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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미술 전시회!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장욱진(1917-1990) 화백은 한국적 정서를 정감 어린 형태와 독특한 색감으로 화폭에 담아 우리 근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 회화 세계를 이룬 작가로 손꼽힙니다. 1978년 《장욱진 도화전》을 시작으로, 《장욱진 화집 발간 기념전》, 《장욱진 10주기 회고전》, 《장욱진 20주기 기념전》 등 전시를 꾸준히 열며 작가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현대화랑은 2021년 장욱진 화백의 30주기를 기념해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展을 개최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인 ‘집’, ‘가족’, ‘자연’을 테마로 엄선한 그의 대표작 50여 점을 만날 수 있답니다.

 

 

# 심플하지만 심플하지 않은 장욱진 그림

<가족도>, 1972, 캔버스에 유채

장욱진 그림을 전시장에서 직접 만나면 여러 면에서 놀라게 돼요. 크기가 작은 그림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라고, 그 작은 화면 안에 산과 해, 나무와 새, 집과 가족 모두가 있어서 놀란답니다.

 

세로 7.5㎝, 세로 14.8㎝, 작은 다이어리 크기의 1972년 작 <가족도>에는 초록 나무 두 그루 사이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황토색 집 지붕 위로 네 마리 새가 열 지어 날아가고 있어요. 목가적 정취로 가득한 자연 속에 소박하지만 온기 가득한 집과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의 애틋함이 느껴집니다.

 

<얼굴>, 1957, 캔버스에 유채

장욱진 그림은 친근한 소재를 쉽고 간결하게 표현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다룬다는 점에서 '쉽고 단순한 그림'으로 여겨지기도 해요.

 

스스로 “나는 심플하다”라고 말하지만, 그의 작품은 결코 심플하지 않아요. 작고 간결한 공간을 자기식으로 쪼개고 꾸미는 화가의 까다로운 기호가 응집력 강한 화면으로 표출돼 있답니다.

 

겉으로는 아이들도 그릴 수 있다고 할 만큼 간단해 보이지만, 장욱진은 문인산수화, 민화 등의 전통 도상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을 회화로 구현해냈어요.

 

 

# 안식처이자 영혼이 깃든 아틀리에 ‘집’

<집>, 1988, 캔버스에 유채

일제 식민지, 한국전쟁, 산업화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작가에게 집과 가족의 의미는 남달랐어요. 사각과 삼각형의 간결한 형태로 그려진 ‘집’은 황폐해진 환경에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예술적 영혼이 깃든 아틀리에였습니다.

 

덕소, 명륜동, 수안보, 신갈 등 시대마다 머물렀던 각 작업실을 기준으로 그의 작업 양상을 논할 정도로 장욱진의 작품과 집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어요.

 

장욱진은 한적한 시골의 오래된 한옥과 정자를 손수 고쳐 아틀리에로 탈바꿈시켰어요. 1963년 양주 한강 변에 지은 덕소 화실, 1975년 낡은 한옥을 개조한 명륜동 화실, 1980년 농가를 수리한 충북 수안보 화실, 1986년 초가삼간을 개조한 용인 마북동 화실이 그곳이죠.

 

그의 화실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며 예술의 본질에 다가가려 노력한 예술가의 흔적을 잘 간직하고 있답니다. 장욱진의 작품에는 세월에 따라 그가 머문 ‘집’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해요.

 

1969년 작 <앞뜰>에는 아내를 위해 덕소에 지은 한옥이, 1986년 작 <아침>에 등장하는 집은 시멘트 담장을 헐고 토담을 지어 싸리문을 단 수안보의 시골집을 닮았어요. 1990년 작 <밤과 노인>의 집은 작가가 아내와 둘이 살며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양옥으로 지은 마북동 화실의 모습이죠.

 

‘집’과 공간, 나아가 건축에 대한 관심은 그림의 조형적 질서와 구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는 집 혹은 나무를 중심으로 해와 달, 두 아이가 자연스럽게 좌우 대칭을 이루는 구도를 자주 사용했고, 화면에 타원형이나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공간을 별도로 구성했어요.

 

“나는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12년 전부터 아예 서울을 버리고 이곳 한강이 문턱으로 흐르는 덕소에 화실을 잡았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덕소의 비를, 덕소의 달을, 덕소의 바람을, 덕소의 모든 것을 얘기해 준다. 그만큼 나는 덕소를 사랑한다.”

- 「새벽에 세계」, 샘터, 1974

 

 

# 아버지·어머니·아이들로 구성된 ‘가족’

<가족>, 1973, 캔버스에 유채

1941년 결혼 후 6명의 자녀를 두었고, 가족은 그가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이자 그 자체로 사랑과 행복의 표상입니다.

 

1960년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살면서, 아내가 서울 혜화동에서 ‘동양서림’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어요. 그가 덕소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혼자 생활한 덕소 화실 작품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고마움의 감정이 더욱 애잔하게 배어 있습니다.

 

1973년 작 <가족>에는 중앙에 초록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집, 왼쪽에 정자, 산과 해, 그리고 날아가는 새들까지 장욱진이 평생 모티브로 삼아온 집, 가족, 자연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장욱진이 추구한 이상세계인 셈이죠.

 

장욱진은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그렸어요. 그의 그림에서 가족은 작은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자연 속을 산책하거나, 한가로이 농촌 생활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생전 작가는 가족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오직 그림을 통해 이해된다고 강조하곤 했어요. 덕소 시기(1963-1975)의 작품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고마움의 감정이 강조됩니다. 가장의 역할을 되찾고 가족과 지낸 명륜동 시기(1975-1979)의 작품에는 가족의 이미지가 주변 환경과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수안보 시기(1980-1985)에 부인과 단둘이 지내며 심리적 안정을 찾은 그는 자연 친화적이며 도가적인 경향의 작품을 그렸어요. 신갈 시기(1986-1990)에 들어서며 강한 색채와 장식적인 특징을 보이는 작품이 등장해요.

