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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태어난 재생건축, 인천 복합예술공간 코스모40

사람은 공간에 따라 다르게 인식을 해요. 집이나 직장, 학교처럼 생활하는 주공간에 따라서 사고와 행동이 달라진다는 의미죠. 상상력과 영감을 얻는 방법 중 하나는 또 다른 공간에서 색다른 자극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의 소외된 공장지대에 자리 잡은 ‘코스모40’은 찾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특별한 공간 중 하나랍니다.

 

 

# 코스모 화학의 40번째 공장 건물

인천 서구 가좌동 일대는 ‘코스모 화학단지’라고 불렸던 대규모 공장지대입니다. 1960년대 가좌동이 공업지역으로 지정된 후, 1968년 국내 최대규모의 (주)코스모화학 공장이 전신인 한국지탄공업으로 이곳에 입주해 40여 년간 화학품을 생산했어요.

 

1970년대만 해도 가좌동은 인천 산업의 중심에 있었답니다. 전국적으로 건설이 활발해지면서 목재 수입의 관문 역할을 하던 인천은 그야말로 최고의 호황을 누렸어요.

 

지금의 가좌동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죠. 목재 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동화개발이 지리적 가치를 알아보고 이 일대를 매립해 지금의 지형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국도가 되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 기공식도 가좌동에서 열렸답니다. 그만큼 입지가 좋은 동네였어요.

 

인천 안에서도 ‘개울 건너’라는 의미의 ‘개건너’라 불리던 가좌동은 공업단지와 함께 인천의 경제 중심지가 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1980년대에는 전국의 동 단위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동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산업은 빠르게 변화했고 2016년에 코스모화학이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텅 비어 버렸던 2만 5천 평 부지는 어느새 다른 공장들로 차곡차곡 채워졌어요.

 

그런 와중에 가좌동에서 13대째 살고 있는 터줏대감 ‘신진말’ 심기보 대표와 로스터리 카페 ‘빈브라더스’ 박성호 대표, 이를 운영하는 에이블커피그룹 성훈식 공동대표가 의지를 모아 코스모화학의 공장 한 동을 사들였습니다. 혐오스러운 산업시설이 지역 재생의 좋은 역사자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어요.

 

코스모화학의 45개 공장은 모두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40동은 주거지와 가깝다는 이유로 철거 기간 동안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에 철거하기로 결정됐어요. 이렇게 살아남은 40동을 뼈대와 내부 분위기를 살려 리모델링했습니다.

 

복합문화시설로 변신한 ‘코스모40’은 코스모화학의 40번째 공장 건물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런 네이밍 전략은 언뜻 힙한 이미지를 주면서도 자연스레 이름의 유래를 궁금하게 해, 공간의 과거를 기억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요.

 

 

# 완전히 분리된 건물 속 건물

코스모40은 정적이고 공간예술 작품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이에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40번째 건물은 폐수 처리 시설이었어요. 재생 건축을 현행법에 맞추려면 새 단열재와 내화페인트로 매력적인 흔적을 모두 지워야 했죠. 이 모순에서 건축가의 상상은 시작됐습니다.

 

‘옛 건물과 완벽하게 분리된다면 증축 부분만 현행법을 충족하면 될 것 아닌가?'

 

건축가 겸 디자이너이자 공공예술 작가인 ‘삶것건축가사무소’ 양수인 소장은 기존 폐공장 건물의 독특한 매력을 보전하면서 현행법에 맞는 안전한 건물을 설계했어요. 새 건물을 기존 건물과 물리적인 접촉 없이, 연속된 하나의 고리 모양으로 폐공장 안에 삽입시킨 것이죠.

 

이 고리는 주로 로비와 수직 동선 역할을 하며 옛 공장 공간을 새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요. 신관은 3층에서만 공장 안으로 삽입되는데, 옛 공장의 기둥을 새로 만든 기둥이 둘러싸 지지하고 있어요.

 

신관이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독립된 증축으로 인정받음으로써 기존 공장은 현행법 충족의 부담에서 벗어나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한 배경으로 남을 수 있었어요.

 

옛 공장은 신관 내부 입면 전체를 아우르는 접이식 문을 통해 분리되기도 하고,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신관과 공장의 관계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을 의도하고, 서로 다른 세월과 분위기의 중첩이 흥미로운 경험을 창출하도록 했어요.

