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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 속 음식이야기⑦ 같거나 다르거나, 냉면과 막국수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화첩 속 음식이야기⑦

냉면과 막국수

By동대리



냉면과 막국수는 형제간이다. 아무리 멀리 잡아도 사촌지간 쯤은 된다. 비슷한 음식이다. 냉면은 ‘차가운 국수’다. 막국수는 ‘막 내려 먹는’ 소박한 서민의 국수다. 막국수를 차게 먹으면 곧 냉면이다. 게다가 두 음식 모두 메밀을 주원료로 한다. 메밀을 주원료로 밀가루 혹은 전분을 섞는 것도 닮았다.


냉면과 막국수 사이에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두 음식 모두 대표적인 압면(壓麵), 압착면(壓搾麵)이다. 사람이나 기계의 힘을 빌려 짜 내리는 국수다. 국수는 두 종류다. 하나는 절면(切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압면이다. 냉면과 막국수는 같거나 조금 다르다. 압면이고 메밀을 사용하며 시원하게 먹는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고 가격도 다르다.


국수를 만두는 두 가지 방법


절면은 칼이나 도구 등으로 반죽을 자른 국수다. 절면은 도구를 이용해 반죽을 잘라 국수 모양을 만든다. 한국의 칼국수, 일본의 우동, 중국의 도삭면, 베트남의 쌀국수 등이 모두 절면에 속한다. 쌀국수는 얇은 반죽을 피아노 줄로 자른다. 압면은 반죽을 좁은 구멍으로 뽑아내는 국수다. 한국의 올챙이국수가 대표적이다. 바가지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옥수수반죽을 내리 누른다. 구멍으로 삐져나온 반죽이 물속에서 헤엄치는 올챙이를 닮았다고 해서 올챙이국수다. 냉면과 막국수는 모두 압면이다.


▲ 압면은 반죽을 좁은 구멍으로 뽑아내는 국수다. 냉면과 막국수는 모두 압면이다.


조선 말기, 구한말에 활동한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이 남긴 그림 중 <국수 누르는 모양>이 있다. 전형적인 압착면, 압면의 모습이다. 냉면이라고 못 박지는 않았다. 국수를 만드는 그림인데 국수 ‘누르는’ 모양이라고 설명한다. 위에서 누르고 좁은 구멍으로 국수를 뽑아내는 모습이다. 그림에는 벽에 몸을 뻗치고 위에서 체중을 이용하여 국수를 내리 누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국수를 만드는 기계(?)는 ‘국수틀’이다. ‘면자기’ 혹은 ‘분틀’이라고도 한다. 힘을 전하는 긴 막대가 있고 아래에는 끓는 물이 있다. 위에서 힘을 다하여 내리 누르면 아래의 작은 구멍을 통하여 국수발이 바로 뜨거운 물에 들어간다. 하얗게 거품이 일고, 국수를 삶아내면 바로 찬물에 넣는다. 국수에 쫄깃한 힘을 더하기 위한 ‘냉수 처리’다. 


이 방식은 1960~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1960년대 처음 막국수를 상업화한 서울 을지로4가 ‘산골춘천막국수’의 증언을 들어보면 불과 50년 전에도 ‘기산 김준근의 그림에 나오는 국수틀과 비슷한 기계’를 사용했다. “전기가 귀한 시절이었으니 오늘날과 같은 막국수, 냉면 기계가 귀했다. 대부분의 가게에서 사람의 힘으로 국수를 뽑았다. 조심하지 않으면 나무 막대기가 얼굴을 친다. 국수 뽑는 면장(麵匠)들 중에는 앞니가 부러진 사람들이 많았다. 국수 뽑는 막대기가 앞니를 쳐서 부러진 경우였다.”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 전기를 이용한 국수 뽑는 기계가 보급되면서 면장들의 앞니는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막국수, 냉면 모두 같은 기계로 뽑았다. 기산 김준근의 ‘국수 누르는 모양’의 기계를 냉면기계, 막국수 기계라고 구별하지 않은 이유다. 같은 기계로 뽑고, 한편으로 통칭 ‘국수’라고 불렀다. 기계도 국수틀, 분틀, 분자기 등등으로 불렀다.


