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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길 따라 걸으며 힐링 타임! 변산반도 내소사(feat. 채석강)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은 자연생태계나 자연과 문화경관을 대표하는 지역에 있어요.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청정한 자연환경과 문화재, 경관을 만날 수 있어서 방문객에게 힐링 타임을 선사하죠.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형 국립공원입니다. 내소사, 직소폭포, 관음봉, 쇠뿔 바위 등 산악 지역의 내변산과 채석강, 적벽강, 고사포해변 등 바닷가 지역의 외변산으로 이뤄져 다양한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답니다. 그중에서도 내소사는 남도의 절집 중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혀요.

 

# 700여 그루가 늘어선 600미터 전나무 숲 길

▲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

닭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는 이른 아침, 숲에는 조금은 쌀쌀하면서도 쾌적한 공기가 느껴집니다. 화려한 원색으로 단청한 내소사의 일주문은 각도가 비틀어져 있어서 그 안쪽은 한치도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신비로운 공간 안쪽으로 호기심을 유도하는 건축적 사고를 반영해 놓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이 펼쳐져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 내소사 전나무 숲길

내소사 전나무 숲은 오대산 월정사, 광릉 국립수목원과 함께 한국의 3대 전나무 숲 중 하나입니다.

 

하늘을 가린 전나무가 짙게 드리운 그늘 속을 걷다 보면 특유의 맑은 향기가 들이쉬는 숨과 함께 온몸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요.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소생한다’는 내소사의 의미처럼 어느새 일상에 지친 심신이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답니다.

 

▲ 벚나무 가로수와 내소사 천왕문

이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하늘이 열리고 능가산의 아리따운 바위들이 고개를 내밀어요.

 

길은 다시 키 낮은 벚나무 가로수를 양옆에 끼고 천왕문까지 이어집니다. 천왕문 양쪽으로 낮은 기와담이 길게 뻗어 있는 것이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답니다.

 

▲ 수령 1000년을 자랑하는 느티나무

천왕문으로 들어서면 내소사 대웅보전에 이르기까지 서너 단의 낮은 돌 축대로 경사면이 다듬어져 있어서 마음을 평온하게 해줘요.

 

이 돌 축대 첫 단에 수령 1000년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중심을 잡고, 또 한 단을 오르면 단풍나무, 매화나무, 배롱나무, 벚나무들이 곳곳에 지시되어 절집 앞마당으로 이르는 길을 적당히 열어주고 적당히 막아주고 있답니다.

 

▲ 내소사 봉래루
▲ 내소사 대웅보전

또 한 단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는 축대 위에 요사채 대문과 사랑채 툇마루가 한눈에 들어와요. 대웅보전 앞마당에 이르는 면은 봉래루 이 층 누각이 앞을 막은 채 그 옆으로 빠끔히 공간을 열어 발걸음을 그쪽으로 유도한답니다.

 

요사채 앞을 지나 봉래루 옆으로 돌아서면 그제야 돌 축대 위에 석탑을 모신 앞마당과 학이 날개를 편 듯한 시원스러운 모습의 대웅보전이 능가산의 연봉들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맞아봅니다.

 

일주문에서 대웅보전에 이르기까지 숲과 나무와 건물과 돌계단을 거닐면, 어느덧 세속의 잡념을 홀연히 떨쳐버리게 됩니다. 이 공간 배치의 오묘함과 슬기로움은 잊혀 가는 공간적 사고를 다시금 생기게 하죠.

 

# 원형을 지켜 단정하고 소탈한 절집

▲ 내소사 앞마당

천년 고찰 내소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능가산 관음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요. 백제 무왕 344년(633)에 혜구두타 스님이 이곳에 절을 세워 소래사라 칭했습니다.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대소래사는 소실되고, 소소래서가 남아 지금의 내소사가 되었어요.

 

지금의 사찰은 조선조 인조 11년(1633)에 청 민 선사가 중건하고 고종 2년(1865)에 관해 선사가 중수했어요. 그 후 만허선사가 보수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 내소사 대웅보전 (보물 제291호)

보물 제291호인 내소사 대웅보전은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낮은 기단과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집입니다. 조선 중기 이후에 유행했던 다포계 형식을 따랐다고 합니다.

 

청 민 대사가 절을 건립할 때 호랑이가 변한 대호 선사가 도왔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대웅보전 현판은 조선 후기 서예가 원교 이광사(1705~1777)의 글씨로 알려져 있답니다.

 

내소사 대웅보전 건물은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토막을 깎아 맞춘 건물로도 유명합니다. 내소사를 중창할 당시 대웅보전을 지은 목수는 삼 년 동안 나무를 목침 덩이만 하게 토막 내어 다듬기만 했지요. 나무 깎기를 마친 목수는 그 나무를 헤아리다가 하나가 모자라자, 자신의 실력이 법당을 짓기에 부족하다며 법당 짓기를 포기하고자 했어요.

 

그러자 사미승은 감추었던 나무토막을 내놓았지만, 목수는 부정한 나무토막은 쓸 수 없다며 끝내 그 토막을 빼놓고 대웅보전을 완성했다고 해요. 그 때문에 지금도 대웅보전 오른쪽 안 천장은 왼쪽에 비해 나무토막 한 개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건축물로 단청은 모두 퇴색되었지만,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 고풍스럽고 내부는 화려함과 환상적인 모습을 느끼게 합니다.

