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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6월, 어디까지 알고 있니?

5월이 화목한 가정을 위한 ‘가정의 달’이었다면,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나라의 소중함과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는 달입니다. 여러분은 호국보훈의 달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오늘은 호국보훈의 달에 대해 알아보며 6월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들을 소개해보려고 해요. 함께 알아보러 갈까요?

 

 

호국보훈의 달 의미

현충일과 6.25전쟁, 제2연평해전이 일어난 달인 6월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의 ‘호국’, 공훈에 보답한다는 의미의 ‘보훈’의 뜻을 담아 호국보훈의 달로 불려요. 국가보훈처에서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을 기리기 위해 지정한 달이죠.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6월 한 달을 세 기간으로 나누어 호국보훈의 정신을 기리고 있어요. 첫 번째 기간은 6월 1일~10일까지입니다. 이 기간은 ‘추모의 기간’으로 현충일 추념식을 실시합니다. 두 번째 기간은 6월 11~20일까지이며 ‘감사의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는 국가유공자 및 유족을 위로, 격려하며 보훈 관련 문화행사를 지원합니다. 마지막 기간인 6월 21일~30일은 ‘화합과 단결’의 기간으로 이 시기에는 6.25전쟁 기념식과 제2연평해전 기념행사 등이 진행되고 있어요.

 

이렇게 호국보훈의 달로 정해진 6월에는 국가보훈의 상징인 ‘나라사랑 큰 나무’달기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해 국가유공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 풍토를 조성하며 국민화합을 지향하고 있답니다.

 

 

6월 잊지 말아야 할 기념일

▎의병의 날

호국의 달의 첫날인 1일은 의병의 날입니다. 2010년 2월 국회에서 의결되어 2010년 5월 개정안을 통해 매년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하고 있어요. 의병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적으로 조직해 정부군을 돕거나 향토방위에 힘쓴 군대를 뜻해요.

 

의병은 우리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대몽항쟁, 임진왜란, 그리고 구한말 외세 침입 시 의병은 정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힘을 합쳐 외적들과 싸운 숨은 애국자인 것이죠. 특히 임진왜란에서 곽재우 의병장과 같은 의병장들은 의병을 조직해 일본군을 무찔렀는데요. 일본군이 후방에서 의병에게 연전연패해 보급선이 끊기는 역사적인 사건도 있었죠.

 

훗날 곽재우 의병장이 활약한 경남 의령은 의병의 본고장과 같은 곳이 되어 의령 박물관이 세워지기도 했어요. 정부 직위도, 녹봉도 없이 오로지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싸운 의병들의 업적을 기리는 날이 의병의 날입니다.

 

▎현충일

우리나라는 1948년 8월에 정부를 수립하고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을 겪었어요. 이때 25만 명 이상의 국군들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를 기리기 위해 1956년에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하고 법정공휴일로 지정해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념하고 있어요.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순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며 조기 게양을 합니다.

 

▎6.10 민주항쟁 기념일

전두환 정권 무렵 4.13호헌조치를 발표하고,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억압하는 등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이 이어졌어요. 그러다 1987년 1월,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박종철 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거리시위가 전개됩니다.

 

6월 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 시위를 말해요. 6월 10일 국민운동본부는 ‘박종철고문살인규탄 및 호헌철폐국민대회’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해 민주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했어요.

 

같은 날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표위원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전두환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급격히 확산되게 됩니다. 6월 15일까지 명동성당농성투쟁, 18일 최루탄 추방대회, 26일 민주헌법쟁취 대행진에 이르기까지 20여 일간 전국적으로 500여만 명이 참여해 ‘직선제 개헌 민주화 촉구’를 위한 거리집회·시위·농성 등이 이어졌어요.

 

6월 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권력 유지를 민주세력과 시민의 역량으로 저지시켰다는 의미가 큽니다.

 

▎6.25 전쟁일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선제 타격 작전 계획에 따라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합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또 국군은 6월 초 사단장 등 지휘부의 인사이동을 한 상태라 병력의 3분의 1 정도가 외출이나 농번기 휴가를 나간 상황이었어요.

 

그렇게 6월 27일 새벽 3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을 떠났고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민들은 뒤늦게 대전과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밀려나며 나라는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시행되고,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를 겪고 길고 긴 협상 끝에 전쟁은 휴전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통해 유례없는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전 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알리고 있어요. 6.25 전쟁일은 이 전쟁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법정기념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애국심 뿜뿜! 6월에 보면 좋은 영화는?

▎밀정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밀정>은 1920년대 나라의 독립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의열단’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조선인 출신의 일본 경찰인 이정출(송강호)은 무장독립단체인 의열단의 뒤를 캐야 한다는 특명으로 의열단의 리더인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합니다. 서로의 정체와 의도를 알면서도 속내를 감춘 채 가까워지게 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가 양쪽으로 새어나가는 일이 발생합니다.

 

누가 밀정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의열단은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할 폭탄을 경성으로 들여오려고 하고, 일본 경찰은 그들을 쫓아 상해에 모이게 됩니다. 잡아야 하는 자들과 잡히면 안 되는 자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서로를 이용하려는 암투와 교란작전이 펼쳐지죠. 그 가운데 폭탄을 실은 열차는 국경을 넘어 경성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출처 : 네이버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의 중요한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된 대한민국에서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리암 니슨)는 모두의 반대 속에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합니다. 성공 확률은 5000:1로 불가능에 가까운 이 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 하나, 인천으로 가는 길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뿐이었어요.

 

맥아더의 지시대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는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해 인천 내 동태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는 위기에 놓이죠. 그 가운데 장학수와 그의 부대원들은 전세를 바꿀 단 한 번의 기회, 단 하루의 작전을 위해 인천상륙 함대를 유도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에 나서게 됩니다. 역사를 바꾼 비밀연합작전은 인천상륙작전 영화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택시운전사

<출처 : 네이버 영화>

택시운전사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5월을 담은 영화입니다.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말에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광주로 가는 이야기에요.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별명을 가진 위르겐은 당시 독일 제1공영방송 ARD-NRD의 카메라맨으로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은 상황을 듣고 한국에 입국했어요. 일명 ‘피터’라 불리며 맹활약을 한 위르겐은 5.18 민주화운동 현장을 영상에 담아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광주로 들어가니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공수부대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최루탄을 살포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진압봉을 휘두르며 폭행을 가하기 시작해요. 영화 택시운전사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생생하게 담아 더 의미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연평해전

<출처 : 네이버 영화>

2002년은 우리나라가 뜨겁게 열광했던 월드컵의 해로 기억됩니다. 무더운 여름,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 경기가 열리던 그날, 서해 바다 한가운데 포성이 울려요. 해군 출신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김무열) 대위, 한 사람의 든든한 남편이자 참수리 357호 조타장 한상국(진구) 하사, 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참수리 357호 의무병 박동형(이현우) 상병은 서로를 의지하며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도 고된 훈련을 하고 있었죠.

 

그날, 그들에게 포성소리가 들리며 순식간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북한군 함정이 서해 NLL을 침범하고, 우리나라는 그들에게 차단기동을 실시했으나 북한이 우리에게 한 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것이죠. 북한군은 참수리 357호에만 집중적으로 사격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끝까지 함대를 지키며 싸운 우리 군인들의 이야기가 연평해전 영화 안에 녹아져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내용은 2002년의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선수뿐 아니라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당시의 군인들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과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를 알아보았어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평화로운 대한민국은 모두 역사 속에서 치열하게 나라를 위해 싸운 순국열사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번 달은 국가유공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