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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 속 음식이야기⑤쇠고기 이야기

음식평론가 황광해의 식유기

화첩 속 음식이야기⑤

쇠고기 이야기

By동대리

쇠고기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고급 식재료다. 예부터 한우는 “소 한 마리에서 백 가지 맛이 난다”고 하여 ‘일두백미(一頭百味)’라 불렸다. 하지만 농업은 나라의 근간이었고, 소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소를 보호하기 위해 우금령까지 내려졌다. 상류층에서는 쇠고기를 먹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귀한 쇠고기, 과거의 문화 속에서 쇠고기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 <성협풍속화첩> 야연(野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위 그림은 조선시대 화가 성협이 그린 풍속화첩 중의 <야연(野宴)>이다. 인물들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이다. 화면 상단의 제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잔과 젓가락을 놓고 사방의 이웃을 불러 모아 향기로운 버섯과 고기를 두고 관례(冠禮)를 한다.” 성인이 되는 의식인 관례를 마치고 술과 고기를 대접하는 조촐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한 듯하다.


하지만 “고려사절요_제34권_공양왕(恭讓王) 1년(1389년)”의 기사 를 보면 소를 도축하여 잡아먹는 것을 금기시한 것을 알 수 있다. 법을 위반하는 자를 잡아서 관(官)에 알리는 자가 있으면 범인의 가산을 상으로 주고, 금령을 범한 자는 살인죄로 다스린다고 하였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명절이면 향교에서 쇠고기를 먹는 것을 허했고, 일반 백성들도 설에는 소를 도살할 수 있게 허했다.


지배층 사람들은 육식을 통해 권력을 표현했다. 뇌물로 쇠고기를 전하기도 했다. 일반 백성 역시 갖은 이유를 대며 쇠고기를 먹기 위해 애썼다. 쇠고기를 한 번 맛본 자는 그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왜 소의 도축을 기를 쓰고 금지하였을까? 소가 농사의 주요도구이기 때문이다. 소 한 마리가 작게는 장정 8명, 많게는 장정 20명분의 일을 했다. 소가 아니면 도저히 농사가 되질 않는다. 쇠고기가 귀해서가 아니라 소가 귀했기 때문에 도살을 금지했다. “고려는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쇠고기를 먹지 못하게 했다. 조선건국 후, 유학자들이 ‘이제는 쇠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라고 만세를 불렀다”는 말도 엉터리다. 


불교국가지만 ‘소 대신 닭을 기르는 양계장이나 돼지를 기르는 양돈장’을 세우자고 한다. 소나 닭이나 모두 생명체다. 소의 도축을 금하는 ‘금살도감’은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소 도축 금지’는 여전했다. 심지어는 조선시대 쇠고기[牛肉]의 명칭은 금하는 고기 즉, 금육(禁肉)이었다. 공양왕 때만 금살도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몽골의 원나라가 고기 먹는 풍속을 알려주었다. 이때부터 쇠고기 먹는 일이 증가했다. 정부로서는 답답했을 것이다. 농민들이 농사를 짓기 힘들 정도로 소의 불법 도축이 성행했다.


쇠고기의 공식 소비처는 공상, 제사, 빈객 접대이다. 공상은 중앙정부 혹은 지방 관청에 납품하는 일이다. 제사는 종묘나 여러 기관의 공식적인 제사를 말한다. 빈객 접대는 주로 중국 사신이나 중국으로 가는 우리 사신을 접대하는 일이다. 이들은 국가에서 만든 역과 원에 머문다. 당연히 고기를 필요로 한다. 위 문장의 ‘서북면’이 바로 한양(개성)에서 의주를 잇는 길이다. 지금의 평안도, 황해도 일대다. 사신들의 왕래가 잦으니 고기를 사용하는 빈도도 높다. 이 인근의 민폐가 가장 심했다는 것이다. 


고기는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 평소 공무로 고기를 먹었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이나 왕족들 혹은 고위직 관리들이 먹는다. 상부에서 고기를 불법적으로 구해서 먹으니 도무지 법을 집행하기도 쉽지 않다.



소를 도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위 문장의 ‘달단(韃靼)의 수척(水尺)’이다. 달단은 몽골 등 북쪽의 이민족들이다. 애당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아니다. 국경을 넘어 불법 입국한 사람들이거나 조선 초기 사군육진 개척으로 조선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수척, 화척, 양수척 등으로 불렀고 떠돌이 천민집단이었다. 고려나 조선 모두 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싸맨다. 


‘백정(白丁)’이란 이름도 국가에서 붙인 이름이다. ‘백정’은 평민 즉 조선시대 상민(常民)이다. 국가에서는 이들이 조용히 우리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름도 ‘백정’ 혹은 ‘신백정’으로 불렀다. 그러나 원래 도축이나 떠돌이 광대로 살던 사람들이다. 농사를 짓는 것도 서툴렀다. 할 줄 아는 것이 도축뿐이다. 이들이 가는 곳마다 불법 도축이 늘어난다. 불법 도축에 대한 죄는 무거웠다. 조선시대에는 불법 도축자들을 ‘곤장 100대에 3년 간 유배’로 처벌했다. 상민을 천민으로 만들기도 했다. 지방관청의 노비가 되기도 했다. 위 문장에서는 “(고려 말에는)범법자는 살인죄로 벌을 주고, 이를 신고한 사람은 범인의 재산을 모두 상으로 준다”고 했다. 살인죄로 다스리니 형벌이 무겁다.



