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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바이칼 호수에 다녀오다

엄마와 함께한 힐링 여행
여행은 늘 설렘과 낯섦을 동반한다.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은 그런 낯섦을 푸근한 느낌으로 감싸주는 아주 근사한 경험이다. 2014년 10월, 엄마가 속한 산악회에서 매년 해외여행을 한 차례 하는데, 그 해 여행지로 러시아가 결정되면서 감사하게도 모임에 합류할 기회가 생겼다. 거리는 가깝지만 여행지로 선택하기엔 쉽지 않던 러시아, 이제는 다녀온 해외 여행지 중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러시아 여행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Day 1.

인천 > 이르쿠츠크


한국에서 직항 4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러시아의 대표도시 ‘이르쿠츠크’. 발음하기에도 다소 낯선 도시 이름이다. 마침 서늘하게 내리는 비로 인해 약간의 긴장감을 더한 채 러시아 여행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이곳이 이렇게 평화롭고, 따뜻하고, 반짝 반짝 빛나는 곳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이르쿠츠크를 향하는 비행기 안내창                                                                                   ▲ 비 내리는 이르쿠츠크 공항

 

Day 2.

즈나멘스키 수도원 > 키로프 광장과 앙가라 강 산책 > 브리야트 박물관


본격적인 여행 첫 날, 이르쿠츠크 최초의 여자 수도원인 ‘즈나멘스키 수도원’ 방문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은은한 녹색의 지붕과 하얀색의 외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데카브리스트 혁명가들의 숭고한 정신과 무덤이 있는 역사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즈나멘스키 수도원 바로 앞에는 러시아의 마지막 제독이자 영화 <제독의 연인>의 실제 주인공인 ‘알렉산드르 코르차크’ 제독의 동상이 있다. 동상이 있는 장소는 아직도 코르차크 제독을 기리는 사람들의 헌화로 가득하다. 두 곳은 이르쿠츠크 시내에 위치하여 접근성도 좋으니 러시아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 푸른 외벽이 인상적인 즈나멘스키 수도원                                                                          ▲ 즈나멘스키 수도원 앞에 있는 코르차크 제독의 동상


이어서 ‘브리야트 박물관’을 관람하고 이르쿠츠크 시민들의 휴식처인 앙가라 강변으로 이동했다. 앙가라 강은 바이칼 호에서 발원하는 유일한 강이다. 잔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속이 매우 빠르다고 한다. 강변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착공한 알렉산드르 3세 동상이 우뚝 서있다. 앙가라 강가에서 반짝이는 강물을 보고 있자니 이 도시에 왜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낭만적인 별명이 붙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 앙가라 강변의 알렉산드르 3세 동상 앞에서                                                                     ▲ 반짝이는 앙가라 강

 

이르쿠츠크 시내를 다니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현지 언어로 쓰인 간판과 시내 버스였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러시아어는 라면을 부셔서 뿌린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간판을 보면 글자들의 모양이 꼬불꼬불 재미있다. 러시아 시내에서는 한국 노선표가 달린 버스를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는 한국에서 수출한 중고 버스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첫 날에는 저녁 8시 즈음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말로만 듣던 ‘백야’는 저녁 8시 경에도 대낮 같이 호숫가를 밝히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어스름 해지는 백야 속에서, 그 낯설음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더 뒤척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 꼬불꼬불한 글씨가 재미있는 현지 간판



▲ 백야로 한 낮 같이 반짝이는 강가(저녁 8시)                                                                     ▲ 러시아 거리 위에서 만난 한글 이정표를 단 버스




Day 3.

