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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귀를 감동시키는 사운드 디자인의 세계

글 ㅣ 김동연 자동차 칼럼니스트
잠시 눈을 감아보자. 무슨 소리가 들리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새로운 문자가 왔다는 알림 소리, 아메리카노 커피 컵 속 얼음을 흔드는 소리,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의 경적소리. 무수히 많은 소리들이 우리의 귓가를 맴돌고 있다. 이런 소리들이 주는 기쁨 그리고 그 기쁨을 만드는 사운드 디자인의 세계에 대해 알아보자.

자동차의 소리는 재앙의 등장?



프로덕트 디자인(product design, 제품설계)에서 소리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다. 가전제품 회사는 냉장고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나 청소기의 모터 소리를 더 부드럽게 다듬고 있다. 자동차 회사는 엔진이 만들어 내는 소리인 엔진노트(Engine note)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사운드 전문가들을 고용까지 하고 있다. 그만큼 청각이 주는 즐거움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이유에서 요즘 유튜브 등 SNS상에서도 ASMR(자율감각쾌락반응,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자극하는 다양한 소리를 담은 컨텐츠가 각광받고 있다. “아사삭” 하며 샐러드를 씹는 소리, “차르르” 하며 삼겹살을 굽는 소리 등을 담아내, 방송을 보는 사람과 함께 현장의 생동감을 나누고 있다. 소리만 들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이러한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 소리설계)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단연 자동차다. 본래 자동차의 소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그 자체적인 엔진의 울음이 날 것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태초의 자동차는 엔진 자체적인 소리를 냈지만, 엔진 배기량이 작고 단기통 실린더를 장착해 그 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날의 경운기 소리와 흡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더 빠른 차를 원하면서 배기량이 커지고 엔진도 다기통으로 바뀌어갔다. 따라서 항공기 엔진을 자동차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정도의 고배기량 다기통 엔진이 속속 등장했다. 당시 이런 자동차를 바라본 사람들은 자동차의 등장을 괴물 혹은 천둥과 같은 재앙의 등장에 비유하기도 했다. “우르르꽝꽝” 거리며 도로 위를 달리던 자동차의 모습을 결코 반길수만은 없었다. 자동차 주변에서 귀를 틀어막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가 다가오며 내는 굉음에 귀신을 본 것마냥 도망가기도 했다.


최초의 자동차는 행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음이 엔진에서 곧바로 생산되어 울려 퍼졌다. 배기가스를 뽑아내는 배기 파이프라는 것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다 보니 그 소리는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이 배기가스를 자동차의 후면 등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파이프를 통과하면서 발생하는 소리도 엔진음을 풍부하게 만드는데 한몫했다. 특히 근대 자동차의 정점인 7~80년대에는 자동차 업계에서는 기념비적인 자동차나 기업의 최고 기술력을 담은 차들을 너나 할 것 없이 쏟아냈다. 이 때문에 당대 자동차들의 소리도 우렁찬 경우가 많았다. 당시만 해도 배기가스의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는 경우는 적었던 탓이다.


그런데 80년대 말부터 오늘날까지 자동차들의 소음은 대체로 줄어들기 시작했고, 배기가스의 환경적 규제도 대폭 늘어났다. 고유가의 여파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자동차 소리의 아름다움도 함께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이런 이유에서 요즘 출시되는 차들은 엔진음을 강제로 실내 스피커로 구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갈을 물린 짐승의 목에 스피커를 달아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소리가 좋은 자동차는 무엇이며, 어떤 소리가 아름다울까? 일반적으로 엔진소리가 좋은 차들은 대부분 논터보(N/A)의 다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이런 부류로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와 같은 수퍼카들이 속한다. 이 경우 그 구조상 엔진음이 좋을 수 밖에 없다. 자연흡기 다기통 엔진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V8에서 V12 엔진을 미드십(MR) 레이아웃으로 장착해 최대한 엔진음을 방해하지 않고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시원하고 우렁찬 소리가 퍼져나간다. 쉽게 말해, 큰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이 자동차 후미에서 연주를 하는 것과 같다. 소리를 만드는 악기의 크기 자체가 크고 좋으니 소리가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악기(엔진)가 작다면 어떨까?


포르쉐 엔진음과 팝콘배기


▲특유의 엔진음을 가진 1975년 페라리 베를리네타 복서의 수평대향 12기통엔진. 사진=위키미디어


구형 BMW M3의 엔진은 직렬 6기통이다. 구형 포르쉐의 엔진도 기통수가 6기통 복서엔진(수평대향)이다. 수퍼카의 절반 크기의 엔진이지만, 흡기부터 배기까지 파이핑(piping)의 구성 등을 다듬어서 아름다운 소리를 연출한다. 이런 이유에서 포르쉐와 BMW의 엔진음(engine note)은 좋다고 알려졌다. 포르쉐는 특유의 복서엔진에서 나오는 굵직하고 강렬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구형 BMW(E36 등)에 탑재되었던 2000~3000cc 대의 논터보 직렬 6기통이 내는 특유의 소리는 “그르렁” 거리는 맹수의 울음과도 같다. 일부는 이런 직렬 6기통의 음색을 쇠를 가는듯한 특유의 기계적 소리라고도 말한다. 앞서 언급한 수퍼카보다 엔진의 크기는 작지만, 엔진의 울림을 만드는 공간 등을 잘 설계해서 좋은 소리를 내는 셈이다. 포르쉐의 경우는 포르쉐만의 사운드를 듣고 싶어하는 고객을 위해, 실제 포르쉐 911 GT3모델에 장착되는 배기파츠로 만든 스피커, 911 사운드바(Soundbar)를 포르쉐 디자인(Porsche Design)에서 판매중이다.