 

증축 아이디어의 참신성과 낯섦을 유도한 작가의 의도가 높이 평가받으면서 코스모40은 ‘2019년 인천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인천 지역 산업 현장의 도시 자산을 재활용하고 지역성과 건축적 실험이 동시에 잘 적용된 건축물로, 도시재생에서 건축의 역할이 물리적 해결을 넘어 역사성과 인식 전환의 기능을 한다는 것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죠.

 

 

# 낡은 공장의 ‘폐허미’를 보존한 코스모40

코스모40을 겉에서 보면, 다른 주변 공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무 정보 없이 가면 카페나 문화공간으로 생각하지 못한답니다. 자연스럽게 주변 공장과 주택에 어울려 있고, 주변 정리만 돼 있어요.

 

내부로 들어가면 외형과는 또 다릅니다. 완벽하게 독립된 신관은 F&B 공간과 상점으로, 옛 공장은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하는 대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했어요. 지하와 지상 총 5층 공간을 활용해 전시나 공연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3층은 커피와 맥주, 피자와 베이커리를 즐길 수 카페 라운지, 4층은 강연과 작은 상영회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홀을 마련했어요.

 

지층과 양쪽의 메자닌으로 구성된 저층부는 철골과 콘크리트가 어울린 넓은 공간으로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를 수용하기 위해 남겨진 빈 공간이죠. 코스모화학 공장 원래의 모습을 살린 메인 홀 높이는 10m에 이르기 때문에 폐공장을 활용한 문화재생, 전시회, 영상 문화 콘텐츠 장소로 이용되고 있어요.

 

이 공간의 유일한 새로운 건축적 요소는 3층 신관을 받치는 기둥 묶음인데,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두꺼운 빛기둥 역할을 해요. 옛 공장의 3층은 14m 높이의 대공간으로 기계 점검을 위해 부분적으로 설치되었던 그레이팅 바닥이 4층에 남아 있어요.

 

3층 카페 라운지 한편에는 외부와 연결된 작은 정원도 있어요. 도심 풍경을 보고 시원한 바람을 맞기에도 좋고 비 오는 날도 운치 있답니다. 이색적인 풍경이에요.

 

 

# 버려진 공장이 문화공간으로, 코스모 콘텐츠

잘 만들어진 공간에는 공간과 어울리는 콘텐츠가 있기 마련이죠. 코스모40 역시 그렇습니다. 거대함, 웅장함, 변화무쌍함을 무기로 전시와 토크쇼, 디제잉 파티와 스케이트보드 대회가 경계 없이 열려요. 검증된, 인기 있는 콘텐츠를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코스모40에서만 볼 수 있는 이곳과 닮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어요.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된 것이죠.

 

코스모40은 플랫폼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어요. 서울에서는 한 가지 흐름으로 가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지역민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것을 보는 것이 좋겠죠.

 

인천은 애초에 문화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플레이어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것을 보여주는 게 지역의 환경에 부합한다는 반응을 얻고 있어요.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 방향이 지역과도 맞아 보입니다.

 

공간은 만드는 사람이 일차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결정하지만, 그 공간에서 무엇이 코어 프로그램인지는 결국 찾아오는 사람들이 결정하게 돼요.

 

코스모40이 계속해서 F&B를 중심으로 사랑받는다면 점차 F&B 공간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고, 전시 공간으로 사랑받는다면 전시장으로 좀 더 다듬어질 거예요. 여태껏 우리가 발견하거나 시도하지 못한 어떤 프로그램이 이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릴 수도 있구요. 코스모40이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발견되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코스모40’ 방문 팁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전철은 인천2호선 인천가좌역 또는 가재울역에서 내리고, 버스는 11번, 14번, 24번 28번 등을 이용하면 돼요. 승용차로 가면 경인도로 가좌IC를 통해 갈 수 있답니다.

 

[코스모40]

• 주소 : 인천 서구 장고개로231번길 9

• 시간 : 매일 11:00 - 21:00

• 문의 : 032-575-2319

 

도시 생태계에서 새로운 유망 지역이 생겨나는 것만큼이나 정체 또는 낙후된 지역이 생겨나는 것도 필연적입니다. 정체되고 낙후된 지역은 어떤 계기로 다른 변화를 맞기도 해요. 코스모40은 현재 공단 안에서 다른 공장들과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는 공간입니다. 공업원료가 가득했던 곳이 이제는 사람과 이야기로 채워져 가고 있어요.

 

개척자로서 어려움이 있지만, 코스모40은 주변의 관련 인프라가 조금씩 붙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기존의 하드웨어 안에서 충분히 다른 맥락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해요. 코스모40은 2018년 10월 완공했지만, 오픈 이후에도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