환비이칼 철도 탑승(만년설)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백미! 환바이칼 철도를 타는 날이다. 환바이칼 구간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9,466km 중 최고의 경관으로 손꼽힌다. 바이칼 호수를 따라 천천히 달리는 열차에 몸을 맡겼다. 중간 중간 작은 마을에 내려 풍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


▲ 낭만적인 환바이칼 철도                                                                                                       ▲ 바이칼 호수의 만년설


열차 이용 시간은 대략 6~7시간으로 하루가 꽉 찬 일정이다.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간식도 먹고, 얘기도 하고, 풍경도 감상하고, 식사도 하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가이드는 운이 좋으면 바이칼 호수에만 사는 물개 ‘네르파’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운이 좋았는지 수면에서 고개를 빠끔히 내민 ‘네르파’를 짧게나마 볼 수 있었다. (사진으로 순간 포착 할 틈도 없이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 환바이칼 철도의 외관


▲ 철도 승무원과 찰칵!                                                                                                                ▲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중간에 정차도 많이 하고 정차 시간이 관광객들에 의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환바이칼 철도 여행은 끝나는 시간이 제각각이라고 한다. 날씨 운도 따라줬는지 햇살을 가득 머금은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고 느끼는 내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특히 준비해간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하니 눈과 귀가 모두 행복해지는 순간들이었다. 이대로라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 그 가늠하기 어려운 길이와 깊이의 호수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환바이칼 철도 여행은 누구에게라도 단연 추천하고 싶은 이번 여행의 으뜸이었다.


▲ 바이칼 호숫가 마을 풍경                                                                                                        ▲ 철도여행 중 중간 정착지에서


Day 4.

탈치 목조 민속 박물관 > 체르스키 전망대


마지막 날은 이르쿠츠크에 위치한 탈치(발음에 따라 ‘딸찌’라고 불림) 목조 민속 박물관을 들르는 일정이었다. 이곳에는 러시아의 목조건축물과 민속품들이 전시돼 있다. 원래는 앙가라 강 쪽에 있었지만, 수력 발전소의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있던 목조 건물들을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17세기부터 시베리아 지역에 정착한 러시아 사람들의 가옥, 학교, 사원 등을 볼 수 있고 민속 의상도 직접 입어 볼 수 있다. 작은 기념품도 판매해서 러시아의 전통 인형인 ‘마트료시카’를 살 수 있었다. ‘마트료시카’는 인형 몸체 속에 작은 인형이 여러 개 들어가 있는 것으로 인기 있는 기념품이다. 러시아의 특색이 있어서 선물용으로 아주 좋았다.


▲ 탈치 목조 주택 외관                                                                                                                ▲ 목조 주택 박물관 풍경


▲ 기념품점의 마트료시카                                                                                                          ▲ 개인 소장용 마트료시카 10피스


러시아에서의의 마지막 일정은 체르스키 전망대에서의 바이칼 호수 조망. 전망대는 바이칼 호에서 앙가라 강이 흘러나오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바이칼 호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감상 할 수 있다. 리프트가 있어 쉽게 올라갈 수 있고 내려올 때는 산책로가 있어 20분 정도 쉬엄쉬엄 걸어 내려오기 좋은 곳이다. 마침 바이칼 호수에서 앙가라 강이 시작되는 곳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바위가 있었다.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야 할 정도로 경치가 멋졌다. 그 옆에는 샤머니즘의 흔적으로 전망대 가득 색색의 헝겊 조각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 체르스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이칼 호수


▲ 체르스키 전망대의 포토존에서 찰칵!                                                                                 ▲ 그림 같은 풍경의 바이칼 호수와 만년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눈을 두는 곳 마다 보게 되는 새하얗고 길쭉한 자작나무였다. 땅과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풍성하고 높게 자란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바람에 일렁이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 신비로웠다. 특히 반짝이는 강가와 어우러져 더욱 멋진 풍경을 만들어 냈다. 형형색색의 화려함은 없지만 맑고 푸른빛이 가득한 러시아는 진정으로 눈과 귀를 황홀 하게 만드는 힐링 공간 그 자체였다.


▲ 푸른 앙가라 강가의 자작나무                                                                                              ▲ 함께 다녀온 산악회의 엄마와 친구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