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김민경(푸드 칼럼니스트)
요즘은 사시사철 언제든 마트에만 가면 원하는 과일과 열매를 얻을 수 있지만, 그래도 가을은 여전히 수확의 계절이다. 알맞게 익어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를 보면 괜히 마음도 넉넉해진다.

 

풍요로운 한가위가 가까이 왔음을 느낄 때가 바로 단풍과 열매다. 가을이 되면 나무의 이파리만 울긋불긋 하는 게 아니라 열매도 올망졸망 울긋불긋 풍성하게 열린다. 주택가에 흔한 대추나무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매년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앞산 뒷산에 풍성한 밤나무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가을을 맞은 감, 대추, 밤은 늘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을 만큼 우리와 친숙하다. 게다가 한가위 차례 상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가을의 팔색조, 감

감은 사과, 배와 같이 가을 열매의 대표 격이다. 사과와 배는 일 년 내내 시장에 보이는 반면 싱싱한 감은 가을에만 제 맛을 볼 수 있다. 물론 곶감, 냉동 홍시가 싱싱한 감의 자리를 어지간히 메워주기는 하지만, 단단할 때 먹어도 떫은맛이 나지 않는 단감은 9월말부터 초겨울까지 나온다. 감은 다른 열매가 가진 신맛이 거의 없고 달거나 떫다. 포도당과 과당이 풍부하기 때문인데, 덕분에 피로회복에 좋고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린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인데, 타닌이라는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설사를 멎게 하는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감은 말리고, 홍시로 만들고, 얼려서 두고두고 먹기도 하지만 꽤 여러 가지 요리에 활용할 수도 있다. 단감을 도톰하게 썰어 소금물에 절였다가 물기를 꽉 짜 꾸덕꾸덕하게 말리고 이 말린 감을 고추장에 버무린다. 입맛에 맞게 꿀, 설탕, 올리고당으로 단맛을 내면 의외로 맛좋은 반찬이 된다. 잘게 썰어 샐러드나 생채를 만들 때 조금씩 넣어도 식감을 살려 준다. 쑥버무리처럼 감버무리를 해먹어도 좋다. 단감 말리는 게 번거롭다면 감말랭이로 고추장장아찌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과육이 단단하고 수분이 적으며 맛이 좋은 단감은 피클로도 적합하다. 피클주스를 만든 뒤 뜨거울 때 단감에 부어 2일 정도 숙성하여 먹는다. 피클링 스파이스(피클을 담글 때 쓰는 향신료)가 없다면 통후추와 월계수 잎만 넣고 피클주스를 만들어도 충분히 맛있는 감 피클이 된다.

 

무른 감이 있다면 잼으로 만들면 된다. 다른 과일처럼 설탕과 레몬즙 정도만 섞어 끓이면 된다. 잼을 만들 때 홍시를 더하면 설탕을 줄여도 된다. 단단한 감을 곱게 갈아 생크림, 우유, 설탕과 섞어 한소끔 끓여 밀크잼을 만들 수 있는데 이때 계피 조각을 함께 넣고 끓이거나, 마지막에 시나몬파우더를 섞으면 한껏 멋스러운 풍미를 낼 수 있다. 피로 회복과 숙취를 떨쳐버리고자 한다면 주스가 답이다. 다디단 홍시에 레몬즙만 넣어 갈아도 충분하다. 맛을 내고 싶다면 사과, 배, 바나나, 망고, 귤을 넣고 셀러리 한두 조각을 넣자. 셀러리는 맛은 거의 내지 않으면서 산뜻한 주스로 완성시켜 준다.

 

내가 즐겨 먹는 건 곶감이다. 우리 가족은 가을마다 곶감을 만들어 겨우내 손수 만든 곶감을 먹곤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단단한 감이 많이 나올 때 즉, 값이 쌀 때 넉넉히 사서 껍질을 깎고, 꼭지는 둔 채로 채반에 엎어 말리면 된다. 보통은 하동이나 광양에서 많이 나는 커다란 감인 대봉으로 만들었지만 단단한 감이면 무엇이든 된다. 골고루 바람을 쐬도록 이리저리 돌려주고, 혹시 무르지 않는지 살펴 보다 보면 하루 이틀 지나 감 표면이 마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나면 아무리 떫던 감도 달콤해지기 시작한다. 과육 겉이 투명하게 마르고 말랑말랑해진 것부터 골라 먹었다. 완전한 곶감이 되기 전 상태인데 꿀보다 달고 부드럽다. 시장에서 파는 곶감처럼 단단하게 말리지 않고 이렇게 반 곶감 상태일 때 냉동해 두면 그 맛을 오래 두고 볼 수 있다. 홍시는 단감보다 늦게 맛볼 수 있다. 단감처럼 동글납작하게 생긴 홍시가 있는가하면 앞서 말한 크고 뾰족한 대봉 홍시도 있다.

