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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맛집! 굴다리 식당, 명천슈퍼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오래된 음식은 버리는 게 상식이지만 묵으면 묵을수록 좋은 음식이 있다. 바로 김치다. 겨울철 김장김치는 봄이 지나면 신맛 때문에 그냥 먹기가 어려워진다. 이때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요리가 김치찌개다. 김치의 화려한 변신을 따라가 본다.


김치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다? 그렇지는 않다. 김치의 시작은 어딘지 알 수 없다. 기록상으로는 중국이 김치의 시작이다. <시경(詩經)>에 이미 공자가 김치를 먹었다고 했다. 공자가 먹었던 것은 오늘날의 오이지다. 오이를 삭힌 것은 맛이 시다. 공자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먹었다고 한다. 공자가 먹었던 것은 지(漬) 혹은 저(菹)였을 것이다. 중국은 김치를 널리 전하고 퍼뜨리지 못했다.



김치는 김치와 각종 삭힘 음식을 두루 포함한다. 우리의 장아찌나 서양 피클도 김치 종류 중 하나다. 채소 삭힘만 김치라고 하기도 어색하다. 넓은 의미에서는 각종 젓갈도 김치다. 생선이나 고기를 삭힌 것도 마찬가지다. 갈치 김치도 있고 예전에는 명태 김치도 있었다. 명태 살을 넣거나 갈치를 넣은 것들이다.



‘갱시기’를 만나다


10살 무렵이었다. 3월이면 늘 갱시기를 먹었다. 갱시기는 아마도 ‘갱식(更食)’에서 비롯된 표현일 것이다. 식은 밥에 김치, 콩나물, 두부 정도를 넣고 끓인 것이다. 누군가 꿀꿀이죽 같다고 했다. 문제는 이게 맛있다는 점이다. 뜨거운 기운에 훌훌 먹으면 제법 먹을 만하다.



갱시기는 3월이 제철(?)이다. 김장김치에서 군내가 나는 때다. 김장을 하고 약 100일이 가까워진다. 날씨도 따뜻하다. 김치에서 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버리기에는 아깝다. 갱식은 “다시 끓여서 먹는다”는 뜻이다. 만들기도 간단하다. 멸치 육수 정도면 충분하다. 어린 시절 먹었던 갱시기에는 큰 멸치가 통째로 들어 있곤 했다.


우리 집에서도 자주 먹었고 동네 사람들도 먹었다. 어린 마음에 전 국민이 매일 갱시기를 먹는 줄 알았다. 한참 후에 서울 생활을 하면서 갱시기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 갱시기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걸 알고 놀랐다.



마치 갱시기 같은 김치찌개


우선 갱시기에는 찬밥이 어울린다. 더운밥은 쉽게 풀어진다. 국물을 탁하게 만든다. 더운밥은 갱시기의 칼칼한 국물 맛을 해친다. 찬밥이 제격이다. 큰 냄비에 갱시기를 끓인다. 식구들이 한차례 먹고 나면 남는 갱시기가 있다. 이 여분의 갱시기는 다시 끓여서 먹는다. 그야말로 여러 번의 ‘갱식’인 셈이다.



서울 공덕로터리 부근에는 ‘굴다리 식당’이 있다. 이름만으로는 평범한 김치찌개 집인데 다른 곳의 김치찌개와는 확연히 다르다. 큰 솥에 김치찌개를 끓이고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한 그릇씩 퍼준다. 대부분의 김치찌개는 따로 냄비 등을 걸고 인원수에 맞춰서 끓여주는 식이다. 이 집은 마치 국을 퍼주듯이 김치찌개를 한 그릇씩 퍼준다.


김칫국 같기도 하다. 30년 이상 동안 ‘한 그릇씩 퍼주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오래전에 먹었던 갱시기와 닮은 부분이 있다. 이 집에 가면 늘 마음이 편했다. 갱시기 같으니까. 아들이 운영하는 집과 어머니가 운영하는 곳, 두 곳이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같은 ‘명천슈퍼’


맛있는 김치찌개를 찾으러 다녔던 적이 있다. 혼자서 간 적도 있고 방송 프로그램 촬영차 간 적도 있었다. 김치찌개는 재료가 오십보백보다. 다 비슷비슷하게 김치, 돼지고기, 두부, 콩나물 등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게 맛 차이가 심하니 문제다. 제대로 된 김치찌개, 맛있는 김치찌개는 사실 드물다.

지인의 제보로 전북 김제의 ‘명천슈퍼’에 갔다. 소개한 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들판을 지나더라도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이 맞으니 의심하지 말고 쭉 가라고 했다. 이름도 특이했다. 식당 이름이 슈퍼라니. ‘명천슈퍼’는 논밭 한가운데 있는 작은 가게였다. 가게가 있을 만한 장소도 아니었고 더욱이 김치찌개를 팔 식당의 모습은 아니었다.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가게가 있었고 가게 뒤의 작은 공간에서 연신 김치찌개, 제육볶음 등을 내놓고 있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같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명천슈퍼’는 논밭 한가운데서 기습적으로 나타났다.