재료도 같다


막국수와 냉면은 재료도 같다. 막국수나 냉면 모두 메밀을 주재료로 한다. 그 이전에는 다른 곡물들로도 국수를 만들었다. 굳이 메밀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메밀은 오히려 구하기 쉽고, 가격도 싼 식재료였다. 오늘날에는 메밀 값이 밀가루 값의 5배를 호가한다. 조선시대에는 메밀이 구황식품이었다. 가난한 지역에서 메밀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좋아서 찾았던 식재료가 아니라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식재료다.


▲ 막국수나 냉면 모두 메밀을 주재료로 한다.


조선시대에는 메밀과 더불어 녹두, 칡, 콩, 수수, 팥, 율무 등을 모두 이용했다. 제분한 가루를 이용하기도 했고, 점도가 떨어지면 녹말가루로 만들어 사용했다. 녹말분이 아닌 경우 점성도는 떨어진다. 국수 가락의 모양을 만들기 어려우면 썰어서 만드는 절면도 만들기 어렵다. 가는 구멍으로 국수를 내리는 압면을 선호한 이유다. 압면, 압착면이 우리 고유의 방식은 아니다. 6세기 중반에 중국에서 출간된 <제민요술>에 ‘구멍으로 국수 가락을 빼내는 방식’이 소개된다. 사용하는 재료는 녹두다. 흔하게 볼 수 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작물이다. 


최근에는 메밀의 함량을 두고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메밀 100% 막국수 혹은 냉면이 주목을 받는다. 메밀 마니아들 중에는 일본식 ‘니하치면’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니하치면은 메밀 80%에 밀가루 혹은 전분 20%를 넣는 방식이다. ‘니하치면 마니아들’은 메밀 함량이 80% 정도일 경우 가장 맛있다고 주장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일본에서 ‘니하치면’을 선호하는 이유는 당시의 제분 기술, 면 만드는 기술로는 그 면이 가장 만들기 쉬우면서 메밀의 맛과 향, 식감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 100% 메밀국수가 가능한 것은 메밀이 아니라 메밀을 곱게 가는 기계 때문이다.


100% 메밀 면이 가능한 것은 ‘기계의 발전’ 때문이다. 메밀은 글루텐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국수를 만들기 힘들다. 기계가 발달하면서 고운 가루를 얻는 일이 가능해졌다. 글루텐 성분이 적더라도 고운 가루라면 국수 만들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최근 100% 메밀국수가 가능한 것은 메밀이 아니라 메밀을 곱게 가는 기계 때문이다. 거꾸로 전분을 섞었던 이유도 간단하다. 글루텐이 주는 점도를 얻기 위하여 넣었던 것이다. 


순조가 즉위 초기, 궁궐에서 테이크아웃해서 먹은 냉면이나 다산 정약용이 황해도 서흥도호부(황해북도 서흥군 영역에 있던 옛 이름)에서 먹었던 냉면도 마찬가지. 메밀에 전분을 넣은 것이었을 것이다. 당시는 밀가루도 귀했기 때문에 메밀을 사용했고 점도를 높이기 위하여 전분을 넣었을 것이다.


메밀껍질이 냉면과 막국수를 가른다


문제는 메밀껍질이다. 냉면은 메밀껍질을 벗긴 후 녹쌀을 만들고 그 녹쌀로 국수를 만든다. 막국수는 산골 서민의 음식이다. 메밀껍질을 벗기는 것도 번거롭고 힘들다. 메밀껍질 채 갈아서 국수를 만든다. “메밀 막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치아 사이사이에 까만 메밀껍질이 한가득 낀다”고 말하는 것은 메밀을 껍질 채 사용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막국수도 녹쌀로 만든다. 녹쌀의 푸른, 갈색도 벗겨내고 하얀 메밀쌀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막국수가 아니라 메밀국수다. 그러나 파는 이가 막국수라고 하면 막국수다. 냉면과는 다른 것이 없다. 육수를 이야기하지만 오늘날 막국수 가게 중에는 마치 냉면과 같이 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차별점은 없어진 셈이다.