 

맛과 영양도 모두 만점, 실한 대추 고르는 방법

어릴 때 “대추를 보고도 안 먹으면 늙는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쪼글쪼글한 마른 대추를 무슨 맛으로 먹을까 싶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특유의 고소함과 단맛을 알고 나면 좀처럼 손을 뗄 수가 없다. 대추는 그 작은 몸뚱어리에 엄청난 양의 영양소를 갖고 있다. 비타민 C 함량이 같은 무게의 딸기와 레몬에 버금가며,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사포닌을 비롯하여 칼슘, 인, 마그네슘, 칼륨, 철 등도 함유하고 있다. 때문에 노화방지, 항암, 항산화, 피로회복, 피부미용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일까. 대추는 예부터 과일보다는 약재로 널리 쓰였다. 그러고 보니 ‘대추 세 알 먹으면 죽던 사람도 살아난다’라는 속담도 있다.

 

마른 대추는 주름이 적고 선명한 붉은 색을 띠며 윤이 나는 것이 맛있다. 생강이나 황기 등과 섞어 그대로 차로 푹 끓여 마시면 은은한 단맛이 참 좋다. 대추의 진한 맛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마른 대추를 깨끗이 씻어 물에 넣고 과육이 흐물거릴때까지 40분 정도 끓인 뒤 체에 걸러 따뜻한 물에 꿀과 함께 타서 마시면 된다. 이렇게 끓여 거른 과육으로는 불린 쌀과 함께 죽을 쑤어도 맛있고 요거트에 섞거나, 우유에 넣어 한 번 더 갈아 마셔도 된다.

 

요즘에는 마른 대추의 씨를 빼고 송송 썰어 먹기 좋게 나오는 제품이 많다. 이런 제품들은 시리얼과 섞어 먹거나, 샐러드와 디저트 토핑으로 활용하면 색다르다. 솜씨 좋은 사람이라면 쿠키, 마들렌, 파운드케이크 등을 만들 때 대추 편을 넣는 것도 방법이다. 대추는 굽는 과자의 부재료로 많이 사용되는 홍차, 레몬, 초콜릿, 코코넛, 견과류와 썩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가을에는 마르기 전의 싱싱한 대추 맛을 꼭 한 번 보길 권한다. 아오리 사과처럼 연한 초록색에 붉은 기운이 조금씩 감도는 생대추는 정말 맛있다. 아삭아삭하고 달기가 그만이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씨도 작아 바구니에 한 움쿰 담겨 있으면 금세 동이 나곤 한다. 나라면 흔한 사과 한 알을 먹느니 대추 한 줌을 택하겠다.

 

우리 몸에 가장 유익한 열매, 밤

뾰족한 머리와 까슬까슬한 엉덩이를 가진 밤도 매력적인 열매다. 가시로 뒤덮인 주머니 안에 깎아놓은 듯 폭 안기듯 담겨 있는 모습은 어딘가 귀엽기까지 하다. 단단한 껍데기를 벗기면 속살을 착 감싸고 있는 속껍질이 있는데, 이것까지 벗겨내려면 제법 품이 든다. 가을 산에 가면 여기저기 바닥에 떨어진 밤이 꽤 많은데, 밤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벌레가 먹기 시작한다. 만약 산에서 밤을 주워왔다면 깨끗한 물에 1시간 정도 담가 두도록 하자. 둥둥 뜨는 밤은 벌레가 먹은 것이니 미련 없이 버린다. 남은 밤은 그대로 물에 1시간 더 담갔다가 삶아 먹으면 된다. 물에 담갔다가 밤을 삶으면 껍질이 쉽게 벗겨져 먹기에 편하다.

삶은 밤은 달고, 부드럽고, 구수하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랄까. 밤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고 아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호두, 아몬드, 잣 등에 비해 열량은 물론이고 지방함량도 낮다. 게다가 비타민 C 함량은 토마토나 키위보다 높은데 조리해도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더불어 비타민 D와 B₁까지 풍부하다. <동의보감>에서는 밤을 ‘가장 유익한 과일’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삶은 밤은 통째로 갈비찜이나 찜닭에 넣기도 하고, 따로 짭짤하게 조려 반찬으로 즐긴다. 달게 조리면 간식이 되고, 삶은 밤을 으깨 꿀, 잣가루 등과 섞어 한입 크기로 뭉쳐 색다른 별미로 즐기기도 한다. 삶은 밤, 메이플 시럽, 물을 섞어 한소끔 끓여 곱게 갈면 밤잼이 된다. 잼의 농도가 묽다면 다시 한 번 끓여서 걸쭉하게 만들면 된다.

 

이뿐만 아니라 모과, 으름, 다래 등 가을 열매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모과는 그윽하고 진한 향에 비해 별 쓸모가 없는 과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단단한 과육을 차로 담가 두면 겨우내 먹는 약이 된다. 과육이 워낙 단단해 써는 데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 두자. 잘게 채 썰거나, 혹은 나박하게 썰어 설탕에 재운 뒤 모과청을 만드는 것이다. 국물과 함께 듬뿍 주전자에 넣고 배나 생강까지 썰어 넣어 함께 끓이면 더 맛있고 몸에도 좋다. 단, 너무 오래 끓이면 떫은맛이 나니 주의할 것. 이렇게 만든 모과차를 6개월 이상 발효하면 환절기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가을을 왜 풍요의 계절이라고 하는지, 하나 같이 개성 넘치는 가을 열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때가 아니면 그 맛과 향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들이니 오는 추석에는 조금 더 공들여서 바구니를 채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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