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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맛집&종류, 단순하고도 단순하지 않은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칼국수는 시대에 따라 모습도 위상도 다양하게 변해왔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수더분해서 더 매력적인 칼국수에 대한 이야기다.


간단하게 칼국수나 한 그릇 먹자


해가 서서히 지고 있다. 어스름한 저녁 시간. 들일을 끝내고 돌아오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불쑥 말씀하신다. “칼국수나 해먹지” 어차피 어머니도 들일을 끝내고 막 돌아온 참이다. 식사 준비가 제대로 되었을 리 없다. 기-승-전-칼국수다. 여름이면 거의 매일 먹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열흘 정도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하물며 여름 내내다.


▲ 경당종택의 종부 권순 씨의 홍두깨질 하는 손. 이 손으로 50년 동안 건진국시를 만들었다.


열 살 무렵이었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물론 속셈이 따로 있었다. 칼국수를 끓이려면 홍두깨질을 해야 한다. 홍두깨질을 끝내고 부엌칼로 얇고 널찍한 밀가루 반죽을 접어서 썬다. 이때 꼬투리가 나온다. 그것을 ‘꽁지’라고 불렀다. 이게 목표다. 잿불에 구우면 기가 막히게 맛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메다마(알사탕)’를 팔았지만 언감생심, 사 먹기는 불가능하다. 반죽 끝부분을 짚불에 구운 것은 유일하고 대단한 주전부리였다.


▲ 칼국수는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귀한 음식이다.


국수에 제법 억센 열무나 얼갈이배추, 채 썬 애호박을 넣는다. 할머니가 뚝딱 만들어주신 간장 양념으로 간을 해서 훌훌 떠먹었다. 저녁시간이면 모두 그런 국수를 먹는다고 생각했다. 그 국수가 바로 칼국수인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제물국수’임은 몰랐다. 칼국수는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귀한 음식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쉽게 “칼국수나”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표현할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먹을 수 없는 건진국시


경북 안동의 경당종택. 퇴계 이황의 학통을 물려받은 경당 장흥효의 집이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 할머니의 친정이다. 2015년 초 경당종택에서 하루 묵었다. 첫날 밤, 일행과 더불어 건진국시를 먹었다. 종손이 조심스레 말했다. “안사람이 나이가 들고 몸이 좋지 않아 올 설날 지나고 나면 더 이상 건진국시는 못 내놓을 것 같다” 그걸로 진짜 끝이었다.


    

▲ 경당종택의 건진국시, 아주 얇고 가늘다. 밥과 더불어 나온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종부(宗婦) 권순 씨는 약 50년간 건진국시를 만들었다. 종가다. 제사는 당연히 많다. 그 많은 제사 때마다 상차림과 손님맞이를 위해 국수를 내놓았다. 일일이 홍두깨질을 하고 칼로 국수를 썰었다. 홍두깨질을 하면 반죽 아래 깔아둔 신문지의 글씨가 비칠 정도로 하늘하늘했다. 콩가루가 적당히 들어간 건진국시. 개인적으로 생애 최고의 국수였지만 이젠 경당종택의 며느리가 대를 이어서 국수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례예술촌의 ‘멧국시’


방송 프로그램 촬영차 갔다. 안동시 임동면. 바로 옆이 청송군이다. 외진 골짜기다. 설마 예까지 임금님이 오셨을까 싶지만 어쨌든 “임금님도 지례 지역을 오시려면 20리 길은 걸어왔다”고 할 정도로 험한 산길이다. 김원길 시인이 평생에 걸쳐 매만진 고택 예술촌이다. 임하댐 수몰 시 고택 몇몇을 합쳐서 새로 조성했다. 지금은 김 시인의 아들 내외가 고택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구상 선생을 비롯하여 숱한 문인들이 다녀갔다.


    

    

▲ 지례예술촌의 멧국시는 참기름 양념으로 양념을 한다. 아주 간단하지만 정성의 가득한 밥상이다.


역시 평소 건진국시를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운이 닿아 고택의 제삿날에 맞춰 가면 ‘멧국시’를 만날 수 있다. ‘멧국시’는 만드는 방법이나 재료는 건진국시, 제물국시와 같다. 다만 제사용이니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다음 유기에 곱게 담아낸다. 콩가루를 섞어서 만드는 지례예술촌의 멧국시. 역시 손이 많이 가는, 참 번거롭고 만들기 힘든 음식이다.



종로 ‘할머니손칼국수’


종로3가역 근처에 있다. 지명은 돈의동이다. 서울 생활 오래 한 사람들도 돈의동은 어색하다. 할머니가 가게 앞에서 입장료 받듯이 국수 값을 받는다. 늘 ‘통행세 같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여성 일행과 같이 갔는데 내 그릇의 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았다. 가만히 보니 처음부터 내 국수의 양이 많았다. 얼굴 보고 국수 양을 조절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마 내가 그날 퍽 배고파 보였던 모양이다. 일행은 “남녀 차별한다”고 투덜댔지만. 사실은 더 달라고 하면 누구나 더 준다. ‘칼국수+수제비=칼제비’도 가능하다. 감자를 큼직하게 썰어 넣은 칼제비를 권한다.


▲ 종로 할머니손칼국수,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대치동 은마상가 ‘산월수제비’


국수, 수제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집이다. 이름은 수제비집인데 칼국수도 일품이다. 손님들 중 상당수는 역시 칼제비를 주문한다. 상가 한쪽에 큼직한 공간이 있고 주방을 중심으로 손님들 탁자가 줄이어 있다. 문제는 대기 손님이다. 칼제비 잘 먹는데 바로 뒤에 줄 선 손님들이 쳐다보고 있으니 마치 동물원 같기도, 하고 왠지 쫓기는 기분이다. 하지만 가라고 할 수는 없다. 나도 가끔 줄 서니까. 그래도 이 부근을 지나면 늘 가본다. 이유? 맛있고 싸기 때문이다.


    

▲ 대치동 산월수제비, 잘 반죽한 수제비와 칼국수는 밀가루 특유의 풍미가 잘 살아있고, 푸짐하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경당종택: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제일길 2-38 / 054-852-2717

     2.   지례예술촌: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례예술촌길 390 / 054-852-1913

     3.   할머니손칼국수: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11다길 14-2 / 02-744-9548

     4.   산월수제비: 서울 강남구 삼성로 212 은마상가 / 02-556-8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