 

법당 내부의 제공 뒤 뿌리에는 모두 연꽃 봉오리를 새겨 우물반자를 댄 천장에 꽃무늬 단청이 가득하답니다. 목수들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지요. 관세음보살이 오색찬란한 새의 모습을 하고 단청을 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대웅보전의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의 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어요.

 

▲ 내소사 꽃창살 사방연속무늬

내소사는 근래에 들어 손을 많이 본 절집이지만 여느 절집처럼 화려함이나 요사스러움을 드러내지 않고 원형을 다치지 않게 해 단정하고 소탈한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어요.

 

특히 화려하면서도 소탈한 멋을 동시에 풍기는 내소사 꽃 창살의 사방연속무늬는 우리나라 장식 문양 중에서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로 평가받아요. 그 모든 것이 오색단청이 아니라 나무 빛깔과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지 단청이라서 살아난 것이죠.

 

연꽃과 국화꽃이 가득 수 놓인 문짝은 말 그대로 화사한 꽃밭을 연상시킵니다. 한곳 한곳을 지극한 정성으로 파고 새긴 옛사람들의 불심에 새삼 고개가 숙어집니다.

 

꽃 창살의 사방연속무늬는 간살 위에 떠 있어서 법당 안에서 보면 꽃무늬 그림자가 보이지 않은 채 단정한 마름모꼴 그림자만이 보여요.

 

▲ 내소사 고려동종 (보물 제277호)

보물 제277호로 지정된 내소사 고려 동종은 고려 고종 9년(1222) 변산의 청림사에서 만든 종이랍니다. 청림사가 폐사되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은 조선 철종 4년(1857) 내소사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높이 1.3m, 직경 67cm인 전형적인 고려 후기 작품으로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죠. 종구가 종신보다 약간 넓고 정상에는 탑산사 종의 용과 비슷한 용뉴(龍)와 구슬이 붙어있고 용통(甬筒)이 있어요.

 

종을 매다는 고리에는 용무늬를 새겼고, 종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는 화려한 식물 문양을 조각했습니다. 종신의 중간에 종을 치는 자리인 당좌에는 활짝 핀 연꽃무늬를 새겼어요.

 

연꽃이 받치고 있는 구름 위에 세 분의 부처를 조각했는데, 본존불은 연꽃 위에 앉은 모습이고, 좌우의 협시보살상이 서 있는 모습입니다. 모두 두 광이 있고 머리 위에는 수식이 옆으로 나부끼는 보개가 공중에 떠 있어요.

 

종에 새겨진 장식과 문양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 후기의 걸작으로 손꼽힌답니다.

 

#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채석강

내소사에서 평온한 힐링 타임을 보냈다면 물때를 맞춰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서쪽 끝 격포항에서 하루를 정리해도 좋아요. 썰물이 지는 중이라 격포항 반대편 격포해수욕장으로 돌아 채석강으로 내려갔답니다.

 

채석강은 선캄브리아대 화강암, 편마암이 기저층을 이루고, 약 7천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한 퇴적암이 바닷물에 침식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외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썰물이 되면서 검은 퇴적암층이 점점 넓게 모습을 드러납니다. 이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퇴적암의 멋진 층리가 마치 조각작품처럼 눈앞에 펼쳐지지요. 뒤로 물러난 바다의 바닥 위를 걸으며 수천만 년 억겁의 세월과 만날 수 있답니다.

 

이 해안 절경은 전라북도 서해안 지질공원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색상과 크기가 다른 퇴적물이 시루떡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무척 특별하죠. 이 장엄한 지질명소는 자연의 힘으로 만든 것이니 다시 한번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를 느껴요.

해식동굴 앞에서는 물 빠진 바위 사이를 오가는 작은 게들도 볼 수 있어요. 이곳은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많은 사람이 몰려듭니다. 안에 들어가 바다 쪽을 향해 사진을 찍으면 명암 대비가 확실한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죠.

 

채석강의 절경을 즐기려면 매일 바뀌는 서해안의 물때를 미리 확인하고 들어가야 해요. 해식동굴은 밀물이 되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랍니다.

 

격포항은 조선시대 때에 수군의 근거지 격포진이 있던 곳인데, 610m 길이의 격포 방파제가 바다를 향해 시원하게 열려 있어서 아름다운 일몰 장소이기도 합니다.

 

내소사 전나무 숲은 그 장대함에 비해 생각보다 연륜이 길지 않아요. 해방 직후에 조림되었어요. 2012년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전나무 60여 그루가 뿌리째 뽑혀 쓰러져 아수라장이 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부러지고 썩어 잘라낸 전나무 둥치들이 안타깝게 남아 있어요. 하지만 전나무 밑동 사이사이에는 새로 심은 어린 전나무가 자라고 있답니다.

 

내소사를 둘러싼 능가산은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라는 범어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삶이 추구하는 길이 이르기 어렵더라도 보존하고 개선하며 더러는 걷어치우고 새로 심고 가꾸는 과정이 쌓여야 한다는 것을 어린 전나무에서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