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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햇살을 머금어 탐스러운 복숭아로 만드는 디저트

어린 시절 여름의 중심에는 늘 수박이 있었어요. 한낮의 열기가 남아 있는 저녁이면 커다란 수박을 쪼개어 선풍기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우적우적 베어 먹으며 더위를 식히곤 했죠. 그러던 수박이 요즘에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모습과 크기로 슈퍼마켓에 나타나더라고요. 딸기 옆에 있기도 하고, 귤과 나란히 진열되기도 하며, 배와 함께 열을 맞춰 서 있어요. 이러하니 이제는 여름을 알리는 전령은 복숭아, 자두, 살구 등이 더 제격인 것 같아요. 이 중에도 길고 긴 여름 전체를 아우르는 과일은 뭐니 뭐니 해도 탐스러운 복숭아죠.

 

글_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여름의 문을 여는 것은 천도예요. 노란색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빨간 천도는 아삭아삭하며 새콤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갖고 있어요. 천도는 말랑하게 익어갈수록 신맛은 줄어들고 단맛은 진해집니다. 탐스러운 모양과 향기로 먼저 입맛을 돋우는 백도와 황도는 과육의 색이 서로 달라요. 껍질 색은 뽀얀 크림색, 은은한 핑크와 진홍색, 짙은 주황색까지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이 외에도 겉은 천도와 비슷한데 과육에 신맛이 없고 백도처럼 달콤한 신비복숭아, 동글납작한 모양이 독특하고 단맛이 진하게 나는 납작복숭아 같은 새로운 품종도 요즘에는 종종 맛볼 수 있답니다.

 

복숭아는 여러모로 참 쓸모가 많은 과일입니다. 요리, 음료, 디저트 그리고 저장식품까지 가능하기 때문이죠. 복숭아를 납작납작하게 썰면 사과처럼 샌드위치 재료로 쓸 수 있어요. 특히 햄, 치즈, 크림치즈 같은 기름지고 구수한 재료와 잘 어울리죠. 구운 베이컨이나 훈제 오리처럼 짭짤하고 기름진 음식과 곁들여도 궁합이 좋습니다.

 

아삭한 복숭아의 씨를 빼고 6~8등분 하여 베이컨을 돌돌 말아 구워내면 간식, 술안주 등으로 두루 먹기에 좋아요. 쉽고 맛있어 캠핑 요리로도 으뜸이고요. 말랑하게 익은 복숭아에는 프로슈토 같은 생햄도 곁들여보세요. 굵게 채 썬 복숭아를 샐러드드레싱에 버무려도 좋지만, 고춧가루와 간장으로 맛을 내는 겉절이 양념에 무치면 예상치 못한, 맛 좋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복숭아 겉절이는 삶은 고기, 구운 고기, 튀긴 고기 등 무엇과도 잘 어울려요.

 

선물 받은 복숭아가 너무 많다면 설탕에 절여 통조림을 만들어봅시다. 통조림을 만들 때는 식감을 생각해 복숭아 껍질은 벗기는 게 좋습니다. 말랑한 복숭아는 껍질 벗기기가 수월하지만 딱딱한 복숭아는 껍질을 벗기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복숭아에 칼집을 내고 끓는 물에 살짝 넣어 껍질이 살포시 일어나면 꺼내어서 얇은 껍질만 살살 벗겨내면 됩니다.

 

손질한 복숭아는 8~10등분으로 썰고, 과육의 30% 정도 되는 양의 설탕과 버무려요. 과즙이 나와 설탕이 녹으면 한 번 더 골고루 섞어 병에 담아 보관하면 됩니다. 먹을 때는 위아래를 크게 섞어 덜어내세요. 복숭아 절임을 만들 때 얇게 썬 레몬이나 오렌지 같은 시트러스 류, 저민 생강, 신맛이 도는 자두 같은 것과 섞어 만들면 맛과 향이 한결 다채로워져요. 만드는 방법은 매우 쉽지만, 쓸모가 많아요.

 

따뜻한 물에 홍차를 진하게 우린 다음 복숭아 절임 국물을 넣어 향과 단맛을 더해요. 여기에 얼음을 넣으면 아이스티가 되는데 이때 복숭아 절임 한두 조각을 곁들여 내면 과일을 먹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어요. 물 대신 탄산수로 청량함을 키우면 더욱더 좋겠죠.

 

절인 복숭아와 시럽을 얼음과 함께 곱게 갈면 달콤함과 향기가 가슴까지 전달되는 시원한 슬러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얼음 양을 조금 줄이고 우유, 플레인 요거트, 아이스크림 등을 넣고 곱게 갈면 여름의 농후한 맛과 향이 가득한 복숭아 쉐이크를 만들 수 있고요.

 

설탕과 복숭아를 함께 끓여서 만드는 조림은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더 길고, 복숭아 특유의 향과 맛이 훨씬 응축된 느낌이 나요. 가열해야 하니 과육이 단단한 것이 알맞아요. 복숭아의 껍질을 벗겨 큼직하게 썰어두세요.

 

물과 설탕을 복숭아가 모두 들어갈 만큼 큰 냄비에 넣고 약한 불로 끓이세요. 설탕이 녹으면, 복숭아와 레몬즙을 넣고 복숭아가 투명하게 익을 때까지 뭉근하게 조려요. 이때 물 대신 화이트 와인을 사용하고, 바닐라 빈이나 시나몬 스틱을 넣으면 개성과 감미로움이 더해지죠. 완성한 복숭아 조림은 잘 식혀서 국물과 과육을 함께 병에 담아 보관하면 됩니다.

 

말랑말랑 향긋한 복숭아 조림은 와플, 팬케이크, 토스트 등에 그대로 얹어 즐기면 잼보다 은은한 단맛으로, 과육의 맛까지 즐길 수 있어요. 아이스크림, 요거트, 팥빙수, 케이크 토핑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려요.

 

복숭아 조림과 국물, 플레인 요거트, 설탕(올리고당)을 넣고 되직하게 갈면 이국의 음료 ‘라씨’가 됩니다. 플레인 요거트 양을 줄이고 우유나 생크림, 설탕을 넣어 부드럽게 갈면 아이스크림 베이스가 되고요. 이것을 아이스 트레이에 그대로 얼려 한 조각씩 즐겨도 좋고, 크고 납작한 그릇에 얼린 다음 포크로 긁어 셔벗처럼 먹을 수 있어요.

 

복숭아로 잼을 만들 때는 색감을 살리기 위해 살구나 천도를 작게 잘라 섞어 보세요. 맛의 개성을 더하려면 신맛이 강한 자두가 좋고요. 살구, 천도, 자두는 향은 진하지만 다소 단조로운 맛이 날 수 있는 복숭아 잼에 섬세한 풍미를 더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복숭아를 한꺼번에 많이 구했다면 멍이 든 것부터 골라 먹는 게 좋아요. 상처 없는 딱딱한 복숭아는 신문지에 하나씩 감싸 두면 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어요. 말랑하게 잘 익은 복숭아는 냉장실에 보관하고, 껍질이 마르기 전에 먹는 게 좋아요. 복숭아는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여름 저녁에 가볍게 먹는다면, 무더움을 잊고 향긋한 꿀잠에 빠질 수 있겠죠.

 

조리법 참고 도서 <계절 과일 레시피> 김윤정 지음, 팬앤펜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