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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 회복에는 장어를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장어는 단백질과 비타민A 함량이 높아 예로부터 보양식으로 많이 이용되어 왔다. 장어는 맛도 좋지만 소화가 잘 되어 노약자나 어린이들의 영양식으로 적합하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 원기 회복에도 특효다. 게다가 장어는 술안주로도 훌륭한 기특한 음식이다.


무안군 몽탄면의 ‘강나루뱀장어’


열일곱 살 아들은 쪽배를 타고 장어를 잡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잡아온 장어를 구워 팔았다. 집 앞이 영산강이었다. 장어는 늘 실하게 잡혔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 명산리. 외지 사람들은 ‘몽탄장어’를 기억한다. 지역주민들은 ‘명산 장어’로 기억한다.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열일곱 살 아들은 일흔을 바라본다. 이제 그가 장어를 내놓는다. ‘강나루뱀장어’. 장어를 좋아하는 이들은 누구나 한번은 가보는 가게다. 나도 몇 번 갔다.


▲ 강나루 뱀장어. 갓 잡은 장어를 숯불에 바로 구워낸다. 신선하다. 양념이 감칠맛을 더한다.


몇 해 전, ‘강나루뱀장어’ 사장을 몇 차례 만났다. 두어 번 만나고 얼굴이 익었을 때 그이가 불쑥 말했다. “여기저기 다니지 말고, 그냥 여그로 내려와.”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한참 얼굴을 쳐다봤다.


영산간 지류, 명산리에서 같이 장어나 팔자는 말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일도 슬슬 꾀가 나니 ‘동업자’를 구하는 셈이었다. 그날 장어 구워놓고 소주도 두어 잔 기울였다. 이참에 장어나 구워서 팔까,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장어, 그 알 수 없는 정체


장어는 크게 세 종류, 혹은 네 종류다.

뱀장어는 일명 민물장어다. 바다와 민물을 오간다. 여름철, ‘보신용’으로 먹는 녀석은 모두 민물장어, 뱀장어다. 뱀같이 생겼으니 뱀장어다. 가격이 비싸다.


갯장어는 ‘개장어(介長魚)’다. 예전에는 ‘견아리(犬牙鱺)’라고도 불렀다. ‘견아(犬牙)’는 개 이빨이다. ‘리(鱺)’는 장어다. 갯장어 이빨은 개의 이빨과 닮았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 다룰 때도 조심스럽다. 장어치고 성격 좋은 녀석이 드물긴 하다. 그중에서도 갯장어는 특히 심하다.


▲ 여수 바다의 운치가 더해져 장어의 맛이 배가 된다.


여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건너면 바로 앞이 소경도, 대경도다. 배를 탄다고 이야기할 것도 없다. 불과 500미터다.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한두 번 쳐다보면 이미 대경도 선착장에 닿는다. 인근에 갯장어 전문점들이 즐비하다. 가장 오래된, 유명한 집이 ‘경도회관’이다.


▲ 뼈를 제거한 갯장어를 육수에 넣어 데친다. 통통하게 익은 갯장어가 입에서 녹아내린다.


‘하모 유비키’는 ‘갯장어 샤브샤브’다. 손질한 갯장어를 채소 등을 넣은 육수에 슬쩍 데쳐서 장을 얹어 먹는다. 남은 물에 국수, 밥을 더하면 맛있다.


갯장어 요리 전문, 여수 경도회관


또 다른 장어는 붕장어 일명 아나고다. 회로도 먹고 구워서도 먹는다. 비교적 흔하다. ‘강나루뱀장어’ 사장은 열일곱 되던 해 뱀장어를 잡았지만, 나는 열일곱 되던 해, 처음 아나고 회를 먹었다. 아나고 회는 달싹하고 새콤하고 맛있었다. 그게 아나고 회 맛이 아니라 초장 맛이라는 사실은 10년쯤 뒤에 깨달았다.



장어인지 아닌지 헛갈리는 녀석이 먹장어다. 이름은 장어지만 사실은 장어와 다르게 생겼다. 좀 괘씸한 녀석이다. 기생충 같이 먹이 활동을 한다. 생선 배에 빨판을 꽂고 내장과 살을 빨아먹고 산다. 기생 물고기다. 장어와 비슷하지만 장어는 아니다. 꼼장어, 곰장어, 꾀장어 등으로도 부른다. 포장마차의 장어는 대부분 이 녀석이다.


◀ 갯장어 회는 씹을수록 올라오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부드러우면서 쫄깃하다.






풍천장어의 추억


풍천風川 장어의 추억은 아련하다. 일 적으로 장어를 그리 즐기지 않던 1980년대 후반. ‘바캉스 휴가지’ 취재로 현장을 다녔다. 그중 하나가 선운사였다. 촬영을 하고 내려오다 야외 평상에 앉아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지역 특산물은 뭐가 유명합니까?”라고 물었다. “장어가 많이 잡히는데 전량 일본으로 수출한다”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호사스러운 이야기지만 ‘양식과 자연산 장어 구별법’을 들었다. 오줌을 누면 그릇이 뒤집어진다는 복분자覆盆子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 선운사 진입로에 위치한 신덕신당의 양념 장어구이. 고루 밴 양념이 입맛을 돋운다.


평상을 나무그늘 아래로 옮겼다. 장어구이와 복분자 술을 몇 잔 마시고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한숨 잘 잤다. 장어나 복분자 때문인지 아니면 낮잠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몸이 개운했다. 낮잠 잔 그 집이 ‘신덕식당’인지 ‘연기식당’인지도 알 수 없다.

추억은 아름답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관광지가 되었다. 일대에 수도 없이 많은 ‘명인 장어집’들이 범람한다. 자연산 이야기를 하면 욕먹기 십상이다. 정력에 좋은 양식 장어와 달기만 한 복분자 술이 난무한다. 이거라도 먹고 낮잠이라도 한숨자면 좀 나을까?


▲연기식당의 갯벌장어 소금구이. 고소하고 담백한 장어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강나루 뱀장어 : 전남 무안군 몽탄면 호반로 83-3 / 061-452-3414

     2.   경도회관 : 전남 여수시 대경도길 2-2 / 061-666-0044

     3.   신덕식당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8 / 063-562-1533

     4.   연기식당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대로 2727 / 063-561-3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