최근 국내 현대자동차가 출시한 ‘벨로스터 N’은 “팝콘배기”라는 단어로 더 많이 알려졌다. 펀카(Fun Car)를 지향한다는 벨로스터 N은 변속과 엑셀 오프때마다 팝콘을 튀길 때 나는 소리인 “타다닥”하는 소리가 후미에서 울려퍼진다. 실제로 이런 흥미로운 소리를 내는 차를 타보면 그 소리에 중독되어 버린다. 마세라티 오너들이 마세라티를 다시 구매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마세라티 뮤직(Maserati music)이라고 불리는 엔진음 때문이다. 기회가 있다면 소리가 좋은 자동차들을 한 번쯤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차와 진정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소리 없는 전기차들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사운드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던 차들이 그리워진다.


자동차의 사운드를 결정짓는 3가지



자동차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첫째는 엔진 실린더 점화순서 둘째는 배기 파이핑(piping)의 길이 조정,셋째는 연료분사량과 점화시기. 이 세가지가 엔진음을 만드는데 크게 영향을 준다.


1. 첫번째 언급한 내용은 보통 고배기량의 다기통 엔진에 해당된다.

8기통 이상의 엔진이다. 미국산 머슬카의 엔진과 유럽의 수퍼카 엔진의 기통수가 같아도 소리는 다르다. 이탈리아의 수퍼카의 경우 미국산 머슬카와 같은 V8이라고 할지라도 매우 고른 소리가 난다. 가속시 “바라라라라랑” 하는 고른음이 울려퍼진다. 이것은 실린더가 순서대로 1번부터 8번까지 차례대로 점화가 되면서 고른 폭발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산 머슬카의 엔진은 실린더 점화순서를 달리한다. 이 때문에 소리가 “바라방방바” 하는 식으로 불규칙적 소리가 나는데, 이것은 고르지 않은 실린더 점화순서 탓이다. 점화순서를 달리 할 때와 아닐 때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데, 일단 소리에 큰 영향을 준다.순서가 달리 터지다 보니 배기가스가 나올 때마다 충돌이 발생하면서 고르지 않는 머슬카 특유의 소리가 생성되는 것이다.


2. 두번째는 파이핑 길이다.

흡기부터 배기까지 파이프의 라인을 뽑는데, 대부분 이 배기구의 개수와 방향에 따라서 라인의 구성과 길이가 달라진다. 동일한 엔진도 배기라인을 달리 만들 수 있다. 가령 4기통 엔진의 경우도 매니폴더부터 배기구까지 파이프가 4-2-1 방식과 4-1-2 방식 등으로 나뉠 수 있다. 이때 배기라인의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길거나 짧으면, 배출되는 배기간 충돌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이 충돌음이 곧 특유의 엔진음이 된다. 이런 내용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비등장(UEL) 혹은 등장(EL) 이라는 용어로 구분되어 사용된다. 구형 공랭식 포르쉐 중 일부도 이 방식으로 특유의 배기음을 만들어냈다. 이 외에도 배기라인의 중간부분인 중통을 직선으로 뽑는다든지 하면서도 소리의 크기 등을 조절할 수 있다. 참고로 애프터마켓 배기 튜닝의 가장 큰 문제는 국내 배기소음과 배기가스의 환경기준 등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3. 세번째는 연료분사량과 점화시기다.

이른바 ‘팝콘배기’나 머플러에서 백파이어(back fire) 등을 보기 위해서 사용되는 기법이다. 배기구에서 불꽃이 터지면 “팡”하는 소리가 함께 나기도 한다. 엔진에 많은 연료를 분사한 뒤 완전연소되지 못한 연료가 배기라인에 남아있게 된다. 그러다 점화지연으로 폭발시기를 늦추면 배기라인에 남아있던 연료도 다음 행정에서 함께 터지게 된다. 이때 “타다닥” 하는 타는 듯한 소리가 날 수 있고, 때로는 불꽃이 뿜기도 한다. 이 방식은 보통 4기통 내외의 소형엔진을 고성능으로 만들면서, 연료분사량의 증가로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점 중 하나는 터보렉(turbo-lag)이 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가령 벨로스터 N, 벤츠 A45 AMG, 아우디 S3 등이다. 이 소리는 엔진의 순수 소리인 엔진음보다는 행정 후에 배기라인에서 만들어진 배기음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