맛도 기습적이었다. 묵은지가 주는 묵직한 맛이 놀라웠다. 돼지고기는 신선했고 역시 맛이 뛰어났다. 좋은 김치에 좋은 돼지고기, 더 바랄 게 없었다. 조미료 없이 내놓는 음식은 수준급이었다. 묵은 김치는 상당히 비싸다. ‘명천슈퍼’는 묵은지를 자체적으로 만든다. 원래 돼지고기를 팔던 가게다. 당연히 신선한 돼지고기가 준비되어 있다. 두부, 콩나물 등도 수준급이다. 김치찌개가 맛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김제 벌판에서 먹었던 ‘명천슈퍼’의 김치찌개. 대단하다.



태평추를 아십니까?


서두르면 3월에도 먹을 수 있다. 한겨울이 제철이긴 하다. 태평추 이야기다. 이 음식도 특이하다. 경북 예천 지방에서 널리 먹는 음식이다. 예천 사람들은 온 국민이 태평추를 먹는다고 믿는다. 예천 어르신들에게 “다른 곳에서는 태평추를 먹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기껏해야 “그럼 그 사람들은 겨울이면 뭐 먹는대요?”라고 물어볼 판이다.



김치에 메밀묵을 채 썰어서 넣는다. 돼지고기도 적당히 넣는다. 돼지고기는 비계가 적당한 것이 좋다. 큰 냄비를 연탄불에 올려서 슬슬 저어서 슬쩍 끓인 다음 먹으면 된다. 김치 국물이 부족하면 물을 약간 더해도 좋다. 밥 대신 메밀묵을 채 썰어 넣은 것이다. 두부를 더해도 되고 쑥갓 같은 푸성귀나 콩나물을 더해도 된다. 오리지널 방식은 김치, 메밀묵, 돼지고기를 넣는 것이다.



김치는 반드시 신 김치는 아니지만 적당히 익은 것이 좋다. 묵을 밥 삼아 먹다가 김치나 돼지고기를 한두 점 먹으면 아주 맛있다. 겨울에 먹으면 칼칼한 맛과 고추의 매운 맛이 동시에 몸을 훈훈하게 만든다. 배도 부르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주 괜찮은 음식인데 왜 이 음식이 예천에만 있는지는 끝내 알 수가 없었다. 예천의 ‘동성분식’이나 ‘통명전통묵집’이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집이다.



김치짬뽕? 당연히 맛있다


언젠가 ‘전국 5대 짬뽕’이라는 포스팅이 인터넷에 떠돈 적이 있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 포스팅이 전국적으로 짬뽕 먹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하다. 이때 등장한 집이 대구의 ‘진흥반점’이다. 늘 줄 서야 한다. 여름철에는 한 달씩 휴가를 떠난다. 손님들 중에는 황당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주인이 문을 닫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김치가 들어간 짬뽕이다. 짬뽕 밥도 내놓는데 역시 김치가 들어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김치가 들어가면 맛있다. 김치는 젖산발효를 한 것이다. 발효한 다음 각종 감칠맛 나는 성분들이 극대화된다. 우리가 신 김치, 잘 익은 묵은지 이야기를 하면서 침을 흘리는 이유다. 김치는 맛있다. 그 맛은 감칠맛이다. 조미료의 맛과 비슷하다. 짬뽕, 짬뽕 밥에 김치를 넣으면 당연히 맛이 좋다. 김치짬뽕은 전국적으로 몇몇 곳에서 메뉴로 개발했는데 어쩐 일인지 제대로 하는, 유명해진 집은 찾기 어려웠다.


여기서 팁 하나! 가정에서 김치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팬에 기름을 슬쩍 두르고 김치를 잘게 썰어 볶는다. 국수에 넣어서 비빔국수를 만들어도 좋고 각종 국물 음식에 넣어서 끓여도 좋다. 김치와 가열처리한 기름의 조화, 볶음 김치는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응용편도 있다. 들기름에 그냥 무쳐도 좋고 슬쩍 볶아도 좋다. 들기름의 향이 입맛을 돋운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굴다리 식당: 서울 마포구 새창로 8-1 / 02-712-0066

     2.   명천슈퍼: 전북 김제시 공덕면 청공로 680-1 / 063-542-8486

     3.   동성분식: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맛고을길 75-2 / 054-654-8943

     4.   통명전통묵집: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 / 054-654-1171

     5.   진흥반점: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로28길 43-2 / 053-474-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