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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진 ‘가족’의 범위, 서로서로 돌보는 ‘돌봄경제’의 성장

한 사회의 수준을 보려면 그 사회가 약자들을 어떻게 보살피는지 보면 알 수 있다고 해요. 우리 사회가 점차 개인화되면서 각자의 시간마저 부족해지면, 인간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돌봄이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답니다. 예전에는 가족끼리, 혹은 고령자나 환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베풀어지던 돌봄 기능이 이제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나라 경제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매김 하고 있어요.

 

# 돌봄경제의 패러다임 변화

돌봄이란 나보다 약한 사람 혹은 주변 사람이 건강하고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행위를 말해요. 이러한 돌봄의 개념이 최근 극적으로 확장되고 있어요.

 

건강이나 나이 때문에 자립하기 어려운 사람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보살펴주는 것이 종전의 돌봄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장애가 없더라도 누구나 보살핌을 받을 수 있고, 가족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돌볼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돌봄 활동이 가족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기술적으로 확장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고 있는 것이죠.

 

이제 어리거나 고령이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만 돌봄의 대상이 아닙니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경계도 흐려지고 있어요. 나의 무언가가 돌봄을 받고, 동시에 나는 또 다른 사람의 무언가를 돌봐 주며, 그렇게 계속 이어진 연쇄적인 돌봄이 오늘날 가장 중요해진 사회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이제는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물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하우나 재무관리, 정서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도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요. 누군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모든 행위가 돌봄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답니다.

 

돌봄경제는 누가 누구를 어떻게 돌보느냐를 기준으로, 배려 돌봄, 정서 돌봄, 관계 돌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어요.

 

# 신체적 어려움을 챙기는 ‘배려 돌봄’

▲ 고령자 돌봄 스타트업 '케어닥'

노인과 아이에게 주목하는 오래된 보살핌과 아픈 사람을 보살피는 간병처럼 혼자서는 생활이 불편한 사람들의 신체적 어려움을 챙겨주는 일을 ‘배려 돌봄’이라고 해요. 경제성장과 더불어 이 영역의 돌봄은 사회화가 가속화되고 기술 접목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답니다.

 

고령화에 따른 노인 돌봄은 양적 수요가 늘어났고, 출산율 감소에 따른 아이 돌봄은 질적 섬세함이 중요해졌어요. 또 가족 구성원 모두 분초를 따질 만큼 바빠지면서 아픈 사람을 잠시 간병하려는 수요도 크게 늘고 있어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돌봄 인력을 연결시켜 주는 서비스입니다. 방문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케어링'은 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ERP)를 고도화해 요양 산업에 만연한 비효율 요소를 개선하고 디지털 전환을 효과적으로 이뤘다는 평가를 받아요.

 

고령자 돌봄 스타트업 '케어닥'은 고령자의 주거 환경 관리, 정서 관리를 돕는 생활 돌봄 서비스와 전문 치료사가 직접 집으로 방문해 회복을 돕는 방문 재활 운동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어요.

 

아이 돌봄 연결 플랫폼 '맘시터'는 국내 최대 베이비시터 연결 서비스예요. 전국에서 부모 40만 명과 시터 80만 명 회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앱을 통해 서로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돌봄일지 작성, 돌봄비 결제 등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 삼성전자의 고령자용 웨어러블 로봇 'EX1'

돌봄에 기술 접목도 활발한데요. ‘돌봄 테크'는 사람과 기술을 거의 일대일로 대체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신체적 취약자가 자기 힘으로 일어나 운동하는 것을 보조하고 신체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것이죠.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 CES에서 무릎이나 발목에 착용하는 고령자용 웨어러블 로봇 ‘EX1'을 발표했어요. EX1은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근력 강화와 신체 관리 기능을 추가해 ‘봇핏'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강소기업 올비트앤은 원격 돌봄 기능을 탑재한 프리미엄 보행 보조기를 선보였어요. 보행 보조기에 인공지능 기기를 장착해 이용자의 활동 데이터를 기록하고 이를 가족이나 의사가 원거리에서도 모니터링할 수 있게 했습니다. 보행 보조기가 미리 설정한 안전 구역을 이탈하면 알람이 울리기 때문에 고령자는 야외 활동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보호자는 원거리에서도 돌봄을 할 수 있어요.

