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제철 과일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요즘은 먹고 싶은 과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도 다른 계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게 바로 여름 제철 과일이다. 싱그러움으로 무장한 여름 과일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여름, 왠지 그리움 가득한 계절

달덩이 같은 수박을 떠올리면 나는 늘 같은 시간으로 돌아간다. 예닐곱 살 때 긴 복도로 이어진 아파트에 살았다. 엘리베이터 양옆으로 늘어선 복도에는 전부 아는 사람들이 살았다. 내 친구 혹은 오빠 친구, 그도 아니면 엄마 친구들이었으니 말이다. 푹푹 찌는 여름날만 되면 엄마는 부엌칼로 한 번에 다 자르지 못할 만큼 큰 수박을 가르고 썰어 쟁반에 끌어 담았다. 그리고는 제일 끝집으로 들고 가 이미 펼쳐놓은 복도 위 돗자리에 내려놓는다. 엉덩이 붙일 자리도 부족한 돗자리 위에는 수박, 가래떡, 부침개, 마늘, 쪽파 같은 온갖 재료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엄마들은 말동무가 되어 채소를 다듬고, 아이들은 수박 한 입 물고 복도 이 끝 저 끝을 오가며 뛰어놀았다. 덕분에 수박은 내게 언제나 달콤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과일이다.

 

사과나 오이 대신 복숭아

꽃향기가 은은히 퍼지는 백도는 씹는 맛은 아삭한데 과육은 연하다. 단맛에 손질까지 간편해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해산물과 두루 어울리는데 맵고, 시고, 짠 양념과도 손발이 맞는 여름 한철만 나오는 과일이라 조리법을 외우기가 쉽지 않지만 공식은 간단하다. 사과나 오이를 사용하던 자리에 복숭아를 넣으면 된다. 이 공식만 알고 있으면 백도를 활용해 샐러드, 차가운 국수류의 토핑, 샌드위치, 쌈이나 롤, 한국식 무침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추나 상추를 넣고 만드는 매콤한 겉절이에 복숭아를 얇게 썰어 함께 버무려 먹는 것을 추천한다. 삶은 돼지고기, 닭백숙, 삼겹살 구이 등과 곁들여도 색다른 풍미를 맛볼 수 있다.

 

무더위에 입맛이 싹 달아났다면 복숭아를 활용해 간단한 샐러드 한 접시를 만들어도 좋다. 단단한 백도와 모차렐라 치즈를 도톰하게 썰어서 켜켜이 담아 색다른 ‘카프레제’를 완성한다. 카프레제는 본래 단단한 토마토로 만들지만 복숭아가 맛은 한수 위다. 바질 잎을 찢어 군데군데 올리고,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뿌린 다음 소금, 후추로 간을 살짝 한다. 발사믹 식초가 없다면 레몬즙이나 화이트 와인 식초 등 무엇이든 새콤한 맛의 재료를 뿌리면 된다.

 

복숭아를 설탕에 살짝 절이면 활용도는 더 높아진다. 잼을 만들 때처럼 설탕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복숭아 양의 1/3정도만 넣고 뒤적거려 두면 설탕이 녹으면서 자연스럽게 절여진다. 절일 때 얇게 썬 생강이나 레몬 제스트(레몬 껍질을 간 것), 바닐라빈, 계피 등 좋아하는 향이 나는 재료를 함께 넣어도 된다. 이를 냉장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탄산수, 얼음과 섞어 음료를 만들어 먹거나, 다른 과일과 함께 곱게 갈아서 주스로 만들어도 좋다. 절일 때 복숭아를 조금 잘게 썰면 아이스크림, 팥빙수, 소르베, 요거트 위에 올려 새콤달콤하게 즐길 수 있다. 말랑하고 큼직하게 조린 복숭아는 볶은 견과류나 바삭하게 구운 빵과 곁들여 잼처럼 먹을 수 있다.

 

디저트와 샐러드까지 가능한 만능 여름 과일

여름 날 야외로 놀러간다면 식감이 단단하고 단맛과 신맛이 조화로운 살구를 구워 먹어 보자. 의외로 별미다. 고기, 새우, 소시지 등을 구울 때 살구를 함께 구워 소금 간을 하거나 레몬즙을 뿌려 먹으면 된다. 이렇게 먹으면 미처 알지 못했던 살구의 진한 풍미를 맛볼 수 있다. 살구와 복숭아는 치즈와 잘 어울린다. 도톰하게 썰어서 치즈 플레이트에 얹기만 하면 끝. 꿀이나 과일 잼을 곁들여도 환상 궁합을 자랑한다. 살라미, 프로슈토, 하몽, 구운 베이컨 같은 육류 가공품과도 잘 어울리니 꼭 시도해 볼 것!

 

물이 많은 자두는 소르베로 만들어 보자. 믹서에 새빨간 자두와 시럽을 넣고 갈아서 밀폐용기에 넣어 얼린다. 믹서에 갈 때 농도가 너무 진하면 물을 조금씩 넣어 입자가 골고루 곱게 갈리도록 해야 한다. 언 자두를 꺼내 포크로 열심히 긁어 입자를 부순다. 다시 냉동실에 넣고 얼린다. 그리고 한 번 더 포크로 긁는다. 이유는 입자를 곱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 과정을 두 세 번 반복한 뒤, 먹을 때는 숟가락이나 포크로 언 자두를 긁어서 그릇에 담아 시원하게 즐기면 된다.

 

여름 과일의 절정인 수박은 샐러드에 안성맞춤이다. 우선 셀러리를 도톰하게 썰고, 한 입 크기로 썬 수박과 함께 섞는다. 드레싱은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 화이트와인 식초면 된다. 가능하다면 블랙 올리브나 커민 같은 독특한 재료도 곁들여 볼 것. 훨씬 개성 넘치는 맛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멜론, 오이, 수박을 섞고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하는 것이다. 수박셀러리샐러드를 만들 때 사용한 드레싱에 설탕만 살짝 더해 여기에 뿌린다. 무슨 맛이 날까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고? 아마 먹어 보면 여름에 태어난 세 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얼마나 신선하고 풍성한 맛을 내는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재료는 감자 필러로 얇고 길게 저며 썬 뒤 섞으면 식감, 맛, 향, 모양이 한결 살아난다.

 

여름 내내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참외는 입맛 돋우는 밥반찬이 된다. 도톰하게 썰어 씨를 제거하고 과육만 소금에 살짝 절이면 단맛이 좋고, 물기가 적은 오이와 비슷해진다. 절인 참외와 채소를 섞어 겨자 양념에 버무리면 개운한 맛이 아주 좋다. 특히 구운 오리고기와 곁들이면 맛이 한결 좋다. 절인 참외의 물기를 꽉 짠 다음 뜨거운 프라이팬에 볶아서 깨소금, 참기름에 버무리면 고들고들 씹는 맛이 좋은 여름 밑반찬이 된다. 볶은 참외는 비빔국수와도 잘 어울린다.

댓글 0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