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빈 땅에는 보리를 심어 사람이나 가축의 먹이로 이용했어요. 시골에서 보리농사 안 짓는 집이 없었죠. 보릿대로 풀피리를 불거나 보리를 베어 불에 구워 먹던 재미를 기억하는 어르신들도 많답니다.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은 전국에서 축산업이 발달한 고장으로 손꼽혀요. 소를 많이 키우다 보니 소먹이로 주기 위해서 보리농사를 많이 지었답니다. 소여물용으로 재배한 보리밭은 이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어요. 대림 농장의 ‘보령 청보리 창고’가 대표적인데요. 언덕 끝에 덩그러니 건물이 놓여 있어 색다른 감성을 선사합니다.
# 소먹이 청보리·사탕수수가 만든 아름다움
드넓게 펼쳐진 푸른 언덕 끝 하늘과 맞닿은 낡은 창고 건물은 마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 보는 마을 모습도 정겨운데요. 보리에 가려진 채 교회 종탑만 우뚝 솟은 풍경도 아름답습니다. 화창한 날씨와 함께 드라마 주인공인 된 것 같아요.
‘천북 청보리밭’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9년 무렵입니다. 한 사진작가가 인스타그램에 보리밭 풍경을 올린 것을 보고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2021년에는 드라마 촬영 장소 섭외가 들어왔어요. 2022년 초 방영된 <그해 우리는>에서 웅이와 연수 일행의 여행 장소로 나온답니다. 2021년 11월 초에 이곳에서 촬영한 웅연수 커플의 빗속 키스신은 동화 같은 명장면으로 시청자의 기억에 남아요. 드라마 방영 이후부터 청보리밭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는데요. 그때만 해도 언덕 위 건물은 지붕이 날아가고 거미줄이 잔뜩 있는 폐창고였답니다.
그리고 보리밭은 원래 사과 과수원이었죠. 나무를 뽑아낸 뒤 소먹이용 초지를 가꾼 것은 보령 천북에서 나고 자란 원은성이이화 부부입니다. 그는 소 기르는 일이 본업인데요. 군 제대 이후 20년째 축산경영인으로 종사하고 있답니다.
과수원에서 사과를 재배하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땅은 외지인에게 팔렸어요. 소 사료값이 오르자 원은성 대표는 자신의 대림 농장과 마주하고 있는 과수원 부지를 목초지로 활용하기로 하고 2017년 이 땅을 매입했어요. 3만 3000㎡, 1만 평의 땅에 소먹이용 보리를 파종했죠.
# 보령 토박이 축산인의 커피 사랑
원은성·이이화 부부는 커피를 워낙 좋아해요. 소를 보살피면서 틈틈이 전국의 유명 카페를 찾아 커피 맛을 음미하고 평가도 했답니다. 천북청보리밭이 점차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쉬어갈 곳이 마땅치 않았어요.
원은성 대표는 “농협 양곡창고 같은 농촌의 유휴공간을 리모델링 한 사례들을 보고 창의적으로 적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대신 빛 좋은 개살구가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어요.
보리밭 언덕 위 창고는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사과 저장고였습니다. 2003년 태풍 매미와 2010년 곤파스가 불어닥쳐 지붕이 날아가고 골조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 속은 텅 비어 있었죠. “보리밭 언덕은 70고지에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 창고는 무너지고 비바람에 삭아 있었습니다. 리모델링을 하면서 제일 먼저 안전하게 구조물을 보강하고 창문은 이중 강화유리를 사용했어요.”
그는 아내와 전국을 돌아다니며 보고 맛본 것을 벤치마킹해 천북청보리밭에 이식했어요. 그렇게 ‘천북 폐목장 청보리밭’ 폐건물은 ‘보령 청보리 창고’로 재탄생했답니다. 내외부를 크게 손대지 않고 옛 건물의 골조와 자재를 그대로 가져다가 1970년대 세워진 사과 창고의 모습을 현대적 감각으로 복원했어요.
“창고 외벽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고 방수처리만 했습니다. 지붕 아래 창문을 그대로 두고 벽 아래에 답답하지 않도록 새 창문을 낸 것이 전부예요. 유행을 좇지 않고 건물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리모델링 요소를 직접 결정했습니다.”
원은성 대표는 “도시에서는 사람보다 사회가 더 급변하는데 그 변화를 사람이 못 따라가기 때문에 옛 추억이 그리운 거예요. 시골에 사는 저 역시 향수에 젖을 때가 많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청보리 창고 벽면을 따라 길게 난 창으로 보리밭 풍경이 한눈에 담깁니다. 세상 변화에 쫓겨 잊고 있던 모습이죠. 청보리 창고는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따듯한 추억과 평안한 풍경을 품은 곳이 됐답니다.
# 보령 토산물로 만든 청보리창고의 시그니처
청보리 창고는 2023년 3월 10일 문을 열었어요. 여느 프랜차이즈 카페와 비교할 수 없는 청보리 창고만의 색깔을 덧입혔죠.
“청보리 창고만의 커피를 만들고 싶어서 로스팅을 배웠습니다. 직접 생두를 로스팅 해서 커피를 추출하고 고객께 대접하고 있어요. 로스팅 원두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고요.”