 

▲ 구글과 P&G가 만든 스마트 기저귀

돌봄이 필요한 취약자 곁에 같이 있을 수 없을 때 보호자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어요. 미국의 케어 엔젤(Care Angel)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음성인식과 간호 서비스로, 전화를 통해 돌봄을 수행해요. 매일 정해진 시간대에 인공지능이 고령자에게 전화를 걸어 수면 상태와 건강 상태, 약 복용 여부와 안부 등 다양한 질문을 하고 고령자의 응답을 보고서로 자동 작성해 보호자에게 전달합니다.

 

목욕과 배변 등 꼭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일일이 돕기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기술의 몫이랍니다. 배변 문제는 단순히 지저분한 골칫거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환자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문제죠.

 

일본에서는 신체 움직임이 쉽지 않은 사람의 배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식 화장실과 탈취 용품, 방향제 시장의 기술 제품 비즈니스가 급성장하고 있어요. 고령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스마트 기저귀도 주목받고 있는데요. 무선이나 비접촉 인식 센서를 탑재해 배뇨·배변 시 스마트폰 앱으로 교체 시기를 알려줘요.

 

재무관리에도 기술을 접목한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요. 미국의 핀테크 기업 트루링크(True Link)에서 서비스 중인 비자 카드는 직불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결제할 수 있는 선불카드인데요. 약국이나 아마존닷컴에서는 결제할 수 있지만 카지노에서는 제한할 수 있어요. 또 자체 사기 감시 알고리즘을 통해,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사기를 탐지하고 약탈적 결제를 선제적으로 차단합니다.

 

# 마음 건강까지 보듬는 ‘정서 돌봄’

▲ 은둔 청소년을 위한 방 정리

요즘 가장 주목받는 돌봄은 마음까지 보살피는 '정서 돌봄'입니다. 마음 건강은 단순히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데요. 소중하게 다루며 관심을 가져야 삶을 잘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우울증과 불안 장애 진료 통계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2017~2021년 사이 우울증 환자는 35%, 불안 장애 환자는 32.3% 늘어났어요. 특히 20대 환자의 증가율이 높아 전체의 19%를 차지하며 가장 높은 유병률 연령대로 꼽혔습니다.

 

실제로 환자가 증가한 것도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청년층이 적극 치료에 나서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어요. 이들은 병원을 찾아 자신의 상태를 진단받고 정신적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 약물의 도움을 받아요. 또 명상을 하고 감사 일기를 쓰며, 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마음을 회복한답니다.

 

증가하고 있는 은둔형 청소년도 주목 대상입니다. 최근 특수 청소 분야로 주목받는 것이 은둔 청소년들의 방을 정리하는 일이죠.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은둔형 외톨이 관련 공공기관으로, '치유 프로그램'의 항목 중 하나가 '방 정리’입니다. 은둔 청소년들과 대화로 상담하며 마음속 응어리를 꺼내 줄 뿐만 아니라, 이들 방에 쌓인 쓰레기를 치워 줘요. 이를 통해 방치했던 삶도 함께 정리해 청소년에게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 시니어 라이프 솔루션 '대교뉴이프'

고령자의 정서 돌봄도 중요한데요. 나이로는 '노인'으로 분류되더라도 신체는 건강한 경우가 많아요. 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데도 직장 은퇴와 자녀 독립을 겪으며 마땅히 다닐 곳이 없고 정서적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들에게 있어 여전히 건강한 체력과 좁아진 사회적 운신폭의 괴리는 마음 건강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경제적, 신체적으로 복지 대상자는 아니더라도 심리적 돌봄은 필요한 것이죠.

