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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를 탐하다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만두는 ‘유목민족의 휴대음식’에서 시작됐다. 유목민족의 ‘인스턴트 음식’이다. 한반도의 만두 문화는 꾸준히 진화했다. 고려 충혜왕 때 ‘궁궐에서 만두를 훔쳐 먹었다가 사형당한 도둑’이 등장한다. ‘만두 도둑’이라고 적시한 점, 사형이라는 중형을 내린 점 등에서 만두가 귀한 음식이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 ‘최초의 프랜차이즈’는 만두 전문점?


만두는 고려시대 후기부터 널리 퍼졌다. 첫 출발부터 이름은 많이 혼란스럽다. 만두라고도 하고 ‘쌍화’, ‘상화’라고도 한다. 영화 제목이자 고려시대 노래 제목 ‘쌍화점(雙花店)’은 ‘만두전문점’이다. <쌍화점>의 첫 구절은 “쌍화점에 쌍화(만두) 사러 갔더니 ‘회회(回回)아비’가 내 손목을 잡더이다”로 시작한다. ‘회회아비’는 서역인 혹은 색목인 남자를 말한다. 오늘날의 중동 아랍 사람이다.





원나라 전성기의 색목인은 몽골인 다음의 귀족계급이었다. 몽골은 색목인의 손재주와 과학지식을 높이 사서 자신들의 왕조에 중용했다. 색목인들의 문화도 많이 받아 들였다. 한반도의 소주(燒酒)도 ‘아랍-몽골의 원나라-고려’로 전래된 것으로 짐작한다. 고려후기 이미 색목인들이 수도 개성에 만두전문점을 열고 손님과 ‘연애질’을 했다니 흥미롭다. 기록으로 나타난 한반도 최초의 외국인 운영 프랜차이즈 전문점이다. 고려 충혜왕 때는 궁궐의 ‘만두’를 훔쳤다가 목숨을 잃은 간 큰 도둑 이야기도 나온다. 궁궐에서는 ‘만두’라고 하고 저자거리에서는 ‘쌍화’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 보물 제1291호 대악후보(大樂後譜). 1759년 서명응 등이 왕명을 받아 엮은 악보집이다(총 7권). 세조 때의 악보를 중심으로 엮었다.

6권에 <쌍화점> 악보가 실려 있다. (본 저작물은 ‘국립국악원’ 에서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大樂後譜’를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립국악원(www.gugak.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만두는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쌍화, 상화(霜花) 등 이름을 달리 한 채 빈번하게 나타난다.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은 “만두는 서리처럼 희다”고 했다. ‘상화’라는 이름이 바로 “서리[霜]가 꽃[花]처럼 핀 것”에서 나왔다. 그러나 만두가 상화 같다고 했지만, 만두가 곧 상화라고는 하지 않는다. 여러 차례 일본에 파견되었던 신유한은 “일본에는 만두란 것이 있는데 조선의 상화병(霜花餠)과 같다”고 했다. 


조선후기의 기록에도 “중국에서 신기한 ‘대만두(大饅頭)’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허균은 <성소부부고> 중 ‘도문대작’ 부분에서 “의주 사람들이 중국과 교류가 잦아 대만두를 잘 만든다”고 했다. 의주는 조선의 대 중국 통로였다. 대만두는 큰 만두피 속에 작은 만두를 여러 개 넣은 것이다. 우리나라 경기도 이천의 ‘볏섬만두’가 대만두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허균도 만두를 중국과 연관 짓는다. 허균의 시대에도 중국에서 만두가 꾸준하게 전래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내내 만두와 상화는 혼용된다. ‘쌍화’는 잠깐 나타나고 사라지지만 ‘만두’, ‘상화’, ‘상화병’이라는 이름은 자주 나타난다. 반가와 궁궐에서는 늘 ‘만두’라고 불렀다. ‘상화’를 표현할 때는 ‘속칭(俗稱)’이란 표현이 덧붙는다. 우리 것이고 저자거리 상민들의 음식이라는 뜻이다. 숙종 연간(1690년)에 발행된 중국어 사전 격인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만두는 우리나라 풍속의 상화병(霜花餠)이다”라고 명백하게 표현한다. “중국의 만두는 우리나라의 상화”라고 못 박는다.


