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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걱정이 많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불안과 걱정이 많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통해 10대 소비트렌드를 발표한다. 센터는 과잉 근심 사회(over-anxiety syndrome)·램프 증후군을 2016년 10가지 트렌드 중 하나로 꼽았다. 올해는 지진, 북한 핵 실험, 테러 등 TV 보기가 겁날 정도로 사건 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위험이 수많은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여과 없이 전달된다. 불안과 근심이 가득한 사회다. 이런 과잉 근심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불안을 이용하는 마케팅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불안은 위험 자체는 아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 같은 것이다. 하지만 불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사람들은 불안 자체를 불안해하게 된다. 불안을 겁내고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서, 강박적으로 불안을 회피하게 된다. 일상생활을 힘들어할 정도로 근심 걱정에 빠진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램프 증후군’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서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내듯 수시로 꺼내 보면서 걱정하는 현상을 말한다. 정신과적으로는 ‘범불안장애’라는 진단이 이 램프 증후군에 해당된다.



 


  범불안장애의 진단 기준


  1) 삶의 여러 부분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 6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

  2) 근심, 걱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보여야 한다.

  3) 주로 걱정하는 주제들은 완벽에 대한 것이나 실수를 피하는 것, 강한 책임감, 나쁜 일에 대비하고 방지하기 위한 주의와 통제에 대한 것들이다. 


   더불어 다음의 신체증상들이 3가지 이상 동반되어야 한다.




사실 정신과 의사들은 범불안장애를 잘 진단 내리지 않는다. 진단 기준이 다소 모호한 부분들이 있고, 진단 기준을 엄격하지 않게 적용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정신과 환자로 진단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대한민국의 고3 수험생들이나 취업 준비생들, 또 그 부모님들은 거의 다 범불안장애 환자라고 진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안이란?


불안을 건강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연재해를 생각해 보자. 지진 경보가 뜨면 대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불안도 같다. 불안은 위험을 알리는 신호 같은 감정이다. 물론 불안은 불편하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호흡도 힘들고, 식은땀도 나고, 입도 마르고, 어지럽거나 얼굴에 열감을 느낄 수 있고, 몸이 긴장하기도 한다. 불안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도 생긴다. 만약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또 괴롭고 불편해진다. 여유로운 사고를 하지 못하고 ‘모 아니면 도’식의 극단적인 사고를 하거나 과잉 대응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불안은 필요하다. 위험에 대비하게 만들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어떤 불안도 이유 없는 불안은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상황이 위험으로 전달될 때 불안이라는 감정이 켜지고 그 감정에 따라서 위험에 대비하게 된다. 자율신경계가 작용해서 도망가거나 싸우기 좋은 상태로 몸을 흥분시킨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오는 신체 변화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지만, 이는 안전하게 우리 몸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불안은 생각을 단순화 시키고 위험에 집중하게 만든다. 단순화된 생각이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정확하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에서 우리 몸을 보호하는 데 충분히 효과적이다. 정리하면 불안은 위험을 감지할 때 켜지는 경보기 같은 것이고, 불안의 역할은 우리 몸이 위험에 대비할 수 있게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신체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재앙적인 걱정도 하게 되지만, 불안은 결국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고마운 감정인 것이다. 결코 없애거나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불안 다루기



1. 불안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절해야 하는 것은 불안할 때 하게 되는 행동이다.

내가 불안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할 때 가장 서운한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걸 가지고 왜 불안해하냐?”고 할 때 가장 기분이 나쁘다고 이야기한다. 왜 불안하냐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데 왜 불안해하냐’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원해서 불안해하는 경우는 없다. 그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는 것이다. 