 

'눈높이 교육'을 내세웠던 대교그룹는 2022년부터 '대교뉴이프'라는 시니어 라이프 솔루션 비즈니스를 시작해 어르신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어요. 그동안 어린이 교육 기업으로서 쌓아온 노하우와 지식을 새로운 대상에게 접목해, 요양 보호사 교육원 운영, 전문 강사 육성 및 파견, 인지 강화 콘텐츠 개발 등 고령 인구의 삶 전반에 걸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요. 분당과 광명, 목동 등의 지역에 데이케어센터도 운영하고 있답니다.

 

일명 '노치원(노인+유치원)'이라고 불리는 고령자 대상 주간 보호센터도 증가하고 있어요. 미취학 아동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보육 기관을 이용하며 정부 지원을 받는 것과 같은 시스템으로, 낮 동안 노인들을 돌보고 있어요.

 

고령자 입장에서는 또래를 만나 소통하고 연령대에 적합한 여러 활동을 하면서도 안전하게 보호받아 즐겁습니다. 가족들도 직장과 집안일, 육아와 여가 활동 등 개인의 삶을 지속할 수 있어서 인기가 높아요.

 

한편 AI 스피커를 통해 노인의 고립감을 완화하고 효능감을 강화하는 접근은 보편화된 지 오래되었는데요. SKT는 감정 카테고리의 단어 2,400개를 등록한 감성어 사전을 'NUGU' 스피커 시스템에 추가하고, 스피커에 말을 거는 고령자의 발화를 분석해 우울, 고독, 안녕감, 행복감 네 가지 항목으로 감지해요. 이를 통해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하면 심리상담을 제공하거나 지자체로 연결합니다.

 

이 밖에 KT와 네이버도 고령자를 위한 'AI 스피커 케어 서비스', ‘네이버클로바 케어콜'을 운영하고 있어요. 홀로 살아 빠른 대처가 어려운 독거노인에게 외로움을 달래는 말벗이 되거나 치매 예방을 위한 대화, 긴급한 응급상황에서 SOS 긴급구조 요청을 보내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요.

 

로봇이 같은 역할을 맡기도 해요. 일명 '효돌이', '효순이'라고 불리는 '부모사랑 효돌' 인형은 주식회사 효돌이 개발한 7살 손주 컨셉의 인공지능 로봇입니다. 인형 본체에 다양한 센서가 부착돼 있어서 만지면 음성으로 반응해요. 디지털 역량이 높지 않은 어르신도 마치 손주 대하듯 등을 토닥이거나 손을 잡고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효돌과 같이 지내는 어르신들의 수는 1만 명을 넘어섰답니다.

 

# 서로의 일상도 돌봄 대상, ‘관계 돌봄’

▲ 매일유업의 '우유안부' 캠페인

'돌봄 공백'은 영유아나 고령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돌봄 대상이 될 수 있답니다. 이제 보통 사람들의 일상도 돌봄의 대상으로 보편화되고 있어요. 무엇이 부족해서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 서로 기대는 거예요. '관계 돌봄'은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나 공동체가 함께 주목하는 사회적 의제로 발전하고 있답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닌 어르신들이 직접 출연한 매일유업의 '우유안부' 캠페인 광고가 지난 2022년 칸 광고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적이 있어요. 이 캠페인은 매일 우유를 배달하고, 만약 우유가 쌓여 있는 경우 그 개수에 따라 등급을 매겨 해당 가구의 위험 여부를 파악하는 캠페인입니다. 배달 기사나 이웃이 먼저 상황을 인지하고 행동하기도 하고, 원칙적으로는 관공서에 알리기 때문에 적절하고 안정된 돌봄으로 이어지기 쉽답니다.