 

그는 소와 돼지, 닭처럼 주변 동물을 그릴 때도 ‘가족’을 강조했어요. 어미 소 아래에서 젖을 먹는 송아지, 마당을 뛰놀거나 하늘을 나는 어미 새와 새끼 새 등 어미와 새끼를 함께 그려 동물 가족을 묘사했습니다.

 

뒷동산에서 한가로이 노는 어른과 아이, 소와 돼지 그리고 하늘을 유유히 나는 새 가족의 모습은 장욱진이 우리에게 제시한 자연 속 가족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답니다.

 

 

# 화가가 꿈꾼 이상향 ‘자연’

<까치와 나무>, 1986, 캔버스에 유채

자연 역시 장욱진에게는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였어요. 목가적 정취로 가득한 ‘자연’은 집과 가족의 보금자리이자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평화의 장소이며, 작가의 도가적 세계관을 암시하는 곳입니다.

 

그의 그림 속 푸르른 생명력을 간직한 풍경은 자연과 어우러져 살기 원한 화가의 또 다른 초상이자 원초적 이상향입니다. 원근과 비례가 자유로운 자연의 묘사에서 장욱진만의 도드라진 풍류와 순수함을 엿볼 수 있어요.

 

장욱진에게 자연은 늘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집과 아틀리에 주변을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한 그는 자연에서 전쟁으로 떠난 고향과 어린 시절에 관한 향수를 느꼈어요.

 

자신을 ‘자연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며 끊임없이 고즈넉하게 자연과 마주할 장소를 찾아다녔죠. 시끄럽고 번잡한 도시를 떠나 덕소, 명륜동, 수안보, 신갈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삶과 예술의 터전을 마련했어요.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스치는 여름 강바람-이런 것들이 나 역시 손색없는 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공허하지 않다. 자연의 침묵이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 『강가의 아틀리에』, 열화당, 1976

 

<들 풍경>, 1980, 캔버스에 유채

그의 그림 안에는 작은 집이 있고, 가족이 모여 있고, 큰 나무가 자라고, 동물이 살아가고 있어요. 장욱진은 그곳의 비, 달, 바람까지도 사랑하며 주변의 풍광을 동화적인 모습으로 그려냈죠.

 

그의 단순한 그림은 동화 같기도 하고, 민화 같기도 하고, 민속적이기도 하고, 신선이 나올 법하기도 하죠. 유화지만 두껍지 않고 얇게, 색감도 진하지 않고 담백한 느낌으로 수묵유화를 즐겨 그렸답니다.

 

 

# 그리고 ‘장욱진’

덕소 시기(1963~1975)의 장욱진 / 촬영 강운구 (사진 출처 : 현대화랑)

장욱진은 살아생전 “나는 심플하다”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장녀 장경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가 아버지를 회고하며 쓴 <나의 아버지 장욱진>에는 “아버지는 그림도, 정신도, 삶도 당신 말씀대로 심플했지만, 유품까지도 우리가 섭섭할 정도로 심플했다”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1990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화실을 찾았더니 너무도 깨끗해 “낙서 한 장 없었다”는 것이죠. 그런 화실을 보며 야속하고 섭섭해 쓰레기통까지 다 뒤졌다는 딸은 아버지는 "언제나 모든 날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셨던" 분이라고 책에 덧붙였어요.

 

<자화상>, 1951, 종이에 유채

장욱진의 1951년 작 <자화상>은 비현실적이에요. 한국전쟁 중에 충남 연기군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연미복을 입고, 중절모를 들고, 콧수염을 기르고, 우산까지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어요.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가을 논과 평화로운 풍경은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라고 할 수 있죠.

 

<밤과 노인>, 1990, 캔버스에 유채

집 밖에서 뒷짐을 지고 밤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긴 노인은 도인 같아 보여요. 1990년 작 <밤과 노인>은 장욱진이 유명을 달리하던 해 그려진 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해학과 자유, 천진난만함이 깃든 작가의 조형 언어가 여실히 느껴지죠.

 

일신의 안락을 추구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 쓰고 가겠다고 작정한 작가는 마지막까지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답니다.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서 다 써버릴 작정이다. 저 멀리 노을이 지고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적막한 자연과 누릴 수 있게 마련해 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 『강가의 아틀리에』, 열화당, 1976

 

 

#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展 관람 팁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展은 장욱진 화백의 대표작 50여 점을 한자리에서 감상하는 기회이자, 해학과 자유, 순진무구함이 깃든 그의 아름다운 조형 언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展은 예약이 필수에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30분 단위로 다섯 명씩 예약할 수 있지만, 노쇼가 발생한다면 현장에서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날짜에 예약을 놓치더라도 기회를 노려볼 만해요.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

• 기간 : 2021년 1월 13일 ~ 2월 28일

• 위치 : 현대화랑 (서울 종로구 삼청로 8 갤러리현대본관)

• 문의: 02-2287-3591

• 예약 URL :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466460

 

전시를 보고 나면 집과 가족과 자연이 있는 작가의 그림이 집에 한 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함의 미학과 소박한 삶의 이상향이 작은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통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지친 우리 마음에 집의 소중함과 가족을 향한 사랑, 이제는 잊혀진 깨끗하고 아름다운 동화적 세계를 다시 상상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