그래도 불법 도축은 끊이질 않았다. 조선 세종 때의 이덕생은 세종의 사촌이다. 이 사람도 불법도축으로 잡힌다. 종을 시켜 망을 보게 하고 불법 도축업자를 고용, 숱한 소와 말을 도축했다. 마당에서 소와 말의 대가리 뼈만 40여개가 발견되었다. 남의 소와 말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무거운 벌을 받는다. 왕족의 지위를 빼앗고 전라도 땅으로 유배를 보낸다. 신하들이 나서서 “너무 편한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떠들자 세종도 어쩔 수 없이 추운 북쪽으로 유배 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덕생은 북쪽으로 향하던 중 경기도 용인에서 질병으로 죽었다.


▲ 김홍도, <행려풍속도병> 봄날에 땅을 경작하는 소(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밥에 고깃국’ 즉, ‘쌀밥과 쇠고깃국’에 대한 열망은 뿌리가 깊다. 왕족이 유배를 가도 먹는다. 멀쩡한 벼슬아치가 ‘부서 회식’ 때 쇠고기가 놓인 술상 앞에 앉았다는 죄로 벼슬이 떨어져도 먹는다. 소를 불법도축하면 한양 도성에서 쫓아냈다. 도성 밖 90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도 불법도축은 끊이질 않았다. 


숙종, 영조, 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살림살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영조는 금육을 강하게 지키지만 손자인 정조는 비교적 관대하다. 신하들과 더불어 ‘쇠고기 구워먹는 행사’를 가지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명절이 되면 절름발이 소가 갑자기 늘어난다’는 말이 떠돈다. 병든 소, 농사를 짓지 못하는 소는 합법적으로 도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쇠고기는 어느 집이나 맛있다. 국산 한우는 비싸서 먹기 힘들다. 맛이 없어서 못 먹는 쇠고기는 없다. ‘쇠고기 맛집’ 몇 곳을 소개한다. ‘쇠고기도 맛있지만 나물이 더 좋은 집’이라고 소개하는 집이다. 경기도 곤지암의 ‘마당넓은집’이다. 소백산 한우를 영주에서 직송하여 사용한다. 주방의 고기 고르는 눈이 높다. 살치살, 안심, 등심 등이 수준급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물을 눈여겨보도록 한다. 여느 식당에서는 볼 수 없는 산나물, 묵나물, 들나물이 한상 가득하다. 인근에 골프장이 많아서 골프 마니아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곳이다.


◀ 곤지암의 ‘마당넓은집’은 고기 맛도 좋고 나물 맛도 좋다.

사시사철 생나물과 말린 나물이 등장한다.




▲ 인천의 태백산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우수한 한우를 제공한다.


인천 검단지역(왕길동)의 ‘태백산’도 고기와 더불어 밑반찬들이 돋보이는 집이다. 각종 장아찌 종류들이 눈에 띈다. 모두 소화를 돕고 고기의 맛을 돋보이게 하는 것들이다. 오랜 기간 고깃집 주방에서 일한 주인의 음식에 대한 진정성도 아주 좋다. 좋은 숯불을 사용한다는 점도 장점.


▲ 별내 ‘황소한마리육개장’은 육개장집이지만 바싹불고기 인기도 좋다. 잘 양념된 소고기를 석쇠에 올리고 얇게 펴서 바싹 구워낸다.


별내 황소한마리육개장’은 이름 그대로 육개장 전문점이다. 전통 육개장의 맛이 깊다. 황소고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집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설하멱(雪下覓)’도 만날 수 있다. “눈 아래에서 찾는다”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설하멱은 “규합총서” 등에 만드는 방식이 상세히 실려 있다. 설하멱은 미리 주문해야 한다.


▲ 해남 ‘성내식당’의 소고기 샤브샤브는 고기가 두툼하다. 냉동육이 아닌 냉장육을 쓰기 때문이다.


해남 ‘성내식당’은 남도식 한상차림의 반찬들이 황홀한 집이다. 샤브샤브 등이 주 종목인데 엉뚱하게도 밑반찬에 눈이 먼저 간다. 이집의 김장아찌는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것이다. 반드시 리필할 것.


▲ 종로 2가 골목 안의 ‘시골집’의 바싹불고기와 국밥은 저렴한 안주로 좋다.


종로2가 골목 안의 ‘시골집’은 오래된 노포다. 실비집 스타일의 국밥, 바싹불고기 집이다. 인테리어, 서비스 등은 포기할 것. 음식 맛은 가격 대비 수준급이다. 푸근하게 국밥 한 그릇 먹고, 가까운 사람들과 바싹불고기를 놓고 소주잔 기울이기 아주 좋다.


본문에 소개된 맛집 정보



  • 맛집 정보

  • 1 옥야식당: 경북 안동시 옥야동 307-2 / 054-853-6953
  • 2 옛집식당: 대구광역시 중구 시장북로 120-2 / 053-554-4498
  • 3 황소한마리육개장: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 588-8 / 031-528-6292
  • 4 시골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230 / 02-734-0525