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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소비주체 영포티! 아재 혹은 철없는 둘째?

트렌드리포트

40대 파워

'영포티'를 말하다

By글 |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둘째 아이 신드롬(Middle Child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있다. 첫째처럼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막내처럼 귀여움도 받지 못하는 둘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용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둘째들은 적자생존 기술들을 습득하며 성장한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둘째들’이 있다. 만 40-45세를 지칭하는 영포티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둘째라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이들은 젊은이들에게는 ‘아재’ 취급을 받고, 윗세대들에게는 ‘철없는 둘째’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왕성한 자기표현 욕구를 바탕으로 대중문화의 생산주체이자 소비 중심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영포티, 그들에 대해 알아본다.



영포티(Young Forty)는 1972년을 전후해 태어난 만 40-45세의 연령대를 지칭한다. 한국에서 40대 초반은 가장 활발한 경제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10년까지 영포티는 80% 전후의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생산가능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2%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포티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대단히 높은 수치인 것이다.


그러나 경력차원에서 영포티는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가정에서는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함께 회사에서는 중간 간부 정도의 책임을 지닌다. 그들은 이미 10년 이상의 직장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 앞으로도 10년 내외의 직장생활을 더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한국의 평균 퇴직 연령이 54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40대 초반은 직장에서 평균적인 커리어의 중간 과정을 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구 규모 차원에서 본다면, 현재의 영포티는 가장 큰 규모의 인구집단이다. 영포티는 1970년대 초 고출산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들이 40대 초가 되는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가장 큰 인구집단으로 남아있다. 2015년 영포티는 440만 명에 달해, 영세아(0-4세) 229만 명보다 거의 두 배 정도 더 많았다. 이들은 자연히 생산, 소비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이 되었다. 인구 규모는 노동력과 동시에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런 점에서 당분간 40대 초반 인구 집단이 한국 경제의 중심으로서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영포티는 인구 규모는 가장 크지만, 세대 내 소득불평등은 전체 연령 세대 중에서 가장 낮다. 2015년 한국의 세대 내 소득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를 살펴보면, 40대 초반이 가장 낮았고, 40대 초반 전후로 지니계수가 커져서 U자형 분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포티의 평균 가구소득 454만원은 40대 후반 490만원이나 50대 초반 484만원에 비해서 약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전체 소득분포에서 중간층을 구성하는 비율이 가장 높아서 한국 중산층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40대는 대부분 결혼을 해서 학생 자녀를 두고 있다. 자녀수가 줄면서 자녀에 대한 교육투자 역시 집중될 수 있었기 때문에, 자녀 1인당 교육 투자는 증가하고 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더욱 커졌다. 영포티도 교육이 경쟁력을 높이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해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를 상당히 하고 있다.



또한 영포티는 부모 봉양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족관계에서도 중간에 위치하여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자녀수가 감소하면서 양육 부담은 적어졌지만, 부모의 고령화로 인한 부담이 커지면서 ‘끼인 세대’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가족 내 남성들의 역할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영포티의 가족 관계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시대에나 영포티로 불리는 연령대는 존재했다. 40대 초반이 수행하는 경제활동이나 가족생활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속성들도 있다. 이것은 2010년대의 영포티와 1990년대 영포티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차이는 주로 사회문화적 차이들이다.



오늘날 영포티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복합적인 속성을 지닌 집단이다. 복합적인 속성은 그들이 경험한 사회변화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 영포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청소년기에 경험했다. 해외여행조차 어렵던 시대에 대규모 글로벌 행사가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었고, 올림픽을 계기로 청소년 시기에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세상이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어린 시기에 알게 된다. 공산권 국가들이 올림픽에 대거 참가하면서, 공산권 국가에 대한 선입견도 크게 약화되었다. 이들이 10대 후반 때인 1992년 공산국가인 중국과의 수교를 시작으로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구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도 이루어졌다.



경제적으로도 복합적인 경험을 하였다. 80년대 3저(저금리·저유가·저달러) 호황기에 풍요로운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청년기에는 외환위기의 고통을 겪었다. 세계화 열풍이 불어 닥치고, 1996년 한국이 OECD에 가입하면서 한국은 동아시아 신흥공업국 가운데 가장 앞서 가는 나라로 여겨졌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 외환위기로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장밋빛 미래는 암울한 현실에 의해서 부정되었다. 영포티는 청년기 취업난이라는 시련을 경험하였고, 그 이후 노동시장의 불확실성 증대로 인하여 삶의 불안을 심각하게 경험하였다. 세계화의 명암을 동시에 경험한 세대인 것이다.


이들은 문화적으로도 복합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 대중문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청년기를 한류와 함께 시작한 세대이다. 한국의 대중음악과 영화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의 환호를 받으면서, 영포티는 서구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기성세대와는 다른 세대가 되었다. 또한 인터넷과 휴대폰의 보급으로 디지털 혁명을 일찍부터 체험해, 기성세대와 달랐다. 이런 점에서 영포티는 한국 역사상 청년기에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경험한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영포티는 문화와 소비에서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현재의 삶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포티는 연령 집단 중에서 소비생활과 여가활동에 가장 적극이다. 이들은 연령 집단 중에서 소득이 가장 높진 않지만, 소득 대비 지출은 가장 높다. 외식과 여행을 자주 해 소득 대비 음식, 숙박비, 오락, 문화비 지출이 가장 높다. 영포티는 소득 중에서 주택과 관련된 지출 비중이 가장 높은 연령 세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높은 문화와 소비 지출은 매우 두드러진 특징이다.



적극적 문화소비자로서 영포티는 한국 사회를 새롭게 변모시키고 있는 주역들이다. 이들의 문화적 풍향계에 따라서 문화 소비의 방향이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편으로 ‘대중 만화의 세대’이자,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 게임으로 이어지는 ‘게임 세대’라는 점에서 과거 대중적 오락의 틀을 벗어난 세대이다. 과거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저급한 놀이이며, 소수 일탈 학생들의 문화라고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완전히 바뀌어, 만화와 게임은 이제 대중문화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전대미문의 빠른 변화를 거듭해 왔다. 바로 그것이 세대 간 갈등의 증대 원인이 되었다. 각 세대마다 각기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가치관과 규범이 다르고, 현실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이러한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세대가 영포티이다. 이들은 경제, 가족생활, 정치와 문화 모든 영역에서 세대 간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동시에 영포티는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영포티의 취향과 선호가 한국사회 변화의 방향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역할은 현재의 영포티 세대가 더 나이 먹은 뒤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포티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늠자의 역할은 문화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미래는 현재의 영포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