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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를 만나다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스시(壽司, 초밥)는 일본 음식이다. 종류도 많다. 스시는 대략 니기리즈시, 마키즈시, 치라시스시, 하코스시, 오시즈시 등으로 나눈다. 우리말이 아니니 아무래도 어렵다. 생선 이름은 더 어렵다. 생선 한 마리를 두고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더러는 생선 한 마리의 부위 별 이름이 모두 다를 때도 있다. 조금씩 내주는 오신코[御新香], 츠케모노[漬物] 등 이름도 어렵다. 단무지(다쿠앙)나 락교 정도면 그나마 쉽다. ‘우메시소 구라아게’ 같은 보기 드문 오신코를 만나면 그마저도 어렵다. 스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본다.

사바스시를 만나다

처음부터 강적을 만났다. 고등어 초밥, 사바스시다. 고등어는 비린내가 심한 생선이다. 그런데 초밥이라니. 삭힌 고등어 혹은 초절임 고등어로 스시를 만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 사바스시를 처음 만났다. 서울 플라자호텔 뒤편의 북창동 ‘이화(二和)’. 인근의 일본상사 직원들, 한국은행 직원들과 기업체 임원들이 단골로 모여들었다. 제법 먼 동부이촌동에 사는 일본인 주부들이 스시 먹으러 일부러 오기도 한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다.

▲ 스시하꼬 김성태 주방장의 스시, 이른바 공기초밥이다.

당시 ‘이화’의 주인이 김성태 주방장이었다. ‘에어 초밥’, ‘공기 초밥’이라는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는 스시 선생에게 김말이부터 배웠다. 신문지에 비지를 말아서 김밥 모양을 만들었다. 마치 무협지에서 무공을 연마하듯, 스시를 배웠다. 밥을 쥐면서 손으로 슬쩍 눌러 공기가 들어갈 공간을 만든다. 공기 초밥은 입에 넣으면 밥알이 스르르 풀어진다. 김 주방장의 스시는 입에 넣으면 쉽게 풀어진다.

▲ 경력 50년에 가까운 셰프의 스시, 밥알과 생선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 오른쪽은 사바스시.

‘이화’는 문을 닫았다. 30여 년이 지난 후 ‘이화’의 김성태 주방장을 서울 방배동에서 다시 만났다. ‘스시하꼬’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공기 초밥, 초밥의 밥, 생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어란(魚卵)과 비슷한 카라스미[鱲子]도 직접 만들고 있었다.


하코스시와 니기리즈시

스시는 민물생선인 붕어를 이용한 하코스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코[箱子]’는 상자다. 네모 틀의 상자 안에 식초, 설탕을 넣어 잘 섞은 밥을 담는다. 붕어를 잘 손질하여 소금 절임한 다음 상자 안의 밥 위에 얹는다. 그것을 작은 널빤지로 누른다. 칼로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먹는다. 널빤지로 ‘누른다’고 해서 ‘오시즈시(押し壽司, 누름 초밥)’라고 부르기도 한다. 

니기리즈시(握り寿司)는 손으로 밥을 쥐고 고추냉이를 조금 얹은 다음, 생선을 얹은 것이다. 손으로 쥔다고 ‘니기리즈시’라고 부른다. 하코스시 방식으로 만드는데 생선을 적당히 얹어서 만든 것이 ‘치라시스시’다. 초밥 위에 여러 종류의 생선을 흩뿌리듯이 얹는다. ‘마키’라고 부르는 ‘마키즈시’는 김밥 모양으로 말아낸 것이다.

▲ 치라시스시. 생선 아래 밥이 깔려 있다.

하코스시는 여행자의 도시락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밥과 생선을 두루 챙길 수는 없다. 이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민물생선인 붕어를 사용하여 ‘밥+생선’의 음식을 만들었고 그게 바로 하코스시, 초밥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 다양한 모양의 마키즈시

스시는 탄수화물(밥)과 단백질, 지방(생선)을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고추냉이는 밥과 생선이 쉬 상하지 않게 한다. 생선의 소금은 생선의 발효, 숙성을 조절한다. 식초는 발효나 부패를 늦추고 설탕은 빠르게 진행시킨다. 여름철에는 식초의 양을 늘리고 겨울철에는 설탕의 양을 늘린다.


‘미스터초밥왕’과 닫힌 음식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SHOTA NO SUSHI]’과 ‘맛의 달인[OISHINBO]’은 한국에 스시 붐을 일으켰다. 만화다. 뻥도 심하고, 한 가지를 두고 호들갑을 떠는 일본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만화를 본 이들은 일본인들이 초밥의 ‘밥’을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는지는 알게 되었다.