▲ 분당 능라도의 냉면은 면이 가는 편이고 메밀 함량도 높다. 만두도 좋다.


냉면의 육수는 돼지고기, 흰 배추김치, 동치미, 꿩고기, 쇠고기 국물 등을 사용했거나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막국수는 동치미국물로 시작하여 닭고기, 돼지고기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원액이 아니라 이런저런 국물을 섞어 쓰니 역시 육수로 막국수와 냉면을 가르기도 어렵다.


▲ 장충동 ‘평양면옥’은 맑은 육수. 돼지고기와 소고기 고명이 특징이다. 메밀치고는 면이 가늘다. 덤덤한 맛의 평안도식 만두가 있다.


‘능라도’는 분당에서 이미 유명해진 가게다. 역사가 깊지는 않지만 냉면의 강자로 떠올랐다. 메밀 100% 냉면과 만두, 수육 등을 내놓는다. 방송에 등장한 후, 대기 줄이 생겼다. 냉면을 100% 메밀로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장충동 ‘평양면옥’은 이른바 ‘장충동 평양면옥’ 계열의 맏이인 셈이다. 논현동 ‘평양면옥’은 설립자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분당 ‘평양면옥’은 사돈집이다. 시집간 딸이 운영하고 있다. 만두도 수준급이다. ‘우래옥’과 더불어 한국 냉면의 기준을 세운 집이다.


▲ 우래옥은 실향민들이 대부분 단골이다. ‘순면’ ‘민짜’ 등의 암호 같은 주문으로도 유명했다. 

‘순면’은 메밀 100%, ‘민짜’는 고기를 걷어내고 면을 더 준다는 뜻이다.


주교동 ‘우래옥’은 오래된 동네의 노포다. 한국전쟁 직전 문을 열었다. 원래 이름은 ‘서북관’이었는데 전쟁 후 다시 돌아와서 ‘우래옥(又來屋)’이라 이름 붙였다. 불고기, 냉면 등이 주 메뉴. 순면, 김치말이국수 등 여러 종류의 냉면이 있다.


▲ 남북면옥은 막국수도 좋고 국산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수육도 일품이다.


인제 ‘남북면옥’의 업력 50년 언저리, 오랫동안 메밀 100% 막국수를 만들고 있다. 오전 11시30분 경 갓 나오는 수육은 일품이다. 시어머니, 맏며느리, 막내며느리로 이어졌다. 인제읍내의 한적한 곳에 있지만 주말에는 역시 줄을 서야 한다.


▲ 금대리막국수는 조미료 사용을 절제하고 밑반찬에 효소와 고로쇠 물을 사용한다.


원주 ‘금대리막국수’는 원주 외진 곳인 금대리에 자리 잡은 메밀 100% 막국수 집이다. 동치미와 고추장까지 직접 담고, 관리하고 있다. 음식이 대체적으로 담백, 깔끔하다. 여름철에도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동치미를 맛볼 수 있다.


▲ 산골춘천막국수는 대중적인 맛의 동치미 국물을 내놓는다.


을지로 4가 ‘산골춘천막국수’는 서울에 막국수를 처음 소개한 집이다. 현재 운영자는 2대 어머니와 3대 아들이다. 할머니가 처음 춘천에서 막국수를 소개하고 서울로 이전했다. 재개발 문제로 실내외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서울 문화유산 중 하나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 맛집 정보
  • 1 능라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883-3 / 031-781-3989
  • 2 평양면옥: 서울시 중구 장충동1가 26-14 / 02-2267-7784
  • 3 우래옥: 서울시 중구 주교동 118-1 / 02-2265-0151
  • 4 남북면옥: 강원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 265-1 / 033-461-2219
  • 5 금대리막국수: 강원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1278-3 / 033-765-5653
  • 6 산골춘천막국수: 서울 중구 을지로4가 60 / 02-2266-5409
  • 7 필동면옥 : 서울 중구 필동3가 1-5 / 02-2266-2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