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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꼭 가야 할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의 시간 여행

검은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 올린 거대한 사원, 앙코르 와트.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사원이며, 유네스코가 불교의 성지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천 년을 이어온 앙코르 와트에는 크메르 제국의 웅장한 신화와 역사가 아름답고 섬세한 건축물로 구현되어 있어요. 19세기가 되어서야 그 신비를 드러낸 앙코르 와트로 영혼의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 1970년대 한국 풍경 닮은 시간 여행

▲ 캄보디아의 택시, 툭툭이(Tuk-Tuk)

캄보디아에는 본디 우산이라는 것이 없어요. 크메르인들은 '비'라는 것을 산천초목처럼 사람도 맞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풀이 비를 맞고 자라듯이, 사람도 어려서부터 비를 맞고 자라야 한다는 것이죠.

 

숙소 앞에는 일찍부터 캄보디아의 택시라고 할 수 있는 툭툭이(Tuk-Tuk)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열대 밀림에 고운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앙코르 패스(Angkor Pass)를 준비해 앙코르 유적군을 둘러보기로 했어요.

 

 

▲ 캄보디아의 택시, 툭툭이(Tuk-Tuk)

 

아침인데도 열대 기후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거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36년간 이어진 내전과 정치 대립이 2004년에서야 안정화된 지 불과 20년, 그러니까 지금의 캄보디아는 전쟁이 끝난 한국의 1970년 대 같은 곳이랍니다.

 

캄보디아는 2023년 1인당 GDP가 1,915달러로 국제통화기금 IMF 190개국 중 149위의 빈국인데요. 황토가 날리는 캄보디아의 거리 풍경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지금의 우리 나이에 살았던 한국의 모습을 닮아 있어요. 마침 영화 속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것 같답니다.

 

# 힌두교 사원에서 출발한 세계 최대 불교 사원

▲ 해자를 건너 사원으로 들어가는 신도 난간의 나가

앙코르 와트는 캄보디아 씨엠립의 작은 마을에서 4킬로미터 거리에 있어요. 폭 200m의 해자를 건너는 신도(神道)에는 여전히 부슬비가 내렸습니다.

 

신도는 보통 코즈웨이(causeway)라고 하는데요, 둑이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신도가 해자의 중앙에 제방길로 되어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랍니다. 기다란 제방의 신도 양옆 난간 위에는 거대한 나가(龍)가 배를 깔고 있어요. 나가는 뱀을 닮은 용인데 한 몸통에 일곱 머리가 양면으로 조각되어 있어요.

 

12세기 초에 수리야바르만 2세에 의해 옛 크메르 제국의 사원으로서 창건된 앙코르 와트는 축조된 이래 크메르 제국의 모든 종교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맡아 왔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앙코르 유적군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에게 봉헌되었다는 점입니다.

 

▲ 다리를 지나면 마주하는 서쪽의 중앙 고푸람

앙코르 와트가 지어지던 당시 크메르 제국의 국교는 힌두교였는데요. 그러나 인근의 참족에게 공격당하면서 크메르 제국은 멸망의 위기에 처했고, 믿었던 힌두교의 믿음이 사라진 당시의 왕 자야바르만 7세는 국교를 불교로 바꾸게 되죠.

 

그렇게 앙코르 와트는 힌두교 사원에서 불교 사원으로 변모했어요.

 

# 정교하게 다듬은 무덤이자 천상의 판테온

▲ 앙코르 와트 유적 전경

1150년 전후에 축조된 앙코르 와트는 500년 동안 잔뜩 우거진 밀림 속에 숨어 있었어요. 19세기가 되어서야 프랑스 학자 ‘앙리 무오’의 발견으로 유럽에 알려졌다는 것은 또 다른 신비라고 할 수 있답니다. 12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크메르 민중의 경배의 대상이 되어 왔으니까요.

 

발견 당시 검게 착색된 건축물은 무너진 곳이 많았고, 이후 캄보디아 내전을 겪으며 유적의 70%가 훼손되기도 했어요. 사원을 가득 채웠던 많은 불상도 약탈 당했죠.