▲ 쌀쌀한 날씨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만두가 최고의 간식이다.



만두는 조선시대 기록에 여러 표현으로 나타난다. 우선 만두가 귀한 음식임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면(국수)을 이야기할 때 인용한 세종4년(1422년) 5월17일(음력)의 태상왕(태종)수륙재에 관한 기록에도 만두는 귀하게 나타난다. “(전략) 진전(眞殿)과 불전(佛前) 및 승려 대접 이외에는 만두(饅頭)·면(麵)·병(餠) 등의 사치한 음식은 일체 금단하소서(후략)”라고 나온다. 만두, 국수, 떡은 귀한 음식의 대명사다. 진전(국왕 밥상), 불전(부처님 앞), 승려 대접에만 이런 음식들을 내놓으라는 뜻이다. 국왕 측근이나 당상관 높은 관리들도 만두는 먹지 못했다.



제갈공명 만두 이야기는 엉터리


만두는 제갈공명의 남만정벌에서 유래되었다? 엉터리다. 속설일 뿐이다. 인터넷에는 ‘노수대제 만두 기원설’이 대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고 여기저기 짜깁기한 결과다.



제갈공명이 남만정벌에서 돌아오다가 ‘노수(瀘水)’라는 풍랑이 심한 물을 만났다. 현지 ‘동네 짱’인 노인들이 “남만인의 머리[蠻頭, 만두] 49두를 바치면 물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한다. 제갈공명은 “내가 남만정벌에서 이미 사람을 많이 죽였는데 또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며 사람의 머리 모양을 본뜬 ‘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 소’를 넣은 것으로 제사를 모신다. 이 음식이 바로 만두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다. 만두(饅頭)는 남만인의 머리인 ‘만두(蠻頭)’에서 비롯되었다는 그럴 듯한 설명도 곁들인다. 


엉터리다. 정사(正史)에는 노수와 노수대제(瀘水大祭)가 아예 없다. 후대 사람들이 제갈공명을 띄우려고 만든 말이다. 정사에는 제갈공명의 남만정벌 자체가 그리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아주 짧은 시기의 남만 행 이야기만 나올 뿐이다. 물론 노수에 갔다는 기록조차도 없다. 제갈공명의 노수대제 자체가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이야기고 역사에는 없는 말이다.


▲ 조선 후기 화가 안중식의 <한일통상조약기념연회도(韓日通商條約記念宴會圖)>. 1883년 당시 조선과 일본이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난 뒤

연회를 베푸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다. 화려한 꽃병 사이에 만두가 고임 음식으로 차려져 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만두의 기원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옳은 말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설도 적지 않다. 한나라 무렵의 중국은 오늘날의 중국보다는 훨씬 작았다. 한나라에서 시작한 것인지 이민족의 땅에서 시작한 것인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곡물 피를 이용하여 다른 식재료를 싸서 먹었던 음식이 만두다. 많은 국가, 민족이 각각의 모습으로 혹은 비슷한 형태로 이런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만두는 오래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남미나 유럽에도 각각 고유의 만두가 있었고 또 지금도 나타난다. 최근에는 만두가 유라시아 대륙을 다스렸던 몽골, 터키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두, 포자, 교자?


우리는 조선시대나 지금 모두 ‘곡물로 껍질을 만들고 속에 소를 채운 음식’을 만두라고 통칭한다. 중국인들은 이 만두를 세분한다. ‘포자(包子)’는 둥글게 만들어 보따리 묶듯이 위를 틀어 올린 것이다. 우리가 흔히 고기만두라고 부르는 것이 포자인 경우가 많다. 북경 왕푸징의 ‘구부리만두점’에서 파는 ‘천진구부리포자’가 바로 그것이다. 서울 삼청동의 ‘천진포자’도 반드시 ‘포자’라고 한다. 한글로는 만두라고 쓰지만 한자로는 ‘포자’라고 쓴다. 겉껍질은 발효시킨 곡물 가루를 사용한다. 예전에는 막걸리로 만드는 ‘술빵’처럼 발효시킨 곡물가루를 사용했다.