▲ 스시는 입에 넣기 아까울 정도의 모양새를 취한다.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일본 음식이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번에 밥알을 350알씩 쥐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10번을 테스트해도 여전히 밥알은 350알이었다.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일식 주방에서 일하는 이들은 5년이나 10년 정도 연마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스시의 밥은 ‘샤리’라고 부른다. 생선은 ‘네타’라고 한다. 잘 만든 스시는 샤리와 네타의 조화다. 한때 생선 길이를 길게 해서 내놓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웬만한 초밥집을 가면 밥의 양에 비해서 생선을 두 배 혹은 세 배 정도 얹어서 내놓았다. 스시에 조예가 깊은 지인이 잘라 말한 적이 있다. “이건 틀렸다”는 것이다. 초밥의 주인공은 생선과 밥이다. 잘 만든 초밥은 생선과 밥의 양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비싼 생선을 많이 얹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가 한수 배웠다.

▲ 수준급의 샤리다. 쉽게 흩어지지도 않고 쉽게 으깨지지도 않는다.


스시의 ‘밥’도 참 깐깐하게 만들긴 한다. 밥은 약간 고슬고슬하게 지어야 한다. 식초와 설탕, 청주(미림) 등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젓는다. 나무통에 넣고 베 보자기로 덮은 다음, 일정 시간 삭힌다. 스시를 만들어서 ‘스시 다이’ 혹은 접시에 놓아 밥알이 흩어지지 않아야 한다.


◀ 다양한 모양의 마키즈시


스시의 생선 밑에 있는 밥알이 으깨져도 곤란하다. 밥알은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서로 붙되, 떡이 지거나 깨지지 않는 상태’여야 한다. ‘스시 다이’에 스시를 놓은 후 먹으려고 스시를 들어 올릴 때 스시 다이에 밥알이 남으면 ‘틀린 것’이라고 들었다. 밥알이 으깨지지 않도록, 젓가락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경우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역시 ‘닫힌 일본 문화’다. 한 가지를 파고들면 끝을 본다. 밥알은 어차피 입에 들어가면 으깨진다. 어차피 으깨질 밥알의 모양까지 고려한다. 원칙을 정하면 바꾸지 않는다. ‘닫힌’ 문화다.

▲ 초밥이 반드시 최상의 생선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격을 고려 적절한 생선을 선정, 최상의 스시를 내놓는 경우도 있다. 부산 미도리스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일본은 가방 문화, 한국은 보자기 문화라고 부른다. 가방은 모양을 정하면 바꾸기 곤란하다. 연필이 들어갈 공간, 노트가 들어갈 공간이 정해져 있다. 보자기는 어떤 물건이나 쉽게 받아들인다. 어느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뜻이다. 

일본 간장의 단맛도 역사가 깊다. 조선시대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들은 대부분 일본 이키시마[壹岐島, 나가사키 현]에서 한반도 동래를 잇는 뱃길을 이용했다. 통신사들이 돌아오는 길에 이키시마에서 머물면서 일본 측의 접대를 받았다. 통신사들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 “일본 측이 스키야키를 대접하는데 맛이 달아서 먹기 곤란하다”고 적혀있다.


젊은 셰프의 스시, ‘스시쇼부’

채널A <먹거리 X파일>의 ‘착한식당’ 검증 차 서울 은평구청 부근의 ‘스시쇼부’를 간 적이 있었다. 검증단으로 일본인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씨가 동행했다. 웬만한 일식당에서는 스시 내놓는 것을 꺼린다. 저녁 술자리 사시미는 가격이 비싸다. 일식당에서는 저녁 술자리의 비싼 사시미를 선호한다. 사시미에 비해서 가격이 싼 스시를 내놓는 집들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셰프들은 대부분 스시 대신 사시미나 요리를 배우려고 한다. 스시는 일만 힘들고 돈벌이는 안 된다.


‘스시쇼부’는 시판 장류에서 발견된 조미료 때문에 ‘착한식당’으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음식은 좋았다. 일본식 계란찜인 ‘자왕무시’부터 오마카세에 나오는 생선과 초밥이 모두 수준급이었다. 오신코도 좋았다. 동행한 요나구니 스스무 씨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스시 먹으러 일본 갔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말할 정도다.


◀ 은평구의 스시쇼부. 3~4만 원대의 오마카세(스시 코스 요리)에 나오는 사시미가 수준급이다. 옆에는 스시쇼부의 오신코.

▲ 칼질을 섬세하게 한 스시. 전병화 세프가 운영하던 하나스시다.

그동안 전병화 셰프가 운영하던 동부이촌동의 ‘하나스시’가 단골집이었다. 전병화 셰프가 떠난 후 ‘하나스시’도 자주 가지 않았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일로 들렀던 곳은 있다. 일본인이 주인인 청담동의 Y, 성수대교 남단의 K, 삼성역 부근의 N, 강남역 언저리의 O, 청담동의 H 등이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스시하꼬: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27길 39 / 02-533-9843 (현재 휴업 중)

  2   스시쇼부: 서울 은평구 은평로11길 12-24 / 02-385-0045

  3   하나스시: 서울 용산구 이촌로64길 61 / 02-793-7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