 

현재 앙코르 와트를 보존하기 위해 복원에 힘쓰고 있지만 유적 자체가 풍화작용에 약한 ‘사암’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지금도 조금씩 부식이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지금 앙코르 와트에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 신화를 담고 있는 앙코르 와트 서쪽 회랑 부조

앙코르 와트는 수백 칸에 이르는 돌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크메르인들은 역사적 사실을 신화적 세계와 함께 회랑 벽면에 빼곡하게 새겨 놓았답니다.

 

신화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 삶에 의미와 권위와 목적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칼 융은 “모든 신화의 궁극적 의미는 우리의 비근한 일상적 체험의 구조를 떠나지 않는다”라는 정신분석학적 명제를 제시한 바 있어요.

 

▲ 신화를 담고 있는 앙코르 와트 서쪽 회랑 부조

반복되는 낮과 밤, 해와 달, 양지와 그늘, 파종과 수확,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전형 (archetype, 아키타입)을 구성하고, 이 아키타입의 언어들이 모여 무한한 상상력을 자아내며 인간의 신화를 구성한답니다.

 

신화를 통해 인간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사실과의 합치 여부를 떠나 우리 삶의 현실에 보다 의미 있게 적응할 수 있는 가치와 체계를 발견하게 돼요. 앙코르 유적은 바로 이러한 신화의 물리적 구현의 극단적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어요.

 

▲ 돌로 된 창틀과 창틀 사이에 서 있는 원통 모양의 돌창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가장 높은 3층 중앙의 성소까지는 무려 65미터의 신도가 이어집니다. 옥수수 모양의 성소에 다가가는 동안 놀랍도록 정교한 석조 조각들을 볼 수 있습니다.

 

회랑의 돌로 된 창틀과 창틀 사이에 서 있는 원통 모양의 돌 창살은 석공 기법이 아니라 목공 기법으로 만들어졌답니다. 나무를 깎고 짜 맞추는 온갖 요철 기법이 사용되었어요.

 

▲ 앙코르 와트의 벽면을 꽉 메운 천상의 무희 압사라들

벽면에도 천상의 무희 압사라들이 꽉 채워져 있는데요. 이 모습은 크메르 여인의 현실적인 모습을 담고 있어요. 압사라 춤의 전승 속에 오늘날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죠.

 

바늘로 조각한 듯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돌들의 문양과 건축 기술에 감탄이 나와요.

 

▲ 사원에서 만난 캄보디아 승려들

성소 아래에서 캄보디아 승려들을 만났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어요. 환하게 웃는 동승의 미소에서 마음속에 쌓인 먼지가 한꺼번에 날려가는 느낌입니다.

 

앙코르 와트에서 모든 것은 신들이 거주하는 천계로 변화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왕도 신이며, 지상에서의 왕의 업적도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행적과 동일한 차원의 이야기로 승화되면서 신성과 영원성을 획득하게 되죠.

 

앙코르 와트는 하나의 거대한 무덤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조형미를 갖춘 천상의 판테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지금 꼭 봐야 할 앙코르 와트

▲ 하늘로 높게 솟아 있는 앙코르 와트의 옥수수 모양의 탑

길을 떠난다는 것은 공간을 이동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축적된 시간과 역사와 문화 속으로 편입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우리가 보통 '루틴(routine)'이라고 부르는 생활의 궤적,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정한 길들은 열차의 궤도와 같이 이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절제를 요구하죠. 하지만, 그러한 궤적들은 오히려 이탈을 통해 새롭고 참신한 생명력을 획득할 수 있어요.

 

우리 삶의 궤도는 차가운 쇳덩어리의 평행선이 아니라 실타래처럼 엉켜져 있는 따사로운 핏줄의 그물과도 같으니까요.

 

이탈이란 새로운 체험의 획득 없이는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어요. 여행이라는 이탈의 매력은 근원적으로 우리 삶의 보금자리를 떠난다는 데 있고, 그래서 새로운 체험을 획득할 기회를 주죠.

 

앙코르 와트 여행에서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만나는 일이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라는 것이 실감 났어요. 루틴 한 삶의 한 색다른 연장태로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이탈의 공포를 느끼며 나 자신에게 친숙하지 않은 세계를 겸허하게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