▲ 수준급 만두를 맛볼 수 있는 ‘자하손만두’. 조미료, 감미료 사용이 절제돼 있다. 담백하고 깔끔하다.



‘교자(餃子)’는 반달 같이 생긴 만두다. 겉껍질을 부풀지 않은 생 곡물가루를 사용한다. 우리는 ‘교자만두’라고 부른다. 중국인의 만두(만토우)는 속이 없는 찐빵 같은 것이다. 그것을 따로 주고 곁들여 먹는 음식을 또 따로 준다. 돼지고기, 쇠고기 등 육류나 해물 등을 볶고 그 곁에 나오는 것들이 만토우일 때가 많다. 흔히 ‘꽃빵’이라고 부르는 것도 결국 만토우의 일종이다.



▲ 조랑이떡국과 황해도식 만두 등으로 유명한 인사동 ‘개성만두 궁’



한반도의 ‘만두’는 특정시기에 한 번 전래되고 그친 음식이 아니다. 고려 후기 이전에 이미 전래되었든 혹은 독자 개발했든, 그 무렵에 이미 쌍화 혹은 상화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상화는 여전히 존재했다. 만두도 마찬가지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의 <목은고>에도 이미 만두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고려시대에 이미 만두와 상화가 공존한 것이다. 만두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기존의 만두, 상화에 중원대륙의 새로운 만두 음식들이 들어와서 서로 뒤섞이며 발전했을 것이다.



▲ 삼청동 ‘다락정’은 우리식 탕반음식으로 만든 토장만두전골, 김치만두전골 등이 좋다.









‘자하손만두’는 명실상부 한국식 만두 최고의 맛집 중 하나다. 만둣국 종류가 특히 좋다. 흔히 여름철 만두라고 부르는 ‘편수’도 맛볼 수 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북한, 인왕산 등의 경치는 덤이다. 교통편이 그리 좋지는 않다. 


‘개성만두 궁’은 인사동의 한국식 만두 전문점이다. 조랑이(조랭이)떡국과 황해도식 만두 등으로 유명한 집이다. 업력도 제법 긴 편이다. 관광지에 있으니 손님들이 많이 몰릴 때 서비스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만둣국을 추천한다.


▶ ‘싱가’(오른쪽)에서는 담백하고 고소한 정통 군만두를, ‘노독일처’에서는 낙타만두, 개봉만두 등 특이한 만두를 맛볼 수 있다.





‘다락정’은 삼청동에 있는 만두 전문점이다. 만두와 더불어 만두를 우리식 탕반음식으로 만든 토장만두전골, 김치만두전골 등이 좋다. 비 오는 날 만나는 만두전골은 푸근하다. 소박하고 투박한 만둣국, 만두전골이다. 식탁에 앉아 주문을 하면 그때부터 상차림을 시작해 음식이 늦게 나온다.


▲ 찐만두의 쫄깃함과 군만두의 바삭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태원 ‘쟈니덤플링’



중식당 ‘싱가’는 저녁 시간에만 군만두를 판매한다. 기름 범벅 튀김만두가 아니라 정통 군만두다. 담백하고 고소하다. 중식 레스토랑 ‘노독일처’는 정통 중국식 만두를 선보인다. 낙타만두, 개봉만두 등 특이한 만두가 좋다. 이태원의 ‘쟈니덤플링’은 중국식 수제 만두 전문점이다. 반은 바삭하고, 반은 부드러운 반달 군만두로 유명세를 탔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맛집 정보


     1  자하손만두: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45-2 / 02-379-2648

     2.   개성만두 궁: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30-11 / 02-733-9240

     3  다락정: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127-3 / 02-725-1697

     4  싱가: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1570-6 / 02-3472-1769

     5  노독일처: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15-10 / 02-517-4552

     6.   쟈니덤플링: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130-3 / 02-790-8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