 

▲ 편의점 CU의 '아이CU' 캠페인

24시간 환한 불을 켠 편의점은 관계 돌봄의 등대로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어요. 편의점 CU는 지난 2017년부터 지역사회의 '파출소' 역할을 맡고 있는데요. 미리 지정된 경찰기관으로 연결되는 신고 버튼이 결제 부스 안이나 단말기에 부착돼 있어 위급 상황에서 신속하게 누를 수 있어요. 편의점과 경찰의 협력 치안을 통해 길 잃은 아동이나 학대 아동을 긴급 보호하거나 범죄 위협 발생 시 빠르게 신고할 수 있어 동네의 안전망으로 자리 잡았어요.

 

여러 지방자치단체들도 돌봄 사각지대를 살피는 데 편의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서울 영등포구는 관내 편의점과 민관 협력을 맺고 복지 사각지대의 위기 가구 발굴을 위한 주민 접점 홍보 활동을 펼쳤답니다.

 

경기 동두천시는 지역 내 편의점과 연계해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식 우려가 있거나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한 저소득 가정을 발굴하는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경북 경산시도 편의점이 청년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라는 데 착안해 이들의 정신 건강을 살피고 극단적 선택 위험에 대한 선별 검사와 전화 및 내소 상담, 사례 관리 같은 행정 서비스를 소개하는 장으로 활용해요.

 

# 직원 배려는 미래 투자! 조직 돌봄에 나선 기업들

▲ 현대자동차그룹의 '마음 상담 토크 콘서트'

기업에서는 직원을 배려하는 것은 조직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요. 임직원의 생활과 가족을 적극 보살피려는 조직 돌봄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지속적인 임직원 관리가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여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기업의 생존 전략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상담 프로그램은 이제 필수 요건이 됐는데요. LG에너지솔루션은 조직 관계의 안정감을 높이기 위한 '힐링 트립' 연수를 마련했고, 현대자동차그룹은 ‘마음 상담 토크 콘서트'를 열었어요. 또 SK이노베이션의 '하모니아’처럼 사내 상담센터를 적극 운영하거나, 카카오처럼 직원들의 마음을 돌보는 명상인 '톡테라스'도 함께 진행해요.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의 일환으로 온라인 상담 프로그램을 도입해 임직원들의 상담 접근성을 높였고, 한화시스템은 심리상담을 직계 가족까지 확대해 지원하고 있답니다. 또 롯데건설은 직원과 배우자, 자녀까지 상담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 LH가 마포구와 함께 추진한 '서봄(서로돌봄)하우스'

공공기관도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어요. 전월세 사기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부동산 계약 관련 정보가 부족한 청년층이 많은 피해를 본 가운데, 관련된 공공 돌봄 정책도 등장했어요. 서울시가 무료로 시행하는 ‘1인 가구 전월세 안심계약 도움서비스'는 대상 가구를 돕는다는 목적과 함께 부동산 계약 생태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요.

 

LH는 매입임대주택을 활용해 통합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 환경을 지향하고 있어요. 서울 마포구와 함께 추진한 '서봄(서로돌봄)하우스'는 입주민에게 의료·복지·돌봄 서비스를 통합 제공해 주거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특화 주택입니다.

 

한편 빌라촌은 여러 가계가 일정한 지역에서 비슷한 필요를 갖고 살아가는 구획인데요. 그럼에도 아파트 단지처럼 관리 사무소가 없고, 공동 이용 시설 자체가 없거나 관리도 부족해요. 경기주택도시공사는 이런 상황에 주목해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다세대·다가구 밀집 지역에 놀이터, 경로당, 유치원 등 돌봄 시설을 구축하는 공간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어요.

 

▲ 가족 돌봄 활동

이렇듯 돌봄의 의무는 한정될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법적인 '가족'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제기되는데요. 이미 해외에서는 돌봄 대상 가족 범위를 '마치 가족과 같이 친밀한 자’로 확대하고 있어요.