불안 다루기는 불안을 안 느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불안해야 되느냐 아니냐에 고민하게 되면, 불안한 자신에 대해서 자책하거나 불안을 합리화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결국 위험하다고 느낀 상황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불안한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불안을 느끼는 것이 타당하냐 아니냐보다는 1) 위험하게 받아들인 상황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2)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이다. 상황이 실제로 위험하지 않다면 현재 상황이 위험하지 않다는 논리로 자신을 설득해야 할 것이고, 실제로 위험하다면 그 위험에 대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2. 불안에 대한 취약성, 나에 대한 불신

불안은 결국 어떤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대인공포 등 불안장애 환자들의 불안은 결국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다. 이들의 마음에는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지? 난 감당 못하는데’, ‘공황장애가 다시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난 감당 못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면 어떻게 하지? 난 감당 못하는데’ 등의 생각이 깔려 있다. 


결국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그렇게 돼도 난 감당할 수 있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한다. 지진이 나도 지진에 대처하는 매뉴얼대로 행동해서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 공황장애가 재발이 되어도 병을 잘 알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 때가서 대처하면 된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 긴장을 숨기려 하기보다는 내가 준비한 것에 집중하면서 이야기하면 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등이 불안을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불안은 에너지 소모적인 감정이다. 불안을 감당하는 데 체력은 너무나 중요한 필수 요소이다. 꾸준한 운동은 심리적인 안정과 자존감을 높일 뿐만 아니라 체력적인 자신감도 줘서 불안에 취약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3. 불안한 사람은 생각이 현재에 머물지 않는다

‘재앙화’라는 단어가 있다. 재앙적인 일이 일어날 거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불안장애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서 어느 시점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재앙적인 상황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재앙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그 생각의 시점이 현재에 있지 않다. 이들은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을 생각하고 미래에 재앙적인 상황을 상상하면서 마치 그런 상황에 금방이라도 닥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사실 미래의 어떤 시점에 일어날 일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상황적인 변수와 그런 상황들에 대해서 내가 뭔가를 계속 잘못 대처할 때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빠진 사람들은 문제들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이 대처할 수 있는 것은 과소평가해 재앙적인 상황을 만나고 말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별로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재앙적인 생각을 한다면 생각의 시점을 막연한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로 가지고 오길 권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있을 수 있는 현실적인 최악을 파악하자. 최악이 정해지면 그 최악은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되, 그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정하고 실제로 행동하자. 막연한 생각 속에서는 아무것도 못하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최악에 대해서는 대처할 수 있는 행동을 찾을 수 있다. 행동에 집중하면서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재앙적인 상황을 예방할 수도 있다.




4. 회피는 불안 해결이 아니다

인간이 위험한 상황에서 불안해졌을 때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은 도망이다. 도망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위험한 상황에 대해서 투쟁한다. 이런 것을 ‘투쟁도피 반응’이라고 한다. 불안해지면 사람이 그 상황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피하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도망은 불안을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감이 들 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회피하려는 태도를 먼저 보인다. 


불안에 대해서 회피하는 해결 방법은 사실 좋은 방법은 아니다. 회피가 잠시 불안감을 못 느끼게는 만들어도 상황을 해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질 수 있다. 회피하기만 하다가 결국 어떤 상황에서 회피하지 못하게 되면 불안감은 더 큰 공포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불안장애 환자들에게 ‘낯섦은 불안의 시작이고 불안의 끝은 익숙함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회피는 낯섦을 키우는 행동이다. 학교 가는 것이 불안해서 학교를 가지 않게 되면 학교 안 가는 동안 학교에 대한 낯섦이 더 커지게 된다. 정작 학교를 정말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학교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처음보다 훨씬 커지게 된다. 또 회피가 반복되면 그런 자신을 자책하게 되고 자존감도 손상되어 불안하게 만든 상황에 맞설 용기를 내는 데 더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불안에 대한 올바른 행동은 1) 불안하게 만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2) 위험에 대한 대처 방법을 찾고 3) 위험하다고 느낀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실제로 위험한 상황이면 위험을 피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 불안한 것이면 나의 역량을 키우는 노력을 한다. 실제로 위험하지 않은데 과장과 왜곡된 생각으로 불안한 것이면 그 생각을 변화시키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불안을 해결하는 자세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이다. 그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가지든 어떤 생각을 하든 행동을 하고, 안 하고는 내가 결정한다. 불안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려고 하지 말자. 불안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