더불어 보리가 유명한 곳인 만큼 직접 농사지은 찰 보리쌀과 보리, 보리차를 카페 로비에 진열해 같이 판매하고 있어요. 올해 수확해 잘 말린 고추도 한 자루 놓여 있어요. 시골 분위기가 물씬 난답니다. “부모님이 농사지은 농산물만 갖다 놨습니다. 보리차는 직접 보리를 볶았고요.”
지난 2023년 5월 11일에는 TV프로그램 ‘생생정보’를 통해 청보리 창고가 방송을 타기도 했어요. <믿고 떠나는 스타의 고향> 코너에서 충남 출신 탤런트 박칠용 씨가 보령 여행지를 묶어 소개하며 청보리 창고를 다룬 것이죠.
“금요일에 방영됐는데 다음날부터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이후 주말이면 2천 명 정도의 방문객이 청보리 창고를 찾고 있습니다.”
원은성이이화 부부는 청보리 창고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도 개발했어요. 원 대표는 청보리라떼를 으뜸으로 추천하는데요. 오곡과 말차에 새싹보리 가루를 블렌딩했답니다.
“새싹보리는 봄에 수확하는데 품에 비해 소량밖에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청보리밭의 추억을 담고 싶어 만들었습니다. 새싹보리는 골다공증에도 좋아요.” 여름에 차게 나오던 청보리라떼는 날이 쌀쌀해지면서 따뜻한 음료도 준비했어요.
청보리 창고는 보리빵도 자랑입니다. 직접 농사지은 보리를 방앗간에서 빻고 오븐 대신 찜기에 쪄서 만들지요. 베이커리에서 흔히 쓰는 이스트 대신 막걸리로 숙성 시키기 때문에 옛날 술빵 생각이 나는 구수한 뒷맛이 살갑습니다.
아버지가 농사지은 찹쌀에 방부제를 넣지 않고 만든 찹쌀조각케잌도 청보리 창고에서 가을부터 맛볼 수 있는 겨울 시그니처 메뉴랍니다.
원은성 대표는 “천북청보리밭은 일출과 일몰이 정말 아름다워요. 밤에는 별이 쏟아집니다. 청보리 창고가 조금 더 알려져서 보령시를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되면 좋겠습니다”라고 희망했어요.
# 계절마다 또다른 매력, <보령 청보리창고> 방문 팁
처음 재배한 보리는 소먹이용 보리라 일찍 수확하는 바람에 수확이 끝난 뒤 헛걸음하는 방문객도 눈에 띄었어요. 원은성 대표는 2022년부터 늦게 수확해도 되는 식용 보리를 심고 있고, 올해는 6월 중순에 보리를 베어낸 자리에 사탕수수를 심었습니다.
보리는 보통 10월에 파종해 겨울을 지나고 봄에 자라 5월이 되면 노랗게 익어가요. 보리 시즌은 보통 3월에서 6월까지지만 천북청보리밭은 보리와 사탕수수를 이모작하기 때문에 계절마다 또다른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10월 중순 보리를 파종하면 11월 초에는 잔디처럼 올라온 보리싹을 볼 수 있어요. 웅연수 커플의 키스신도 2021년 11월 초에 촬영했죠. 보리는 싹을 낸 상태로 겨울을 나는데요. 파란 보리밭에 하얀 눈이 내린 겨울 풍경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요.
겨울이 지나 3월부터 6월까지는 본격적인 보리시즌입니다. 보리가 자란 4월에서 5월 초에는 초록빛이 싱그러운 청보리밭을 만날 수 있답니다. 5월 말에서 6월로 접어들면서 청보리는 누렇게 익어가며 황금물결로 바뀌어요.
6월 중순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어낸 자리에는 사탕수수를 심는데요. 10월 초 사탕수수를 베어낼 때까지 여름에도 푸른 천북청보리밭 풍경을 볼 수 있어요.
천북청보리밭은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 방문하는 시기별로 어떤 모습을 마주할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죠.
<보령 청보리창고 / 천북청보리밭>
• 주소 : 충남 보령시 천북면 천광로 73-1
• 주차 : 대림농장 건너편 청보리창고 임시주차장
• 천북신흥교회 주차장 이용 (일요일 오전 8시~오후 2시 이용불가)
주차장은 원은성 대표가 운영하는 대림 농장 건너편 천북청보리밭 포토존 옆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요. 보리밭 사이로 50m 정도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오르면 5분도 걸리지 않아 청보리 창고에 닿아요.
보령 청보리 창고를 방문하면 꼭 주의할 점이 하나 있는데요. 보리 시즌에는 방문객이 몰려 보리가 밟히고 보리밭이 쉽게 훼손되기도 하니, 사진을 찍기 위해 막무가내로 보리밭에 들어가는 것은 피하는 게 에티켓이랍니다.
보령 청보리 창고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주변에 건물이 많지 않아서 초원 풍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주변에 목장이 많고 도심의 삭막한 분위기와는 달리 풀과 나무가 있는 전원의 풍경을 볼 수 있답니다.
오색이 물드는 가을, 지나는 계절이 아쉽다면 보령 천북면을 찾아가 보세요. 언덕이 사철 청량미 넘치는 초록으로 물들어 있답니다. 천천히 보리밭을 거닐며 추억을 되새기고 감성 넘치는 예쁜 사진도 남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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