 

미국 뉴저지, 코네티컷, 오리건, 콜로라도 주에서는 '가족과 같이 친밀한 자', 워싱턴주에서는 '근로자로부터 돌봄이 기대되는 자' 등을 유급 가족 돌봄 휴가에서의 가족 범주로 봐요. 스웨덴에서는 중한 질병을 앓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를 돌볼 경우 정부로부터 돌봄 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요. 이 대상에는 친구나 이웃도 포함된답니다.

 

캐나다는 노동자가 '증병을 앓거나 심각한 상해를 입은 자' 또는 '임종을 앞둔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일하지 못하면 임금의 55%를 보전해 줘요. 이때 "노동자가 그를 가족으로 여기고 있는지"가 돌봄 대상인지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입니다. 질병, 사고와 같이 서로에게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때 적절한 조력을 해줄 수 있다면 이를 가족으로 여기는 것이죠.

 

# 경제성장 동력으로 존재감 키우는 ‘돌봄경제’

돌봄은 점점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요. 성장이 둔화된 우리 경제에서 돌봄은 모두를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근본이 되고,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의 중요한 축으로 기여하고 있답니다.

 

돌봄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는 명확해요. 돌봄은 재화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생산이 아닌 '재생산'에 주력해요. 보통 경제활동의 기반 요소를 '인프라(infrastructure)’라고 부르는데, 돌봄 역시 경제의 기반 요소라 할 수 있답니다. 사회 구성원의 일상과 마음을 돌보고 약자를 도와주는 일은 더 활발한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족 안 돌봄도 사적인 도움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추세입니다. 영국 보험사 선라이프(SunLife)가 조부모의 육아를 살펴본 결과, 일주일 평균 8시간 정도 손주를 돌본다고 가정해 연간 4,027파운드, 약 670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추산한 바 있어요.

 

영국은 2011년부터 조부모가 12세 미만의 손주를 돌볼 경우, 이를 연금 가입 기간에 포함시켜 최대 5년을 더 연장하고 연금액도 늘려줍니다. 손주 돌봄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보전해 주고 있는 것이죠. 일본의 일부 지자체에서는 ‘손주 휴가'도 쓸 수 있어요. 부모가 바쁘면, 조부모가 휴가를 내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돌봄 노동의 기회비용을 실제 금액으로 환산해 지급하거나 동일한 재정적 혜택을 부여하는데요. 서울시는 조부모 등 4촌 이내 친인척이 아이를 맡으면 월 30만 원을 지원해요. 조부모 육아를 시장가격으로 환산해 준 것입니다.

 

또 부모가 장기 요양 보험상의 일정 등급 이상에 해당되고, 자녀가 요양 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경우에는 재가요양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어요. 자녀가 집에서 부모를 모시더라도 국가로부터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죠.

 

이제는 돌봄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때예요. '아이'를 돌보는 것은 '부모의 경력'을 돌보는 것입니다. '고령자'를 기술의 도움을 받아 보살피는 것은 그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직원'을 배려하면 '조직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이해해 주면 장애인도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고, 동네 주민이 편하면 나 역시 편안한 날을 누릴 수 있어요.

 

돌봄의 사회화란 집 안에서 이루어지던 일을 집 밖에서 해결하기 위해 비용을 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누구나 돌봄의 대상이 되고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랍니다. 성별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개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돌봄의 개념이 골고루 나뉘어 있는 상황이야말로 돌봄의 사회적 역량이 높은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돌봄의 영향력은 사회 전반으로 이어집니다. 돌봄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어요. 이는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됩니다. 돌봄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해요. 언젠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날로 개인화하는 나노사회의 고독 속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됐어요. 그 기능을 혼자서 혹은 가족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공동체가 함께 나눠갈 수 있는 제도와 인식의 변화가 절실해졌습니다. 돌봄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는 각자의 안녕을 챙기기 어려운 분초사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중요한 기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