만들면 풍미 가득한 요리가 완성된다. 안초비와 오일, 마늘, 올리브를 섞어 곱게 갈아 페이스트로 만들면 브루스케타 스프레드로 활용하고 파스타와 버무려도 맛있다. 반찬이 부실할 때 짭조름한 젓갈에 흰밥 곁들여 먹듯이 안초비 역시 쓸모가 가득한 저장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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